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송
Pinus bungeana
◑생물학적 분류
겉씨식물▶구과식물목▶소나무과▶소나무속
◑원산지 및 분포지
중국
◑생물학적 특징
♣높이 15m, 지름1.7m에 달하는 큰 나무이다. 가지가 크며 수관은 둥글게 발달한다. 수피가 큰 비늘처럼 벗겨져서 밋밋하고
흰빛이 돌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에서는 관상용으로 심는다.
♣잎은 3개씩 달리고 눈비늘이 일찍 떨어지며 길이 7~9cm, 너비 1.8mm이다.
♣꽃은 5월에 피고 수꽃은 긴 타원형이며 암꽃은 달걀모양이다.
♣열매는 구과로서 다음해 10월에 익는다. 길이 6cm, 너비 4.5cm로서 달걀모양이고 50~90개의 열매조각이 있다.
열매조각은 갈색이 돌고 옆으로 난 주름살이 있다.
종자는 달걀모양이고 길이 9~12mm, 지름 7.5~9mm로 검은 빛을 띤 갈색이지만 반점과 더불어 날개가 있다.
종자를 발아시키기는 쉬우나 이식이 어렵기 때문에 그리 퍼지지 못하였다.
◑스토리텔링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략 600년 전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인 외교사절단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른 수목들과는 다른 색상으로 주목을 받았다. 또한 희귀하면서 생장이 느리고 이식이 어려워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소중히 여겨 왔다. 실제로 한국에서 크게 자란 백송은 거의 전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은 6그루로 서울 재동의 백송(천연기념물 제8호), 서울 수송동의 백송(천연기념물 제9호), 송포의 백송(천연기념물 제60호), 예산의 백송(천연기념물 제106호), 이천의 백송(천연기념물 제253호)이다.
서울시 재동 헌법재판소 경내에 있는 600년 된 백송의 경우 수양대군에게 제거당한 김종서의 집 일대의 피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사람들이 재를 가져다 백송 주위에 뿌렸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처럼 재를 뿌렸다고 해서 이 마을을 ‘잿골’이라 부르다가 재동이 된 것으로 알려진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제60호 송포의 백송은 약 230살 정도로 수려이 추정되며, 유래는 두 가지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조선 선조 때 유하겸이라는 사람이 중국의 사절로부터 백송 두 그루를 받아, 그 가운데 한 그루를 이 마을에 살고 있던 송포 백송의 소유자인 최상규의 조상에게 준 것을 묘지 주변에 심은 것이 크게 자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 세종 때 김종서가 6진을 개척할 당시 그곳에서 근무하던 최수원 장군이 고향에 오는 길에 가져다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중국에서 온 나무라고 하여 한동안 이 나무를 당송(唐松)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백송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소나무이며, 중국과의 문화 교류를 알려주는 나무로 역사적·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충남 예산시 용궁리에 위치한 예산의 백송(천연기념물 제106호)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조선 순조 9년인 1809년 10월에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서 중국 청나라 연경에 갔다가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필통에 넣어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옆에 심었던 것이라고 전해진다. 김정희 선생의 서울 본가에도 영조가 내린 백송이 있어 백송은 김정희 선생 일가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예산의 백송은 희귀하고 오래된 소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교류 관계와 당시 사람들이 백송을 귀하게 여겼던 풍습을 알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고사했거나 휴전선 이북 지역에 있어서 해제된 백송은 7그루가 있다. 서울 통의동의 백송(천연기념물 제4호), 서울 내자동의 백송(천연기념물 제5호), 서울 원효로의 백송(천연기념물 제6호), 서울 회현동의 백송(천연기념물 제7호), 밀양의 백송(천연기념물 제16호), 개성리의 백송(천연기념물 제81호, 북한의 천연기념물 제390호), 보은의 백송 (천연기념물 제104호)이다.
이 중 서울 통의동 백송은 비교적 최근인 1990년 7월 17일 순간의 돌풍에 넘어져 버렸다. 당시의 노태우 대통령은 백송을 살려내라고 지시를 내려 서울시에서는 '백송회생대책위원회'까지 설치하여 경찰관 3교대 근무 등으로 살리려고 노력하였으나 결국 고사한 뒤 1993년 3월 23일 지정 해제되었다. 그 후 백송의 줄기 일부는 국립수목원 산림박물관 유물실에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통의동 백송이 특이했던 점은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부터 갑자기 생장이 거의 멈추다시피 하였다가 해방된 1945년 이후부터 서서히 정상을 되찾았다고 한다. 백송도 일제강점기 36년간 나라를 빼앗긴 억울함을 느꼈던지 아예 자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너무 신비롭다.
【출처】 두산백과
라펜트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