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25 주일낮설교 / 충만교회 민창근 목사
눅 18:9-14 / 의롭다함을 받은 세리의 기도
(0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討索), 불의(不義), 간음(姦淫)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感謝)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禁食)하고 또 소득(所得)의 십일조(十一條)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말씀들을 찾아서 말씀을 계속 드리고 있다.
오늘말씀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중요한 4가지 비유 중에 하나이다. ① 탕자 비유 ②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 ③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 비유 ④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4가지 종파가 있었다. ① 바리새파 ② 사두개파 ③ 열혈당 ④ 엣세네파
이중에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사람들은 다 문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바리새파 사람들이 많이 지적되었는데, 그들의 위선과 교만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위선과 교만으로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소외 받았던 약자들을 무시하고 정죄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마 23장 전체가 그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화 있을찐저"하며 문제를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올 정도이다.
* 두 사람이 기도하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다.
기도는 하루에 3번, 오전 9시, 12시 정오, 오후 3시에 했다. 이중의 어느 시간에 올라갔을 것이다. 바리새인은 유대인의 뜰에서, 세리는 성전 밖 이방인의 뜰에서 기도했을 것이다.
→ 기도하기 위해 골방을 찾던가, 성전을 찾는 일은 믿음의 생활을 하는 사람에겐 소중하다.
골방은 일상적 생활에서도 가능하다. 어디든지 믿음으로 잠시라도 기도할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다.
성전을 찾아서 기도하는 열정과 마음이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옛날 어른들은 보통 이 십리 정도도 걸어서 새벽기도를 다니고, 예배에 빠지지 않고 다녔다. 산너머 가다가 호랑이를 만나기도 한 이야기도 있다.
회교도들은 하루에 5번을 기도한다. 우리도 기도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도록 생활 속의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올바른 기도는 반드시 역사가 일어난다.
(예)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총리가 되었지만,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다. 민족을 향한 열정을 쏟는 기도를 하였기에 사자굴에 들어갔지만 살아나왔다.
(예) 백화점의 왕 존 워너 메이커는 어릴 적 너무 가난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잘 섬기길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 베푸셔서 백화점의 왕이 되고 미국의 10대 재벌이 되고 재정부 장관을 했습니다. YMCA를 설립했습니다. 나중에는 백만 불을 드려서 단독으로 교회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헌당예배에서 눈물을 흘리며 간증을 했습니다.
"내가 어릴 때 추수감사절이 되어서 모든 친구들이 예물을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 것도 드릴 수 없는 내 모습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벽돌 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벽돌을 한 수레 끌고 와서는 목사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을 귀하게 여기신 잠버드 목사님이 안수해서 축복해 주었는데, 하나님이 30년이 지난 오늘날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100만불 짜리 교회를 지었습니다."
* 바리새인은 귀족으로 지배계급이고, 존경받는 자, 권위 있는 사람이었고, 부와 명성을 누렸으며, 구별된 사람이었으며, 율법을 지키면서 의롭게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사람은 유대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세리는 유대 나라를 점령한 로마를 위해 세금을 징수하였다. 그 당시 토지와 주민세 등 국세는 공무원들이 거둬들였고, 지방세는 하청업자들이 거두어 들였는데, 세리들은 지방세를 더 많이 징수하여 로마정부에 하청금액을 바치고 나머지를 착취했다. 따라서 세리들은 포악(사납고 악함)하였고, 민족 반역자들로 낙인찍혔고, 백성들을 괴롭히기에 창기와 함께 죄인의 대명사로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이 사람은 이방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 교회 안에는 잘 사는 사람, 권세를 가진 사람,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하고, 포악하고, 사회적으로 멸시와 천대를 받을 만한 사람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성격이 좋은 사람도 나오고 개떡같은 사람도 나오는 것이다. 생각이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나온다.
(예) 강단 앞에 피아노 어느 쪽에 놓아야 하는가를 놓고 싸우는 교회
(예) 아이가 요람에서 나와 산타페를 몰고 가다가 여자아이를 태우고 바다에 가서 서핑을 즐기는 현대자동차 광고가 다른 나라에서는 광고대상을 받기도 했지만, 호주에서는 광고금지를 먹었다. 생각이 다른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오든지 주안에서 회개하고 좋게 변화되도록 도와주고, 인도해주는 일을 잘 해야할 것이다.
또한 앞섰다고 잘난체 하거나, 못났다고 주눅들지 않도록 주의 사랑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서로를 배려하고, 유익을 가져오도록 나누고 돕고 기도해주는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 바리새인의 기도 - 바리새인은 자기를 높이며 자기 생활에 만족했다. 그는 자기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자랑하며 기도했다.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 "서서 따로"란 말은 일어선 후에 자신에게 기도했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선 자세로 기도를 많이 한 것 같다. 그 이유는 사람들에게 나타내려는 의도가 강한 것이고, 그래서 성전에서만이 아니라, 길거리나 회당에서도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다(마 6:5).
→ 기도를 서서하든, 누워서 하든, 앉아서 하든....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지 자신에게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인데, 바리새인은 기도를 하나님께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일반 다른 종교의 기도는 자기 자신이나 귀신에게 하는 기도이다. 그래서 자기의 욕심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지만, 기독교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여쭙고, 그 뜻이 내 삶에 이루어지기를 소원하고, 나의 소원도 주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자랑을 하려고 기도하는 척 하면 안된다.
- 사랑하는 척, 위로하는 척, 위하는 척, 기도해 주는 척, 베푸는 척...우리는 흉내를 내는 삶을 살아선 안된다.
(예) CF에 나오는 야동보던 아이들이 부모님들이 외출에서 돌아오니 공부하는 척하는 이야기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討索), 불의(不義), 간음(姦淫)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感謝)하나이다"
- 이 기도의 주어는 나(I)였다. 나를 강조하여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강조하면서, 주위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기도했다.
- "토색(착취자들), 불의(불의한 자들)
- 이 세리라는 말은 원어로 '후토스'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 말은 경멸투의 지시대명사이기에, 세리를 멸시하는 투로 말했다.
→ 기도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투로 기도하는 것은 좋은 자세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실 때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조금 더 낫다고 하지만 그 차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예) 63빌딩에서 본 큰 차이 없는 인간들....기도는 겸손히 해야 한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禁食)하고 또 소득(所得)의 십일조(十一條)를 드리나이다"
- 금식은 율법에 보면 1년에 한번 대속죄일에만 금식을 하였다.
(레 16:29 / 민29:7)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7월 곧 그 달 10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그런데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는 1년에 4번 금식했다. 4월 9일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던 날, 5월 7일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던 날, 7월 2일 총독 그달랴(그달리야)가 살해된 날, 10월 10일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의 포위가 시작되었던 날이다.
그후에 금식일을 늘려서 매주 목요일과 월요일에 금식했다. 목요일은 모세가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갔던 날이었고, 월요일은 하산했던 날이었다. 이 날을 잘 지키는 사람이 바리새인들이었다.
→ 사순절 때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금식하자.
특별한 소원이 있을 때 금식하며 기도할 수 있다.
금식기도도 해보라. 다이어트만 생각지 말고....
- 소득의 십일조는 아브라함부터 시작되었고, 율법에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십일조는 내 모든 소유의 주인이 하나님이요 나는 청지기에 불과함을 고백하는 행위임(마 25:14-30)이다.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것으로 신앙을 평가하기도 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경우에는 예수님 당시와 마찬가지로 정죄의 대상이 되거나, 직분에서 소외되는 문제로 인해 십일조만을 따지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라고도 개혁적인 면에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십일조(1/10), 주일(1/7), 첫 시간(새벽기도)의 중요성은 한국교회의 중요한 강조점임을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것들이 신앙의 성장과 자세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율법에서 십일조는 농작물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었다(신 14:22). 그러다가 채소류의 10분의 1도 바쳤다. 곡식, 포도즙, 기름....마 23:23에는 '박하, 회향, 근채'라는 양념, 약품, 향료로 쓰는 매우 사소한 식물인데 바리새인들은 이런 것까지도 계산해서 하나님께 철저히 드렸다.
오늘 말씀의 바리새인이 말하는 소득의 십일조는 그가 버는 모든 것의 십일조를 바친다는 것이다. 그만큼 철저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참고적으로 말하면, 구약의 십일조는 매번 10분의 1만을 드린 것이 아니라, 3년차와 6년차에는 2/10를 드려 사회사업을 위하여 썼다.
- 아마 바리새인은 이런 것도 철저히 드렸을 것이다.
→ 여하튼 십일조는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조건부적 뇌물처럼 이용하는 경우가 되어서는 안된다. 십일조는 택함받은 자가 마땅히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자발적으로 드려야 하는 신앙의 표시이다(욥 1:21;롬 11:36).
⇒ 결국 바리새인의 헌신의 행동은 잘한 것처럼 보이지만,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라고 일어서서 자기에게 기도했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세리를 멸시하는 투로 말하며 자신이 의롭다는 것을 강조했다.
바리새인의 말에 따르면 그는 더 이상 회개할 것이 없는 완벽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회개할 것도 없었고, 자랑할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이 사람의 형식적인 기도와 삶을 받지 않으셨다.
* 반면에 세리는 이렇게 기도했다.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세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러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제단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있기에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기도했다.
그리고 가슴을 쳤다. - 가슴을 치다는 헬라어는 '에튀프텐'인데, 계속해서 가슴을 치는 반복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데서 오는 절망과 많은 죄책감으로 인한 고통을 느끼고, 참회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이 구절은 '하나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라는 말인데, 시편 51:1의 다윗의 시를 연상하는 말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하나님이시여 주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불쌍히 여기시며, 주의 크신 자비로 내 죄의 얼룩을 지워주소서")
- 세리는 하나님을 부르며 하나님만을 의지했다. 자기의 죄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도 없었고, 다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였다.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처분에 자신을 맡기면서 기도했다.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시 34:18).
이런 세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원하시고 찾으시는 그 기도이다.
-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공로에 따라 역사하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믿었으며 또한 하나님은 자기와 같은 죄인에게라도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자비로운 분이라는 소망을 가졌다.
- 그래서 바리새인과 세리는 성전이라는 같은 자리, 같은 위치에서 기도하였지만, 그 방향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다.
바리새인은 자신을 향해 기도했고, 사람들의 인기를 얻으려 했지만, 세리는 하나님을 향해 기도했고, 죄인임을 인정하고 겸손히 기도했다. 그렇기에 그 기도는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 기도가 되었다.
우리는 선행이나 공로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용서받음으로써 의롭게 된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하나님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추시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을 높이신다.
기도할 때 만이 아니라, 교회안에서 모든 일은 이렇게 낮은 마음으로 해야 한다. 겸손한 기도, 겸손한 섬김을 주께서 받으신다. 자기를 드러내는 기도와 섬김을 하지말고, 주앞에서 겸손하고 또 겸손함으로 드리도록 하라. 그리고 겸손히 하려는 사람을 자꾸 깎아내리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