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옛 글 다시 올리며 그 때 <글쓰기>의 힘을 이어가고 싶어 再讀 해 본다.
이 무렵 노벨 문학상을 받게된 소련연방국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그 무렵 만들어 본 글이다.
지금 어디에도 없는 원고 . 여기 <솔바람>에 있는 글 다시 열어 옮겨본다.
소설
凍土의 햇살
전 세 준
검은 커텐이 창밖의 풍경을 차단하고 있는 기차는 줄기차게 달린다.
그는 자기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목적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마음이다.
덜커덩거리는 쇠바퀴의 굉음이 계속을 귓속으로 파고든다.
‘그래,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행동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야, 뽀얀 먼지처럼 허공으로 날려 보내는 거다. 저 어두운 창문을 깨고 바람으로 버려야지....,
그는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며 암흑으로 가려진 차창으로 고개를 돌린다. 보이는 것은 검은 장막뿐이다.
모스코바에서 삼십 킬로 떨어진 작가 촌이 줄지어 서 있다. 조금은 고급스럽게 보이는 주택들이 쏟아지는 비바람에 주검의 궁전처럼 침묵 속에 묻혀 조용하다.
가끔 고급 택시가 마을을 드나들었지만 인적을 찾을 수 없다.
작들만이 모여 사는 작가 촌이다. 작가 촌으로 들어오는 길 왼쪽 네 번째 집도 다를 바 없이 몇 구루 정원수가 집을 감싸고 있어 평화스럽지만, 어쩐지 을시련스러운 건물로 자리하고 있다.
고개를 숙인 채 정원으로 들어서는 가야초프는 초라한 모습으로 안으로 들어선다. 흠뻑 젖은 우비와 모자를 벗어 하녀에게 건네며 서재로 들어간다.
낡은 안락의자에 몸을 던진다. 창문에는 꼬리를 물고 빗물이 흘러내린다.
하늘이 금시 무너져 내릴듯한 천둥소리와 번쩍이는 섬광이 더욱 비바람을 몰아쳐 온다. 정원수 가지들이 잎들을 안고 몸부릠 친다.
-그렇게 모체에 매달려 몸부림치지 말고 차라리 멀리 훌쩍 떠나려므나!-
눈을 감는다. 초췌한 자신의 모습이 보기 싫다.
“여보, 저녁 식사를.....”
서재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아내가 들어선다.
“......”
“여보, 가야초프, 저녁 식사를......”
“으음”
그는 한마디 신음을 뱉으며 몸을 일으킨다. 아내의 손을 꼭 쥐어본다.
침묵 속에 묻힌 듯 그는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거센 비바람이 계속 창문을 흔들며 지나간다.
식탁 앞에 앉은 그는 워카 두 잔을 훌쩍 마시고는 다시 서재로 돌아온다. 식욕을 잃은 지 오래다.
이웃 동무로부터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비록 비공식적인 전갈이었지만 아내를 잡고 기뻐했다. 그러니 기쁨도 잠시였다.;
창밖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에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대의 승용차가 정문 앞에 멈췄고 잠시 후 현관의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여보, 당의 문화관료 두 사람이 응접실에서 .......나가 보세요.”
“응? 당의 관료들이?”
그는 아내를 앞세우고 응접실로 향했다.
“아! 동무 오래 만이요”
안으로 들어 선 그는 소파에 앉아있는 관료를 향해 목례를 했다.
“가야초프 동무 그동안 안녕하오?”
응접실 안에 갑자기 찬바람이 일고 있었다. 한 동안 치묵이 흘렀다.
“으음.... 가야초프 동무, 이번 동무의 작품이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담배를 피워 물며 관료가 퉁명스럽게 내 뱉었다.
“네. 소식은 이틀 전에 들었습니다 만 아직 정식 통보는 받지 못했습니다.”
가야초프는 탁자에 놓인 술잔을 권했다.
“그런데, 동무! 만약 스톡홀롬에서 정식 통보가 온다면 동무는 어떻게?”
“아, 네.... 그 문제에 대한 답변은 동무들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하여간 이번 일은 조국을 위해 큰 불행이요.”
관료는 단숨에 잔을 비웠다.
“불행이라니요?”
“아, 이번 일이 동무는 영광으로 생각하는 거요?”
관료의 목소리가 커졌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우리 조국뿐 아니라 제 개인에게도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그럼, 이번 일을 수락한다는 말입니까?”
빈 잔에 채워진 술잔을 다시 들며 가야스키를 건너다보는 관료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것은 동무가 더 잘 알 것 아닙니까? 지금 심정으로는 수락을.....”
“이만, 가겠소!.”
가야초프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관료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시 후 밖에서 승용차 시동 소리가 차츰 사라져갔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요란한 전화벨이 울렷다.
“네, 가야초프 입니다만....”
수화기를 든 그의 표정이 굳어갔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가냘프게 흘러나왔다.
작가동맹위원회로 호출당한 문필가 치고 무사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서기장 동무의 호출이었다.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하녀에게 집을 맡기고 그는 아내와 같이 차고에 잠자고 있는 승용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가끔 스치는 바람에 낙엽이 쏟아져 사라졌지만 날씨는 포곤 했다.
“웬 일 일까요?”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잠시 묵묵히 눈을 감고 있던 아내가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눈앞에는 모스코바의 시가지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이 땅 위에 잉태되어 무사히 해산된 것이 저주스럽다는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갔다.
“으음...아마 이번 일 때문이겠지.”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이층 건물 앞에 도착한 것은 해가 중천에 왔을 무렵이었다.
아내를 차에서 쉬게 한 그는 육중한 도어를 열고 이층 층계를 올랐다.
서기장은 서류뭉치를 살피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동무의 작품이 노벨상을 받게 되었다는 그 문제 때문에...”
그는 이미 짐작했던 일이라 서기장 동무의 말이 새삼스럽지 않았다.
“동무의 집에 다녀 온 관료로부터 이야기는 잘 들었는데..... 좀 자세히 토론하려고....”
“네.”
가야초프는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힘없이 의자에 몸을 던졌다.
얼마동안 관료는 장황한 이야기를 쏟아 놓았다.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창밖을 응시하면서 관료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밖으로 나와 승용차에 올랐다.
-우리 국민들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사회주의 공산국을 찬양하는 글을 써야하오-
-당과 조국을 위한 작품이 아니면 아무리 삶의 진실을 추구한 예술 작품이라도 당에서는 허락 할 수 없는 일이요.-
-동무가 쓴 작품은 우리 조국에서 이미 가치없는 글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이요! 그런 작품이 어떻게 상을, 그것도 노벨상을 받는단 말이요? 그것은 우리 조국의 큰 수치요. 만일 동무가 그 상을 수락한다면 우리로서는 출국을 허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동무의 신변에도 좋지 않아요 알겠소?-
-동무, 도야코프를 생각하시오.-
차에오른 가야초프는 마지막으로 목에 힘을 주던 서기장 동무의 칼날 같은 음성이 귓속으로 파고들다 갑짜기 머릿속이 텅 비는 듯 했다.
(그렇다. 도야코프는 그의 작품이 조국을 모독한 것이란 이유로 출판이 허락되지 않았을 쭌 아니라 사상을 의심한다며 가족과 함께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사라진지 오래다.)
그 날 길을 떠나는 도야코프의 초라한 모습이 눈앞에 스쳐갔다.
그는 모스코바 시가지를 빠져나와 작가
촌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무슨 이야기를?”
“으응, 뭐, 별로 좋은 애기는 아니요.... 도대체...”
그는 말끝을 흐리며 한 손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는 살며시 아내의 손목을 잡으며 어두운 미소를 흘렸다.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훈훈하던 날씨는 음산하게 변해갔다. 찬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을 때 한 잎 두 잎 나뭇잎들은 모체를 떠나 어디론가 자기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며칠 후 프라우다(Pravde) 신문을 손에 든 가야초프는 표정이 굳어졌다.
-조국을 매도한 가야초프. 작가동맹에서 제명처분-
일면 삼단 기사. 고동치는 심장. 그는 마음을 짓누르는 한 줄 한 줄 신문시사를 읽어 나갓다. 손이 조급씩 경련을 일으켰다.
이윽고 쏟아지는 비. 휘몰아치는 낙엽.
서재의 안락의자에 몸을 묻은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올 것이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는 좌절감과 알 수 없는 안도감 속에 신문 기사가 다시 떠올랐다.
-일주일 안으로 지금 쓰고 있는 주택과 승용차, 하녀를 조국을 찬양한 글을 발표한 야노스코프에게 양도해야 한다.-
이날부터 그는 식욕을 잃고 멍 하니 창밖을 응시하며 앞으로 자기에게 다가 올 일들을 상상했다.
워카 두 잔으로 속을 달랜 가야초프는 서재의 안락의자에서 어두워 오는 창밖을 내다보며 깊은 생각에 점점 빠져 들었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막아 줄 우사 하나 없단 말인가? 창밖에서 몸부림치는 저 나뭇잎들을 감싸줄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듯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슬릴 수 없지만 자신이 잉태되어 태어난 토질과 땅 덩어리의 위치가 이렇게도 다르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어디론가 멀리멀리 떠나고 싶었다. 그곳에서 넓은 우주를 향해 비록 낡아빠진 목소리이지만 마음껏 소리를 싶었다. 답답했다. 앞이 캄캄할 뿐이었다. 그래도 그 어둠속 어디에선가 한줄기 해살이 파고드는 듯 한 오로라가 전개되었다.
다음 날 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통지서를 스톡홓롬으로 부터 받았다 거의 비슷한 시간 앞으로 일주일 안으로 주택을 비우라는 당의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아내는 명암이 엇갈린 속에서 침묵으로 남편을 응시할 뿐 입을 다물었다.
쏟아지던 빗방울이 흰 눈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조국을 판 가야초프-
모스코바 신문은 톱기사와 사진을 실었다. 작가 촌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굵직한 활자가 뒤를 이어있었다.
며칠 뜬 눈으로 밤을 새운 그는 어느 날 작가동매 위원회로 불려갔다. 그 자리에서 노벨상 수상을 거절 한다는 전문을 스스로 발송했다.
집으로 돌아 온 그는 며칠사이 짐을 꾸렸다. 작가 촌으로 부터 퇴출된 그는 가 본 일도 없는 농촌마을로 추방되었다. 승용차도 하녀도 없었다. 그 뿐 아니라 초라한 두 칸짜리 농촌 집의 관리세를 국가에 지불해야 해야 했다.
두문불출의 생활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계속되었다.
이탈리아 공산당원의 손에 의해 이미 국외에서 출판된 삼 천 여장의 원고뭉치를 말없이 풀었다. 그가 잉태되어 태어 난 조국에서는 작가 촌에서 추방당해야 했던 원고 였고 서방 세계에서는 노벨상 수상작으로 온 세게 문단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그의 분신이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신의 자서전적인 작품의 냉용을 묵묵히 반추했다. 별로 신통치 않는 한편의 서정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비정상인 작가의 사상이 내포되었고 불과 십여 페이지 분량의 원고에는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대화 이 외는 아무것도 문제될 것 없는 내용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국외에서는 작가의 진실한 인생 탐구적 심오함이 내포되었다고 칭찬을 쏟아내고 있었다.
비록 수상을 타의로 거절 했지만, 그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여보, 어떻게 하던지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을 듯......”
저녁 식사를 하며 그는 언제나 침묵 속에 잠겨있는 아내에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탈출이었다. 그 결심을 하고부터 그는 왕성한 식욕을 참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는 아내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여기서는 항상 당의 감시를 받고 있잖아요..”
작가동맹 측과 당에서 는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비밀 감시원을 파견, 그들의 행동과 언행을 감시하고 있었다. 혹 있을 런지도 모를 이들의 국외 탈출을 사전 방지하려는 당의 지령이었다.
“그들이 우리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요. 그러나 그들이 감시가 무서워 이렇게 막연히 주저앉을 수만 없소!”
어느 때 보다 강한 그의 목소리였다.
“그러나...당에서 알면....”
“그렇소. 우리가 이곳을 탈출한다는 눈치를 당에서 알게 되면 우리의 운명은 .....”
그는 심각한 얼굴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며칠 동안 집 안에서 곰곰이 생각한 결정이었다. 위험한 일이 닥쳐오더라도 참다운 스스로의 생활이 그리웠다.
토질에 맞는 식물이 잘 자라듯 그는 자기체질에 맞는 환경이 그리웠다.
희미한 전등 아래 지도를 폈다.
-모스코바에서 밤기차를 타고 레린그라드 까지 가소 다시 배편으로 스톡홀롬 까지....-
그는 너무나 위험한 계획임을 잘 알고 있었다.ㅣ그러나 모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굳은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계획을 아내에게 조용히 알렷다. 아내는 한동안 남편이 가르키는 지도를 소리 없이 응시하고는 남편의 얼굴을 근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밖에서는 며칠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보라가 잠시 그치지지도 않고 겨울을 알려주고 있었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나뭇가지에도 굵은 눈꽃이 피어났다.
“여보, 각오해야하오.”
“네, 그런데 당신 건강이?”
“아니, 괜찮아요 이만하면 이백 로리는 참을 수 있소.”
“그러나.....”
“우리는 곧 이 계획을 실천해야 하오. 그들이 언제 우리들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할런지 모를 일이요. 그러니 이번 날씨가 개이면 계획을 실천하도록 합시다. 그동안 정리할 것은 미리 정리하고...”
“네”
“이웃에 조금이라도 눈치 채지 않도록 해야 하오.”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이곳을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틀 동안 눈은 계속 내렸다. 차츰 구름이 물러가며 햇볓이 눈부시게 쌓인 눈 위에 쏟아져 내렸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세차게 모라 부쳤다.
일찍 불이 꺼진 초라한 에모스키의 집.
조심스럽게 나오는 그들은 사방을 살피며 모스코바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손에서 부지런히 흔들리는 양피로 만든 조그마한 가방. 마치 산책이라도 나가는듯한 가벼운 옷차림이 달빛에 차갑게 드러났다.
큰 길로 나온 그들은 마침 모스코바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들은 모스코바에 도착 할 때까지 서로 입을 열지 않았다.
에모스키는 지그시 눈을 감고 이제 보이지 않는 시간과 장소를 향해 출발한 자신의 앞날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었다. 그것은 예측 할 수 없는 새로운 토질 위에 그려야 하는 막연하고 위험한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 시초였다.
시계는 일곱 시 십분 전을 가르키고 있었다. 모스코바에서 일 키로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기차역 앞에 내린 그들은 급히 안으로 들어섰다.
레린그라드 까지 가는 보통열차에 올랐다.
에모스키는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와 친한 친구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사진으로 통해 알고 있을 런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는 벗어 날 수 없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피해 가장 승객이 적은 객실을 찾아 어두침침한 자리에 앉았다.
저녁 마지막 기차객실 안에는 희미한 전등 빛 안에 뽀얀 담배연기가 음산함을 더하게 만들고 있었다.
기차는 요란스러운 기적을 뿜어내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떠나는 친지들을 향해 흔드는 손, 손. 이런 모습을 차창으로 내다보던 가야초프의 부인의 눈에 촉촉이 눈물이 고여 왔다. 아내를 바라보는 그는 시선을 돌렸다.
기차에 오르기 전 그는 지금까지의 작가 생활을 버리고 그냥 이곳에서 묵묵히 지낼것을 생각 해 보았으나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작가 생활을 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의 선전을 위한 허무맹랑한 글을 써야 한다는 억눌린 고뇌를 더 버틸 수 없었다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답답하다!-
그의 마음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감정을 그는 더 억누르지 못했다.
기차는 모스코바 중심지를 벗어나 달렸다. 객실 안 전등은 달빛보다 흐렸다.
다시 한 번 외투 주머니속의 원고뭉치를 힘 있게 꼭 잡았다. 지금까지 당의 검열에 호되게 비판받은 원고 뭉치였다. 이들에게 밝은 햇살을 보게 해 주고 싶은 생각은 그의 오랜 소망이기도 했다.
건너편 좌석에서 소곤 거리 듯 들려오는 학생들의 대화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아직 그 소설 이름만 들었지 읽어보지 못했어.”
“노벨상을 수상할 정도니까 .....”
“그런데 작가가 수상을 거절했다면서?”
“응, 우리 조국에서는 문제가 많은 작품인 모양이야. 우리 조국을 비판하고 시월 혁명을 혁명으로 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우리 조국의 미래를 걱정했다는.....”
“비판할 일은 비판 해야지..... 도대체 국내 소설 작품이란 게 모두 무슨 교과서 같아서 읽기가...”
이봐노스라는 학생이 경계의 시선으로 사방을 살피며 말을 줄였다.
“정말 그래.”
두 학생은 잠시 말을 끊었다.
가야초프는 그들을 향해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며 시선을 피했다.
레린그라드에 기차가 도착 할 동안 그들은 더 입을 열지 않았고 눈을 감았다.
창백한 듯 한 그들의 얼굴로 보아 그들은 가야초프를 당의 관료나 비밀경찰로 오인하고 있는 듯 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분주히 눈을 치우는 사람들을 지나 묵묵히 잠자고 있는 가야초프의 집으로 향하고 있 는 사내는 방한모를 눌러쓰고 털외투로 깃을 바싹 올리고 침묵에 싸여있었다.
가야초프가 아내와 같이 집을 나설 무렵 모스코바 작가동맹 측과 당의 문화 관료들은 가야초프에 대한 앞으로의 처리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당의 서기장은 시베리아 노동 수용소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관료들은 외국의 시선이 있을 뿐 아니라 좀 더 그의 행동을 지켜 볼 필요가 있으니 우선 그에게 금족령을 발동할 것을 주장했다.
금족 집행 영장을 깊숙히 소지한 당의 관료가 가야초프의 관사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집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대문을 밀었다. 대문이 힘없이 열렸다. 마당에는 몇 개의 발자국 흔적이 있을 뿐 집은 정적 속에 침묵하고 있었고 집안의 인기척은 없었다.
“가야초프 동무!”
관료는 황급히 현관을 열었고 방문을 열었다. 방바닥에는 몇 장의 휴지가 타다 남은 영혼처럼 흩어져 있었다.
“으음..... 어디로?”
당의 관료는 황급히 부엌문을 열었다. 잿더미와 타다 남은 몇 권의 책이 시선을 파고들었다.
당의 관료는 급히 관사를 빠져나와 모스코바로 향했다.
가야초프는 자기의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책들을 바라보면서도 웬 일 인지 마음이 후련해 왔다.
타들어 가는 책을 뒤적이던 그의 아내는 –가야초프 작- 책의 표지가 잿더미로 사라져 갈 때 남편의 얼굴을 말없이 응시했다.
-아, 이제 내 육신도 언젠가 저렇게 불살라 질 런지 모른다.-
가야초프는 천천히 타 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 거렸다.
날씨는 여전히 싸늘했다.
바람은 쌓인 눈을 휘몰아 쳤고 앙상한 나무들은 위- 윙- 긴 여음을 남기며 살아져 갔다.
오전에 떠난 배는 이삼일 후에 다시 출발한다고 했다. 그들은 우선 여관을 찾았다. 밤이 깊어갔다. 살을 오려내는 듯한 바람이 창문을 흔들며 스쳐갔다. 삼류로 보이는 여관 정문에 희미한 가로등이 졸고 있었다.
안내원 소녀는 이층 4호실로 안내 했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너무 층계를 올랐다.
정 사각형 방 바닥은 낡은 카펫이 깔려있었고 한쪽 벽에 이인용 목재 침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벽에 걸린 낡은 한 폭의 낡은 정물화. 방금 안내원 소녀가 스위치를 넣고 간 전기 난로가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던 소녀가 다시 올라와 숙박 등록 부를 내 밀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혼자 빙그레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면서 등록부에 차근차근 적었다.
-레린그라드
에치오프. 샤니아도프-
주소와 행선지, 그리고 본명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소녀가 들고 온 프라우다 신문을 손에 든 그는 신음을 뱉었다.
신문은 틀림없이 오늘 아침 조간이었고 신문에 올라있는 사진은 자신의 모습이었다.
신문을 든 두 손에 경련이 일었다.
-조국을 판 가야초프 부인과 잠적 . 책은 모두 불태우고-
프라우다 紙 일면 삼단 기사.
‘아, 그들이 벌써 눈치 챘구나!-
그는 신문 기사를 한 줄 한줄 읽어갔다. 아침 식사가 들어왔지만 그는 신문기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의 손에서 힘없이 신문이 흘러내렸다.
-....그들을 체포하기 위해 전국에 수사망을 폈다......-
눈앞이 캄캄해 왔다. 이미 각오한 바 있지만 막상 기사를 읽었을 때 전신의 피가 멈추는 듯 했다.
밥상 앞에 앉았던 그의 부인은 심상치 않는 남편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신문을 펴 들었다. 얼굴은 순간 파랗게 질렸다.
‘...........다시 돌아갈까? 그리고 차라리 저 시베리아로 사라질까?..... 아니,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끝까지 그들과 싸워야 하고 내 체질에 맞는 토질을 찾아야 한다, 이제 새삼스럽게 다른 생각을 하다니!.“
그는 아내의 손을 꼭 잡으며 밥상 앞에 앉았다.
“거리에 이미 정보원들이 잠복 해 있겠지?”
식사가 끝나자 그는 괴로운 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침대에 기대앉았다. 갑자기 심한 오한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에게는 무리한 여행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무 탈 없이 레린그라드 까지 와서 강연을 했던 그였다. 그러나 오늘의 그는 모든 고통을 스스로 안고 금족령을 감추고 함부로 밖을 산책할 수 없는 보이지 않은 영오의 생활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정신을 불안 속으로 몰아갔다.
불안과 초조 속에 며칠을 지났다.
그의 모습은 놀라울 만치 변해갔다. 가랑 잎 마르듯 바싹 마른 입술. 무서울 만치 여윈 몰골. 그러나 잿빛이 조용히 흐르는 눈동자의 빛은 빛나고 있었다. 마음속에 다짐으로 남아있는 그의 희망의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두 번째 배가 도착하는 날이 되었지만 그들은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는 차츰 정신과 몸을 회복하면서 소녀가 매일 가져다주는 신문 기사를 보며 시시가각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예상외 숙박 기간이 길어지자 그는 여관비를 지불해야 했다. 그들에게는 매일 25루 불의 여관비를 지불할 돈이 없었다.
집을 나설 때 250 루 불을 가지고 있던 액수는 물가에 비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액수였다.
“어떻게 하면 좋아요?”
“으음 큰 일 인데.... 밖은 점점 시끄러워지는 것 같고...”
“앞으로 이곳에 계속 있으려면 여관지가....”
“.......”
“그렇다고 당장 박으로 나갈 형편도 않되고...”
붉게 달아 올은 난로의 열기가 침침한 방안을 덥혀주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찬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손님은 참 이상하신 분이네요.”
“이상하긴...뭐가?”
침대에 걸터앉은 가야초프는 아직까지 돌아오지 아노는 아내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손녀가 야무지게 묻는 말에 태연했다.
소녀가 바싹 그의 옆으로 다가오며 중얼거렸다.
“왜 이상하지 않아요? 난 아직까지 손님이 이곳에 오신지 오래되었지만 한 번도 외출하는 일이 없잖아요?”
“외출? 허허 이렇게 추운 날씨에 외출은 무슨....”
“그래도...”
“날씨도 날씨지만 나는 원래 외출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니까.”
서녀는 고개를 갸웃 등 하며 방을 나섰다.
겨울코트와 남편의 시게를 넣은 작은 가방을 옆에 낀 가야초프의 아내는 부지런히 전당포를 찾았다.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거리로 나왔지만, 전당포를 찾지 못했다.
소녀애게 부탁해서 몇 가지 물건을 처리 할 수 있었지만 아내의 자존심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으응?”
전당포를 찾던 그의 아내는 국영상점 윈도우 안에서 자기를 유난히 쏘아보고 있는 방한모의 사내와 마주치는 순간 머리가 쭈뼛했다. 그 사내는 틀림없이 전에 모스코바 작가 촌으로 찾아왔던 당의 관료였다.
‘그렇다면?’
가야초프 아내는 급히 고개를 돌리며 쿵쿵 뛰는 가슴을 안고 여관을 향해 바른 걸음을 재촉했다.
상점 윈도우 안에서 빙긋이 웃던 중년 사내는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깊숙히 넣고 밖으로 나왓다.
가야초프는 갑자기 피가 머리위로 솟구쳐 올랐다.
-속보
지난 십이월 십 사 일 부인과 행방을 감춘 반동 작가 가야초프의 행방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현명한 당의 관료와 비밀 당원에 의해 곧 체포될 것이다. 따라서 비상경계와 수사 활동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가야초프는 벌써 돌아와야 했을 아내를 생각하고 있었다.
‘혹 여관을 찾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가져간 물건을 맡기고 다른 물건을 사 오느라고 늦는 것일까? 아니야..... 여관을 찾기 쉬운데...... 또 구입 할 여유 돈도 없을 텐데... 혹? 당원들에게?’
그의 머릿속에 이상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저씨, 이 신문기사 흥미 없으세요?”
소녀는 신문을 침대 위에 던지며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가야초프를 바라보았다.
“으음...”
“아저씨는 정말 이상하시네요. 참 저녁 식사는 어떻게? 아주머니는 어디 가셨기에 아직......”
소녀는 가야초프의 심정은 아랑 곳 없다는 듯 혼자 중얼거렸다.
“음, 올 때가 되었는데....”
“그럼, 식사는 역시 이 인분으로?”
“응, 그렇게 해요.”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가야초프는 차츰 불안에 휩 쌓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무슨 사고가 났을 것 만 같은 불안감이 스쳐왔다. 잠시 밥상이 들어왔지만 그의 시선을 밖으로 향해 있었다.
심한 고문에 정신을 잃은 가야초프의 부인은 얼굴이 창백했다.
“이봐! 남편 동무는 어데 있는지 말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어!.”
“......”
수없이 반복되는 당 관료의 심문에 그의 부인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고문이 차츰 강하게 그녀의 전신을 휘감았다.
밤이 새도록 뜬 눈으로 아내를 기다리던 가야초프는 자기도 모르게 잠시 눈을 붙였으나 소녀가 들고 온 프리우다 신문을 받아 든 순간 그렇지 않아도 창백한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가야초프 부인 체포
심문중 자결-
삼단 기사. 소녀가 없었다면 와락 소리라도 외쳐야 했다.
“그렇게 늦게 주무시면 어떻게 해요?”
“으으음.”
“아주머니는?”
방안을 휘둘러보던 소녀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음, 볼 일이 아직 안 끝난 모양이야......모스코바에 갔는데...... 며칠 걸릴지도 몰라.”
가야초프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떨려 나왔다.
“모스코바? 그렇게 멀리...”
“으음.”
“그런데 손님, 가야초프 부인이 당의 관료에게 체포되어 심문 중 자살 했다는군요..... 누가 알아요. 워낙 고문이 심한 정보기관이라....... ”
“응..그렇지 그럴 수 있을 런지도 모르지...”
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 나왔다. 그는 갑자기 갈퀴 같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손님, 갑자기 웬 일세요?”
소녀는 겁에 질린 시선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내가... 내가 가야초프야! 나간 아주머니가 내 집사람.....‘
그는 미친 듯 혼자 중얼거리며 몸을 비틀었다. 소녀는 밖으로 용수철처럼 튀어 나갔다.
그로부터 이십 여분이 지났을 무렵 여관마다 가택수색을 한 당의 관료 두 사람이 그가 묶고 있는 여관 대문을 두드렸다.
눈은 멈추었으나 쌀쌀한 겨울바람은 계속 둔탁한 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낡은 기차를 스치고 있을 뿐이다.
요란한 기적을 남긴지 수십 분이 흐르고 있다. 기차는 규칙적인 굉음을 토해 내면서 레일 위를 달린다. 차창을 스쳐가는 살벌한 벌판. 긍의 눈에는 그렇게만 보인다.
그러나 차창을 스쳐가는 그림 같은 통토는 이미 그의 가슴속으로 파고 든다 피로 써 내려갔던 그의 작품 뭉치도 평생을 같이 해 온 안내의 모습도 없다.
자기를 감싸주다 모든 것을 뒤집어쓴 소녀의 모습도 없다.
삼등실. 우람스럽게 생긴 두 사람의 당 관료. 모두 치묵뿐이다. 그는 자기가 앉아있는 옆 창문이 비상구임을 새삼 발견하고 눈을 지그시 감는다. 어쩌면 자신의 모든 것이 비상구로 빠져나가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갈 듯 한 착각 속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운다.
가야초프 부인을 체포했으나 그 이상의 성과를 올리지 못한 당의 관료와 비빌 경찰은 흥분되어 있었다.
급히 여광 층계를 오르는 소녀. 방문을 급히 잠그고 약삭빠른 두 손. 뒤 따라 올라 온 당의 관료.
“여기 계시던 손님은 아침에 나갔는데요.”
소녀의 떨리는 음성을 그들이 지나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그러니 어서 문 열어”
관료의 노한 음성에 소녀는 고개를 숙였다.
-반동 작가 가야초프 체포!
그를 숨겨준 종업원도.-
다음 날 발간된 프라우다紙 1면 4단 기사는 레린그라드 시내에 뿌려졌다.
비상구 옆에 앉아 있는 가야초프는 지금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음, 내 운명은 이제 끝나는 것이다. 내가 버리지 못하는 조국이라는 동토를 가슴에 품고 내 따스한 열정으로 녹아버리는 것이.....
마지막 발악하는 참새 한 마리를 휘몰아치며 동토의 하늘에 맴도는 독수리의 부라린 눈알이 그 앞에서 자기를 쏘아보고 있다 .
감앗던 눈을 다시 뜬다. 비상구의 여닫이가 용수철로 되어 있음을 눈치 챈 순간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상체를 차창 밖으로 던진다.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동굴 바람처럼 시원하다 머리가 터지는 아픔이과 촉촉한 액체가 흘러낸다.
손목이 조여 온다.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시원한 바람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시원한 통토의 바람을 가슴 속 깊이 마셔본다
굉음을 내면서 달리는 기차 소리가 점점 멀어 진다 눈을 뜬다. 눈구름으로 덮인 하늘이 환히 밝아오며 동토의 땅에 한줄기 햇살로 내려앉으며 그가 쓰러진 동토위에 파릇파릇 새 삭이 움트기 시작 한다
<독립국 연합>이 꽃피운 것은 그로부터 십 여 년 후였다.*
<강릉문학 > 93. 창간호 1993에 올린 글.
*010-6371-1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