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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0년의 세계화 시대 뒤로하고 탈세계화·지역화로 가나
20세기는 성장의 시대였다. 세계대전이란 참화를 겪었지만 일본, 독일 등은 눈부신 성장을 해 미국 등 기존 선진국을 따라잡았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신흥국이 뒤를 이어 남루함을 벗었다.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예다. 이는 상당 부분 세계화 덕분이다. 세계화의 핵심인 신자유주의는 20세기를 상징한다. 국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철학은 물리적 국경을 무력화하는 무역자본 자유화로 연결됐다. 부작용도 있었지만 세계화로 인류가 한층 풍요로워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수많은 사람이 헐벗음과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세계화를 이끈 건 미국이다. 가능했던 이유가 있다. 1980년대 후반 소련은 마침내 패배를 선언했다. 미국을 축으로 한 자유민주진영의 힘이 소련 주도의 공산주의를 패퇴시켰다 할 수 있다. 경쟁국이 사라진 세계에서 미국의 단극체제는 당연했다. 이때부터 미국은 자신이 가진 힘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타국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했다. 동시에 글로벌 공공재를 주도적으로 공급했다. 교역로 확보, 글로벌 경제정책 조율, 세계안보 등을 책임졌다. 무엇보다 최종 소비자 역할에 충실했다. 세계질서는 미국에 의해 정해졌고 유지됐다. 세계화는 그 주요 수단이었다. 덕분에 동아시아는 눈부신 성장을 하고 세계화는 질주할 수 있었다. 보호무역 기조와 코로나19 공급망 위기 등으로 자국 생산제조로 눈길 돌려 이런 흐름은 2008년 금융위기 때까지 이어진다. 세계화는 영원할 듯 보였다. 하지만 2008년을 기점으로 상황은 바뀐다. 탈세계화 조짐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한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은 이를 상징한다. 세계화를 이끈 선진국의 태도와 관점이 변하고 있었다. 왜 질주하던 세계화는 주춤하기 시작했을까? 가장 큰 원인은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다. 세계화는 개인은 물론 국가 간 격차를 더욱 늘렸다. 특히 선진국 중산층은 자신들이 세계화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봤다고 믿었다. 미국은 세계화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국가라 얼핏 생각하기 쉽다. 맞다. 하지만 자국민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세계화로 인한 이득은 모든 미국 국민에게 골고루 분배되지 않았다. 세계화는 기업의 해외 이전을 자유롭게 했지만 이는 자국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중산층 이하 가계의 소득이 줄거나 정체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대기업과 거대 자본은 이득을 봤지만 중산층과 중소기업은 손해를 봤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무엇보다 중국과 같은 신흥강국의 부상도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모두가 세계화로 인한 것이란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중간계층의 불만은 결국 정치를 바꿨다. 트럼프의 등장이 이를 잘 말해 준다. 트럼프는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신고립주의와 보호무역을 옹호함으로써 2017년 미국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자유무역이란 가치는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간다. 이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덮쳤다. 바이러스는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생산물류 흐름은 일시에 멈췄다. 문제없이 작동하던 공급망이 흔들리자 각국은 위기를 맞았다. 필수 소비재 수입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더했다. 이때 주요국은 자국 생산과 제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한다. 자본과 무역 자유화로 대변되는 세계화가 정답이 아니란 인식이 일반화됐다. 세계화 퇴조 현상은 이로써 한층 뚜렷해진다. 이는 2021년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 시대에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자유무역 가치를 존중한다고는 하지만 자국 기업 우대와 중국 및 중국 기업에 대한 압박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러시아와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올해 초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화가 더 이상 지향해야 할 지상 목표가 아니란 것을 서구, 특히 미국이 확인한 계기가 됐다. 1960~1990년대까지 세계는 둘로 나뉘어 대립했다. 이른바 냉전시대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강대국 간 갈등은 미국이 주도하던 단극체제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 대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이를 웅변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한 축, 미국과 서방이 한 축이 돼 서로 동맹을 규합해 대립하는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공공재 공급 역할이 축소되면서 대륙마다 패권을 차지하려는 군웅할거(群雄割據) 조짐마저 보인다. 중동 패권을 둘러싼 이스라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터키) 간 경쟁이 좋은 예다. 세계는 이미 다극체제로 접어들고 있다. 이 모두는 세계화 퇴조를 의미한다. 세계는 이미 탈세계화 혹은 지역화를 지향하고 있다. 3D 프린터, 로봇 등 신기술이 지역화 가속할 수도 이를 부추기는 건 정치적경제적 요인만이 아니다. 눈부신 기술혁신도 탈세계화를 가속하고 있다. 지난 50년이 통신유통운송 분야에서의 기술진보에 따른 세계화 시기였다면, 향후는 또 다른 기술진보에 의한 탈세계화가 촉진되는 시대가 될 수 있다. 지난 세기 세계화가 필요했던 이유는 화석연료의 원활한 수급, 저임금 수요 때문이었다. 21세기 인류는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지만 새로운 에너지 시대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종 소비자와 가까운 곳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신재생에너지의 등장은 세계화의 필요성을 그만큼 줄이게 될 것이다. 또한 3D 프린터나 가상증강 현실, 로봇 등 기술 진보 및 도입 역시 지역화를 가속할 수 있다. 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오프쇼어링 유인은 줄어들고, 대신 미국처럼 자국 내에 제조회사를 유치하는 온쇼어링(onshoring)이나 니어쇼어링(nearshoring) 바람이 점차 거세질 수 있다. 이는 우호적인 공급망 확보, 경쟁국 압박 등이 목적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론 새로운 기술에 힘입은 바가 크다. 노동원가가 높은 선진국에서 제조업을 육성할 수 있는 발판이 신기술로 만들어지고 있다. 앞으로 50년은 탈세계화지역화 시대가 될 수 있다. 최소한 세계화 추세는 약화할 것이다. 정치적경제적 필요성과 새로운 기술이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다. 우리는 거대한 변화의 초입에 있다. 변화는 필연적으로 불안정을 야기한다. 기존 질서가 흔들릴 때 혼란은 불가피하다.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이코노미인사이트 집필위원2022년 09월호
『나라경제』 편집실2022년 09월호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곡물을 비롯한 먹거리의 생산-가공-유통(무역)-소비로 이어지는 농식품체계는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곡물 수출국은 소수의 나라에 집중돼 있고, 국제 곡물 유통도 소수의 초국적 농기업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곡물의 수출에서 상위 3대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콩 90%대, 옥수수 70%대, 밀 60%대에 이른다. 여기에 더해서 곡물 교역량의 60% 이상을 4대 곡물 메이저 기업(ADM, Bunge, Cargil, LDC)이 점유하고 있다. 곡물자급률이 20.3%에 불과한 한국의 상황에서 식량의 안정적인 확보를 의미하는 식량안보(food security)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탈세계화 시대에 우리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식량안보가 밥상의 불안을 일으키게 된 역사를 살펴봐야만 한다. 농산물 무역자유화는 자급력 회복 어렵게 하고 높은 화학비료 의존으로 기후위기 주요인이 돼 지난 50여 년을 되돌아볼 때, 세계는 1972~1973년, 2007~2008년 등의 식량위기와 함께 농산물 과잉도 경험했다. 농산물 과잉생산 문제에 직면한 국가들은 농산물 자유무역을 강조하면서 농산물 수출시장 확보에 주력해 왔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식량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급할 수 있는 능력이지만, 자급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기도 전에 자유로운 무역을 통해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세계화의 흐름 속에 힘을 발휘하게 됐다. 이로 인해 식량안보는 농산물을 수출하는 국가의 논리와 세계화를 옹호하는 논리로 사용됐다. 현실의 식량안보가 세계화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게 되면서, 농산물 무역자유화에 반대하는 것은 국수주의자들의 속 좁은 주장으로 치부됐다. 농산물 수입이라는 거대한 맷돌 안에 들어가면 식량수입국은 자급력을 회복하기 어렵고 더 많은 수입에 의존하는 매우 불안정한 구조가 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자유무역에 기반한 식량안보라는 최면에 빠져들었다. 이는 40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이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한 것으로도 확인된다(2020년 20.3%). 식량안보의 위력은 이코노미스트 임팩트(Economist Impact)가 발표하는 세계식량안보지수(global food security index)에서도 확인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언론 뿐만 아니라 연구보고서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지수다. 이 지수에 의하면 2021년 한국의 순위는 세계 32위로 코로나19가 엄습하기 전인 2019년 29위에서 소폭 하락했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싱가포르의 지수다. 2019년 싱가포르의 순위는 놀랍게도 1위였다. 식량자급률 10%에 불과한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농산물 수입자유화와 높은 구매력 덕이었다. 그런데 2021년에는 15위로 내려앉았다. 자급력에 바탕을 두지 않은 식량안보는 허울에 불과하다는 점이 이 지수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왜곡된 식량안보에 기반한 농산물 자유무역의 확대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농업이 기후위기의 가해자로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과거에 농업은 생태계의 유지와 사회적 회복력의 원천이었으나, 대규모 기업농이 늘어나면서 높은 화학비료 투입에 의존하는 체제로 변화됐다. 온난화의 주범에 공장식 축산이 자리를 잡고, 이들 축산은 사료곡물에 의해서 유지되고, 그 사료곡물의 생산은 식량작물의 생산과 경합을 벌이면서 화학비료에 더욱 의존하는 체계가 됐다. 기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질소질 비료의 사용량이 농산물 수출국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우크라이나는 230% 증가했고, 러시아 90%, 브라질 150%, 아르헨티나 140%, 인도 80%, 호주도 40% 증가했다. 세계화된 농산물시장이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주요인으로 지목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 쌀 제외 식량자급률 10.2% 밀, 콩 등 재배면적 확대하고 직불금 적극 활용해야 사실 세계화된 농식품체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은 농산물 자유무역의 확산과 맞물려서 다양한 층위에서 제기됐다. 특히 2007~2008년 식량위기는 값싼 먹거리 시대의 종언(the end of cheap food era)을 고한 큰 사건으로 기록됐고 이를 계기로 유엔 등에서는 농업과 먹거리를 지키는 것은 초국적 농기업이 아닌 소규모 가족농이라는 점을 천명한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도 농식품체계의 전환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문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2014년을 가족농의 해로, 2019~2028년을 가족농 10년으로 선포하는 등 식량의 안정적인 생산에서 가족농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더욱이 2018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식량주권을 주요 축으로 하는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선언이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규모화화학화단작화에 기반한 기업농체계가 아닌 지역의 농민이 주도하는 농식품체계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뉴욕에서 개최된 식량시스템 정상회의를 주도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우리는 지금까지 먹거리의 가치를 평가하던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 하나의 거래 상품 종목으로 봐서는 안 되며, 인간 누구나 공유하는 하나의 기본권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무차별적 자유무역의 대상에 농산물이 포함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경고라고 할 수 있다. 탈세계화 흐름과 함께 기후위기로 인해 세계화된 농식품체계의 한계가 명확해진 이상, 우리의 먹거리와 농업에 관한 정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식량주권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이 식량자급률 45.8%라도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쌀 덕분인데, 쌀을 제외하면 식량자급률은 10.2%에 불과하다. 1980년대에 쌀을 수출했던 필리핀이 농업 보조금 삭감과 시장 방임으로 망가진 경험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자급률이 낮은 밀이나 콩, 사료작물 등의 재배면적을 확대하면서 쌀의 자급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계속 늘어나는 휴경지와 휴경률을 줄이기 위해서 직불금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제시된 식량주권의 확보와 농가경영안정 강화가 대통령 공약인 5조 원 농업직불금과 서로를 보완해서 실천된다면 탈세계화기후위기 시대에 우리의 농업과 먹거리를 지켜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 실천하지 않으면 이로 인해서 초래되는 희생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윤병선 건국대 경제통상학과 교수2022년 09월호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이하 나토) 개방정책(open door policy)에 기반해 나토를 확장하기 시작했으며 다수의 동유럽 국가를 나토에 가입시켰다. 계속되는 나토 확장은 러시아에 안보위기와 체제 위협을 가져다줬다. 2008년 나토 정상회의 이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논의가 본격화되자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했는데,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입장에서 구소련 영토이자 러시아의 앞마당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허용할 수 없는 레드라인이었다. 또한 푸틴은 친러 성향의 분리주의자들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인 돈바스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등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방해하려 했다. 이후 돈바스의 평화를 위해 2014년과 2015년에 걸쳐 민스크협정이 체결됐으나 1차 협정과 2차 협정 모두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협정에 불만을 품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갈등을 지속했으며, 우크라이나와 나토의 관계는 점차 가까워지게 돼 2020년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향상된 기회의 파트너(EOP; Enhanced Opportunities Partner) 지위를 부여했다. 러시아와 서방국가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올해 1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접경지역에 대규모의 병력을 전개했다. 뒤이어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다자회의서 기후변화신기술 협력 통해 중국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 구축하려는 미국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나토 가입국들의 단합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민주주의 가치를 중심으로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을 규합하기 시작했으며,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러한 목적을 위한 중요한 모멘텀을 제공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나토 가입을 신청하고, 미국 및 나토 가입국들은 대러 경제제재를 단행했으며, 독일 등 EU 회원국들은 러시아산 원유 및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디커플링은 공급망의 교란을 가져오기 시작했으며, 대부분의 국가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독일은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중단하면서 가스요금이 50% 인상됐다. 또한 전 세계 밀 수출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밀 공급이 끊어지면서 우크라이나의 곡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중동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식량위기를 겪게 됐다. 대러시아 경제제재로 인해 지금까지 형성돼 있던 세계화 질서 및 경제적 상호의존성에 혼란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나토의 동진으로 인해 자국의 안보가 위협당하고 있다는 러시아의 위기감으로부터 발생한 것이지만, 결국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가능케 했던 것은 미국의 힘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에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미국의 패권은 이미 줄어들고 있었지만, 이번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중심으로 유지되던 국제적 규범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기존의 세계화 추세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과거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미국이 유지해 온 글로벌 패권에 대해 국제사회에 비용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미국 내 여러 다양한 현실주의 학자도 미국의 국력이 과거와 달리 줄어든 상황에서, 앞으로는 미국의 이익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들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과거 미국이 누리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미국의 패권국 지위보다 미국의 협소한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는 이미 시작된 미국의 중국 견제와 맥을 같이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견제 핵심은 글로벌 공급망 구축과 여기에서의 중국 배제다. 바이든 행정부는 글로벌 공급망 검토과정을 올해에 거의 마무리할 것으로 보이며, 이를 바탕으로 첨단산업과 관련한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좀 더 세밀하게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2월 24일 반도체배터리희토류의약품에 대한 100일간의 공급망 검토 행정명령을 내렸으며, 향후 1년간 국방공중보건IT운송에너지식품생산 분야의 공급망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정상회의에서 논의된 주요 협력의제는 보건신기술기후변화 부문이었는데, 미일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 G7 정상회의에서도 협력의제는 동일하게 합의됐다. 즉 미국은 다양한 국가와 코로나19 보건협력, 기후변화 관련 협력, 5G6G 등 신기술협력을 이뤄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도 이와 같은 미국의 공급망 구축은 점점 더 촘촘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반도체 분야 기업체들에 정보 제출을 요청했으며,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점차 줄이도록 압박하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재 미국 국무부는 주요 산업 부문별 글로벌 공급망 지도를 만들고 있으며, 촘촘한 공급망 지도를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중국 배제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협력 강화와 수출입 경로 다변화 병행해 중국에 대한 전략적 자율성 확보해야 미중 경쟁 구도가 점차 제로섬 게임으로 전개되면서 한국의 전략도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향후 점차 어려워질 한국의 균형외교 방향을 제시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국익과 전략적 방향성을 분명하게 정의하고 이를 일관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안보 문제와 관련해 현재 한국은 중국이 제기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3불(不) 1한(限) 주장(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참여하지 않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 3불에 기존 사드 운용을 제한한다는 1한의 내용)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중국 측에 전달했다. 중국은 미국의 사드체계 X밴드 레이더망이 중국을 탐지한다는 이유로 사드 배치에 반대해 왔으나, 중국 역시 동북 3성과 산둥성 지역에 한국을 탐지하는 레이더를 설치해 놓은 상태다. 더 이상 중국의 사드 철회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또한 현재 한국은 중국의 안보를 걱정해 줄 상황이 아니다. 북한이 신형미사일체계를 개발해 실전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촘촘한 미사일 방어막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를 모두 동원해 사각고도의 방어막까지 새로이 구축해야 한다. 또한 북한의 핵탄두 역시 점점 소형화되고 있으며 저위력 전술핵탄두를 이용해 한국을 실질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 경우 미국이 핵으로 보복할 것이라고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향후 우리의 사활적 국익에 기반해 일관된 대중국 외교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둘째,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팽창을 막고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한미협력은 우선적으로 강화돼야 하며, 동시에 중국의 대한국 경제보복에 대비하고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출입 경로를 다변화하고 관련국들과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 더 이상의 경제보복은 한중관계를 완전히 훼손할 것이며 지속적으로 단행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잃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한국은 중국에 대한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위해 외교 및 무역 다변화를 지금부터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지난 정부의 신남방정책과 같은 정책을 다양한 지역에 추진하는 등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장2022년 09월호
무역 마찰에서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본격화하면서, 양국 간 전략경쟁은 첨단산업과 이를 구성하는 원천기술 영역에 집중되고 있다. 오랫동안 글로벌 패권국 지위를 유지해 온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혁신 강국 미국은 중국의 추격을 저지하고, 지속적인 과학기술혁신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2021년과 2022년 미국의 상하원은 각각 미국혁신경쟁법(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과 미국경쟁법(America COMPETES Act of 2022)을 발의해 미국의 과학연구를 지원하고 중국에 대한 견제조치를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법안들이 각각 1945년 국립과학재단(NSF)에서 미국의 원천기초과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과학, 끝없는 프론티어의 내용과 2007년 부시 정부에서 미국의 과학기술교육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발의했던 「미국경쟁법(America COMPETES Act of 2007」의 내용을 계승했다는 것이다. 양원이 발의한 두 개의 법안은 결국 2,8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으로 조정돼 최종 통과됐는데, 원천기술과 첨단산업에 대한 강력한 지원정책과 함께 중국 견제를 위한 연구안보 심사 및 관리감독 강화, 연방 인센티브 수혜 시 중국 내 공장 신설증설 금지 등 다양한 보호조치도 함께 포함됐다. 미국뿐 아니라 EU 역시 대외의존도 완화를 통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신산업 전략과 유럽 반도체 법안(European Chips Act)을 발표하고, 임무지향형 과학연구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에서 비회원국의 참여를 제한하는 등 기술보호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 역시 「경제 안전보장 추진법」 제정을 통해 핵심산업의 공급망 안정화와 전략기술의 비밀특허제도 도입 등 보다 강력한 기술보호조치를 도입하고 있다. 응용기술과 산업의 디커플링 현상 보이지만 기초연구 분야 국제협력은 여전히 활발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글로벌 추세에 맞게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첨단산업의 종합적인 육성과 보호조치를 법제화했으며, 연구국방산업에 걸친 광범위한 기술의 보호체계 고도화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패러다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현행 기술보호 전략을 고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의 역량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네이처 인덱스에서 올해 발표한 글로벌 과학기술협력 현황을 보면, 여전히 미국과 중국은 가장 많은 과학기술협력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과 같은 주요 과학강국 간의 과학기술협력도 여전히 긴밀하게 일어나고 있다. 기관별로 살펴보면 중국과학원, 프랑스국립과학원,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 등 각국을 대표하는 연구기관이 활발한 국제 과학기술협력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 AI연구소(Human-Centerd AI Institute)가 발표한 AI 분야 학술연구 국제협력 동향을 살펴보면, 미국과 중국 간의 공동연구는 최근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다른 국가 간의 협력을 크게 앞서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가 결성한 기밀 정보공유동맹) 동맹국인 영국과 호주는 최근 들어 미국보다 중국과 더 많은 AI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와 출판의 시차를 고려하더라도 중국-영국, 중국-호주 간의 AI 공동연구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데 비해 미국-영국, 미국-호주 간의 AI 공동연구는 정체되거나 일부 감소하는 추세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학술연구와 기초연구 분야의 협력 현황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응용기술과 산업의 디커플링 현상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AI의 경우 미중 간 개인정보 수집과 데이터 이동, 데이터 현지화 등의 규범은 매우 상이하고 양국 간 충돌로 인해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투자, 중국 기업의 미국시장 상장 등이 사실상 어려워지고 있어 산업에서의 디커플링은 현실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기술과 산업의 원천이 되는 기초과학과 학술연구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 그리고 주요국 간의 협력이 아직도 활발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글로벌 패러다임 변화를 편향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외국인 투자, 연구안보, 전략기술 지정보다 보호할 만한 기술 확보육성에 힘써야 한국은 현재 전 세계 10위의 경제 규모와 세계 5위의 RD 투자 규모를 보유한 경제과학 선진국으로 도약했고, 세계 최고의 메모리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기술역량을 갖춘 전략기술 강국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보호해야 할 기술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현실의 이면에는 공공의 투자 대비 저조한 과학기술 성과, 우수한 질적 성과 부재, 산학연관협력 및 국제협력 부족 등 수많은 해결과제가 산적해 있다. 소수의 대기업을 제외하면 과연 우리나라의 혁신 주체 중 전 세계의 원천기술첨단산업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학연구기관기업이 있는가?를 고민해 본다면, 국가 차원에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보호해야 할 기술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미래 핵심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AI, 양자기술, 우주항공 등의 영역에서 이와 같은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다른 나라에서 추진되고 있는 다양한 기술보호제도 역시 우리의 현실에 맞지 않아 실효성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비밀특허제도의 경우, 내수시장이 작아 해외시장 진출이 필수적인 한국 기업에 실효적인 효과를 제공하기 어렵다. 또한 AI 등 대다수 디지털 기술의 알고리즘은 점점 오픈 소스화되고 있어, 비밀특허제도를 통해 보호할 수도 없고 더 정확히 말하면 보호할 필요도 없다. 지금 우리는 수출통제, 외국인 투자, 연구안보, 전략기술 지정보다 보호할 만한 기술을 더 많이 확보하고 육성해 내는 데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 급변하는 글로벌 규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다양한 새로운 기술 협력획득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 또한 미중EU일 등에서 추진 중인 소모적인 기술보호 및 기술 역내화 정책이 결국 자원 낭비, 공급 과잉을 초래해 전 세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원천기술과 과학연구에 대한 과도한 안보화와 정치화를 경계하고, 부당한 요구나 보복에 대해서도 보다 전략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기술보호와 기술협력은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무수히 많은 영역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낳으며 혁신의 원천이 됐다. 특허제도와 국제 공동연구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의 지속 가능한 과학기술혁신을 위해서는 파괴적 견제와 맹목적 보호가 아닌 상호호혜적 협력과 건설적 경쟁을 가능케 하는 균형적인 기술보호 및 기술협력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백서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과학기술외교정책연구단장2022년 09월호
코로나19를 계기로 글로벌 사회의 많은 부분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우리가 미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일상생활 속의 소소한 부분에서 많은 제약이 생긴 건 물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재화의 부족과 원하는 제품을 구매하기 위한 기다림 등도 일상화되고 있다. 흔히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단순히 일시적인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여겼으나, 더 깊이 파고들면 코로나19는 미중 갈등을 비롯한 다수의 내재된 갈등을 고조하고 근본적인 글로벌 가치사슬 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세계 제조업 전략의 근간이었던 글로벌 분업체계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미국은 탈중국은 물론 미래산업에서 대중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EU,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역시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 지원과 공급망 내재화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또한 미국 주도의 반도체 칩4 등 동맹국과의 폐쇄적 협업체계 구축과 외국인 투자 인센티브 확대는 국가 간 글로벌 기업 유치경쟁을 심화하고 있다. 국내복귀 기업 업종, 반도체화학 등 비중 높아지고 대기업 주도 국내 중심 공급망 구축 움직임 보여 실제로 GM, 인텔, US스틸 등 미국계 글로벌 기업의 자발적인 국내복귀 사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컨설팅회사 커니의 리쇼어링 지수(Reshoring Index) 보고서에서도 미국 제조기업의 76%가 안정적 공급망 운영을 위해 이미 리쇼어링을 완료했거나 할 예정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더해 미국 연방정부는 미래 경제패권 확보에 도움이 되는 글로벌 기업에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면서 핵심산업의 공급망 내재화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공급망 안정화와 미래 핵심기술 확보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은 초기 목적이었던 국내 제조업 경쟁력 향상 및 고용 창출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 재편 대응, 소재부품장비 부문 경쟁력 강화 등 글로벌 이슈 대응으로 그 범위와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국내복귀 기업에 대한 투자보조금과 세제 혜택 외에도 각 부처와 유관기관이 협업해 고용스마트공장RD 등 지원 콘텐츠를 다변화하고, 업계 목소리를 반영한 제도개선을 추진하는 등 국내복귀 확대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그 결과 일반 제조업 중심이던 국내복귀 기업의 업종이 점차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화학 등 고부가가치산업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대기업 주도의 국내 중심 공급망 구축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2022년 1~7월 기준 국내복귀 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은 총 17개로 지난해 동기 대비 유사한 수준이지만, 기업별로 신고한 국내복귀 투자금액은 기업당 564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복귀 업종도 반도체산업을 포함한 전기전자, 자동차부품, 화학산업의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반도체 관련 업종은 국내 기업과의 공급망 강화가 복귀 목적인 것으로 짐작된다. 해외 현장에서 확인된 국내복귀에 대한 반응도 정책 시행 초기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 5월 산업통상자원부와 코트라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처음 오프라인으로 개최한 베트남 진출 기업 경영지원 세미나에 100여 개의 기업이 참가했으며, 광저우, 칭다오 등 중국 5개 무역관에서 개최한 온라인 설명회에도 다수의 기업이 참가해 국내복귀에 대한 업계의 높은 관심을 증명했다. 투자진출 수요가 가장 높은 2개국에서 개최한 행사에서 우리 기업들은 국내복귀를 고려하는 원인으로 미중 통상 분쟁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 증가와 그에 비롯된 현지 사업 여건 악화를 꼽았다. 그 밖에 현지 정부의 자국 기업 우대정책과 로컬 기업의 경쟁력 강화 등도 국내복귀 고려 요인으로 지목했다. 정책적 지원과 기업 간 협력 활성화 등으로 여건 변화에 강한 제조업 생태계 구축 가능해 다만 현재 글로벌시장 여건 변화와 기업의 국내복귀 관심 상승 등은 단기요인에 불과하다. 우리 산업의 전반적인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개선과 더불어 기업 또한 지속 가능한 중장기 전략 도입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수입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 부문의 공급망 다변화와 대체재 발굴이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패권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기술경쟁력 확보와 정치적경제적외교적 리스크를 반영한 새로운 해외투자 전략이 핵심이다. 또한 국내복귀 관점에서는 우리 기업 간의 공고한 협력체계가 필요하다.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국내복귀 우려 요인 중 하나는 높은 국내 인건비로 인한 가격상승이다. 게다가 첨단 소재부품 부문은 규모가 큰 해외시장이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커니의 조사에 따르면 저렴한 노동력 활용을 위해 앞다퉈 해외로 나갔던 미국 기업들이 최근 자국으로 복귀한 사유는 인건비였다. 이는 기업들이 생산자동화를 통해서 물류 등 추가비용을 최소화해 높은 인건비를 상쇄하고, 공급망 안정화까지 이루는 전략을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스마트공장 지원 프로그램을 더 강화하고 대중소기업 간 협력이 활성화될 경우, 핵심산업의 공급망 내재화는 물론 여건 변화에 강한 제조업 생태계 구축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지난 4월 IMF가 주최한 세미나(Debate on the Global Economy)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준의장은 현재 세계경제에서 세계화 역전(reversal)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세계화의 속도가 느려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며 앞으로 분명히 세상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주요국들은 자국산업 우대정책을 확대하고 있고, 동맹쇼어링(ally-shoring),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등 공급망을 안정시키기 위한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정책이 어떤 효과를 얼마나 낼지에 대해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지만, 일단 변화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우리 역시 지금과는 다를 미래의 글로벌 가치사슬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며 적극적인 대내외 협력을 통한 새로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인 것은 확실하다.
성기주 KOTRA 유턴지원팀장202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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