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들떠서 두근거리던 시간, 살면서 그때가 언제였던가! 분명 모두가 소년 소녀의 감성으로 가슴 떨리던 기억이 있었을 것이다. 주일 오후, 아이들에게 드디어 할아버지 댁에 간다고 하자 아이들의 반응이 그랬다. 20분 거리에 있는 부모님 댁이야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지만, 아이들이 좋아서 흥분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소리치며 환호하는 아이들이 부럽기도 하고, 어쩐지 나도 같이 흥이 나서 기분이 좋았다.
때는 10년 전 일이다. 당시 우리 가족은 일산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고, 중국 선교를 앞두고 있었다. 그때 첫째는 6살이었고, 둘째는 4살이었다. 물론 셋째는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이었다. 우리는 선교를 나가기 전 가족들끼리 조금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세운 계획이 시골집에 타임캡슐을 묻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 2024년이 그것을 꺼내보는 해이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던 것은 드디어 타임캡슐을 꺼내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종종 부모님 댁에 가면 아이들은 타임캡슐이 묻혀있는 쪽을 가리키며 당장 꺼내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비추었다. 그렇게 까마득하게 잊기와, 기대하기를 반복하다 어느새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10년 전 잔디밭은 채소밭으로 바뀌었고,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농작물 수확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야 그 날이 온 것이다.
주일 오후, 비가 온다고 하더니 날씨는 화창했다. 우리는 연장을 들고 추억의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땅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다 묻은 위치를 발견했다. 아이들은 실시간으로 촬영을 하며 또 다른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옆에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도 내심 기대하는 표정이셨다. 다만 10년 전에 자리에 없던 막내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삽질을 하여 땅에 묻힌 통을 캐내었고, 감싸놓은 비닐을 풀고 뚜껑을 열었다.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 10년 전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통을 개봉하자 그 속에는 편지와 사진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습기가 차단되지 못해, 겨우 형체만 알아볼 정도였다. 아내는 젖은 사진을 한 장씩 떼 내어 핸드폰에 담기 바빴다. 나 역시 사진과 편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느새 추억에 젖어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때 고심 끝에 통 속에 넣어 둔 금반지 한 돈! 그것은 세월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추억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문제는 현실이 너무 바쁘고 분주하다보니 추억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뇌 과학자나 정신과 의사의 말에 의하면 추억이 스트레스를 없애고 우울증을 예방하여 행복감을 높여준다고 한다. 한 마디로 건강에 좋다는 말이다. 구지 의학적 분석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안다. 어쩌다 추억을 소환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행복감이 찾아옴을 느낀다. 지난날 함께 추억을 공유했던 그리운 이들의 안부를 물어야겠다.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과 주님 안에서 더 좋은 추억을 만들어야겠다. 주어진 그 어떤 것도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 은혜 안에 머물러 있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