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제주도 특별산행 후기
(입력: 2021.11.09 /총산 홍보부장 박영진)
가을을 남기러 떠난 제주도 특별산행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큰 목마름이 바로 여행이라고 한다.
어느덧 2년 여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여전히 ‘여행’이란 단어는 조심스럽다. 해외여행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국내여행도 자유로운 활동에 제약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최근 단계적 일상회복 조치가 시행되면서 다소 숨통이 트이는 듯하지만, 전과 다름없이 정상으로 돌아갈 길은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우리 동문산악회도 연초 산행계획은 거듭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몇 번의 변경과 축소를 반복하면서도 한 번도 빠짐없이 계획된 일정을 모두 소화하느냐 애를 쓰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해외산행을 대체해 실시한 이번 한라산 특별여행은 그동안 핸드폰 속 갤러리에 저장해 둔 과거 여행 사진이나 밀어 올리고 내리며, 유튜브, 밴드 등 SNS를 통해 사진과 동영상을 클릭하면서 랜선여행으로 위로받던 동문 산우들에게 여행 갈증을 단번에 해소하는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하였다.
현 집행부 김성모 회장이 동문들과 약속한 산행계획은 규모를 불문하고 최소한 실천한다는 일관된 의지와 결단이 모처럼 동문들이 보고 싶고, 산이 그리운 선후배들에게 만면에 웃음을 되찾게 해주었다. 마침 위드 코로나 시책의 시작과 더불어 전 보다 조금 나아진 상황에서 진행할 수 있어서 여행 타이밍도 예술적으로 한 몫을 했다.
아무튼 집행부의 사전 철저한 준비와 3일 내내 쾌적한 날씨 등의 도움도 받으며 11회부터 41회까지 87명의 참가 동문들은 2박 3일간 선물처럼 제주도에서 절정의 가을 정취를 다시 한 번 추억으로 깊게 남길 수 있었다.
11월4일(목) 오전 8시, 김포공항 내 약속된 게이트로 낯이 익숙한 동문들이 속속 들어서고, 일찍 현장에 도착해 있던 이번 여행을 진행 할 박정환(40회) 등반대장과 정진호(41회) 총무가 동문들을 반갑게 맞는다. 그동안 오랜 집콕생활로 활력을 잃은 동문들이 하나 둘 들어서며 금세 뭉친 근육이 펴지 듯 함박 미소로 즐겁게 인사를 건넨다. 현지합류 2인(25회 하대현, 32회 마경락)을 제외한 85명의 대규모(?) 참가인원은 전설처럼 퍽이나 오랜만이다.
11시경 제주에 도착 후, 도두봉 근처 ‘무한정’식당으로 이동하여 해물뚝배기, 옥돔구이로 점심식사와 한라산 소주로 반주를 하며 제주에 몸을 맡길 예열을 한다.
이후 비자림로로 이동하여 오후 1시부터 본격적인 제주 나들이에 나서는 길은 10km 여의 자연숲으로 제주 비경 31중 한 곳인 한라산둘레길 6구간 ‘사려니숲’길이다.
길옆 조릿대들의 사열을 받으며 들어선 숲은 오후 햇빛이 나무들 사이를 넘나들며 단풍나무, 서어나무, 산딸나무, 삼나무들로 꽉 찬 숲을 조명처럼 밝히고 있었다. 사려니숲을 걷다보니 월든삼거리 삼나무숲은 그야말로 바다보다 깊은 숲이었다.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붉은 단품나무가 있는 마른 계곡에서 사진도 찍고, 이 숲의 진객인 노루도 만나며, 천연림 숲속에서 여럿이 왔지만 시비(是非)가 없는 트레킹을 한가히 즐긴다.
쭉쭉 뻗은 삼나무 미로숲길로 돌아 나오며 만난 형수님들에게 가보실 것을 권하지만 평평한 이 길도 힘들다며 손 사레를 치신다. 어찌 연로한 형수님들을 탓하랴 그동안 집콕생활을 강요한 코로나를 탓할 수밖에...
이윽고 당도한 주차장 근처 포차 옆에서는 23회 김진식 선배의 주도하에 예의 뒤풀이 술상이 차려진다. 정진호 총무가 극강의 가성비로 준비한 Smoky Scot (스모키스캇)몰트 위스키의 강렬한 맛에 모두들 혼비백산 하고 만다. 소독약 냄새가 난다며 뒤로 물러서는 후배들 덕분에 술판이 길게 가지 않고 끝난다. 아마도 정 총무의 전략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오후 5시 30분 경에 저녁 만찬 회정식으로 회포를 간단히 풀고 숙소인 시리우스호텔에 당도하여 하루 여정을 마무리한다. 내일 한라산 등반을 앞둔 A조 동문들이 몸을 사리는 덕분에 술자리가 그나마 일찍 파했다.
이익효 고문은 눈 수술을 이유로 술을 자제하고 있는 35회 박영진을 대동하고 호텔 주위를 산책하며 그나마 문을 연 빵집에서 술 대신 커피를 한잔 하시고 잠자리에 들었다는 후문이다. 김성모 회장은 수고가 많은 집행부원들을 소집하여 향후 일정을 점검하는 주석(酒席)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5일(금), 2일차 조식을 일찍 먹고 A팀은 한라산 등반에 나선다. 코스는 성판악탐방소를 출발하여 진달래밭대피소-정상-관음사탐방센타로 이어지는 약 20Km 구간이다.
오전 7시30분 성판악탐방로 입구에서 미리 예약한 QR코드를 찍고 드디어 산행을 시작한다. 어제 짧게 끝난 술자리 덕분인지 모두들 완등 의지가 역력해 보인다. 25회 정혜인 형수를 비롯하여 34회 이수철, 박만권 형수 세 분이 부군들보다 시종일관 활기찬 모습으로 백록담을 향해 오른다.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와 바람이 불면 우수수 단풍 낙엽비가 내리는 풍경은 시원한 전망이 없어도 잔잔한 재미를 준다. 잠시 비켜서서 숲속을 감상할 수 있는 넓은 등산길이 진달래밭대피소까지 이어진다. 진달래밭대피소에서 부터는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되는 구간이다. 이곳에서 만난 20회 민경락 선배와 오르막 데크가 백록담 정상까지 이어지는 구간에서 14회 고문환 선배가 뒤처지기 시작한다.
박정환 대장과 박영진 홍보부장이 후미를 챙긴다. 12시 경 정상 도착 후 발열도시락으로 점심을 따끈하게 먹고, 정상에서 연무가 잠시 내어준 백록담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기 무섭게 하산길에 나선 26회 김성화 선배와 네 명이 관음사 방향으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긴다.
고문환 선배는 내년 졸업60주년을 기념하여 동기들과 한라산 등정을 계획하고 답사 차 몸소 전 구간 종주를 자처한 것이다. “내년에는 이 길을 동기들과 걷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노상 결론에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나온다.
정상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1시간여를 기다린 민경락 선배는 전화로 몇 번에 걸쳐 현 위치를 확인하고, 서둘러 하산을 재촉하였다. 내일 탐방할 천아계곡과 함께 아름다운 단풍 계곡으로 손꼽히는 탐라계곡 전부터 고문환, 김성화, 박영진은 후미로 관음사입구탐방센타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 오후 4시50분경 목적지에 도착하고, 민경락 선배는 앞서 도착한 박정환 대장과 택시편으로 숙소에 도착함으로써 43명 전원이 한라산 종주를 무사히 마친다. 숙소에는 이미 영실코스 B팀은 모두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호텔에 도착하여 저녁 만찬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7시 시작된 저녁 만찬에서 11회 이익효 총산고문은 인사말을 통해 “고교 선후배라는 동문관계는 아주 특별한 관계며, 더욱이 등산이라는 스포츠와 만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멋진 관계”라고 일갈하시며, 오늘 고급스런 호텔에서 동문들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할 수 있도록 제주도 여행을 마련한 회장의 결단과 집행부 후배들의 일사불란한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고 하셨다.
이어 총산 넘버4인 14회 장헌수 총산고문은 “'불취무귀(不醉無歸)' 라, 오늘 취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니, 이 자리에서 각자 양껏 마시도록 하라. 는 정조대왕의 묵직한 교시를 가벼운 건배사로 바꿔 좌중에 웃음을 선사하였다. 장 고문의 불취~선창에 모두가 무귀~ 라고 후창하며 만찬장의 분위기를 한결 야들야들하게 바꾸어 놓았다.
김성모 회장은 화답으로 “먼저 오늘 여기 함께 해주신 모든 선후배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모처럼 제주도에서 모두가 즐겁고 유쾌한 자리가 되시길 바란다”며 본격적인 만찬의 시작을 알렸다. 선후배들은 자리를 옮겨가며 잔을 비운 자리에 선후지정을 채워가며 정겹고 흥겨운 자리를 늦도록 이어갔다.
6일(토), 3일차 길 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박3일 일정의 마지막 날을 맞았다.
오늘은 제주에서 가장 단풍이 아름답다는 한라산둘레길 1구간 천아숲길 탐방이다.출발지인 천아수원지에서 처음으로 준비한 프랜카드를 펼치고 주변의 눈치를 보며 후다닥 단체사진을 찍는다. 이곳에서부터 보림농장삼거리까지 13km 구간은 그야말로 잠시 황홀하게 머물다 홀연히 가버려는 인생 같은 구간이 아닐까 한다. 바람이 불면 붉고 노란 낙엽의 단풍비가 꽃비처럼 내리고 낙엽 카펫을 발아래 무심히 펼쳐준다.
이런 감상적인 풍경에 죽비를 때리는 원초적 벌떡주 한 잔이 빠지면 서운할 터. 역시 산행은 가장 사람답고 자연스러운 행동이란 말을 새삼 깨닫는다. ‘산행’이 산에 대한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라면, ‘총산’은 산행에 대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술로 표현하는 유별난 동문 모임의 아주 특별한 이름임을 다시 확인한다.
천아숲길 트레킹 후, 제주 대표 맛집 중문단지 입구에 위치한 제주오성음식점으로 이동 고등어쌈밥, 성게미역국에 점심을 즐기고 은빛 억새가 바람 타고 춤을 추는 외돌개 해안으로 이동하여 가을하늘을 닮은 제주바다를 눈으로 담으며 모든 일정을 마친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만날 기회가 없었던 선후배들은 모처럼 제주 특별산행을 통해 만산홍엽의 제주 가을 서정을 만끽하며 그동안 쌓였던 회포를 온 몸으로 맘껏 풀었다. 그래서 더욱 여운이 오래갈 것 같다.
동문들은 모두 만면에 어린아이처럼 붉은 단풍물을 곱게 들이고 행여나 지워질라 급히 밤 9시10분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집행부에서는 감사의 뜻으로 마련한 제주 명물 오메기떡 한 상자(15,000원 상당)씩을 참가한 산우동문 모두에게 제주도 맛의 추억까지 선물로 안기며 제주 특별산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다.
‘좋은 산행은 ’아름다운 희생‘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좋은 산행을 가능하게 해 주신 김성모 회장을 비롯한 박정환 등반대장, 정진호 총무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제주도 특별산행 여행을 위해 기부금을 보내주신 동문들 모두에게 깊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