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t1.daumcdn.net/news/201112/15/mydaily/20111215000315019.jpg)
지퍼의 입장 / 송미선
원피스 등 뒤로 난 길을 닫는다
반쯤 채워지던 지퍼가 머리카락을 물었다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고
서로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이던 엄지와 검지가 머리카락의 입을 틀어막는다 꼼짝달싹 못한 채 지퍼에 물린 우리가 불거진다
끼인 머리카락을 오늘이라 부른다 순간 길이 끊어졌고 뜻밖의 걸림돌에 대해 지퍼는 공식입장 발표를 보류하고 있다 방향성을 잃어버린 엄지와 검지는 넘어진다 무르팍에서 흘러나오는 물비린내를 기록하기 위해 쇼윈도가 필요하다 목 없는 마네킹이 흘깃거리는 것 같아 어둠 속에서도 목젖이 탄다 벗은 마네킹 몸 위로 지퍼 자국이 수두룩 하다 까닭을 짐작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려
오늘이 가렵다
ㅡ시집 『그림자를 함께 사용했다』(현대시학사, 2020)
----------------------------------------
* 송미선 시인
경남 김해 출생. 동아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1년 《시와사상》 등단.
시집『다정하지 않은 하루』『그림자를 함께 사용했다』.
**************************************************************************************
원피스 등 뒤로 채워지던 지퍼가 머리카락을 물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내면화한 작품이다.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고 / 서로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이던 업지와 검지가 머리카락의 입을 틀어막는다 꼼짝달짝 못한 채 지퍼에 몰린 우리가 불거진다"에서 "우리"라고 언명한 관계성에 주목해 보자. 맞물린 사정은 혼자 해결하거나 성사되는 문제가 아니다. 쌍방 개입이라 타협이 요구되지만 서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때문에 거북하다.
“벗은 마네킹 몸 위로 지퍼 자국이 수두룩 하다 ”니 가히 고통이 짐작이 간다. “끼인 머리카락을 오늘이라 부른다 ”에서 어제와 맞물리고 나아가 내일과 연결된 장애가 감지된다. 길이 끊기고 걸림돌이 생겼는데 왜 “지퍼는 공식입장 발표를 보류한 ”는 것일까. 전면에 자신의 감정을 노출하지 않는 전략이 파악된다.
살다보면 사람들은 여러 얼굴을 한다. 속마음과 표출이 다를 수 있고 약점 잡히지 않으려고 꼼수를 쓸 때도 있다, 가치관에 따라 인생의 정답은 없고 견해는 달라도 본질을 탐색하는 상호성에 이 시는 초점을 두고 있다.
협의와 역지사지를 모색한다면 좋을 텐데 쉽게 깨지는 유리그릇과 같다. 이렇게 착찹한 심정으로 살아가는 필부필부들의 음영이 자리한다,
맨 마지막에 “ 오늘이 가렵다”는 표현은 이어지는 예시에서도 공감대를 이룬다.
- 박수빈 문학평론가
***************************************************************************************
시인은 흔히 만날 수 있는 일상에서 시의 소재를 발견했다.
옷이 얇아지는 여름철, 블라우스 뒤 지퍼를 올리다가 지퍼에 머리카락이 물렸던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시적 형상으로 재해석했다.
여기서 올린 부분은 과거로, 올라가지 못한 부분은 미래라 생각하면서 끼인 머리카락은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뇌로 그려냈다.
‘벗은 마네킹 몸 위로 지퍼 자국이 수두룩하다’에선 보이지 않는 흔적을 보아내며 ‘제2의 눈’을 통해 자아의 대상화와 대상의 자아화를 동시에 성취해 냈다.
- 경남신문 김종민 기자
![[포토] 케이트, 드레스 지퍼가 주르륵 내려가](https://t1.daumcdn.net/news/201011/22/sportschosun/20101122171344206.jpg)
![스텔라맥카트니 마네킹 누끼사진촬영 [달나라토끼청]](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6D21475BFE8D8D21)
Secret Garden / Heartstr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