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야화 80
막다른 길
유 대감 맏아들 장모 회갑연서 죽어 며느리 고통스러운 나날 보내는데…
유 대감의 맏아들이 장모의 회갑연에 갔다가 관 속에 누워 집으로 돌아왔다.
처남들과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 통시에 소피를 보고 와 마루에 오르던 중 뒤로 넘어져 댓돌에 머리를 찧고 속절없이 불귀의 객이 돼버린 것이다.
꽹과리 치고 덩실덩실 춤추던 잔치판이 갑자기 경악과 울음과 공포로 뒤덮인 초상집으로 변했다.
처가가 발칵 뒤집혔다.
이튿날 새벽 광목으로 덮인 관이 유 대감 집에 들어왔다.
하늘이 무너져도 눈 깜짝하지 않고 그렇게 의연하던 유 대감이 다리가 떨려 혼자 설 수 없어 둘째아들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안방마님은 안마당으로 들어서는 아들의 관을 보고 대청에서 기절해 쓰러졌다.
줄초상이 날 뻔했다.
소복을 입고 산발을 한 채 관을 잡고 따라온 며느리는 하도 경황이 없어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문상객도 받지 않고 부랴부랴 삼일장을 치르고 조상이 묻힌 선산 끝자락에 납작한 봉분을 올렸다.
유 대감은 밥상의 수저도 들지 않은 채 술상만 차고앉았고 안방마님은 시도 때도 없이 대청에 퍼질러 앉아 손바닥으로 쩡쩡 마룻바닥을 치며 내 아들 살려내라~온 동네가 귀를 세우도록 고함을 쳐댔다.
뒤뜰 별당의 청상과부 며느리는 온몸이 불에 타듯이 오그라들었다.
그믐달이 감나무 가지에 걸린 사경이 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안방마님은 우물가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죽은 아들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그 우물이 바로 별당과 토란밭 사이에 있어 청상과부 며느리 귀에는 시어머니의 기원이 친정집에 대한 저승사자의 저주처럼 들렸다.
며느리가 우물가로 나와 시어머니 뒤에 꿇어앉았더니 주문을 외던 시어머니가 딱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홱 돌려 며느리를 노려보는데 눈에서 불이 출출 떨어지는 듯했다.
아무 말 없이 손짓을 하며 눈앞에서 사라지라 표했다.
며느리는 공포에 질려 걸을 수가 없어 기다시피 별당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친정아버지 김 대감이 유 대감을 찾아왔다.
한평생 허물없이 붙어다닌 죽마고우이자 사돈인 두사람은 어색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사죄하듯 고개를 숙인 김 대감에게 술잔을 건네며 유 대감이 말했다.
그게 어째 김 대감의 잘못이오.
우리 아이의 명이 그것뿐인걸.
바로 그때 안채 대청을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내 아들 살려내라~안방마님의 통곡 발악이 시작됐다.
서둘러 김 대감이 떠나간 후 유 대감은 넋을 놓고 벽에 기대어 김 대감과 함께 살아온 한평생을 되돌아봤다.
어릴 적 김 대감은 강 건넛마을에 살았지만 두사람은 한 서당에 다녔다.
두 학동은 출중해서 훈장님이 항상 강북에는 버드나무(柳)가 우뚝 섰고 강남엔 금()덩이가 번쩍이네!
하며 노래 삼아 흥얼거렸다.
김 도령과 유 도령은 언제나 붙어다녀 사람들은 그 둘을 찰떡이라 불렀다.
나란히 초시에 붙고 이어서 급제를 하며 고향을 떠나서도 서로 당겨주고 밀어주며 승승장구했다.
어느 날 대작을 하던 두사람이 껄껄 웃으며 손가락을 걸었다.
유 대감은 아들을 두었고 김 대감은 딸을 두었다.
아직 기어다니는 아들딸을 두고 혼약을 맺은 것이다.
그날 이후로 술이 오르면 사석에서 서로 사돈이라 불렀다.
두사람은 참판을 끝으로 궁궐에서 나와 낙향했다.
아들딸이 혼기가 차서 혼례식을 올릴 때는 온 고을이 떠들썩했다.
임금님이 승지를 보내 예물을 하사했고 고을 사또는 육방관속을 보내 사흘 동안 이어진 잔치를 도왔다.
이런 변고가 각일각 다가오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유 대감과 김 대감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강가의 나루터 주막에서 만나 껄껄 너털웃음을 날렸던 것이다.
유 대감 댁 김 대감 댁 모두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져 깊고 푸른 적막 속에 갇혀 있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사람은 유 대감의 청상과부 며느리다.
시어머니는 어쩌다 마주쳐도 고개를 돌려버리고 새벽마다 별당 앞 우물가에서 정화수 기원을 올리며 때때로 대청이 부서져라 통곡을 했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강 건너 친정으로 갔더니 김 대감이 호통을 쳤다.
너는 출가외인이다.
유씨 집에 뼈를 묻어야 하느니라.
하룻밤 머물고 얼른 돌아가거라.
김 대감인들 곱게 기른 자기 딸이 지금 시집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모를 턱이 있으랴!
청상과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람의 눈이 없을 때 지아비와 손을 잡고 걸었던 강가 둑길을 혼자서 걸으며 마지막 삼라만상을 똑똑하게 보려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돌부리에 부딪혀 넘어졌다.
그때….
유 대감 며느리는 강가에 버선과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고 신랑의 무덤이 있는 시댁 선산을 향해 큰절을 두번 올렸다.
치마폭을 덮어쓰고 휘몰아치는 시커먼 강물로 막 뛰어들려는데 허~억 헛구역질이 나더니 허억 허억 연거푸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청상과부 유 대감 며느리는 악몽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렸다.
버선과 신발을 신고 맨머리를 매만진 후 시댁으로 돌아가는 길에 담 위로 뻗어나온 매실나무가지에서 신 청매를 따 아삭아삭 먹었다.
유복자를 잉태한 것이다.
유 대감과 안방마님이 뛸 듯이 기뻐했다.
시어머니는 더는 새벽마다 청상과부 방문 앞 우물가에서 주문을 외우지 않았고 시시때때로 마루를 치며 내 아들을 살려내라고 악을 쓰지도 않았다.
이듬해 춘삼월에 달덩이 같은 아들을 낳았다.
작년에 장모 회갑연에서 과음으로 댓돌에 넘어져 죽은 유 대감의 맏아들이 살아서 돌아온 듯 집안이 들떴다.
젖을 물릴 때만 며느리가 안아볼 뿐 할아버지 유 대감과 할머니 안방마님이 서로 안으려고해 갓난아기 사지가 찢어질 판이다.
금이야 옥이야 손자 시온은 장마철 호박순 자라듯 무럭무럭 자라 다섯살이 되었다.
눈매와 인중이 죽은 제 아버지를 빼다 꽂았다.
그 사이 안방마님은 이승을 하직해 삼년상을 치렀다.
유 대감의 둘째아들 총각인 준하가 상주 노릇을 반듯하게 해냈다.
서당에 다니는 다섯살 시온을 한가운데 두고 이제는 집안에 웃음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겨우 스물네살이 된 청상과부 시온이 어미의 수심은 얼굴에 그대로였다.
시온은 서당을 다니고부터는 할아버지 옆에서 잤다.
청상과부 이실댁은 동지섣달 기나긴 밤을 한숨으로 지새우고 꽃 피고 새 우는 춘삼월에는 춤추는 나비 한쌍을 보고도 숨이 막혔다.
시온이 일곱살이던 어느 봄날 할아버지께 큰절을 올리고 할아버님 다녀오겠습니다.
부디 옥체 건강히 지내십시오 하며 술잔을 올리자 단숨에 잔을 비운 유 대감이 너는 우리 집안의 장손이다.
큰 뜻을 품고 자중자애하여라 했다.
시온은 후원 별당으로 가 제 어미 이실댁에게 작별인사를 건넨 뒤 삼촌과 함께 나귀를 타고 집을 나섰다.
머나먼 한양으로 유학을 떠난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손을 흔들고 아낙네들은 눈물을 훔쳤다.
이실댁은 어린 아들이 돌아올 날도 기약하지 않고 떠나는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말없이 또 세월은 7년이 흘렀다.
사동이 고삐를 잡고 노인 둘을 태운 나귀 두마리가 까딱까딱 내를 건너고 고개를 넘고 해가 지면 주막에 들어가 너비아니 안주에 청주를 마시고 이튿날이면 또 길을 나서 구름 따라 흘러갔다.
두 노인은 한평생 친구 사이이자 사돈간인 유 대감과 김 대감이다.
한달 보름 만에 두 노인네가 다다른 곳은 조용한 강변마을의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아담한 기와집이다.
부엌에서 나온 안주인은 안마당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김 대감의 딸이자 유 대감의 며느리 이실댁이다.
어느새 훤칠한 젊은이가 된 유복자 손자가 사랑방에서 글을 읽다가 뛰쳐나와 땅바닥에 엎드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께 큰절을 올렸다.
텃밭에서 호박과 고추를 따서 어린 아들딸과 대문으로 들어오던 이 집 가장도 땅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그는 유 대감의 둘째아들 준하가 아닌가!
그때가 언제였던가.
나라에 봉직하던 유 대감이 휴가를 받아 어머님 병문안을 왔다가 삼십리 밖 선친의 묘소를 찾았던 때가 동짓달이었다.
함박눈이 퍼붓는데도 발길을 돌릴 수 없어 산속을 헤매는데 폭설의 기세는 더욱 세차고 날은 저물었다.
칠흑 같은 밤 북풍한설에 허리춤까지 차오른 눈밭을 얼마나 헤맸을까.
추위와 허기 그리고 공포로 유 대감은 정신을 잃었다.
얼마 만에 깨어보니 약초꾼 너와집이었다.
폐병에 걸린 약초꾼이 열두어살 난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었다.
얼마 후 약초꾼은 이승을 떠났고 유 대감은 약초꾼의 아들을 데려와 자신의 호적에 아들로 입적시켰다.
그가 바로 둘째아들 유준하였다.
7년 전 유준하를 파양했다.
호적에서 유 대감의 차남을 지워버리고 원래 이름 전천석으로 돌려놨다.
그는 시온과 함께 한양 유학을 가는 척 먼저 나섰다가 밤중에 몰래 이실댁을 데리고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천석과 이실댁 사이에 아들딸이 태어났다.
모든 것은 유 대감이 꾸민 것이다.
유 대감과 김 대감은 그곳에서 보름을 머문 뒤 고향으로 향했다.
어미 품에서 벗어나도 될 나이가 된 유시온을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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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기가맥힌 팔자를 타고난 사람들의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