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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집에서 찍은 것이다.
삼성 갤럭시 노트 3로 주를 더한다.
주 안에 삶이다.
지선이의 고백이 참으로 공감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처럼 고집이 세지는 않은 듯 하다.
왜 하필이면 나이어야 하냐고 떼를 쓰던 시간이 있었다.
도무지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의 몸 속에 예수가 살아서 동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한 일어 없었던 때다.
그러나 주는 그리스도 예수였던 것이다.
주와 그리스도 예수시다.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은 하나님의 아들을 품었기 때문이다.
내 구주 예수시다.
아멘(눅2:11. 27)
생각이 마비를 당하고 온 몸은 불로 지지고 있었다.
마음이 생각을 향하던 날에 나는 그렇게 예수의 이름을 만나고 있었다.
용광로를 넘어 용암동굴이다.
용암을 넘어 마그마 현상이다.
마그마 현상!
아멘(마그네슘과 예수 그리스도)
계21:14
게바의 사랑 베드로 보니 어미의 죽음 나를 더하고
바나바 흘러 요셉을 보니 요한의 모친 주를 발하네
아멘(눅1:60)
지선이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죽을 것 같다고
그러나 죽을 것 같지 죽지는(시118:8)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이 내 아픔으로 알고 있다.
온 몸이 마비가 될지언정 주는 그리스도 예수인 것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남이 죄라고 생각을 하지 않음과 죄를 몰랐던 날들이 있었다.
그 일에 믿음은 하나 하나 나를 벗긴 것이다.
데본기와 판게아로 단층을 더한다.
층층이
케케이
마음으로 흐른 주 안에 삶이다.
죽을 때 죽을지라도 우리는 어미인 것이다.
어미를 모르는데 어찌 하나님의 아들을 안다고 하겠는가?
어미 모로 사내 남과 아비 부로 계집 녀를 녀한다.
마리아의 고백처럼 우리는 라마의 슬픔을 통하여 살고 있었던 것이다.
용암과 마그마와 용천동굴로 만장굴을 더한다.
고페르 나무를 구속한 고벨화 송이다.
고벨화 송!
온 몸을 타고 호흡이 발동을 한다.
온 몸과 마음과 생각으로 내 몸이 구토를 당한다.
극심한 체기다.
그리고 나는 구속의 사랑에 있어 그리스도의 본체로 믿음의 주를 향했다.
내 구주 예수시다.
주와 그리스도가 합하여 나오미를 향함이다.
마라의 쓴 물과 라마의 슬픔이 나를 찾은 일이다.
도마를 넘어 빌립을 넘어 마리아를 넘어 베드로를 넘어 게바를 넘어 시몬 베드로의 고백이다.
요한의 아들 시몬으로 주를 더한다.
합환채가 품은 홥과 환이다.
환웅과 환단고기로 환차손을 더한다.
치환을 당하는 우리 몸이다.
몸!
몸 구
몸 기
기운 기
기록 기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이 무엇이더냐?
마음의 고백이 흐른다.
요한일서 5장 1절이 흐르고 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은 말씀이 육신이 됨이다.
독생하신 말씀이 아버지 품속에 있어야 함이다.
독생하신 말씀이다.
주와 그리스도가 하나가 되어야 하듯이 나와 주님이 한 몸이어야 함이다.
한 몸!
아멘!
ㅋ. 요일5:1
ㅌ. 요1:18
ㅍ. 딤전2:5
ㅎ. 요1:30
내 구주 예수를 더욱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은 내 구주 예수를 더욱사랑 더욱사랑
내 속에서 발견한 문물이다.
박자는 나중에 찬송으로 더할 것이다.
광명한 새벽별로 오신 나의 주 예수시다.
다윗의 별로 흐른 내 구주 예수시다.
주와 그리스도가 합하여 임마누엘이 됨은 주께서 나의 지팡이가 되심이다.
내가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에 있을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음은 주의 지팡이가 나를 안위했기 때문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아멘의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는 고백이다.
물과 성령이다.
성령과 신부다.
물과 성령으로 흐른 피와 물이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다름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기의 존재성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은 에흐예를 품은 삭개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삭개오!
아멘(눅19:1-10)
영혼의 거룩 빛을 발하니 자색 옷 흘러 주를 더하고
영육의 사랑 어미를 보니 주 예수 품어 우리 주보네
아멘(마리아)
첫댓글 제목:20140830_2111626
아멘
속이 쓰리다.
그리고 주님은 마음을 타고 흐른다.
속이 쓰린 현상에 있어 나를 더하니라 그러신다.
쓰리다.
속이 쓰리다.
상상도 못할 정도로 속이 쓰리다.
이 고백이 품은 것은 배가 고프다고 함이다.
배가 고파요!
아멘(마11:28)
내 구주 예수를 더욱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