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신촌에 있는 한 속성운전면허학원의 간판./ 정순화 인턴기자
불법 속성 운전면허학원(이하 속성학원)이 방학을 맞아 성행하고 있다. 이들 학원은 면허시험에 응시하기 전 최소 1주일간(총 20시간) 받아야할 교육을 “단 2~3일만에 끝낼 수 있다”고 선전하며 수강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시행규칙에 따르면 일반 운전면허학원의 경우 기능교육 10시간과 도로주행교육 10시간 등 총 20시간을 교육해야하며, 1일 교육 시간은 3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따라서 학원등록생이 면허시험 응시를 위해서는 최소한 1주 정도가 필요하다.
◆ “시간 절약, 비용 저렴” 내세우며 유혹
수강생들이 속성학원에 몰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체 시험으로 면허증을 발급하는 전문학원에 다닐 경우 평균 70만~100만원 비용과 한달 정도 시간이 걸리지만, 속성학원은 20만~50만원 정도면 가능하고, 면허증 취득에 3~7일 정도면 된다.
현재 ‘3일 속성코스’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 신촌의 모 자동차운전면허학원 관계자는 “교육 받고 바로 다음날, 그 감각 그대로 시험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운전대 한번 안 잡아봤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잘 안 된다 싶으면 아침 일찍부터 시간제한 없이, 합격할 수 있을 때까지 교육을 해준다”라고 말했다.
◆ 지방원정도 불사
지난 19일 새벽 5시 50분.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7번 출구 서강대교 방향으로 승합차 두 대가 서 있었다. 모두 전북지역 번호판을 달고 있고 한 차량의 옆면에는 ‘○○자동차운전면허학원 3~5일 취득 가능’이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써있다.
▲ 지난 19일 새벽 5시 50분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인근에 한 속성 자동차운전면허학원 소속 승합차 두 대가 수강생들을 태우기 위해 서 있다. 이들은 2박 3일 일정으로 면허시험을 준비하고 응시하려는 30여명을 태우고 전주로 내려갔다./ 정순화 인턴기자
잠시후 20대 중반의 한 남자가 차에 올라탔다. 그는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2박3일 일정으로 전주로 간다”고 했다. 6시20분쯤 두 대의 승합차는 10여명의 ‘고객’들을 태우고 떠났다. 그리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들려 20여명을 더 태웠다.
주변 상인들에 따르면 이곳에는 매일 새벽 1~2대의 운전학원 셔틀버스가 나타나 사람들을 태우고 떠난다. 이들이 지방 원정까지 가는 이유는 서울 등 대도시보다 지방 중소도시가 시험 응시 대기자 수가 적어 시험을 빨리 치를 수 있기 때문. 주로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이나 군인,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이 속성학원을 찾고 있다.
◆ 몰아치기 교육…교육 내용도 허술
대학생 한모(25)씨는 지난해 군 복무시절 휴가를 나와 서울에 있는 ‘2박3일 완성’운전학원을 찾았다. 학원에서는 그를 전주에 있는 학원 운전연습장으로 데리고 갔다. 한씨는 “가보니 전국 각지의 속성학원 브로커 등을 통해 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며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한 탓에 대단히 피곤했는데도 당일 오후 바로 운전대 앞에 앉아 기능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씨는 이틀 동안 인근의 모텔에서 지내며 하루에 8~9시간씩 학과교육부터 기능교육, 도로주행교육을 받고 기능시험까지 치렀다. 셋째날에는 아침부터 도로주행을 연습하고 오전 중 시험을 본 뒤, 떨어지면 오후에 다시 연습을 해야만 했다. 한씨는 강행군끝에 결국 닷새째 되던 날 시험에 합격했다. 당초 계획보다 이틀이 늘어났지만 4박5일만에 운전면허를 딴 것이다.
이렇듯 속성으로 교육이 이뤄지다보니 내용도 부실할 수 밖에 없다. “지난해 2일간 속성학원을 다녔다”는 회사원 윤모(29)씨는 “요령만 알려줄 뿐 제대로 된 코스도 돌 수 없는 허술한 교육 탓에 시험에 떨어졌다”며 “결국 수업료 25만원만 날렸다”고 비판했다.
윤씨는 또 “전문학원에선 1대1강습을 원칙으로 하는데 그곳에선 강사 1명 당 학생 2명이 짝을 이뤄 도로주행교육을 받았다”며 “하루만에 본 시험에서 불합격했고 이후 세 차례 더 지방 연습장으로 내려갔지만 재교육은 더욱 무성의했다”고 말했다. 결국 윤씨는 서울의 한 운전전문학원에서 ‘정식 교육’을 받은 후에야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수강생들은 정식 강사 자격증이 없는 일명 ‘야매 운전강사’로부터 교육을 받기도 한다. 3년전 노원구에서 ‘야매 운전강사’를 한 회사원 정모(24) 씨는 “당시 함께 일한 강사 10여명 모두 자격증이 없었다”며 “그저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경기도 구리시 외곽의 한적한 공터에 노끈 등을 바닥에 못박아 도로 표시를 했고, 신호등이나 횡단보도 등도 없이 도로주행교육을 했다”며 “강습에 사용된 차도 정식 교육용 자동차 몇 대 외에 일반 중고차를 썼다”고 말했다.
◆단속은 어렵고… ‘부실 운전자’는 양산되고…
현재 ‘불법’ 속성학원에 대한 경찰의 관리와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 이들 학원의 위법행위를 단속해야할 일선 경찰들은 단속 규정과 처벌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경찰은 이와관련 “일선 경찰들을 대상으로 운전학원에 대한 규정을 교육시킬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며 “그나마 관련 법규정을 잘 아는 지방청 소속 관련 경찰은 인원이 모자라 속성학원의 불법행위에 대해 집중적으로 수사할 여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또 “속성학원은 3년간 보존해야할 ‘교육생 대장’도 폐기하는 경우가 많아 단속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관련 처벌 규정이 미비한 문제도 있다. 현행법상 일반 운전학원이 수강생을 모집하기 위한 별도의 ‘연락사무소’를 만들면 불법행위로 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 속성학원들처럼 ‘연락사무소’ 없이 브로커를 통해 전화 접수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처벌 규정이 없다. 인터넷에서 개인이 수강생을 모집하는 것에 대한 처벌 규정도 없다.
시민단체 녹색교통운동 이정우 정책실장은 이런 불법 속성운전학원이 성행하는 것에 대해 “부실 운전자가 늘고 잠재적으로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시간적ㆍ경제적 이유로 속성학원을 찾고 있지만 값이 싼 만큼 문제가 있고, 그 문제는 본인 뿐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속성운전면허학원 전단지,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