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처형 / 니클라우스 마누엘
(1517년경, 목판에 템페라, 34x26cm, 스위스 바젤의 쿤스트 뮤지엄)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스위스 북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인 니클라우스 마누엘(Niklaus Manuel, 1484?-1530년)은 화가이자
저술가이며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그는 베네치아에서 티치아노에게 미술을 배우고 초상화를 비롯해 신화와 성서 이야기를 주로 그렸는데,
대부분 마녀나 강인한 여인들이었다.
이런 그의 예술을 대표하는 작품이 ‘세례자 요한의 처형“으로 마태오 복음서 14장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것이다.
스스로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산 세례자 요한은 하늘나라가 다가왔음을 전하며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선포하고, 요르단 강에서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준 인물이다.
예수 역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훗날 악과 도덕적 타락을 질타하던 요한은 헤로데 왕이 자기 동생인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을
간통이라 비난하다가 체포, 투옥되었다.
그 무렵 헤로데의 생일잔치가 벌어졌는데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가 잔치 손님들 앞에서 매우 아름답고
관능미 넘치는 춤을 추었고, 의붓딸의 춤 솜씨를 매우 흡족히 여긴 헤로데는 그녀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살로메는 요한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어머니의 사주를 받아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무시무시한 청을 하였다. 평소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임을 익히 알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던 헤로데는 이 당혹스런 청에 몹시 괴로웠지만 어쩔 수 없는 체면에
감옥에 있는 요한의 목을 베어오라 명령했던 것이다.
물론 성서에는 “헤로디아의 딸”이라고만 적혀있으나, 유대의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그녀를 살로메로 적고 있다.
이런 운명의 여인을 낭만주의 이래 ‘팜므 파탈(femme fatale)’ 곧 남성을 파멸로 몰고 가는 악녀 또는
치명적인 여인이라고 했던가?
아름답고 자극적인 성적 매력으로 남자를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팜므 파탈의 대명사 격이 바로
‘살로메’로, 이 이야기는 많은 미술과 시 그리고 오페라 등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니클라우스 마누엘의 ‘세례자 요한의 처형’ 역시 마찬가지다.
막 요한의 목을 자른 섬뜩한 칼이 피가 흥건한 땅바닥에 놓여있다.
그리고 손이 결박된 채 목이 잘린 요한의 시체는 두 사람에 의해 들것에 실려 재빨리 아치문 밖으로 사라지고 있다.
앞 사람은 다리만 묘사되었을 뿐이다.
사형집행인은 당시 동맹국 용병의 모습으로 매우 민첩하고 정확한 포즈의 찌르기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주름 잡힌 흰 셔츠에 비대칭적으로 잘린 벨벳 재킷을 걸치고 있으며, 한쪽은 줄무늬가 있고
다른 한쪽은 톱니 모양의 장식이 둘린 다채로운 색채의 타이츠를 신고 있는데 왼쪽 다리의 벌어진 틈으로
안감의 실크가 드러나 보인다.
용병 특유의 예리한 동작으로 요한의 머리를 자른 사형집행인은 수염을 잡고 요한의 머리를 준비된 은쟁반으로 가져가려 하고 있다.
바로 그 옆의 세 여인이 이 잔인한 ‘선물’을 받으려고 빈 쟁반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두 젊은 여인이
바로 헤로디아와 딸 살로메이다.
살로메의 표정을 보면 이 잔혹한 주검에 대해 아무런 감흥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녀는 추켜올린 드레스 사이로 보이는 은밀한 슬릿과 속이 비치는 페티코트 아래의 흰 속살이 의붓아버지를
유혹할 만한 농염한 관능성을 한껏 보이고 있다.
특히 살로메가 아버지를 유혹한 수단은 아름다운 춤이었다.
당시 춤은 일종의 극단적 악행이며 악덕으로 간주된 바, 살로메의 관능성은 바로 이 춤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살로메의 악녀 이미지를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지금 살로메가 신고 있는 샌들과 부푼 소매자락 그리고 끈으로 치장된 옷은 일종의 이탈리아식으로
당시 창녀의 복식이다.
악녀로서 살로메는 지금 선과 미덕을 뒤로한 창녀의 모습으로 묘사된 것이다.
이런 악의 상징으로서 살로메의 종말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잔인한 죽음이다.
그녀는 빙판 위에서 요염한 춤을 추다가 얼음이 깨지면서 몸이 물에 빠지고, 흩어진 얼음조각들이 그녀의 목을
찔러 마치 참수당한 모습으로 얼음에 박혀 죽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이 요한의 참수를 암시하는 것인가?
그녀의 옆에는 어미 헤로디아의 모습이 보인다.
일설에 따르면 헤로디아가 세례자 요한의 머리에 손을 대고 조롱의 미소를 짓자, 요한의 머리가 얼굴에
숨을 뱉고 그로 인해 그녀는 숨을 거두었다고 하는데, 이는 모두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헤로디아의 아름다운 머리장식에 죽음의 전령인 올빼미 날개를 장식한 것으로 보아, 화가는 그녀에게
사악한 마녀의 속성을 이입시키고 있다.
이런 그녀가 지금 손가락으로 머리를 놓을 자리로서 쟁반을 가리키고 있다.
많은 그림에서 보듯 이 손가락의 모습은 생전에 요한이 구세주의 도래를 설교하면서
예수를 가리키던 그 손가락의 모습인데, 이는 요한에 대한 그녀의 복수를 넌지시 암시하는 것이다.
그녀의 옆에는 추한 노파가 있다.
아마도 인생의 3단계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이 노파는 한 걸음 물러서서 젊은 여인들의 행위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으며, 살로메로 표현된 10대는
아직 순수한 동심과 낭만 그리고 수련 과정에 있으며, 오른편 여인인 헤로디아는 여유가 있어 보이며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해석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
여하튼 이 노파는 이 흉악한 음모를 도운 늙은 유모일 것이며, 인간의 몸으로 육화된 사탄의 모습일 것이다.
특히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은밀히 숨어있는 모습이 악마가 늙은 노파의 형상으로
요한을 사형시키도록 선동하는 것 같다.
매우 드라마틱하게 표현된 그림의 배경에는 성과 가파른 절벽, 바람에 가지가 휜 전나무가 보인다.
그리고 음산한 검은 구름이 붉은 빛을 발산하는 하늘을 두껍게 가리고 있으며, 반짝이는 별과 무지개가
동시에 보인다.
일설에 따르면 요한의 머리가 묻힐 때 그 위로 별 하나가 다가와 멈추었다고 한다.
그림의 별은 꼬리를 단 혜성이다. 당시 혜성은 재앙을 예고하는 성서롭지 못한 별로 요한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무지개는 노아에게 홍수의 끝을 알리는 기회였듯이 평화와 구원의 상징이다.
이 무지개는 단순한 여인의 질투로 사람이 죽어야 하는 정당하지 못한 세계의 종말이며 동시에
요한이 예언했듯이 예수를 통한 세상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구원의 희망을 화가는 정의의 표현인 단검과 아름다운 세상의 표징인 리본과 함께 표현된 아름다운 금빛
사인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 사인에서 N.M.D는 그의 이름 Niklaus Manuel Deutsch의 약자로 만든 모노그램(이름의 첫 문자 등을 짜맞춘 결합문자)이다.
오늘날도 여전히 성지순례자들은 우리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질병 가운데 춤의 중독에서 해방되려는
기도를 세례자 요한에게 드리고 있다.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샤갈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사 석사, 파리 3대학교(la Sorbonne Nouvelle)에서
아폴리네르의 조각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출처: '신을 벗어라'의 성화속의 숨은 이야기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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