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sher Info. Ricordi MRO 108, 1960.
Performers I Virtuosi Di Roma (orchestra)
Renato Fasano (conductor)
Renata Scotto, Sesto Bruscantini (soloists)
Copyright Public Domain - Non-PD US
Misc. Notes Source: Disque microsillon 33 t, 30 cm, stéréo -
Recorded at Teatro Grande, Brescia, Italy on July 27-28, 1959
318 / 5,000
출판사 정보 Ricordi MRO 108, 1960.
연주자 I Virtuosi Di Roma (오케스트라)
레나토 파사노 (지휘)
레나타 스코토, 세스토 브루스칸티니(솔리스트)
저작권 공개 도메인 - 비 PD US
기타 참고 출처: 디스크 마이크로실론 33 t, 30 cm, 스테레오 -
1959년 7월 27~28일 이탈리아 브레시아 Teatro Grande에서 녹음됨
라 세르바 파드로나,
즉 하녀가 여주인이 된 것은 1733년 지오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1710-1736)가 자코포 안젤로 넬리의
희곡에 겐나로 페데리코의 대본에 붙인 간주곡이다. 서곡 없이 두 부분으로 구성된 약 40분 길이의
이 곡은 페르골레시의 진지한 오페라 '일 프리지오니에 슈퍼보' 막 사이에 경쾌한 무대 오락으로 쓰여졌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같은 분장실을 배경으로 한 두 부분은 3막으로 구성된 오페라의 중간 휴식 시간에
연주되어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페데리코의 대본은 1781년 지오반니 파이시엘로가 썼다."
이탈리아의 페르골레지 Giovanni Battista Pergolesi(1710-1736)가 쓴 소규모의 오페라로, 총 3막의 오페라
'자부심 강한 죄수 Il Prigionier Superbo'를 제치고 도리어 큰 성공을 거둔 '막간극'(幕間劇, 막 사이에 무대
전환을 하는 동안 “막 앞에서” 가볍게 보여주는 짧은 공연)이다. 페르골레지가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잘 알려진 작곡가는 아닐 수 있으나, 26년의 짧은 생애 중 겨우 6년 간의 음악 활동을 통해 남긴 수많은
걸작들은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무척 높은 평가와 동시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탈리아의
모차르트"라고 별칭 지어지는 천재 작곡가이다.
이 막간극 '마님이 된 하녀'는 뻬르골레지가 남긴 많은 작품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공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등장 인물은 모두 합해 세 명이지만 그 중 한 사람은
벙어리 하인역으로 노래는 전혀 부르지 않으며 오직 연기력으로만 승부한다.
오케스트라 역시 현악기 Strings군과 쳄발로 Cembalo만의 소편성. 대부분 쳄발로 연주자가 지휘자의
역할을 겸한다. 총 2“막 Act”이 아닌 2“부 Part”로 구성되어 있는 단막의 오페라이며, 총 공연시간도
길어야 한 시간 가량 되는 작은 규모의 “오페라 부파 Opera Buffa Comic Opera" 쟝르에 속하는 '막간극
Intermezzo'이다.
돈 많고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기
세르피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우베르토의 집에서 일해 온 하녀이다. 이제는 늙은 주인의 말에
고분고분하지도 않고 오히려 머리 위에 앉아 노는 수준인데 오늘도 핫 초콜릿을 먹어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다. 화가 난 우베르토가 종을 울리자 먼저 벙어리 하인 베스포네가 뒤늦게야 들어온다.
물론 세르피나는 그보다도 한참 후에야 들어온다. 우베르토는 늑장을 부린 둘에게 욕설을 하며 야단치지만
세르피나는 오히려 화를 내는 주인에게 시끄럽다며 놀리고 한술 더 떠 자기를 아예 부인으로 삼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잠시 당황한 우베르토에게 세르피나가 "당신은 싫은 척해도 사실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자 우베르토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세르피나는 우베르토를 유혹하기 위해 베스포네를 이용한다. 그에게 군복을 입혀서 자기 약혼자로
가장시킨 후 숨겨놓는다. 그리고는 우베르토를 찾아가 자기는 결혼을 하게 되어 이 집을 떠나게 되었다고
거짓으로 슬픈 작별인사를 한다. 약혼자를 소개시켜주겠다고 그녀가 잠시 방을 나서는 사이 우베르토는
왠지 서운함을 느끼며 아무래도 자신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곧 변장한 베스포네와 세르피나가
들어오고 세르피나는 이 약혼자가 결혼지참금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변장한 베스포네는 지참금을
내놓지 않으면 칼을 뽑아 난동이라도 부릴 기세다. 그러면서 지참금을 주지 않을 거면 이 여자를 네 아내로
삼으라고 하는데(물론 세르피나의 통역이다), 우베르토는 이 수법에 덜컥 걸려들고 말아 변장한 베스포네를
증인으로 세우고 세르피나와 결혼할 것을 서약한다. 우베르토는 금방 이 계략을 다 알게 되지만 뭐 어떠랴.
두 사람의 유쾌한 사랑의 이중창으로 극은 막을 내린다.
제목 그대로, 마님이 된 하녀
초기의 오페라는 왕가와 귀족을 위한 것이었다. 이때는 보통 그리스의 신들과 영웅, 또는 귀족사회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는데 결말이 꼭 비극적이지는 않더라도 매우 품위 있고 진지한 취향이었다. 하지만
상인계급의 성장으로 오페라는 새로운 고객의 취향을 고려해야 했는데 막간극(인테르메초: Intermezzo)도
그 영향으로 생겨난 형식이다. 진지한 오페라의 막과 막 사이에 시민계급이 공감할만한 소재로 만든 코믹한
막간극을 20~30분 길이로 상연하기 시작했다.
'마님이 된 하녀'도 바로 이 막간극의 용도로 만들어졌다. 이 짧은 극은 당시 나폴리 왕비였던 엘리자베스
크리스티나의 탄생축하제전 즈음에 페르골레시 본인의 오페라인 '자랑스러운 죄수'의 막간극으로
초연되었는데 막상 본 공연인 '자랑스러운 죄수'는 매우 평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막간극은
대 호평을 받아 ュ 이튿날에도 다시 상연되었고 곧 이탈리아 각지에서 상연하게 되었다. 진지한 오페라
사이의 여흥 격으로 부수적인 역할을 하던 막간극이 오히려 더 인기를 끌어 독립적으로 생명을 얻고
현재까지도 오페라의 중요한 문헌 중 하나로 남아있으니 이 상황이 제목 그대로 마님이 된 하녀라고나
할까.
오페라 부파의 효시
하지만 이런 경우가 비단 '마님이 된 하녀'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시민계급의 관객들은 웃음이 허용되지
않았던 궁정오페라보다 재미있는 막간극을 더 선호했고 틈새시장을 노린 상업극장들은 앞 다투어 희극적인
오페라를 상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막간극에서 발전된 희극 오페라들은 기존의 진지한 오페라인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오페라 부파(opera buffa)라고 불리게 되었다. 말하자면
'마님이 된 하녀'는 당시의 여러 막간극 가운데서도 오페라 부파의 효시 격이 된 것이다.
부퐁논쟁
1733년에 초연되어 지속적으로 인기리에 상연된 '마님이 된 하녀'는 1752년 8월 1일에 파리에서도
개막하게 된다. 그리고 이 상연으로 말미암아 프랑스 음악사에서는 중요한 사건인 부퐁논쟁
(Querelle des Bouffons, 어릿광대들의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당시 프랑스의 계몽지식인들은
'마님이 된 하녀'의 친밀하고 일상적인 소재와 선율중심의 명료한 음악을 매우 높이 평가하였는데,
이에 비교해 프랑스의 서정비극(tragedie lyrique)은 합주가 복잡하고 화성이 너무 거창해 마치 소음
같다고 폄훼하였다. 서정비극을 지지하던 라모 및 왕정파가 이에 반격하면서 양쪽의 논쟁은 매우
치열해졌고, 나중에는 이탈리아와 음악과 프랑스 음악 중에 어느 것이 더 우월하냐는 다소 소모적인
논쟁으로까지 발전했다. 오페라 세리아와 서정비극은 엄연히 다른 종류이기에 그 둘 모두 오페라
부파를 대립개념으로 삼기는 무리가 있지만 결국 이 논쟁은 다만 음악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정치 문화
전반에 대한 기득권과 소장파의 싸움이었다. 이 논쟁은 1764년에 라모가 사망하면서 잠시 일단락되었으나
이를 계기로 프랑스에서도 서정비극에 대립되는 개념의 오페라 코미크(opera comique)가 탄생하게 되었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