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포레스트 검프 ]
이 영화는 *경계선 지능(IQ가 70~80점 사이)을 가졌지만 열정과 따뜻한 가슴을 지니고 있는 포레스트 검프가 미국의 격동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만나 이를 헤쳐 나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수제자이면서 <백 투더 퓨처>·<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를 만든 로버트 저메키스가 메가폰을 잡았다.(사진, 버스를 기다리는 검프)
프랜시스 그룸 주니어의 원작을 바탕으로 해서 만든 이 영화는 1995년도 제6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6개상(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각색상·편집상·시각효과상)을 휩쓸었다. 주인공 검프로 나온 톰 행크스는 전년도(<필라델피아>로 남우주연상 수상)에 이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년 연속 수상이라는 영광을 누렸다. 이 영화는 흥행에서도 전 세계 6억 6천만 달러라는 놀라운 수익을 기록했다.
저메키스 감독은 흥행 대박과 관련해서 "포레스트 검프가 보여주는 미덕은 순진함만이 아니다. 그는 정직하고 너그럽고 착하고 의리가 있다. 미국인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장점을 다 갖추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잃어버린 고지식함과 단순하고 위대한 순정에 대한 사람들의 그리움이 영화흥행으로 연계된 건 아닌가 싶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톰 행크스는 이 영화가 엄청난 수익을 거둔 사실보다 검프의 인간적인 모습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사진, 제니와 함께)
이 영화는 IQ 75라는 일반인보다 지능이 한참 떨어지는 검프가 우직스러움과 성실함으로 성공한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어 아메리칸 드림을 그렸다는 시각도 있었다. 그래서 아메리카 드림을 허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그냥 한 편의 휴먼 드라마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인 것 같다.
검프의 어머니가 검프에게 하는 말인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단다."는 지금도 명대사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상자에서 달콤한 밀크 초콜릿을 집을 수도 있고, 쓰디 쓴 다크 초콜릿을 집을 수도 있고, 알코홀이 섞인 위스키 봉봉을 집을 수도 있듯이, 우리들 앞의 인생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초콜릿을 선택하느냐를 떠나서 선택한 초콜릿을 그냥 음미하며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른편 사진, 월남전에서 버바와...)
<포레스트 검프>는 베트남전쟁과 반전 운동, 흑인 민권운동,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 미중 핑퐁외교 등 굵직굵직한 미국의 현대적 사건을 검프의 개인사에 교묘하게 녹여 넣으면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 역사적 사건들에 등장하는 케네디·존슨·닉슨 등 미국 대통령들과 엘비스 프레슬리·존 레논 등을 화면상에 살아있는 것처럼 재현해 내어 전 세계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들을 화면상에 살리는 작업은 CG 기술이 없던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장인정신을 가지고 필름을 한 장 한 장 일일이 수정해야하는 백퍼센트 노가다 일이었다. 초기 수준의 CG 수작업이었다. 사진 편집 기술을 이용해 *로토스코핑으로 필름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을 전부 일일이 수작업으로 고쳤다.
* 로토스코핑(rotoscoping)
로토스코핑은 실사 이미지를 종이나 셀(만화 제작용 투명 용지) 위에 투사하여 한 프레임씩 윤곽선을 그린 뒤 이 윤곽선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 다음 원본 이미지와 합성하는 기법을 말한다.
(사진, 전국을 뜀박질하는 검프, 모뉴먼트 벨리에서 추종자들과 함께...)
간략한 줄거리
불편한 다리와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지능을 가진 포레스트 검프는 헌신적인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니의 도움으로 편견과 시달림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성장한다. 또래들이 괴롭히자 이를 피해 도망치던 포레스트는 누구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자신의 재능을 깨닫는다. 그의 재능을 알아 본 대학에서 그를 미식축구 선수로 발탁하고, 졸업 후에도 뛰어난 신체능력으로 군에 들어가 월남전에 참전해서 무공훈장을 수여받고 새우잡이로 성공을 거두는 등 잘 나가는 인생을 살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가 병에 걸려 저 세상으로 떠나고, 첫사랑 제니 역시 그의 곁을 떠나간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재회를 하게 된다. 그동안 제니는 검프의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행복도 잠시 제니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검프는 아들과 함께 살아간다.
[ 미국의 국민배우, 톰 행크스 ]
(사진, 수더분한 인상의 행크스)
톰 행크스는 수더분한 인상과 올바른 인성, 뛰어난 연기력으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배우 중의 한 사람이다. 그를 가르켜 '가장 미국적인 배우', '미국의 얼굴'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기도 한다. 이전에 미국의 1대 국민배우였던 제임스 스튜어트에 이어 2대 미국의 국민배우라고 일컬어진다. 최근 어느 잡지의 조사에서 미국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배우 1위로 뽑히기도 했다.
행크스는 1956년 7월 9일 출생으로 캘리포니아의 콩코드의 이스트 베이 시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6살 때 여의었고 요리사인 아버지를 따라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이때의 경험이 훗날 그의 연기력에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유진 오닐의 연극 <아이스맨 코메스>를 보고 배우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TV와 영화에 드문드문 출연하다가 론 하워드가 감독한 84년 작품 <스플래쉬>의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알려지게 된다.
(사진, 행크스 부부)
이후 주로 로맨스 코미디물에 출연했다. 1991년 <그들만의 리그>와 1993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흥행에 대성공하면서 최고의 코미디 로맨스 배우로 자리를 잡지만 이 장르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이제 더 이상 로맨스나 코미디물만 할 수 없다면서 이후 들어오는 섭외는 모두 거절한다.
그래서 고르고 골라서 출연한 영화가 1994년도의 <필라델피아>였다. 이 영화에서 에이즈에 걸린 게이 변호사 연기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비로소 코미디 물에서 벗어난 그의 정통파 연기가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듬해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포레스트 검프>에 출연, 다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년 연속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아카데미 역사에서 딱 두 명뿐이다. 다른 한 사람은 대배우 스펜서 트레이시이다. 평론에서도 극찬을 받았지만 흥행에서도 총 6억 6천만 달러 수익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 뒤로도 <아폴로 13>·<캐스트 어웨이>·<그린 마일>·<로드 투 퍼디션>·<캐취 미 이프 유 캔>·<터미널>·<라이언 일병 구하기>·<다빈치 코드>·<찰리 윌슨의 전쟁>·<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더 포스트> 등 다수의 명작들에 출연했다. 근래에는 <로맨틱 크라운>이라는 영화에서 감독, 주연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제작 활동도 활발해서 스필버그와 함께 2차 세계 대전 시리즈인 <밴드 오브 브라더스>, <더 퍼시픽>을 만들었고 <마스터스 오브 디 에어>를 곧 출시할 예정으로 있다. 이밖에 <맘마미아> 시리즈 등도 제작했다.(사진,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에서)
행크스는 팬을 대하는 태도가 겸손하고 친근한 배우 중 한 명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가 지금의 최고의 배우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이 친근감이다. 이 친근감을 바탕으로 해서 지금까지 인간미 넘치는 역할을 많이 맡았고 이것이 그의 퍼스널 브랜드가 되다시피 되었다. 이밖에 그는 무려 32개의 자선구호단체에게 기부를 하고 있는 훈남이기도 하다.
첫 번째 부인 서맨사 루이스와 10년간 결혼생활 후에 1988년부터 현재의 부인 리타 윌슨과 지금까지 살고 있다. 자녀는 3남 1녀를 두었다. 장남 콜린 행크스는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 코엔 형제가 만든 미드 <파고>에 출연했다. 최근에 <오토라는 남자>에서 오토 역으로 나오는 행크스의 젊은 날을 차남 트루먼 행크스가 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행크스는 현명한 의사결정과 뛰어난 능력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퍼스널 브랜드를 발전시킨 할리우드의 모범적인 사례이다. 한 마디로 그는 비범한 보통사람이다.(사진,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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