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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마음공부방] 원불교 교사 제 1편 개벽의 여명 제 1장 동방의 새 불토 6. 말법 현상과 구주 출세
원불교 교사 제 1편 개벽의 여명 제 1장 동방의 새 불토
6. 말법 현상과 구주 출세
설교 : 전성욱 교무님
일시 : 원기 105년 12월 23일
타이핑 : 심현승
원불교 교사 제 1편 개벽의 여명 제 1장 동방의 새 불토 6. 말법현상과 구주출세 당시 한반도의 종교계 또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으니, 고유의 신앙과 유·불·선 삼교는, 혹은 무당들의 미신 무대로 화하고, 혹은 유교의 세력에 밀려 산중에 숨어 들었으며, 혹은 허례와 공론으로 형식만 남게 되고, 혹은 일 없는 이의 양생술로 그림자만 남았으며, 서교(西敎)는 숱한 박해를 받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였고, 동학은 갖은 경난(經難)끝에 숨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 밖의 여러 교파들은 혹세 무민으로 민심의 혼란에 부채질을 더할 따름이었다. 이에 따라, 민중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으로써, 새 성자에 의한 새 사상 새 종교를 더욱 기다리게 되었다. 이러한 때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구원 겁래의 크신 서원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신 것이다. 후일 정산 종사는 대종사의 성비(聖碑)에 쓰시기를 [대범, 천지에는 사시가 순환하고 일월이 대명(代明)하므로 만물이 그 생성의 도(道)를 얻게 되고, 세상에는 불불(佛佛)이 계세(繼世)하고 성성(聖聖)이 상전(相傳)하므로 중생이 그 제도(濟度)의 은(恩)을 입게 되나니, 이는 우주 자연의 정칙(定則)이다] 하시고, [옛날 영산 회상이 열린 후, 정법과 상법을 지내고 계법 시대에 들어 와서, 바른 도가 행하지 못하고 삿된 법이 세상에 편만하며, 정신이 세력을 잃고 물질이 천하를 지배하여 생령의 고해가 날로 증심 하였나니, 이것이 곧 대종사께서 다시 이 세상에 출현하시게 된 기연이다] 라고 밝히시어, 대종사께서는 새 세상의 주세불로 이 땅에 다시 오시었고, 새 부처님께서 세우신 새 회상은 새 세상의 주세 회상임을 분명히 하여 주시었다. |
반갑습니다. 오늘은 말법 현상과 구주 출세에 대해 공부를 하겠습니다. 오늘 함께할 교사 내용은 전서 p1031~2입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그 시대의 종교 현상은 미신 문화였습니다. 산중 불교, 허례허식이 팽배했고, 갖은 박해로 명맥만 겨우 유지를 했고 그런 상황에서 대중들이 힘들어 했고, 시대를 바룰 큰 성자가 오기를 바라는 민중들의 마음이 가득했다. 그래서 주세불 소태산 대종사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왜 주세불이라 하느냐면 시대에 맞는, 모두가 공부할 수 있는, 생활에 도움이 되는 교법으로 제생의세를 실현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진리적, 사실적 신앙과 수행으로 새 세상의 새 부처님으로 오신 것이라는 내용으로 요약해보았습니다. 이 내용을 오늘 공부해보겠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이 이 땅에 왜 오셨을까하는 의문이 오늘 공부를 하면서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바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왜 원불교를 만드셨을까?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겠죠. 어쩌다보니 오셨고, 원불교를 여신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구원 겁래의 서원, 오랜 세월을 왔다 가시면서 중생 제도의 큰 서원을 세우셨고 이번 생에 대종사님이 살아있을 때, 원불교 회상을 여시고 많은 중생을 제도할 그 뜻을 펼치셨습니다.
당시 한반도의 종교계 또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으니, 고유의 신앙과 유·불·선 삼교는, 혹은 무당들의 미신 무대로 화하고, 혹은 유교의 세력에 밀려 산중에 숨어 들었으며, 혹은 허례와 공론으로 형식만 남게 되고, 혹은 일 없는 이의 양생술로 그림자만 남았으며, 서교(西敎)는 숱한 박해를 받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였고, 동학은 갖은 경난(經難)끝에 숨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 밖의 여러 교파들은 혹세 무민으로 민심의 혼란에 부채질을 더할 따름이었다. 이에 따라, 민중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으로써, 새 성자에 의한 새 사상 새 종교를 더욱 기다리게 되었다. 이러한 때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구원 겁래의 크신 서원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신 것이다. |
이 당시가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로 넘어가는 상황인데 종교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고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걸 보면서 공부를 하면서 마음이 조금 아팠는데, 이 또한 시대의 드러난 내용이니깐 배움의 마음으로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고유 신앙과 미신]
고유의 신앙과 유·불·선 삼교는, 혹은 무당들의 미신 무대로 화하고, |
고유 신앙이라고 하면 굿하고 있는 모습이이 생각나지요? 옛날에는 마을마다 성황당이 다 있었고, 성황신을 모시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굿을 하거나 큰 마을의 행사가 있었을 때에는 함께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래서 액운을 쫓고 안 좋은 일을 미리 방지하고, 죽을 운명을 피하고 때로는 미래를 점치는 것까지 해왔는데 그 것이 도움만 되었으면 좋은데, 시대를 지나가면서 그 폐단이 드러나지요. 굿 비용을 마련하느라고 가산을 탕진하고 굿을 한번 지내고 나면 집이 망하고 이런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게 하는, 그릇된 행동을 유도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 시대의 민중들이 기댈 곳도 없고 더 매달리다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근본적으로는 사실적이지 못한 잘못된 믿음에 바탕하여 그 폐단이 더 짙어지고, 대중들을 더 힘들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신이 뭐지요? 바르게 믿지 못하는 것이고, 잘못 믿는 것입니다. 정산종사님은 ‘모르고 믿으면 미신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실적이지 않은 것들을 믿는 것이 지금도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뉴스를 보다가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는데, 코로나 뉴스였는데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왔다고 이야기하면서 자료영상을 보여줬습니다. 목사님이 교회를 나오다가 안 좋은 일을 겪으면 그 것은 축복라는 안타까운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공감을 하실런지 모르겠어요. 교당을 나오다가 안 좋은 일을 당하면 축복이라고 하면 신심이 생기시나요? 저는 이게 미신이고 형식이라 생각합니다. 원칙을 지키면서, 바르게 인도를 해야지요. 저희들도 법회를 보고 있지만 원칙을 지켜가면서 하면 확진자가 안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에서 그렇게 정해놓은 것인데 그것을 무시하고 한다면 과연 바른 신앙으로 이끄는 것인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또 아이가 아픈데 기도로서 낫게 한다고 하면서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를 하다가 아이를 죽이는 일이 몇 번 뉴스에 나왔습니다. 지금도 있을지 모르겠고 참 안타깝습니다. 우리 생활 속 미신도 많이 있지요? 드라마에도 자주 많이 나오는 소재던데, 아이를 못 낳는 엄마한테 아이를 많이 낳은 엄마의 속옷을 가져다주고 입으면 아이가 생기는 미신이 있지요. 물론 생긴 사람도 있었으니 그런 이야기가 돌겠죠. 그렇지만 전부 생기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영험하신 부처님 코를 만지면 아이가 생긴다던가. 돌부처의 코를 갈아다가 물을 타서 마시면 아이가 생기는 것이 아니고 장염이 생깁니다. 그런데 잘못된 미신에 바탕해서 그런 일들이 지금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 가서 코 만지고 기도하고, 마음은 편할지 모르지만 사실적인 신앙은 아니지요.
미신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어떤 일을 한 번 했는데 우연히 그 일이 맞아 떨어져서 결과를 얻게 될 때 생깁니다. 쥐를 통한 실험을 하면 쥐가 지렛대를 눌렀을 때 먹이가 한 번 떨어지면, 그 다음부터 계속 지렛대를 누릅니다. 벽을 타다가 먹이가 떨어지면, 계속 벽을 타고 올라갑니다. 한번 그런 일이 있으니 나오지 않아도 계속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시험 보러 갈 때 미역국 드시는 분들 있으신가요? 자신 있게 먹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미역국 먹으면 미끄러진다고 하죠. 아마 당당하게 먹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일종의 징크스 같은 경우도 그렇지요. 이게 마음속에 한번 자리가 잡히면 이걸 해야 안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하게 해서 결과가 안 좋아지면 못하게 한 사람을 원망을 하게 되지요. 이게 잘못된 믿음, 미신에 바탕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체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데 안 보려하기 때문에 쉽지가 않습니다. 과거에 이런 미신이 팽배했고 생활 전반에 많이 영향을 미치면서 대중들이 힘들어 했습니다. 그래서 바른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 어렵고 대종사님께서도 중요하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불교]
혹은 유교의 세력에 밀려 산중에 숨어 들었으며, |
다른 것도 있겠지만 주로 불교 이야기이겠지요. 중생 제도를 하겠다고 부처님이 회상을 열었는데, 그 목적은 어디 가버리고, 산 속에 들어가서 수도 생활만 하고 사회와는 멀어지게 되고, 소수의 불교로 남게 되는 그런 불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부처님의 법을 통해서 참 나를 만나게 하고, 참 부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등상불 신앙에 매달려서, 복을 비는 기복 신앙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의 참 본의가 대중에게 전달이 되지 않았을 뿐더러 여러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여건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이 내용은 앞에서 교사를 공부할 때 많이 했으니 이정도로 하겠습니다.
[유교와 허례허식]
혹은 허례와 공론으로 형식만 남게 되고, |
이 것은 주로 물론 다른 것도 있지만 주로 유교 이야기 같습니다. 예를 다 하기 위해서 관혼상제의 가례 전통을 이어오고 그 것을 실천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를 통해서 더 잘살게 되고 생활이 편안해져야하는데, 관혼상제를 치르고 나면 집안 재산을 다 탕진하는 그런 상황이 많이 되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데에 추모하는 마음, 존숭하는 마음이 중심이 되어야하는데, 오히려 제사를 통해서 자손들의 복을 바라고, 제사를 안 지내면 혹 자손들에게 해를 끼칠까 염려되어 마지못해 제사를 지내고 형식만 남게 되었습니다. 제사를 지내면서 추모하며 존숭하는 마음으로 지내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희 집도 어머님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사를 1년에 열두 번씩 지내고 했습니다. 아마 종갓집이나, 제사를 맡은 분들은 그렇게 지내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에 추모, 존숭하는 마음이 담겨있는가. 허례허식으로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장례식장에 보면 아까운 것이 있습니다. 영정 앞에 평소에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깔아놓고 3일 동안 장례를 지내지요. 제가 좋아하는 곶감도 먼지 쌓이고 더럽다고, 또는 귀신이 먹던 것이라면서 못 먹게 하더라고요. 영가도 못 먹고 사람도 못 먹는 음식들이 3일간 전시되어 있다가 음식을 버리더라구요.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 해 놓은 것이고 이게 허례허식이고 형식만 남은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허례허식을 타파하자고 하셨습니다. 제사도 12번, 15번 지내는 것이 아니고 명절대재, 육일대재로 두 번을 정하고 합동으로 모시자고 하셨고 그 것이 더 위력이 있고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는 음식이 아닌 꽃으로 올리고 아니면 진리 불공으로 하자고 해주셨습니다. 물론 특별히 부모님이나 최근에 돌아가신 영가를 위해 추모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교당에서 그렇게 하고 있고, 저도 올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교당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부모님 항렬의 분들의 아쉬움이 적어지면 대재로 합쳐서 모시려고 합니다. 이것이 실지로 가는 것이고 진리로 가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음식을 차리는 것은 유교적인 전통이고 불교에서도 가져다 쓰기도 했습니다만 이 당시에는 대중을 힘들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도교와 양생술]
혹은 일 없는 이의 양생술로 그림자만 남았으며, |
일이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한다는 것이지요. 양생술은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해서 건강관리를 잘하는 기술을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불로장생의 출발이 도가입니다. 그 당시의 의학 발전에 이바지를 했다하고, 한의학의 사상적 바탕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그런 좋은 효과 말고도 그 당시에 생활 전반에 도교의 내용들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며 도교를 이단으로 규정을 하면서 국가에서 금지를 하면서 국가 행사도 없어지고, 산으로 숨어들게 되었습니다. 교전에도 나오듯이 도사들이 이적을 바라고 몸의 건강을 위해서만, 정신은 사라지고 육신을 위한 활동만 남아있는, 세상을 위한 것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변화면서 대중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교와 박해]
서교(西敎)는 숱한 박해를 받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였고, |
서교는 서양에서 온 종교라고 해서 천주교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위에 계신가요, 옆에 계신가요, 앞에 계신가요? 제가 알기로는 위에 있다고, 초월적인 존재로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될 수 있나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존재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동학은 조금 다릅니다. 시천주라고 해서 하나님을 절대적인 신의 의미가 아니라 안으로 모시는 것이 동학이라면, 천주교에서는 전혀 다른 존재이지요. 그 분 밑에서 평등하다는 바탕이 있습니다. 그 당시의 사회에 근간을 흔들었고, 천주장이라 하며 박해를 했습니다. 박해의 핑계가, 제사를 안지내기 때문에 생활을 파괴한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사실이 있었지요. 이경주 교우가 이야기 했듯이 박해가 여러 번 있었지만, 사상적인 것뿐 아니라 그 당시에 정치적 반대 세력을 숙청하기 위해 천주교의 모임을 이용했다고도 합니다. 사실을 그로 인해 더 많이 죽었다고도 합니다. 1800년대부터 100여 년간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서교박해라는 명분으로 죽게 됩니다. 그 당시에도 지명수배가 있었다고 합니다. 신부님을 지명수배를 내릴 정도로 강하게 탄압을 하고 박해를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퍼져 나갔지만 숨어서 하게 되고,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습니다.
[동학]
동학은 갖은 경난(經難)끝에 숨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 밖의 여러 교파들은 혹세 무민으로 민심의 혼란에 부채질을 더할 따름이었다. |
그리고 동학 이야기가 나옵니다. 1860년에 동학이 생겨났습니다. 시천주 사상을 내세우고 사인여천이라고 해서, 한울님을 내 안에 모십니다. 동학이 퍼지기 시작하며 조정에서 경계를 해서 탄압을 합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창교한 지 4년 만에 죽임을 당합니다. 그럼에도 계속 퍼져갑니다. 동학이 그 당시에 사회적으로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회적 역할을 통해서 과연 민중들의 삶을 개선시켰느냐, 평안하게 했느냐를 본다면 결과는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평등사상, 사람을 중시하는 마음이 마음에 자리 잡았지만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면서 동학농민운동으로 발전이 되고,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되고 실패했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의 개혁적인 시대적 욕구를 반영하고, 사상적으로는 분명히 새로운 시대를 향토할 수 있는 사상이었지만, 실제로는 대중들을 힘들게, 죽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에 시대적 상황 속에서 민중들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내부에서 생겨난 동학, 외부에서 들어온 천주교, 오랫동안 불교, 유교, 고유의 종교들이 나름대로 역할을 하려고 했지만 여러 상황과 맞물리면서 대중들을 안심시키고, 생활을 나아지게 하는 역할은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했고,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언급한 종교들 외에도 수많은 종교들이 생겨나면서 대중을 이익 주는 것이 아니라 혹세무민하고, 기만하고 괴롭게 하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중들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주세불 대종사]
이에 따라, 민중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으로써, 새 성자에 의한 새 사상 새 종교를 더욱 기다리게 되었다. 이러한 때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구원 겁래의 크신 서원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신 것이다. |
원불교에서 이 때 소태산 대종사님이 오셨다고 표현을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대종사님은 돌아가셨는데 이 것을 누가 증명을 해야 할까요? 정산종사님께서 날이 갈수록 세상이 고루 인증하게 될 것이다. 그러셨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새 시대의, 새 세상의 세 주세불로 이 땅에 오셨다는 내용을 정산종사님께서 대종사님 성비에 쓰신 내용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정산종사법어 제1 기연편(機緣編) 17장 원기 38년 4월,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 비(圓覺聖尊 少太山 大宗師碑)를 영모원에 세우시며 비에 새기시기를 [대범, 천지에는 사시가 순환하고 일월이 대명(代明)하므로 만물이 그 생성의 도를 얻게 되고, 세상에는 불불이 계세하고 성성이 상전하므로 중생이 그 제도의 은(恩)을 입게 되나니 이는 우주 자연의 정칙이다. 옛날 영산 회상이 열린 후 정법과 상법을 지내고 계법 시대에 들어와서 바른 도가 행하지 못하고 삿된 법이 세상에 편만하며 정신이 세력을 잃고 물질이 천하를 지배하여 생령의 고해가 날로 증심하였나니 이것이 곧 구주이신 대종사께서 다시 이 세상에 출현하시게 된 기연이다.]하시고, 대종사의 약력을 기술하신 후 [오호라, 대종사는 일찌기 광겁 종성(曠劫種聖)으로 궁촌 변지에 생장하시어, 학문의 수습이 없었으나 문리를 스스로 알으시고 사장의 지도가 없었으나 대도를 자각하시었으며, 판탕한 시국을 당하였으나 사업을 주저하지 아니하시고 완강한 중생을 대할지라도 제도의 만능이 구비하시었으며, 기상은 태산교악 같으시나 춘풍화기의 자비가 겸전하시고 처사는 뇌뢰낙락(磊磊落落)하시나 세세곡절의 진정을 통해주시며, 옛 법을 개조하시나 대의는 더욱 세우시고 시대의 병을 바루시나 완고에는 그치지 않게 하시며, 만법을 하나에 총섭하시나 분별은 오히려 역력히 밝히시고 하나를 만법에 시용하시나 본체는 항상 여여히 드러내사, 안으로는 무상 묘의의 원리에 근거하시고 밖으로는 사사 물물의 지류까지 통하시어, 일원 대도의 바른 법을 시방 삼세에 한 없이 열으시었으니, 이른 바 백억 화신의 여래시요 집군성이대성(集群聖而大成)이시라] 하시니라. |
천지가 사시순환으로, 해와 달이 바뀌면서, 그 은혜로 만물이 살아갑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부처님이 이어서 나오고, 성자들이 이어 나와서 그 법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그 제도의 은을 우리 중생들이 입게 된다는 것이 우주 자영의 정해진 규칙이라고 하였습니다. 왜일까요? 역사를 통해서 계속 그렇게 해왔다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그러셨고, 예수님도 그러셨고, 공자님, 맹자님도 그러셨습니다. 대종사님이 사시던 그 시대의 많은 성자들도 그렇게 해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그 목적을 완전히 달하지는 못했지만, 그 것이 정해진 규칙이라는 것입니다. 영산회상은 부처님, 불교를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정법, 상법, 계법 각 천년 씩 삼천년이라고 하는데 부처님이 오신지 삼천년이 다 되어가지요. 그 과정 속에서 바른 도가 행하지 못하고 삿된 법이 세상에 편만했습니다.
[교법의 원만성]
성비에 쓰신 내용을 통해서 밝히고 계십니다. 이 것이 이제 그 힘든, 혼란한 세상 속에서 대종사님께서 오실 수밖에 없었던, 대종사님께서 그런 시대적 역할을 하시러 오신 주세불이시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대종사께서 주세불인 것은 당신이 증명하시겠지만, 가셨고 뭘 남기셨죠? 교법을 남기셨습니다. 이 교법을 통해서 대종사님께서 새 주세불이시라고 하는 것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 것을 정산종사님께서 기연편 11장에 밝혀 놓으셨습니다.
정산종사법어 제1 기연편(機緣編) 11장 말씀하시기를 [과거에 모든 부처님이 많이 지나가셨으나 우리 대종사의 교법처럼 원만한 교법은 전무 후무하나니, 그 첫째는 일원상을 진리의 근원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일체를 이 일원에 통합하여 신앙과 수행에 직접 활용케 하여 주셨음이요, 둘째는 사은의 큰 윤리를 밝히시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윤리 뿐 아니라 천지 부모 동포 법률과 우리 사이의 윤리 인연을 원만하게 통달시켜 주셨음이요, 세째는 이적을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인도상 요법으로 주체를 삼아 진리와 사실에 맞은 원만한 대도로써 대중을 제도하는 참다운 법을 삼아 주셨음이라, 아직도 대종사를 참으로 아는 이가 많지 않으나 앞으로 세상이 발달하면 할수록 대종사께서 새 주세불이심을 세상이 고루 인증하게 되리라.] |
교법의 원만성을 밝히시면서 세 가지를 밝히셨습니다. 이 내용들이 드러날수록 대종사님께서 새 주세불인 것을 다 인증하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세상이 인정하기 전에 우리 공부하는 사람들이 확실히 깨치고, 실행해서 이것을 증명하는 것도 필요하겠지요. 그 원만성이라는 것이 세 가지인데 일원상의 진리를 드러내셨고 이를 통해서 신앙, 수행에 직접 활용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드러내주셨습니다. 일원상과 우리는 같은가요? 다른가요? 근원이 같습니다. 우리가 나를 놓고 참 나로 들어가면 일원상의 진리와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와 내가 둘이 아니게 됩니다. 이는 혁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까?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초월적인 우리와 완전 다른 존재입니다. 그러면 닮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에 닮을 수 없습니다. 다만 그분이 제시한 길을 따를 뿐입니다. 하지만 대종사님께서 일원상의 진리를 드러내시고 우리와 진리의 관계를 밝히시고 이 진리를 통해서 수행하게 하시고 또 진리를 신앙의 대상으로 끌어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분명한 길을 알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 원리를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게 되면 혁명입니다. 그리고 이 것은 경험하게 되면 더 확신을 가지게 되는 내용입니다. 저도 그렇게 믿고 있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사은의 큰 윤리를 밝히셨다는 것입니다. 사람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천지, 부모, 동포, 법률 사은과의 윤리까지 밝혀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만물을 품어 안을 수 있고 그 관계를 풀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법의 크기가 한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디 하나 부족한 곳이 없고, 다 비추고 다 활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모든 존재와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큰 법이고, 가장 원만한 법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인도상의 요법을 주체를 삼아 대중을 제도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한 번에 믿음을 주게 하는 방법은 큰 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가 돈이 이만큼 있다 하거나, 힘이 세다거나, 외모가 훌륭하거나, 뛰어난 부분을 보여주면 그것을 통해서 그 사람을 따르게 합니다. 대종사님이 그런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지요. 그렇지만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대중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사람이 할 수 있고, 생활에서 해야 하고, 실지 효과가 나타나는 인도상의 요법을 이야기하셨고 그것을 통해서 대중을 제도하셨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원만한 교법입니다.
이 세 가지를 말씀하시면서 이 교법의 우수성, 원만성 때문에 세상에서 대종사님을 주세불로 인정하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지금 인증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법으로 우리의 생활이 나아지고, 세상을 평등세계, 원만세계, 상생의 세계로 이끌어가고 있다면 이 것은 갈수록 증명이 될 것이고, 사람들은 그렇다고 인증하게 될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집군성이대성]
정산종사님은 대종사님께서 주세불이시라 확신을 하시고, 대중들은 잘 모를 때이지만 확신을 하시고 성비에 그렇게 밝히셨습니다. 더해서 대종사님 성비의 내용이 있는데 대종사님께서 정말 자비하신 주세불이시구나 하는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 내용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정산종사법어 제1 기연편(機緣編) 17장 원기 38년 4월,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 비(圓覺聖尊 少太山 大宗師碑)를 영모원에 세우시며 비에 새기시기를 [대범, 천지에는 사시가 순환하고 일월이 대명(代明)하므로 만물이 그 생성의 도를 얻게 되고, 세상에는 불불이 계세하고 성성이 상전하므로 중생이 그 제도의 은(恩)을 입게 되나니 이는 우주 자연의 정칙이다. 옛날 영산 회상이 열린 후 정법과 상법을 지내고 계법 시대에 들어와서 바른 도가 행하지 못하고 삿된 법이 세상에 편만하며 정신이 세력을 잃고 물질이 천하를 지배하여 생령의 고해가 날로 증심하였나니 이것이 곧 구주이신 대종사께서 다시 이 세상에 출현하시게 된 기연이다.]하시고, 대종사의 약력을 기술하신 후 [오호라, 대종사는 일찌기 광겁 종성(曠劫種聖)으로 궁촌 변지에 생장하시어, 학문의 수습이 없었으나 문리를 스스로 알으시고 사장의 지도가 없었으나 대도를 자각하시었으며, 판탕한 시국을 당하였으나 사업을 주저하지 아니하시고 완강한 중생을 대할지라도 제도의 만능이 구비하시었으며, 기상은 태산교악 같으시나 춘풍화기의 자비가 겸전하시고 처사는 뇌뢰낙락(磊磊落落)하시나 세세곡절의 진정을 통해주시며, 옛 법을 개조하시나 대의는 더욱 세우시고 시대의 병을 바루시나 완고에는 그치지 않게 하시며, 만법을 하나에 총섭하시나 분별은 오히려 역력히 밝히시고 하나를 만법에 시용하시나 본체는 항상 여여히 드러내사, 안으로는 무상 묘의의 원리에 근거하시고 밖으로는 사사 물물의 지류까지 통하시어, 일원 대도의 바른 법을 시방 삼세에 한 없이 열으시었으니, 이른 바 백억 화신의 여래시요 집군성이대성(集群聖而大成)이시라] 하시니라. |
광겁 종성, 오랜 세월을 통해서 성자의 종자를 가지고 계셨다. 오랫동안 성자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생에는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 궁촌 변지에 나시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서당에 잠깐 다니다 마셨죠. 그렇지만 스승님께 지도받은 바가 없지만 일원대도를 깨치시었죠. 판탕한 시국이라는 것은 어려운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이라 얼마나 탄압이 심했습니까. 그런데 쉬지 않으시고 키워내셨고, 지금의 원불교가 있도록 기반을 다져주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종사님은 제도의 만능을 겸비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이 사람대로, 저 사람은 저 사람대로 제도할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을 갖추셨습니다. 대종사님은 언제 제도를 받았는지 모르게 제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당신이 직접 하기도 하고 제자를 통해서 하기도 하고, 대중을 통해서 하기도 하고, 혼내기도 하고, 칭찬을 하시기도 하고 봐주시기도 하고 각자에 맞게 제도하시었습니다. 기상은 큰 산과 같이 드러나셨지만 그 안에 자비가 있었습니다. 그 자비를 대한 선진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종사님이 당신을 제일 사랑하셨다고 이야기하시지만 다른 선진님들도 다 그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보니 아닌가 싶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가장 사랑받았다는 생각이 들도록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일하시는 것은 벼락 치듯이 강하게 하셨지만, 그 세세한 내용들도 다 살피셨습니다. 대종사님은 이 법을 개조하셨지만 그 대의를 더 드러내시면서 오히려 과거의 것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시대의 병을 고치셨지만, 반드시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지 않으시고 다양한 법을 통해서 열어주시고 사람에 맞게 법을 활용하시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길을 인도해주셨습니다. 만법을 일원상의 진리에 총섭 하였지만 분변을 오히려 역력히 밝히셨습니다. 그 일원의 진리를 만법에 다 사용하셨습니다. 안으로 원리를 밝히시고 밖으로 각각에 다 통할 수 있으니 원만한 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집군성이대성(集群聖而大成), 성자들을 한 몸에 합한 성자라는 말인데, 몸으로서 합한 것이 아니고 그 많은 법을 합쳐서, 많은 법을 합쳐서 모든 법에 통할 수 있게 만드셨기 때문에 집군성이대성이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정산종사님께서 대종사님이 주세불이신 것을 성비를 통해서 어떻게든 드러내시고 정말 명문장으로 표현해주셨습니다. 대종사님의 주세불로서의 은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다가 성비에 이 표현을 쓰셨다고 합니다. 우로지택 일월지명(雨露之澤 日月之明), 비와 이슬의 혜택, 해와 달의 밝음. 비, 이슬, 해와 달이 없으면 살 수가 없지요. 대종사님의 은혜는 해와 달의 은혜와 같이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라고 표현하신 부분입니다.
말법 현상과 구주출세에 대한 내용을 봤습니다. 대종사님은 우연히 오신 것이 아닙니다. 어쩌다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동안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뜻을 세우셨습니다. 이를 구원겁래의 서원이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랜 준비를 거쳐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여러 생을 왔다가 갔다 하시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시며 이번 원불교 회상의 방향을 정하시고 불법 연구회란 이름을 통해서 지금의 원불교로 발전시켰다 생각이 됩니다. 수많은 생을 왔다 갔다 하셨습니다. 미신이나 허례허식이나, 무력적인 봉기나, 타력에 근거한 그러한 외침은 결국 실패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서 대중을 건지겠다하지만 대중들에게 오히려 고통을 준다하는 것입니다. 진리적이고 사실적인 신앙, 수행이 대중을 건질 수 있겠다 생각하시고, 원불교를 내셨다 생각이 됩니다.
대종경 제12 실시품(實示品) 45장 안 도산(安島山)이 찾아온지라, 대종사 친히 영접하사 민족을 위한 그의 수고를 위로하시니, 도산이 말하기를 [나의 일은 판국이 좁고 솜씨가 또한 충분하지 못하여, 민족에게 큰 이익은 주지 못하고 도리어 나로 인하여 관헌들의 압박을 받는 동지까지 적지 아니하온데, 선생께서는 그 일의 판국이 넓고 운용하시는 방편이 능란하시어, 안으로 동포 대중에게 공헌함은 많으시면서도, 직접으로 큰 구속과 압박은 받지 아니하시니 선생의 역량은 참으로 장하옵니다.]하니라. |
실시품 45장에 보면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나의 일은 판국이 좁고 솜씨가 또한 충분하지 못하여, 민족에게 큰 이익은 주지 못하고 도리어 나로 인하여 관헌들의 압박을 받는 동지까지 적지 아니하온데’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사실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총부에 대종사님을 뵌 이후로 일제의 압박이 심해졌고, 원불교가 엄청난 탄압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왔다 갔을 뿐인데, 대중적으로 밖으로 드러내는 큰 활동을 하셨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고통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대종사님께서 밖으로 급진적인, 세력을 벌리거나, 큰 외침을 내지는 않았지만, 안으로 자력을 갖추고 사실적이고 진리적인 신앙 수행으로 제자들을 인도하시고 제도를 하셨기 때문에 이런 바탕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그 유익을 지금도 저희들에게 주고 있고 앞으로도 저희를 통해서 이 유익이 퍼져나갈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드디어 교사에서 시대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대종사님의 탄생에서 구도과정, 제자들과 교화하는 이야기, 깨달음 등을 교사를 통해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사를 통해서 대종사님이 오신 뜻을, 그리고 우리 회상이 나아갈 바를 정립할 수 있는 공부 기회가 되시면 좋겠다 싶고 앞에 공부한 내용을 한 번 더 참고하시어 그 본의를 해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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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은혜롭습니다~^^*
공심짱 현승 교우님 매번 감사합니다😭😭 당신이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