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천우의 전신에 은은한 광휘가 서기(瑞氣)처럼 피어 올랐다.
율천우는 지금 대소림의 제일 신공이자 불문(佛門) 제일의 기공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금강대반야신공. 자네가 정도제일신공(正道第一神功)인 금강대반야신공을!"
그것은 주위 십 장 안의 모든 것을 일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율천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무서운 화기에 흠칫 하였다.
'세상에 이토록 무시무시한 화강지기(火 之氣)를 뿜어내는 마공이 있었다니……!'
"금강대반야신공… 무림사상 가장 완벽하고 뛰어난 신공… 한마디로 무적의 절대신공이라 할 수 있지……."
"그러나 노부가 연성한 수라일맥의 태양수라천강 역시 금강대반야신공에 못지않지."
천마일맥과 쌍벽을 이루는 수라일맥의 최대 마공(魔功)!
가히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가공무쌍할 극양공(極陽功)이다.
상대는 천마일맥 사상 가장 뛰어난 흑도대종사(黑道大宗師)가 아니던가?
저주의 마도 한천혈섬혼이 피를 부르는 마음(魔音)을 발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비정한 마(魔)의 도법 한천혈섬구류도가 펼쳐지려는가?
드디어 한천혈섬구류도의 전사식(前四式)인 사천식(四天式)이 펼쳐졌다.
수천 가닥의 도강이 완전히 삼백육십방(三百六十方)을 뒤덮으며 폭사되었다.
'완벽하다. 일순간에 삼백육십(三百六十) 개의 도강(刀 )을 뿌려내었다. 진정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공포의 마도 수라마도가 엄청난 섬전(閃電)을 허공에 뿌렸다.
흙먼지가 회오리를 치며 기암괴석이 가공할 기류에 소용돌이쳤다.
그 속에서 두 사람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연속적으로 부딪쳤다.
이때 율천우가 갈의천마를 향해 무섭게 덮쳐가고 있었다.
드디어 천고의 두 대기공(大奇功)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주위는 완전히 가공할 경기로 뒤덮였다.
머리는 산발이 되고 코와 입에서는 선혈이 쉴새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이 순간 승리의 쾌감보다 웬일인지 소름이 오싹 끼쳤다.
'무… 무서운 놈! 저놈은 대체 어찌 돼먹은 놈이기에… 저토록 심한 부상을 입고도 끄덕이 없단 말인가? 아니… 저놈은 처음과 조금의 변화도 없다… 아니… 나를 비웃고 있다…….'
"이젠 그만 하는 것이 어떤가? 이만하면 한 수의 비무로 훌륭하리라 믿네."
"아직 멀었소. 아니 이제부터가 시작이오이다. 대종사!"
"좋네. 자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상대해 주겠네. 그러나 이것 한 가지는 명심해야 할 것이네. 본좌는 결코 거역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라마도가 엄청난 마기(魔氣)를 뿌려내며 빳빳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본좌는 단천수라마도 중 제팔초인 수라마혈혼(修羅魔血魂)을 펼칠 것이다."
"크크ㅋ……! 좋소이다. 어디 수라마멸혼의 맛이 어떤지 두고 봅시다."
천지(天地)가 온통 핏빛의 엄청난 광채 속으로 빠져들었다.
더욱이 수라마도에서는 가공할 마음(魔音)이 터져 나오고 있었으니…….
율천우는 마치 지옥의 핏빛 연못 속에 빠진 듯한 착각이 일었다.
'크ㅋ! 지독하군! 한천혈섬혼이여… 나는 너를 믿는다!'
한천혈섬구류도의 마지막 초식 혈천멸혼마도류를 제외한 가장 무서운 초식이 펼쳐진 것이다.
가공할 폭음 속에서 율천우는 전신이 분시되는 것을 느꼈다.
율천우는 전신이 붕 떠올라 허공을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몸이 아득한 지옥의 나락 속으로 깊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 속에서 여인의 애처로운 교성을 들을 수 있었다.
바로 갈의천마의 증손녀 천마옥녀 진소정이 처절한 울부짖음을 발하며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흘러 나온 피로 인해 그는 완전히 혈인(血人)이 되어 있었다.
그의 전신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시신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천마옥녀 진소정은 율천우의 처참한 모습을 굳은 듯이 응시한 채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단지 율천우의 처참한 모습이 커다랗게 확산되며 투영되어 올 뿐이었다.
그녀의 눈에 한과 설움이 어우러진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증조할아버지가… 그이를 죽였어요… 그이를… 증조할아버지가……."
"저주할 거예요… 할아버지를 저주할 거예요… 영원히!"
"이제부터 할아버지는 평생토록 고통을 받을 거예요. 은인을 죽이고… 이 정아를 죽게 한 양심의 가책으로 평생을 고통받으며 살게 될 거예요."
"용서할 수 없어요. 정아는 절대로 할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어요."
그것은 이내 장대비로 변하여 대지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죽은 듯이 늘어져 있던 율천우의 몸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율천우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혼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율천우야… 율천우야… 너는 절대로 쓰러져서는 아니된다. 너는 절대로 못난 아버지 같은 꼴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자네는 싸우기 전에 노부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었나?"
"아니오. 나는 이미 대종사에게 패배할 것을 알고 있었소이다."
"패배… 어찌 그것을 모르고 천하를 가질 수 있겠소이까. 어찌 그것을 모르고 영원한 승리를 차지할 수 있겠소이까?"
"대종사! 나는 이 한 번의 패배로 영원히 패배치 않을 것이오. 이제 당신은 영원히 나를 이길 수 없을 것이오."
"그것은 내가 이미 당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오. 또 당신을 꺾을 수 있는 방법까지도……!"
'그럴지도 모른다. 이 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소름 끼치도록 강한 놈!'
"패배, 그것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소. 그것은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일지도 모르오."
"아이야! 나 역시 느끼고 있다. 죽음보다 더욱 두려운 것이 패배라는 것을……."
"후후……! 아이야! 나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나는 바로 갈의천마 진천악이기 때문이다. 갈의천마 진천악……. 나는 바로 고금제일인이기 때문이다."
― 노부는 무인(武人)의 가장 행복한 죽음이 강자(强者)에게
천마옥녀 진소정은 설움이 일시에 복받쳐 올라 진천악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정아야! 그놈은 결코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놈은 천하제일신의이자… 천하에서 가장 강한 놈이기 때문이다."
"그놈은 정이 많은 놈이다. 그놈은 몹시 외로운 놈이다. 네가 따뜻하게 대해 주면… 그놈은 너에게 꼭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 이 할아비는 그런 놈을 잘 알고 있단다. 그것은 이 할아버지와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란다."
두 사람은 말없이 율천우가 사라진 방향을 씁쓸하게 응시하였다. 한편 힘겹게 걸음을 옮기던 율천우는 급기야 쓰러지고 말았다.
사지를 벌린 채 비를 맞는 율천우의 눈가에 짙은 회한이 스쳐 갔다.
문득 가을비가 내리던 날 돌아가신 부친의 영상이 그의 뇌리를 어지럽혔다.
― 후후……. 아버지! 이 우아가 패배한 것을 보셨겠죠?
― 그 기분이 어떤지 알고 계십니까? 물론 아버님은 잘 알고
― 하지만 아버지! 이 우아는 이젠 절대로 패배하지 않을 겁
빗속의 다 쓰러져 가는 폐찰은 당장이라도 무엇이 튀어나올 듯 음산하고 귀기스러웠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자욱한 어둠 속에 한 사나이가 사지를 벌린 채 누워 있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역시 천하제일의 마공(魔功)이었다."
"만약 내가… 내단을 연성하다 불사신공(不死神功)인 청허대유신공과 금강대반야신공을 연성치 않았더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갈의천마 진천악……. 역시 그는 고금제일인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그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서운 인물이었다."
"갈의천마 진천악……. 어쩌면 그는 나에게 단 육성(六成)의 공력밖에 사용치 않았는지 모른다. 천마신공… 칠성(七成)이상을 운기하면 두 눈에 마광(魔光)이 발출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익힌 모든 절학을 펼친다 해도 갈의천마의 육성 공력밖에 상대할 수 없지 않은가? 갈의천마… 과연 그의 무공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힘을 길러야 한다. 그와 맞설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이전에는 절대로 부딪쳐서는 아니된다."
수천 년 동안 마도(魔道)를 이끌어 온 천마일맥과 수라일맥의 힘을…….
또 이미 백년 전에 마도와 사도를 웅패하고서도 지금까지 기다려 오는 갈의천마 진천악의 의도는……?
"피와 죽음으로 천하를 정복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것은 일 순간일 뿐이다. 갈의천마 진천악! 그는 천하가 스스로 그의 발 앞에 굴복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막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천하가 그의 발밑에 굴복해서는 아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천마성을 제외한 대혈겁의 불씨는 제거해야 한다."
"빌어먹을……. 다 늦은 가을철에 웬놈의 장마람……!"
"글쎄 말이야. 그저 이런 날에는… 희멀건한 계집이나 끼고 눕는 것이 적격인데……!"
"그거야 당연하지 않은가? 날씨가 이 모양이니 늦을 수밖에……."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요즘 같아서는 그저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생각해 보게! 우리가 세외오대마종의 밀명을 받고 중원에 침투한 지 오십 년. 모든 것을 잊어가고 있는데 본격적인 중원 침공이라니. 제기랄, 또다시 피를 보아야 하니……."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세 복면인이 폐찰 안으로 들어왔다.
말을 나누던 두 복면인은 반색을 지으며 세 복면인을 맞이했다.
그런데 그들의 가슴에는 각기 한 글자의 글씨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숨어서 지켜보던 율천우는 이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를 깨달았다..
'흥! 빙은 북해 현빙궁이고 독은 묘강의 만독문이요, 혈은 삼목대혈불, 야는 투패천야, 동은 동해 벽옥궁……. 결국 세외오대마종의 첩자 놈들이 일시에 모였군!'
"세외오대마종! 이미 다섯 분께서는 중원을 향해 출발하시었소! 그 동안 우리들은 각기 암약하고 있는 문파를 장악하라는 명이 내렸소!"
"아울러 명이 떨어지면 일시에 출동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는 명이오!"
이어, 동(東) 자가 수놓아진 동해 벽옥궁의 인물이 음산하게 입을 떼었다.
"그 점은 염려할 것이 없소이다. 이미 그 계집을 처치할 계획은 완벽하오."
다른 네 인물은 고개를 끄덕이며 음산한 괴소를 터뜨렸다.
혈(血) 자가 수놓아진 천축 삼목대혈불의 밀정이 입을 떼었다.
"이젠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한곳에 모여서 서로의 진면목을 확인하며 연락망을 구성… 협조의 체제를 강화하고 축배를 드는 일만 남았구려."
"후후……! 이틀 후 인혈독혼보(人血毒魂堡)에서 보주인 독혈마군(毒血魔君) 패사림의 육십 회 생신 잔치가 있을 것이오. 바로 그곳으로 모이면 되오!"
"하면 독혈마군 패사림이 묘강 만독문의 밀정이란 말이오?"
"후후후! 그렇소. 패보주는 바로 본문의 인혼당(人魂堂) 당주이오."
'세외오대마종의 놈들이 드디어 마수(魔手)를 드러내기 시작했구나. 으음!'
'세외오대마종! 놈들이 이토록 치밀하게 중원에… 깊숙이 침투했을 줄이야!'
'그러나 나에게 꼬리를 잡힌 이상… 후후후… 아주 깨끗하게 없애주마!'
율천우의 눈길이 한참 득의의 괴소를 흩날리는 다섯 밀정을 향하였다.
'마음껏 즐거워해라! 오늘은 이대로 보내 주겠다. 그러나 네놈들이 한곳에 모이는 날… 후후후……!'
세외오대마종의 음모와 태동 그리고 율천우가 죽음의 덫을 놓는 밤이었다.
붉은 노을 속에 묻힌 호수 속의 청수원은 오늘따라 더욱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율천우는 황홀하게 꾸며진 침상 위에서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 옆에는 성장을 한 요염한 미부가 그윽한 시선으로 율천우를 응시하고 있었다.
문득 그를 응시하는 그녀의 입가에 달콤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천하에 이보다 매력적이고 뛰어난 분이 있을까? 너무 매력적이야. 내가 이런 분과 함께 평생을… 꿈만 같아!'
'그는 시를 읊고… 나는 금을 타고… 아이는 몇이면 좋을까? 저이를 꼭 닮은 사내아이와 천하에서 가장 어여쁜 딸 하나면 좋을 거야!'
그녀는 생각만 해도 기쁜지,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교소를 입에 머금었다.
깊은 사색에 잠겨 있던 율천우는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였다.
사나이로 하여금 도저히 거부할 수 없게 하는 천겁요미의 상을 지니고 태어난 불로옥선 초설란.
매번 대하는 그녀이지만 율천우는 단 한 번도 그녀의 미태에 견딜 수가 없었다.
'볼 때마다 참을 수가 없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욱 요염한 여인은 없을 것이다!'
은은한 사향 내음과 함께 풍겨오는 성숙한 여인의 체취!
터질 듯이 부풀어오른 탱탱한 가슴이 두 손 가득 찼다.
하지만 그녀는 야릇하게 몸을 비틀어 그의 손길을 더욱 편하게 해준다.
아울러 그녀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수줍은 교성을 발한다.
그리고 그는 한없이 그녀의 보드라운 살점을 흡입하였다.
그녀는 자신도 알 수 없는 혼미한 중얼거림을 발하며 뜨겁게 그에게 매달렸다.
그 역시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그녀의 농염한 나신에 한없이 빠져 들어갔다.
쾌락에 진저리치는 흐느낌과 함께 실내에는 뜨거운 열풍이 휘몰아쳤다.
그녀는 섬섬옥수로 부드럽게 그의 가슴을 쓰다듬고 있었다.
뽀얀 허벅지, 달덩이 같은 둔부, 진홍빛으로 물든 가슴을 은은하게 엿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짜릿한 관능을 유발시켰다.
"설란, 아무래도 당신은 또다시 면사로 얼굴을 가려야 될 것 같소."
"설란! 그대의 얼굴만 보면 참을 수가 없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아마 내가 제 명에 살 수 없을 것이 아니오!"
아직까지도 쾌락의 여운이 감도는 그녀의 눈가에 빨간 홍조가 피어 올랐다.
율천우는 어느새 싸늘하고 당당한 기품을 되찾고 있었다.
소요천비자는 하나의 두루마리를 펼쳐 놓고 율천우를 응시하였다.
두루마리에는 현재 무림(武林)에서 혁혁한 위명을 날리고 있는 수십 명의 고수들 이름이 나열되고 있었다.
두루마리에 기록된 이름을 살펴보던 율천우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습니다! 몇몇 조무래기들은 빠졌지만… 세외오대마종이 그 동안 중원에 심어오던 밀정들 대부분이 망라되었다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이놈들만 처치하면… 세외오대마종이 뿌려 놓은 모든 음모는 분쇄될 것이옵니다."
"주군께서도 이미 말씀하신 바와 같이 놈들은 인혈독혼보의 패주인 독혈마군의 육십 회 생일에 모두 모일 것입니다."
"그때를 노려 일거에 놈들을 모조리 처치할 것입니다."
"놈들이 한곳에 모인다. 후후후! 묵실호기… 하늘이 기회를 만들어 주는군."
밖은 이미 어두워졌으나 율천우의 두 눈은 횃불보다 밝았다.
드디어 세외오대마종과 인간 율천우가 부딪치는 풍운이 무르익는 밤이다.
멀리 뿌연 황진을 일으키며 세 필의 말이 복우산을 향해 힘차게 달려오고 있었다.
말을 타고 있는 인물들은 모두 오십대의 사나이들이었다.
호북(湖北), 호남(湖南) 이성(二省)을 좌지우지하는 정사간의 고수들.
그들은 바로 복우산 성천봉(聖天峰)에 있는 독혈천군 패사림의 생일에 참여키 위해 가는 길이었다.
돌연 빠르게 달리던 청살마군 구자일이 말고삐를 잡아챘다.
독수리 코에 음침하게 보이는 찢어진 눈을 지닌 흑면수라 자성래가 입을 떼었다
"허허……! 아까 여아홍(如兒紅)을 과음했더니 영 갈증이 나서 참을 수가 없구려."
그것이 자신의 머리를 향해 가공할 기세로 내리쳐 오는 것이 아닌가!
거대한 도끼는 무식하게 구자일의 머리통을 박살내고 말았다.
구자일은 허망하게 물을 마시다 황천 행이 되고 만 것이다.
구자일의 죽음을 내려다보는 마초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뜩였다.
"청살마군 구자일! 염라대왕에게 말할 죄목을 잘 새겨들어 두거라! 네놈의 죄목은 중원을 말아먹겠다는 야무진 꿈이다."
구자일의 비명을 들은 신풍뇌검 성우진과 흑면수라 자성래가 황급히 달려왔다.
두 사람이 노갈을 터뜨리며 패천마부를 노려보는 순간이다.
그 소리에 신풍뇌검과 흑면수라는 번개같이 몸을 돌렸다.
순간 섬칫한 쇠사슬 소리와 함께 칙칙한 핏빛 혈삭이 쏘아지는 것을 그들은 보았다.
"흐흐흐……! 이놈들아 알고나 죽어라! 본좌가 바로 삭혼혈로 피천승이니라."
바로 천하의 대마인(大魔人)으로 율천우에게 굴복한 수하가 아니던가?
"흐흐…… 마초! 미안하다! 워낙 손이 근질근질하여……."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겠다! 만약 또다시 내가 맡은 일에 손을 댈 때에는 그대로 놔두지 않겠다."
"재수 없는 놈, 더럽게 무뚝뚝하고 냉막한 놈. 도와주면 고맙다고나 할 것이지!"
"아참! 이럴 때가 아니라! 어서 복우산 인혈독혼보로 가야지. 조금이라도 늦으면 할 일이 없게 된다."
"마초! 네놈 혼자 변방의 쥐새끼들 죽이는 재미를 독차지하려는 것이냐? 이놈아, 같이 가자!"
독술(毒術)에 있어선 사천당문과 필적한다는 독의 제일보.
바로 인혈독혼보의 보주이고 현무림에서 독술(毒術)의 제일인자로 각광받고 있는 인물이다.
만여 평에 달하는 인혈독혼보는 찾아든 하객들로 흥청거리고 있었다.
하인들은 분주히 움직였고 대청마다 방마다 호탕한 웃음소리가 끊일 줄 모르고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인혈독혼보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십여 명의 인물들이 모여 술잔을 나누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상석에는 적의(赤衣) 차림에 유난히 길고 검은 수염을 늘어뜨린 위풍당당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하하하! 세외오대세력의 고수들 모임이 본부에서 노부의 생일날에 이루어지니 정말 기쁘기 한량없소이다."
역시 자타가 인정하는 호북무림의 영주다운 위풍과 용모였다.
운남의 패주 일월신극(日月神戟) 천두광이 술잔을 높이 들었다.
"패장주의 영원한 번창과 세외오대세력의 밝은 앞날을 위해 건배합시다!"
"허허……! 오늘 청살마군, 신풍뇌검, 흑면수라 세 분이 참석 못한 것이 유감이구려."
그들은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도 결코 세외오대마종에 대한 얘기는 털어놓지 않았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경각심 때문이리라!
잠시 후 운남의 패주 일월신극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후……! 빨리 다녀오시오! 나도 오랜만에 과음을 했더니. 후후……."
일월신극 천두광은 정자 뒤쪽의 울창한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고의춤을 내리고 시원하게 물줄기를 뽑아낼 때, 한 줄기 들치근한 음성이 들려왔다.
얼굴에서부터 발끝까지 온통 흑색(黑色) 일색의 괴인이 소리 없이 나타나 그의 목을 움켜쥔 것이다.
일월신극이 볼 수 있는 것, 그것은 괴인의 뻥 뚫린 흑안(黑眼)뿐이었다.
"나… 사안(死眼)이란 분일세. 무엇 때문이냐고? 후후……. 바로 자네를 저승으로 보내주기 위해서네."
볼일을 보러 간 몇몇 인물들이 시간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자 웅성거렸다.
"후후후……. 한 번 나간 놈들은 오지 않는다. 그놈들은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갔지……."
그들은 각기 노갈을 터뜨림과 동시에 전신의 공력(功力)을 끌어올려 귀를 기울였다.
특히 인혈독혼보의 보주인 독혈마군 패사림은 황급히 정자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한 줄기 새까만 물체가 독혈마군의 미간을 향해 쏘아져 왔다. 상상할 수도 없는 빠름이었다.
그의 이마에는 한 마리 흑접(黑蝶= 흑나비)이 박혀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장내 중인들의 안색이 허옇게 질려 버렸다.
흑접사혼령, 바로 죽음의 흑나비라 불리는 여살수, 사성(死城)의 성주 불로옥선 초설란이 아닌가!
"크흐흐흐……. 이놈들 삭혼혈로의 혈삭 맛도 보지 않고 어딜 가려는 것이냐?"
"본좌가 바로 패천마부 마초이니라! 갈려면 지옥에나 가거라!"
삭혼혈로와 패천마부를 위시한 사성의 사령객들이 일제히 살수(殺手)를 뻗어냈다.
장내의 고수들은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비명횡사하였다.
죽어 가는 그들의 눈에는 공포, 경악, 회의가 서려 있었다.
한 사나이가 복우산 정상에서 인혈독혼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혈독혼보는 완전히 풍비박산이 된 채 시뻘건 화염 속에 휩싸여 있었다.
"세외오대마종의 손발은 잘렸다. 그러나 저 인혈독혼보에 모인 하객들 중에는 세외오대마종과 관련이 없는 인물들도 많을 텐데……!"
"대(大)를 위해서 소(小)를 희생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도리가 없겠지."
첫댓글 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