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바둑 人 ⌜그 스물세 번째」
박기봉 타이젬 8단
장마란, 오랫동안 지속되는 비를 일컫는 말이다.
장마전선은 오르락내리락하며 비를 뿌리지만, 그렇다고 장
마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장맛비를 흠뻑 머금어야 풀과 나무도 쑥쑥 자라지 않던가.
저 1991년쯤,
인천 남동공단에 다니던 필자는,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저
녁에는 부평 어느 바둑학원에서 성인을 지도하고 있었다.
주간에는 다른 사범이 바둑교실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녁
에 그 학원 빈자리를 활용해 성인 반을 내가 맡은 것이다.
어느 추운 날 밤, 수강생을 지도하고 있는데 ‘도대체 누가
지도하나 궁금해 들렀다면서’ 문을 밀치고 들어서는 이가
박기봉 사범이었다.
그래,
모처럼 들른 손님이니 바둑 한수 끝내고 막걸리 한 잔 곁들이
면서 바둑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딘지 모르게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명함을 건네면서 백운역 근처 현대백화점 건너편에서 바둑
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니 한번 들르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이제 그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인연으로,
박기봉 사범 바둑학원에서 성인 2명을 개인지도하게 되었는데,
8시쯤 끝나면 둘이서 부평역까지 걸어 나와 돼지머리 시켜놓고
막걸리와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나
눴다.
그런 연유로,
바둑을 가르치고 있던 자식을 그의 바둑학원으로 데리고 가서
교류전을 계기로, 江山이 3번이나 바뀐 세월 동안 친하게 지내
고 있는 중이다.
왼쪽이 큰딸 1학년 때(93년), 뒤에 교류전을 지켜보는 박기봉 사범.
내 자식 저학년 시절 바둑학원에 찾아가서 실전지도 받은 것은
부지기수고, 쉬는 날은 가끔 부평역 건너 기원에서 정성스레
스파링 해줬다.
1994년 1월 앞, 박기봉 사범님, 큰딸 2학년때 김좌기 사범님한테 지도
한때는,
내 부탁에 부천 집에까지 매주 방문하여 강한 스파링으로 자식
의 실력을 높여주기까지 했다.
자식 어릴 때 9점부터 시작하여 점차 실력이 올라가면서 100판
이상 지도해준 고마운 사범이 아닐 수 없다.
1997년 부천시장배 같이 단체전에 참가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일은, 나에게 있어 두고두고 추억에 맴돌고 있다.
97년 부천시장배 학생최강부 우승한 큰딸(앞줄 가운데),
그 뒤가 박기봉 사범, 옆이 단체전 우승 트로피 들고 있는 필자.
필자 오른쪽, 같이 참가한 윤광선 사범(현재, 한국기원 근무).
맨뒤는 심사위원 유병호사범님(프로9단), 옆 박상근 리라바둑학원 원장
그 박기봉 사범(타이젬8단:無生人) 이,
월간 바둑 7월호에 타이젬 바둑행사 이벤트로 〈내 인생의 기보를
남겨라!〉 기보가 실렸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열정은 대단하다.
유쾌하고 쾌활한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쳐지고 있는 이 시대에, 지금도 가끔 만
나 바둑 한 수하고 식사를 나누고 있다.
앞 왼쪽, 박기봉 사범님, 원종철 사범님. 김좌기 사범님. 필자.
그대와 인연을 맺은 지 무장 세월 흘렀네.
우리,
제 몸도 제 것이 아닌 바에야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영원한 것이 어디 있다고.
아슬아슬 흔들리는 날도 있었지만, 쨍하고 해 뜰 날도 있지
않았던가.
그저,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지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