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뜨거워 울어댄다고 치졸하게 몰어대지만 실상 뜨거운 아스팥트 때문에 화가 나서 쎅섹~울어대는 매미인 걸 보면 시끄럽다 말할 처지도 아닌데 치열하게 울어대는 소리 들릴 즈음이면 어디론가 떠날 때가 됐음을 직감한다. 작년에 이어 남편 지인들과 떠나는 여행에 동참하게 됐으니 작년 그늘진 눈으로 둘러본 울릉도의 악몽이 연결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떠나는 내 맘 알았는지 살아있는 화석나무라 칭하는 메타쉐콰이어 나무 늘어선 정다운 시골길, 다정하게 손흔들어 준다.
올 무자년 휴가지는 전라남도 보성군 산암리 폐교다. 보성으로 가는 길에 올해 첫번째 벌이는 정남진 축제를 알리는 팜플릿이 눈에 든다. 가는 길이니 들리기로 했는데 멀지 않은 도로 사이사이마다 폭우가 쏟아졌다, 해가 쨍쨍하다 변덕이 죽끓듯 난리도 아니다.
전라남도 장흥 탐진강변에서 벌어지는 물과 빛, 생태와 문화가 어우러진 축제인데 올해 첫 시작이라니 얼마나 설레는 맘으로 열심히 준비했을까, 기대가 컸었나? 언뜻 둘러본 인상은 작년 예천에서 열린 곤충박람회와 비슷한 분위기다. 강이 있고, 뜨거운 여름 열기 식히기 위해 쏟아지는 폭포줄기가 있고, 물고기 잡이에 가수들 동원, 먹거리들. 거기다가 강을 건너는 돌다리까지 똑같다. 동원된 공무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더위에 지쳐 표정없는 얼굴로 사람맞이보다는 그저 자리 채우기에 급급해보이는 인상이다. 단지 시원한 물가에서 물놀이에 여념없는 아이들만 신나서 팬티만 입은 발가숭이 몸으로도 창피한 줄 모르고 여기저기 둥실 떠다니며 웃게 만들 뿐이다.
무대 앞에선 물살을 가르며 동그랗게 선회하는 소형모터보트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준비중인 무대.
평상시 오일장이 열리면 강변 둔치 주차장이 발디들 틈이 없다는 곳인데 아직 이른 시간인지 널찍하게 자리잡은 차들 사이로 보이는 토요시장 간판이 궁금해서 그곳으로 향한다.
토요시장 뒷골목은 한우도매식당 거리다.
저 붉은 소고기 생고기를 기름장에 찍어먹으면 꼬소한 맛이 입안에 맴돌아 꿀꺽 삼켜버리기 아쉬울 지경이다. 실컷 구워먹고도 집근처에서 돼지고기 먹은 정도의 금액이 나오니 늦은 밤 술안줏거리까지 챙겼다.
밀어닥칠 사람들의 적정선을 맞추지 못해 모처럼 볼거리 찾아간 먼 경북 예천에서 밥이 모자라 점심 굶을 뻔했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이곳 장흥에선 밥에 고기까지 배불리 먹었으니 행복한 나들이라 할 수 있는 셈이다. 식후 포만감엔 어디든 무릉도원인 셈이니~
음식점 앞은 황토로 옷을 만들어 파는 황토옷집인데 기와지붕이 황토옷과 어울려 품위가 살아나 보인다. 아이 민소매 티 가격이 이만원 선이다.
소박한 물건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는 공예가게다.
원래 목적지인 보성 폐교에서 옆길로 한참을 빠진 참이니 후다닥 또 달려갈 길이 멀다. 잠깐 신호에 멈춘 차 안에서 바라보는 산세가 또 절경이다. 부드럽게 완만한 곡선이 어여쁜 억불산이란다. 왼쪽에 삐죽하니 따로 솟아 있는 바위가 며느리바위다. 예로부터 며느라-자가 들어간 식물은 한많고 서러운 상징이다. 며느리배꼽,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밑씻개 등처럼 배고파서 밥풀 뜯어먹다 죽어서 꽃이 됐다든가, 뒷간에 갔다가 거치른 풀로 생채기 입고 눈물 흘리다 풀이 됐다든가 서럽기 그지없는 게 며느리다. 며느리바위 역시 행복한 모양새는 아니다.
오랜 옛날, 마음씨 착하고 효성 지극한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살았다, 한다. 그런데 문제는 며느리와는 달리 시아버진 인색하고, 고약해서 며느리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아버지의 모진 구박에도 착한 심성으로 살아온 덕에 고승으로부터 재난에 대비하라는 예언을 듣고 아이를 업고 피하던 중, 간절하고도 애절하게 며느리를 부르는 시아버지의 외침을 듣고는 뒤돌아보는 바람에 돌이 돼버렸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