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에 닿는 순간 ‘찌릿~’ 전기가 통한다. 오물오물 씹을 때마다 눈에 핏대가 서고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절묘한 순간 눈물, 콧물, 땀이 범벅되고 입 안은 얼얼, 속은 쓰리다 못해 아려온다. 그저 맵기만 한 집은 정중히 사양한다. 돌아오는 건 배앓이뿐이요, 남는 건 위장병뿐이니까. 대신 너무 더워서 입맛 없는 요즘, 우리 동네 주변 ‘맛있게 매운맛’으로 승부하는 맛집들을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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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맛 찾는 데는 매운 갈비찜이 최고!!"라는 임진미, 박유미씨. "맵다, 맵다" 하면서도 남은 양념에 밥까지 슬쩍 비빈다.
강남·서초·송파
오랜만에 단짝 친구 임진미(30·서초구 우면동)씨와 서초동 온돌집(02-521-2104)을 찾은 박유미(30·서초구 우면동)씨. 매운 갈비찜(1인분 1만7000원, 공깃밥 별도) 한입 베어 물더니 금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온돌집은 청양 고추와 할라피뇨를 넣어 다진 양념으로 매운맛을 단계별로 조절한다. 메뉴판엔 잡다한 메뉴 대신 ‘덜 매운맛’(1단계)부터 ‘무진장 매운맛’(4단계) 등 매운맛의 단계가 적혀 있다. “밥과 함께 먹기엔 ‘매운맛’이 알맞다”는 게 단골 이수정(25·송파구 삼전동)씨의 설명. 뉴질랜드산 갈비는 촉촉이 스며든 매운 양념 덕에 느끼함을 쏙 감췄다. ‘무진장 매운맛’은 약간의 실험정신이 필요하다. ‘청평호수만큼 땀 흘리고 감’, ‘혓바닥에 코팅하고 와야겠다’ 등등 매운 갈비찜 뜯으며 이 집의 유일한 인테리어인 벽 낙서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선릉역 1번 출구 포스코사거리 부근 매운 떡볶이(010-7747-1029)는 중독성 강해 일대 직장인들 사이에선 유명한 곳. 노점 형태로 잠깐 나왔다가 어디론가 이동한다고 해서 ‘도깨비떡볶이’라 불리기도 한다. “달달하면서도 매운, 야누스적인 떡볶이(1인분 2500원) 맛에 빠지면 절대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게 단골 정수근(35·강남구 대치동)씨의 평. 땀 흘릴 각오는 하고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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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강서
강서구청 뒷골목 화곡동 홍미닭발(02-2697-4996)은 ‘매운 닭발’ 하나로 캐나다 밴쿠버까지 진출한 곳이다. 베스트셀러는 ‘닭발과의 악수’ 통닭발(1만2000원)과 무뼈닭발(1만5000원) 등. 20대 초반 젊은 여성들도 ‘립스틱은 다 지워져도 닭발만은 포기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닭발을 뜯는다. 이 집 닭발이나 오돌뼈를 즐기는 방법은 가지가지다. 일단 매운맛을 중화하기 위한 메뉴도 함께 주문하는 게 ‘속 편하다’. 인기 사이드 메뉴는 알밥, 계란찜, 쿨피스 등. 날치알과 김가루가 들어간 알밥은 조물조물 뭉쳐 동그랗게 주먹밥 형태로 만들어 먹으면 된다. 오후 6시부터 영업하며 만석 기본에 주차하기 까다롭다는 건 알고 가자. 화곡전화국 건너편 복개천 부근 삼형제생도티두루치기(02-2602-1010)의 매운맛 두루치기(1인분 5000원, 공깃밥 별도)는 매운맛과 순한 맛 둘 중 선택할 수 있다. 모양은 제육볶음보다 김치찌개에 가깝다. 김치와 양파를 통째로 넣는데 밥 한 숟가락에 김치와 양파, 콩나물을 싸서 먹으면 밥 한 그릇 ‘뚝딱’이다.
일산
3월 초에 문 연 장항동 태양초블루스(031-902-1378)의 주력 메뉴는 차돌박이지만 양념이나 소스엔 기본적으로 태양초를 사용한다. 인기 메뉴는 차숙이블루스(1만5000원)지만 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오징어블루스(1만원)가 있다. 양념 오징어와 숙주를 볶아 먹는 것인데 “딱 기분 좋게 적당히 맵다”는 게 단골들의 평이다. 좀 더 강도를 높이려면 양념을 더 넣어달라고 주문하면 된다. 백석동 신해주냉면(031-815-3210)의 매운 비빔냉면(5000원)은 “매콤한 양념도 양념이지만 탱탱한 면발은 냉면의 기본기를 잘 갖췄다”고 입소문 나 있다. 매운맛에 약한 사람들은 냉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비벼 먹으면 된다.
분당·용인
“먹다가 포기했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미친 듯이 매운맛’을 선보이는 집. 분당 금곡동 미친닭발(031-716-4545)의 한 단골은 “임산부나 심장 약한 사람들은 피하라”고 경고한다. 인기 메뉴는 ‘뼈있는 미친닭발’. 가게 이름이나 메뉴 이름처럼 맛도 자극적이다. 인근 지역으로 배달도 가능하다. 야탑동 뽕의전설(031-703-3062)은 24시간 수타면을 맛볼 수 있는 중국요리집. 해산물을 풍부하게 넣은 매운 짬뽕이 매운맛 좋아하는 식도락가들의 발길을 그러모은다. 텁텁하지 않고 개운한 국물을 맛본 손님들은 매워도 혀를 찰 지언정 웬만하면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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