弓老의 마지막 醫政痛說
지금 우리나라는 고시파의 오기와 행패로 의료계가 풍비박산 일보직전이다. 고시파와 의사는 우리나라 직업 가운데 이른바 엘리뜨에 속하는 우수 직종. 게다가 의사는 국민건강 지킴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들의 대치는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고시는 사법 행정고시를 일컫는 말).
그런데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이 의료대란이 왜 하필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가?
시작은 대통령의 느닷없는 <의대생 2,000명 증원>이 단초였다. <학원모리배>들과 대형병원을 꿈꾸는 일부 중소병원이 의대생대폭증원을 강력히 주장하자 무뇌언론이 이를 퍼 나르면서 졸부들의 요람성지 강남에서는 초등학교의대반이 생겨났었지.
그러자 민심의 이반을 피부로 느끼던 대통령과 그 졸개들은 총선을 앞두고 의대생 증원으로 떠오르는 연관 유권자수를 재빨리 계산하면서 흥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떨어져나간 민심만회를 위해 대통령은 꼼수를 즉시 발동하여 의대생 대폭증원을 꺼내들었을 것.
최초의 대의명분은 <지역의료확충>이었지. 하지만 이 계획은 허무맹랑한 정책이었음이 사태가 진행되면서 확연히 드러났다. 정책이 되려면 설사 조작된 것일지라도 최소한 그것을 뒷받침할 연구자료는 있어야 되는데 그런 자료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계획이 즉흥적인 발상임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기차역도 없는 전라도<지역> 벽촌의 이 만성<중환자> 보기에도 전혀 와 닿지 않는 황당한 계획이었으니까.
의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누구겠는가? 그것은 의사와 환자다. 그런데 왜 당사자들이 아닌 대통령과 고시파 관리들이 그것도 선거철에 들고 나서는가? 당신네들은 살면서 몇 번이나 병원에 가보았는가?
병원진료는 대부분이 예약이라 처음 찾는 사람은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재진부터는 예약시간에 가면 되지. 물론 급한 사람은 응급실로 가면 되고. 그러나 응급실처치는 <위급환자 위주>니까 먼저 왔다고 고함쳐봐야 소용이 없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의사부족을 실감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시파는 간단한 병도 매번 응급실만 찾았었는가?
그러니 의료현실을 잘 아는 당사자 의사들이 이 느닷없는 의대생 폭증정책을 어떻게 수용하겠는가? 의사들은 우리 현실에서 의대생 대폭 증원은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 선진의료를 파멸로 몰고 가는 망국적 정책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설 수밖에 없었으리라.
물론 필수과목 의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그것은 의료수가가 불공정해서 생긴, 어려운 수술 기피현상이지 쉽고 돈 잘 버는 분야는 차고 넘치는 것이 의사라는 것. 그래서 생긴 현상이 미용성형 붐이고 부정진료, 과잉진료, 빈번한 마약처방 등 비정상적인 의료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명분만 <의료개혁>이라 바꾸고는 <의대생 대폭증원>은 계속 <My Way>다. 의료개혁이 의대생을 대폭 늘리는 것이라니 대통령이나 그 졸개들 지능은 산수만 배운 초등학교수준인가? 과학에는 근처도 가본 적이 없는 철딱서니 없는 오기, 그 왕고집이 지금 국민건강을 볼모로 <선무당칼춤>을 추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선무당칼춤의 종착이 예측불허라는 점. 대통령 오기는 부러지면 부러졌지 굽히지 않는다는 천하불통이고 그 졸개들마저 맹종일관이니 필경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국가재앙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
나는 당당한 국무위원이나 여당의원을 왜 졸개라 부르는가? 그들 꼴이 국정동반자나 보조자 모습보다는 철저히 <야쿠자 꼬붕>의 모습이기 때문이지.
오늘날 의대생 대폭증원을 외치는 주체는 정치인이나 대학총장 자치단체장이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은 의대생등록금을 노리는 학원모리배의 앞잡이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 중 누가 의사부족으로 손해를 직접 겪었겠는가?
근자에 들은 소문 중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얘기가 있긴 있었지. 산부인과 소아과의사가 부족해서 애 낳고 기르기가 힘들다는 얘기. 그러나 이런 현상이 어찌 의사수가 부족한 탓이겠는가. 젊은이들이 자식 갖기를 싫어한 탓이지. 한때는 돈을 쓸어 담던 과목이 산부인과 소아과였다. 지금은 큰 병원인 길병원 차병원도 시초에는 산부인과였으니까.
그런데 대통령과 그 졸개들 주장대로 의대생을 배 가까이 크게 늘이면 산부인과 소아과 의사가 늘어나고 국민들은 애를 많이 낳겠는가. 이것은 <부자가 잘 살아야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꼼수즉발통>의 부자감세정책에 버금가는 망국적 발상이다.
OECD국가 중 인구감소율이 가장 큰 나라가 우리니라다. 그런데 의사가 앞으로는 태부족이 될 것이라며 의대신입생을 배 가까이 늘리겠다니. 이것도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대통령 특유의 확대정책 일환인가? 그러나 이것은 선거철의 표 불리기 꼼수가 아니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망발, 망국적 발상이다. 여론조사결과 80%이상이 의대생증원을 지지한다는 핑계도 허상이지. 대통령을 100명 뽑고 국회의원을 10,000명 뽑는다며 여론조사를 해봐라. 80%보다 더 나올 것이다. 고시파는 국민의 그런 투정심사를 이해 못하는가? 못 오를 나무, 잘난 놈들 똥칠이나 하자는 열등의식. 그것도 여론은 여론이겠지..
의료계의 반발로 의료핵심요원 9,000여명 전공의가 병원을 이탈하자 정부는 미봉책으로 지역 공공의를 모두 끌어올렸으나 지역병원에 줄서있는 환자가 있던가? 또 전체 국민건강에도 눈에 띄는 큰 피해가 없었다. 그런데도 의사가 크게 부족하다고 계속 억지를 쓰는 대통령 의도는 무엇일까?
“내 말은 일단 뱉어내면 지존(至尊)이다.”인가? 그것도 자존심인가?
대통령은 이제 <지역의료확충>에서 <의료개혁>으로 말을 바꿨지만 <의대생 대폭증원>이 <의료개혁>이라니. 그런 단세포 모기머리로 어떻게 국가를 경영하겠는가? 그런데도 결국 대통령과 고시파졸개들은 앞으로 의사는 3,000명 이상 증원이 필요하지만 우선 금년은 약속한 2,000명정도만 늘여 5,000여명의 의대생을 뽑겠다고 아예 신입생 학교배정까지 일방적으로 끝내버렸다.
이 무지무도(無智無道)한 오기가 <의료개혁>일 수 있겠는가? 대통령과 보복부는 27년간 미뤄왔던 의사증원을 마침내 결말을 냈다며 희색이 만면이지만 그렇다면 27년 동안 의사가 크게 부족해서 인구가 줄었는가? 그동안 국민의 평균수명은 왜 크게 늘어났는가? 미련한 것들이 전후사정도 모르면서 <즉발꼼수>만 나불대니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의사들이 법원에 의사부족의 근거를 확인해서 망국적인 의대생증원을 취소해달라고 제소를 했지만 지법 고법 역시 고시파 본색을 감추지 않고 모두 기각해버렸다. 이쯤 되면 의료대란의 단초는 총선의 표 불리기였으나 이제는 <고시파와 의사간의 힘겨루기> 형국이 되고 말았다.
권력의 상징이자 실체인 고시파들은 왜 고시합격이라는 자만심과 오기로만 국정을 주무르려고 하는가? 의사를 말단공무원 수준으로 격하시켜 아랫것으로 만들어야만 골방출신 독불장군의 우월성과 위상이 높아지는가? 국가야 어찌되든 권좌에 있을 때 <니맘대로> 권력을 휘둘러야 살맛이 나는가? 이상(理想)과 경륜(經綸)이 없는 독단(獨斷)은 망국의(亡國的) 독재(獨裁)일 뿐이다.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가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 된 것은 우수한 기술력 덕택이지 골방출신 법률가들의 오만한 우월감이나 임기응변의 술수 때문이 아니었다. 그동안 이 세상 어느 누가 우리나라 법률가들의 능력을 선진국 수준이라고 높이 평가한 적 있었던가? 그런데 왜 후진국 개천의 이무기들은 법을 쥐고 흔들며 이렇게 막무가내로 국가위상을 깎아내리는가?
나는 의료대란의 원인을 두 직군의 직업성취 교육과정에서 찾고자 한다. 두 직군의 교육과 그 성취과정은 차이가 너무 커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른바 엘리트라고 하는 두 직군 간 극단의 대립은 그 바탕에 두 직군의 직업성취과정에서 얻게 된 고유 자부심과 긍지 탓이라고 보자는 것.
두 직종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중요분야지만 그 직을 성취하는 교육과정은 매우 다르고 그 교육과정은 그들의 인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시파와 의사는 중고등학교 학습 과정에서부터 차별이 되지. 고시파는 <문과> 의사는 <이과>로 구분되니까. 속된 말로 문과는 문장외우기가 장기라면 이과는 추리와 분석과 종합이 요구되는 수학과 과학이 필수과목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교육과정에 들어가면 두 직종의 수련과정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서로가 유기적으로 얽혀서 살아가야 하므로 인간사회는 분수(分數)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 유기체고 그 분수의 공익적 개념이 법이다.
그러나 법의 속성은 “녹비(鹿皮)에 가로왈(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耳懸鈴鼻懸鈴)”이라는 말이 잘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힘있는 자의 주관에 따라 해석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뜻. 필요에 따라 오늘은 이말 내일은 저말을 할 수 있고 없는 죄도 만들어 처벌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법의 큰 기능은 인권보호지만 고시파가 탐내는 기능은 법의 <처벌기능>과 <조작기능>이다. 없는 죄도 다양하게 꾸려 맞추면 중형 사형도 가능한 위력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일은 이 땅에서 다반사로 이뤄져왔으니까.
음해라고 할 테니 내 얘기를 하나 하겠다. 별거중인 변호사 부인명의의 집을 샀다가 얼마 후 그 부인이 죽자 변호사가 죽은 부인명의로 고소를 했고 나는 조사를 받다가 구속된 적이 있었다. 변호사를 선임한 결과 2년 집행유예로 석방되었으나 구속 중 재판이라 증거가 부실했으므로 변호사에게 항소를 부탁하였더니 변호사는 항소를 해야 무죄는 절대 안 된다면서 변론을 거부했지.
그래서 스스로 변호사 없이 진행하여 <검사항고가 없는 무죄>를 받아냈다. 얼마 후 형확정증명서를 받아들고 구속한 검사와 유죄를 선고한 판사를 찾았더니 모두 퇴직하였더라. 변호사도 면목이 없었던지 변호사 그만 두고 지역판사재임용을 받아 서울을 떠났고. 그때 느꼈던 민초의 감회, 그것은 검사와 판사와 변호사는 사업공동체이고 사건의뢰자는 공동먹잇감이라는 절망감이었다.
이것이 고시파들이 자부심을 갖는 우리 법조계 단면이라면 고시파들은 또 장광설을 늘어놓겠지.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의 명수들이니까.
고시파는 직업 특성상 천의무봉의 말(言辯)이 장기다. 어제했던 말도 오늘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부인할 수 있는 것이 고시파의 특기니까. 대통령을 보라. 어제는 특검을 거부한 자가 범인이라더니 오늘 자기부인특검은 졸개들을 앞세워 한사코 반대한다. 그래서 법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고 고시파는 <교언영색>이 특기라 정치인으로 출세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사는 생명을 치료하므로 <말이 아닌 의술>을 앞세우는 직업이다. 치료는 준비된 지식과 기술로 실행하지 고시파들처럼 <말이나 술수>로 할 수가 없다. 이것이 두 직종 간 뚜렷한 차이다. 그러나 실정법은 고시파가 쥐고 있고 의사는 법 그물 안의 고기임으로 두 직종간 대립은 기울어진 운동장 싸움이지, 그래서 이 승부는 이미 결정이 났다고 보고 고시파가 시작하였던 것. 그러나 의료계를 향한 이런 무자비한 정치적 폭거는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므로 결과는 지켜보기로 하자. 일단은 우리나라 고시파가 얼마나 유아독존의 집단인지 또 그들의 억지가 얼마나 무도한 오기인지 역사와 국민은 똑똑히 기록할 것이니까.
그러면 또 고시파는 문제를 뒤집어 해석하고 장광설을 늘어놓겠지. “역사가 밥 먹여 주냐? 똑똑히 봐라. 일제는 망했어도 친일파는 승승장구다. 이것이 진짜 역사고 현실이다.” 라고 우기면서..
고시파의 이런 몰염치는 무엇으로 비롯되었을까? 우리는 고시파들의 출세과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다. 고시파는 설사 대학에 진학했다 하더라도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일은 드물다고 하였지. 골방이거나 독서실에서 지정된 책, 그 중에서도 선별된 주제내용을 외우듯이 열심히 읽어야 한다는 것. 요즘은 로스쿨이 생겨 출석체크를 하는지 모르겠으나 시험준비과정은 이전과 비슷하겠지.
운이 좋으면 열심히 공부했던 문제가 출제되는 수가 있지만 운이 따르지 않으면 7수, 8수까지도 해야 하니 그 길도 수월치는 않다.
그래도 운이 좋으면 1, 2년에 합격하는 수가 있지. 하지만 9수까지 해야 한다면 그 집념은 높이 사야 하겠지만 그러나 9수까지 견디며 가슴에 응어리진 한(恨)은 당사자의 인성에 심대한 영향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의사는 고시파들처럼 대학강의를 외면하고 골방에서 독학으로 성취할 수가 없다. 의사교육은 반드시 의과대학을 다녀야 하고 교수강의도 빠지면 안 된다. 지정된 책 몇 권을 외우듯이 읽으며 그러고도 반은 요행으로 합격하는 고시파와는 그 교육과정이나 질이 전혀 다르다.
의사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 그러므로 그 교육과정은 인체를 해부하고 인체장기를 모두 분해분석해서 복잡다단한 질병의 원인과 진행을 살피고 치료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또 필요한 첨단 의료기기도 조작하고 환자의 처치 관리도 익혀야 하고.
그래서 최소 10년간은 엄격한 <도제교육(徒弟敎育)>을 받은 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해야만 의사가 되는 것. 그러므로 오늘날 직업 중 의사처럼 장기간 철저하게 수련을 받는 전문직종은 없다. 따라서 그 어렵고 긴 수련을 견디고 이룩한 성취감이 그들의 자부심이고 정상의사의 중요 인성이 된다.
그러므로 의대생을 많이 뽑으면 교육 부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고시파는 “우리도 더 어려운 공부 스승도 없이 홀로 다 해냈다. 의사가 뭐가 어렵냐, 의대는 입학시험이 어렵지 의사시험은 0.2 대 1도 안 된다. 우리 고시파는 수십 대 1의 경쟁을 뚫고 승리한 천재들이다. 감히 우리 앞에서 잘난 척 하지 마라.” 그 오만한 자부심을 앞세우며 “우리 앞에서 고개를 처드는 놈들은 모두 박살을 내주겠다.” 으름장까지 놓고 있는 것이다.
법을 쥐고 있는 고시파들은 법이 공익(公益)을 위한 법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고 오직 출세의 보상이고 쟁취한 특권이라는 생각뿐인 것 같다. 그래서 주어진 권력을 앞세워 법을 자기위주로 확대 축소해석하고 휘두르며 기세등등이다.
고시파는 의대생 증원만이 목적이지 그 교육과정은 전혀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관심도 없다. 의사교육은 의학교육과 실습이 가능한 장소, 다양한 각종 기자재와 교재가 학생 수에 비례하여 충분히 갖춰져야 가능하다. 그래서 의사교육기반을 구축하는 데는 막대한 돈이 필요하지만 돈만 있다고 의사교육이 완성되지 않는다. 의사는 도제교육이므로 우수한 교수진 확보가 더 중요하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완벽한 지식과 탁월한 기술이 필요하므로 고시파들의 업무처럼 <되면 좋고 안 되어도 그만>인 흥정이나 요령이 전혀 끼어들 수 없는 것이 치료행위다.
그러므로 교육인프라가 완벽하지 못한 부실교육은 필연적으로 의사의 질을 떨어뜨리며 의사의 질이 떨어지면 부실진료 과잉진료 의료사고가 속출할 테니 세계가 인정하던 한국의 선진의술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런 사태가 자칭 천재 고시파들의 궁극적 노림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국민의료파멸을 기도하는 망국적 자만심이 아닐 수 없다.
고시파는 <나> 외의 <남>은 모두 부러뜨려 지배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너무 쉽게 출세한 고시파의 자만심이지 경쟁의식이 아니다. 그러나 의사는 공부하는 과정이 그렇듯이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만의 하나 의사가 투쟁을 포기하고 고시파의 권력에 굴복한다면 그것은 한국의료의 우수한 기술과 긍지와 자부심을 모두 포기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그때는 의사가 히포크라테스선서의 자부심을 버리고 검찰공화국 궁민(窮民)의 한탄 즉 <이제는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고 인생을 고시파처럼 요령과 술수로 살자, 인간은 결국 죽는 것이니까 구지 살리려고 애쓰지 말자. 돈벌이가 될 만큼만 치료하되 환자는 될 수 있으면 오래 붙들어라. 치료보다는 그럴싸한 의학적 거짓말을 개발, 환자를 오래 붙들고 돈 있어 보이면 맆서비스를 잘 해서 병을 오래 끌어라.> 등을 한탄하는 세속의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
충북의대처럼 의사교육 인푸라가 열악한 의대에 학생수를 더 많이 배정하는 것이 의료개혁이라니 대통령과 그 졸개들의 업무수준은 시골면서기와 무엇이 다른가? 그런 식으로 모든 국정을 끌고 왔으니 국민이 화가 안 나겠는가?
그런데도 총선참패 후 대통령과 그 졸개들의 행패는 전혀 달라지지 않으니 이제는 천벌을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다.
고시파들의 의료개혁이 성공하면 이 땅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의사는 정년이 없으니 그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우리 의료계는 부실의사가 판을 쳐 의료수준도 엉망진창이 되겠지. R&D예산도 깎여 이공계의 우수인재까지 의대로 끌어들였으니 결국은 국가패망의 길만 더 넓힌 꼴이 될 것이다.
그런 세상이 고시파의 자존심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이 나라는 차라리 전쟁이 일어나서 깡그리 부서지고 허허벌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훨씬 낫다. 이 무지무식한 고시파정권의 무도한 오기가 여전히 기승하고 있으니 米壽(88세) 가까운 이 弓老(꼬부랑할배, 弓은 활궁)가 작심 악담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나도 처음에는 온고지신(溫故而知新)을 부탁하며 재기를 당부했었다.
고시만 합격하면 일정 권력이 주어지고 아랫것들이 생기니까 그 우월감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부심이 되었겠지만 그러나 오늘날 그 자부심과 오기가 휘두르는 나라꼴을 보라. 국가의 중요한 의료산업을 이렇게 난장판으로 만드는 정권이 인류역사상 우리 말고 또 있겠는가?
어떻게 자신의 아집과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국민복지의 기반인 의료계를 파멸로 몰아갈 수 있는가? 그것은 벼락출세한 망둥이들의 오기지 정권치적은 될 수가 없는 것. 참으로 치졸한 소견머리다. 개천의 용이라는 자부심은 결국 상대를 잘못 골라 개펄 망둥이로 전락, 역사에 길이 자리매김 될 것이다.
그러면 또 고시파 대통령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실까? “나는 자식이 없고 개새끼만 키운다. 개새끼가 어떻게 역사를 알겠는가? 그러므로 나에게 후일의 역사평가는 의미가 없다.” 설마 이렇게는 말할 수 없겠지만.
우리나라 고시파는 왜 하나같이 <不同視> <分見>일까? 왜 역사를 제대로 주시하지 못하며 <막가파>처럼 매사를 꼭 <눈앞의> <자기위주>로만 생각할까? 매사를 <나>와 <남>으로 나누고 왜 <남>은 꼭 타도할 적으로만 보는가?
객관적 범의가 뚜렷한 자기 부인을 총선민의를 의식한 검찰이 가볍게 조사하려 하자 대통령은 그것도 못 참았다. 그것은 <至尊을 향한 不遜>이라면서 <자기 사람 그녀>는 <不可觸 天民>이라 못 박고 수사진을 모두 갈아치웠다.
대명천지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의 부인이 어떻게 치외법권의 <天民>일 수 있는가? 그런데도 졸개들은 대통령의 이런 우격다짐도 주군(主君)의 특권으로 우러러 모시니 자신들은 아예 주군의 <賤民>인 것을 스스로 다짐하는 꼴이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겠지. 검찰을 시켜 탈탈 털면 인생 자체가 파탄 날 테니, 그러니 어떻게 주군의 눈 밖에 날 수 있겠는가?. 이 땅에서는 정권의 비호를 받지 않고 영달(榮達)하는 길은 절대 없으니까. 맹목적인 추종과 지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외에 다른 보신책은 없으니까.
그래서 정권추종자들의 집단을 범죄공동체로 보는 시각이 여론으로 비등해지고 있는 것. 이번 총선민심도 그 점이 명백히 반영된 것 아니겠는가? 친구 중에도 부의 축적과정에 부정이 있음직한 자가 이 정권을 유난히 <적극 지지>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부정한 자들의 생존법칙이겠지.
고시파들의 이런 엽기적 아부를 보면서 고시파의 <私法>이 된 <國法>을 통탄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고시파라고 다 똑같을 수는 없지. 그중에는 존경받았던 분이 분명히 있었고, 있고, 또 있을 것이니까. 다만 그 숫자가 적다는 것이 아쉽지만.
이 병상의 <민초>는 그동안 의료대란의 와중에서 정권야욕에 몰두하는 고시파들의 역겨운 작태를 눈이 시리도록 보아 왔다. 이제는 이 시국에 하늘이 내릴 <天刑>만을 기다리기로 하고 의정통설(醫政痛說)은 이것으로 끝내려 한다.
妄言多謝.
2024. 5. 27. 弓老 洪志得 010-5387-3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