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들 때 하는 맥추감사
2024. 7. 7. 주일 낮 (맥추감사주일) 신 26 : 1-11
오늘은 농사의 첫 수확물을 드리는 맥추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곡식의 첫 수확물에 대한 인식과 감각이 무뎌져 있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아도 땀흘려 일하고 받은 수고로 얼마든지 사서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맥추감사절이 되면 감사헌금으로 드리는 물질뿐 아니라, 당신들이 지으신 농산물을 강단에 바치며 지켜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계십니다. 첫 수확물이라 하면 기본적으로 감자, 마늘, 조금 일찍 지은 거라면 알이 조금 덜 찬 옥수수, 그리고 보리를 지으시는 분들은 보리 등등입니다.
아끼지 않고 상반기 6개월 동안 인도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드리는 믿음의 고백이요, 행동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믿음이요 감사하는 만큼 믿음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성도의 삶 속에서 꼭 필요한 것이 ‘믿음, 소망, 사랑’인데 하나를 덧붙인다면 ‘감사’라고 했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리면 교만의 싹이 트게 됩니다. 모두 ‘내가 잘해서’라는 씨앗이 뿌려지기 때문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다.”
맥추절(칠칠절)은 말씀드린 대로 초여름에 농사의 맨 첫 열매인 보리를 거두면서 감사하는 절기입니다(출23:16). 장막절(수장절)이 가을에 모든 추수를 다 마치고 드리는 한 해의 감사이니, 하나님은 일 년에 두 번의 감사절을 명하신 것입니다.
첫 수확을 마치고 맥추절, 마지막 수확을 마치고 장막절입니다. 우리로 하면 맥추절은 보리 추수를 마치는 초여름에 드리고, 장막절은 모든 추수를 다 마치는 늦가을에 드리는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들은 지난 6개월 돌아보면 어떠셨습니까? 감사가 아니면 원망과 불평 어느 것이 더 많으셨습니까? 모든 환경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은 오늘 내가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깊이 느끼시는 분들입니다.
장마철입니다. 이 영향에 따라 농산물이 썩느냐, 잘 자라느냐를 걱정합니다. 너무 더우면 농산물이 말라 타 죽느냐, 잘 자라 좋은 열매를 맺느냐를 걱정합니다.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 곡식을 거둘 때,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합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분들과의 감사의 차이가 다릅니다. 그분들과 같이 지금 이 순간 감사하십니까? 아니면 ‘왜 나에게는?’이란 불만으로 불평이 더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아직도 내 욕심의 그릇을 채우지 못함에 불평하고 있습니까? 어려움 속에서도 여기까지 인도하심에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이 앞선다면, 그렇다면 하반기는 볼 것도 없습니다. 역시 그런 열매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원망은 원망을 낳고 불평은 불평을 낳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잠시 멈춰 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대로 계속 가지 마십시오. 열심히 달린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이제 2024년 절반이 지났을 뿐입니다.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고, 내 영혼을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의 방법, 말씀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맥추감사절에는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가장 힘들 때 하는 감사]라고 정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1-5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첫 맏물, 즉 첫 소산을 하나님께 바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6절 이하를 보면 출애굽 하기 이전 애굽에서의 고통스러움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주셔서 정착하게 하신 땅에서 첫 소산을 드릴 수 있음을 감사 찬양합니다.
10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맏물을 가져오는 맥추절 때는 사실 가장 배고픈 때입니다. 가을 추수 때는 모든 것이 풍성합니다. 그러나 맥추절은 먹을 게 별로 없습니다. 겨우내 저장한 음식이 바닥이 나고, 조금씩 아껴 먹으면서 첫 소산을 기다리게 됩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분들에게는 그리 쉽게 다가오지 않을 겁니다. 그 대신 땀흘려 일했지만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한숨, 시도 때도 없이 다가오는 각종 어려운 일이나, 문제가 감사를 잊게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어려운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음에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숨을 쉬며 살아가도록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세계 곳곳에 기아와 난민이, 최근에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가자지구의 어린이들이 기아와 굶주림으로 각종 질병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 꺼져 가고 있는데, 우린 잘 먹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감사 할 수 있는 조건이 많은데, 얼마나 감사 할 일이 주어져야 감사의 고백을 하며, 주님 제단에 나와 맏물을 드리시겠습니까?
그래서 귀하게 맞이하는 맥추절, 믿음 없이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그냥 감사가 아니라 신앙고백입니다. 맥추절의 감사는 하나님 향한 깊은 ‘믿음’이 있어야 드렸습니다. 비록 지금 힘들어도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약속과 축복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노예로 있을 때는 먹고 싶은 대로 못 먹었습니다. 고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 처음으로 주어진 땅에서 농사를 짓고 수확을 얻고,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까요?
그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정착한 땅에서 주어진 첫 수확을 하나님께 맏물로 드리라는 겁니다. 하나님께 어찌 감사를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감사에 관한 한,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 합니다. 다니엘은 모함을 받아 사자굴에 던져지게 되었는데도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감옥 속에서도 감사하며 찬송하자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환경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기 전에, ‘주님, 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참 감사는 ‘받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입니다. ‘소유’가 아니라 ‘발견’입니다.
일상 속에서 감사를 발견하는 사람은 내 삶에 천국이 이루어 집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일들을 찾게 되고, 범사에 원망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그런 일들만 찾게 될 것입니다.
또한 맥추절은 하나님께 수확의 맏물을 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맥추절을 맥추절답게 지내기 위해서는 본문 11절의 말씀이 따라야 합니다.
11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나만, 우리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고아와 과부 그리고 가난한 자와 이웃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려웠을 때, 애굽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더욱 어렵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해방시키셨고, 땅을 주셨고, 곡식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너희는 너희만이 아닌 노예 때를 생각하고, 너희처럼 어려운 자들을 내가 너희를 사랑했듯 사랑하며 섬기라는 겁니다.
감사는 함께 할 때 더 풍성해지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백석대 김진규 교수님은 “어떤 사람들은 헌금을 드리는 것 자체에 부정적인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며 “‘네 마음이 있는 곳에 네 물질도 있다’는 주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명기 12장 7절에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부정이 아닌 긍정으로, 형식이 아닌 감사로 드릴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또 다른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공짜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에 축복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