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지역을 대표하는 노래들이 큰 인기를 얻고 오랜 기간 사랑을 받는 경우가 많다.
춘천을 대표하는 지역 노래는 '춘천 가는 기차'가 있지만, 국민 모두가 동의할 만한 곡은 '소양강 처녀'다.
이 곡은 국민가요 수준이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노래다.
내가 군 생활을 강원도에서 했기 때문이다.
실지 근무지는 '양구'지만 보충대에서 사단 배치를 받을 때 춘천에서 군 수송선을 타고 소양강을 건넜다.
그리고 정기 휴가를 나올 때는 소양강을 거쳐 춘천으로 나오고 전역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내가 근무하던 군 부대의 실질적인 부대가는 '소양강 처녀'였다.
하루 종일 빡세게 땀을 흘리고 훈련을 마치면 단체로 뒷산에 올라서 '소양강 처녀'를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의 노래 제목은 '소양강 아다라시'였다.
그뜻이 뭔지 모르는 게 더 좋다.
다음은 나무위키(소양강 처녀)에서 검색한 내용 중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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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 처녀
반야월이 작사하고 이호가 작곡한 대한민국의 가요이자 한국인의 대표 애창곡.
1970년, 가수 김태희가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앨범 10만 장 판매액을 올렸다.
처음에는 제목을 춘천 처녀라고 하려 했으나, 어감이 더 괜찮은 소양강 처녀라고 지었다고 한다.
노래의 배경이 된 소양강이 춘천시내를 흐르는 강이기에 춘천시를 대표하는 가요 중 하나로 꼽힌다.
이후 한때 흥한 유행가로 잊히나 싶었지만 1990년대 초반에 가수 김재희, 한서경이 이 노래를 잇따라 리메이크하여 발표하였고, 때마침 대한민국에 노래방 열풍이 시작되면서, 부르기 쉬우면서도 흥겨운 이 노래가 다시 크게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한서경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였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국민학생(초등학생이 아니다.)을 보고, '네가 이 노래를 어떻게 아는 거냐'며 당황하는 해프닝이 생기기도...
그 후, 지금까지도 온 국민에게 사랑을 받는 인기 애창곡이다.
2018년 11월 26일 WINNER의 멤버 송민호가 발표한 첫 솔로앨범 <XX> 타이틀곡 '아낙네'가 소양강 처녀를 샘플링한 것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소양강 처녀의 모델이 된 인물은 1969년 당시 가수지망생이었던 윤기순(1953년 생)이라는 실존 인물이다.
반야월이 1990년, KBS의 전국노래자랑과 한 인터뷰에서 소양강 처녀의 노래 모델인 윤기순 씨의 실명을 거론했다.
윤기순 씨는 춘천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명동 근처에 있던 한국가요반세기가요작가동지회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7남매(2남5녀)의 맏딸으로 돈 많이 벌어서 동생들 학비나 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상경을 했다.
애초에는 전화 교환원을 꿈꾸었다고 한다.
서울에 도착한 직후 그녀는 전화 교환원을 양성하는 통신학원에 다녔으나 전화 교환원 월급으로 가족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기 위해 한달 만에 통신학원을 그만뒀다.
그리고 가수가 되면 좋아하는 노래도 할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무작정 김종한 작곡사무실을 찾아갔다고 한다.
김씨는 작곡가 박시춘, 작사가 반야월 선생이 소속돼 있는 서울 가요작가 동지회 사무실을 소개해줬고, 그녀는 가요작가 동지회에서 일하게 되었다.
전화도 받고, 심부름도 하고, 노래도 배웠다.
이후 1968년 6월 어느 날 소양강 상류에서 민물고기잡이를 하는 아버지가 사는 춘천의 고향집으로 자신이 일하던 사무실 사람들을 초청하였고, 회장인 반야월 선생을 비롯해 작사가 고명기·류노완·월견초 선생 등 가요 작가 사무실 일행 10여 명이 초청에 응했다.
이 때 얻은 시상을 반야월이 노랫말로 옮겨서, 작곡 작업과 음반 녹음 작업을 거쳐 1970년에 발표한 노래가 "소양강 처녀"이다.
실제로도 가요작가 사무실 동지회 사람들 사이에서 윤기순 씨의 별명이 소양강 처녀였다고 한다.
노래는 크게 히트했지만 정작 주인공인 윤기순 씨는 잊혔다.
1970년에 음반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별 소리 소문 없이 묻혔고, 그 이후 전국을 돌며 밤무대 가수를 했다고 한다.
혼인도 하지 않았다.
노래를 너무 불러서 목이 상해 성대결절수술을 두 번이나 받기도 하고, 돈을 모아 아버지께 젖소를 사드렸지만 우유 파동으로 목장이 망하는 등 상당히 험난한 삶을 살았다.
그렇게 잊힌 실제 소양강 처녀는 1995년 노래비를 세울 때 작사가 반야월이 직접 밝힌 뒷이야기로 말미암아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춘천시가 경찰청의 협조로 윤기순 씨를 찾아냈을 당시 고향을 떠나 광주에 살고 있었다.
그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밤무대 가수로 한동안 활동하다가, 2006년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춘천시 사북면 지암리 집다리골에서 ‘풍전가든’이란 민박을 겸하는 음식점을 경영한다.
춘천시에서는 온 국민에게 사랑받는 애창곡인 소양강 처녀를 기념하기 위해 2005년, 5억 5천만 원을 들여 소양강 강변에 기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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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대학생들이 좋아하는 노래 1위였다.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소양강 처녀'는 가수 한서경 버전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 복잡해져서 내용 전체를 옮기지 않았다.
노래 가사와 관련된 실존 인물이 더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윤 모 씨가 실제 모델로 거론된 것은 반야월 선생이 자기들의 사무실에서 일하던 어린 소녀가 성공하지 못하고 고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안타까워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진짜 소양강 처녀인 것이다.
첫댓글 아 그런 사연이 잇엇군요 ㅎㅎ
사연은 모르고 참 많이 따라 불럿던 노래였네요
오늘도 많이 덥답니다
시원하게 베짱이 하십시요
그것 만이 살길 입니다 ㅎㅎㅎ
ㅎㅎㅎㅎ~~~
CJ남해청파님!!!! 덕분에 '소양강처녀' 노래에 얽힌 역사를 자세히 공부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