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출발하다.
간단히 짐을 챙겨서 대구 공항을 출발해서 15일 14시경 상해 포동 공항에 도착하였다. 입국 절차는 간소하고 신속히 처리되었다. 출구를 빠져 나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사람들을 기다리는 광경이 아주 이색적이다. 중개 업을하는 후배를 만나 승용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 갔다. 한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외탄의 야경과 예원을 둘러보았다. 상해는 상업 도시로 발전하여 밤 늦게까지 장사를 하는것이 예전과 사뭇 다르고, 물가가 많이 올라서 한국과 비슷다.
16일에는 전날 다보지 못한 예원을 들러보고 예원에 있는 2층 찻집에서 보이차를 마시며 쉬기도하였다. 예원은 옛날의 모습으로 마을을 재현하여 고전풍의 물건을 판매하는 상가들이다. 쓸 만한 물건을 찾아 보았지만 눈에 뛰는게 없다. 물건을 사는 사람도 없고 단지 가격만 비쌋다. 밤에는 중국식당에서 중국풍의 저녁을 먹고 가장 번화한 난징루를 구경하였다. 현대적인 건물과 전자 제품을 주로 취급하였다. 많은 젊은이 들이 거리를 거닐며 데이트를 즐기며 저녁 시간을 즐기고 있다.
상해에서 세 명이 출발하기로 하였으나 사정이 생겨서 함께하지 못했다.
이 글은 티벳 라싸에 도착하여 게스트 하우스에서 쓰며, 힘든 여행이 즐거운 여행임을 체험하고 있다.
어제 서대탄 넘어 올때부터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 오늘까지 아주 힘들다. 서해탄은 해발 5180m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꺼얼무(골무드)에 도착하다
상해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안에 잠시 들럿다가 시닝까지 왔다. 시닝은 서안에서 조금 더 올라 온 곳에 있다. 시닝에서 티벳 라사까지 오는 기차표를 끊어야 하는데 후배가 한국말을 하는 바람에 역무원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여행 허가증을 제시하라는 바람에 그만 라싸 표를 끊지 못하고 시닝에서 밤 8시 45분 꺼얼무 가는 기차표를 샀다. 시닝에서 라싸 까지는 48시간을 달려야 한다. 저녁시간이라서 역 맞은 편에 있는 식당에서 국수를 먹었다. 조금 차가운 날씨라 석탄 난로를 피우고 있었다. 식탁에 마늘 쪽이 있길래 난로위에 올려서 반 정도 익혀서 먹어 보았더니 엄청 맵다. 그래서 혼 만 나고 즉시 뱉아야 했다. 승복 입은 모습이 신기한지 옷에 대해서 뭇고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라싸까지 가는 기차로 알고 표를 샀는데 알고보니 꺼얼무가 종착지 였다. 많이 난감하였지만 이제 어쩔수 없다. 때문에 연장도 할 수없는 처지였다. 침대칸이었는데 3층까지 있다. 우리칸에는 후배와 시닝에 사는 연인이 함께 탓다. 이 연인은 석탄 발전소에 근무한다고 하였다. 거얼무에서 라싸까지는 쉽게 가리라 생각하고 편안하게 야간기차를 즐겼습니다.
칭장열차(시닝~골무드)
삼층 침대칸 중에 2층 침대인데 초저녁에는 담배 연기가 심하게 났고, 밤중에는 석탄 냄새가 괴롭혔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은 오지 않고 창밖을 내다보니 깜깜하기만 하였다.
밤 새 달려서 아침 8시 40분경 꺼얼무(골드무)에 도착하였더니 버스도 없고 기차도 새벽 3시 30분 차만 있었다. 아무대고 물어봐도 마찬가지였다. 난감하였다. 돈황을 가볼까 생각도 하였는데 편도 8시간 걸린다고하여 포기하였다. 간밤 기차에서의 불면 만큼이나 피곤하였다. 여기서 라싸 가는 차를 쉽게 구할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역 앞에는 상가 건물과 함께 괸챦은 호텔이 있다. 근래에 지은듯 하다. 옆의 작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과자 가게와 같이하는 작은 식당이다. 아쉬운 대로 괸챦았다.
마르코 폴로 탐험로를 지나다
라싸 갈 차량을 이리저리 물어 보면서 역전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하고 사진도 찍고 노닥거리는데 잘 생긴 젊은 청년이 차를 알아 봐 주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하였더니 중국돈 2천원을 내라고 하길래 5백원 주겠다고 하였더니 실망하는 빛이 역력하였다.
꺼얼무 역 앞의 가게 주인들과 함께
포기하고 반대편에가서 택시를 붙둘고 흥정하자니 처음 흥정하였던 그 청년이 6백원에 가게 해 주겠다고 하여서 농담인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게 다행하게도 진짜였다. 우여 곡절끝에 팔기위해 이동하는 마티즈같은 승용차의 흥정에 성공하였다. 곧 바로 승용차와 연결되어 출발하였다.
자가용을 타고 마르코 폴로 탐험로를 지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엿다. 그 길은 미국서부 보다도 더 좋았다. 완전 사막지역, 눈 덮인 산악지역, 고산풀로만 덮인 산악지역, 끝이없는 평지다. 그곳을 야크무리들과 양들, 사슴들이 풀을 뜯어 먹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서대탄 눈덮인 옥주봉에 도착하여 점심을 하였다. 길가에 있는 형편없는 곳이었지만 맛이 아주 좋았다. 특히 설산에서 눈녹은 물을 떠다 끊이 차맛은 더욱 그랬다. 여기까진 후배와 기분좋게 왔다.
서대탄의 식당(맞은편에 만년설의 옥주봉 있음)
눈 덮인 만년 설산을 건널 줄을 상상도 할 수 없는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거기서부터가 고통스러웠다. 해발 5190m를 통과하는것이 죽음과 삶의 쌍주곡을 연주하듯 하였다. 후배와 나는 비명을 지르며 언제나 이곳을 통과하나 하는 생각뿐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차를 세워 기념되는 곳에서는 사진을 찍었다. 곤륜산에서 사진 찍고 풍화산에서도 찍었다. 풍화산은 풀하나 없는 민둥산인데 흙색이 검 붉은 색이다. 곤륜산은 무협지에서 많이 등장하는 산일 것이다.
눈이 쌓인 곳인데 길가쪽으로 사슴 가족들이 풀을 먹는 모습이 자주 눈에 뛰었다.
비몽사몽간 그곳을 통과하였다. 통과중에 후배는 구토를 하였고 나는 중간에 속이 매스꺼워 황량한 들판에서 볼일을 보는 행운을 얻었다. 11시에 출발하여 밤 12시에 티벳 나주에 도착하였다. 빈관 한 곳을 들어가니 외국인 숙박이 안된다고 하였다. 다시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였는데 불이 다 꺼지고 직원들은 취침하러가서 아무도 없다. 한 참 뒤 직원이 나왔는데 여행 허가증을 가지고 오란다, 밤 중에 공안에 갈수도 없고 그러니 불가능하다고하여서 겨우 투숙하였다. 배도 많이 고프지만 밥도 굶은체 잣다.
다음날 아침 허가증을 받아 오라는 직원의 요청에 어쩔수 없이 한 참을 기다리니 담당자가 와서 하는 말이 특이한 곳을 가지 안는 한 허가증이 필요 없다고 한다. 10시가 되어서 버스 터미널로 가자고 했더니 기차역으로 가버려서 허탕치고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호텔에서 차를 구하기 위해서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문제는 가격을 엄청 많이 부르는 것이었다. 심하게 부르는 가격을 깍아서 800원에 차량 계약을하고 라싸로 출발하였다.
만두 찌는 나무 통(여러개를 겹처서 많이 찐다)
남초 호수를 가다.
남초 호수는 나주에서 라싸에 오는 중간 지점에 있습니다. 오는 중에 눈덮인 탕구라 산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해발 5000m가 넘는 고개를 넘어 들어가기 때문에 무척 힘듭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티벳에 오기 몇일전부터 운동을 하고 고산병 약을 준비하는등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그래도 어쩔수 없이 3일간은 고생을 합니다. 3일간 고생의 강도는 준비한것과는 차이가 납니다. 그래도 라사에서 일주일간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새벽에는 머리가 아프고 잠을 못 잣습니다. 그래도 낮에 활동에는 아무른 지장이 없없는게 이상했습니다. 나오기 전 전날 부터 잠을 자기시작해서 나오는 날 저녁에는 잠을 잘 잤습니다. 나올 때 쯤 완전히 적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티벳은 들어 오기가 힘들고 아무나 못 오는가 봅니다.
꾸불꾸불 고개를 건너서 산 정상에 오르니 멀리 호수가 보였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한 참 만에 호수에 도착하였습니다. 상점과 숙박시설이 있었습니다. 왼쪽에 거대한 쌍둥이 암석이 있었습니다. 갈까말까 하다가 갔습니다. 궁금증 떄문에 말이쬬, 노파가 돌에 경전을 새기고 있었습니다. 쌍둥이 바위를 지나니 산에 수많은 경전을 쓴 천들이 걸처저 있었습니다. 다시 왼쪽으로 오니 돌에 경전과 그림을 새긴 많은 돌 무더기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야크 뿔도 걸처저 있었습니다. 다시 발길을 돌려 호수에 이르러 기원을 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로 만 중생들이 행복하라고" 이어서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염하였습니다. 물이 얼마나 깨끗하던지, 그 물을 찍어 이마에 바르니 통증이 없어 졌습니다. 우리가 다녀 온 뒤로 눈이와서 길이 끊켰다는 얘기를 들었다.
남초호수(어떤 방문객이 굳은듯이 앉아 있다)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는 보살님이 있었고, 일본인인지 대만인 인지 모를 청년 3명과 힘에 지처 토하는 모녀가 그날 그렇게 호수의 주인이었다. 북쪽에 우뚝 솟은 촛대같은 바위가 두 개가 있는데 그곳 까지 갔다. 제법 먼 거리다. 다리도 아프고 속도 울릉거리지만 다시 못 온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리하여 갔다. 큰 바위에는 흰 천을 둘러 놓았고, 옆의 산에는 천으로 만든 코라를 줄에 매어서 수도없이 둘러 놓았다. 바위를 돌아서 왼쪽으로 돌무더기가 있다. 경전을 세긴 납작한 돌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다. 그 위에 야크 뿔이 올려져 있어서 인상적이다. 가게에 주인과 기념 촬영을하였습니다. 저를 한국의 라마로 소개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을 뒤로하고 라싸로 차를 몰았습니다. 산 밑과 겨울가에는 아름다운 집들이 옹기종기 있고, 들에는 티벳인들이 신성시하는 야크들과 양들이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오고 있었으며, 가을 추수가 끝나서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해가 저서 어둬워 졌으니 밤 7시 경에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운전사는 끝까지 길을 물어서 최종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티벳 게스트하우스에 묵다
이 집의 주인은 젊은 부부다. 부인을 하얼빈 유학가서 만났다고한다.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산다. 한국 청년과 교포 2세가 하얼빈에서 사랑을 싹 튀워서 티벳 라싸에 살게된 참 엉뚱한 부부다. 아직 모든것이 서툴다. 그러나 된장국도 끊이고 남자주인이 담근 김치도 식탁에 올라온다. 이틀간 고산병에 시달려 잠을 못잤는데 여기서는 조금 잘 수 있었다.
삼 일을 이곳에서 묵고 시내로 나왔다. 시내 중심인 조캉사 바코르 주변은 장거리 이동이 쉽고, 숙식을 쉽게 해결 할 수 있다. 그리고 여행객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다.
티벳 게스트 하우스(젊은 부부)
바코르를 순례하다
밤새 고산병으로 뒤척이고 누워 있어도 머리만 아프고 잠도 오지 않았다. 이렇게 멀리 와서 침상에서 시간을 보낼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침 밥을 먹고 조캉사원을 갔다. 후배는 건강 악화로 남게 되었다. 쥔장에게 교통을 확인하고 지도를 들고 나섰다. 따짜오스라는 대조사는 당나라 문성공주가 시집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송첸캄포왕이 1300여년 전에 건립한 것이다. 티벳인들이 가장 큰 종교적 성지로 여긴다. 3층 건물에 지붕은 황금 지붕이다. 주변은 바코르로서 시계 방향으로 도는 순례길(코라)이 있다. 어느절이던 코라는 다 갖추어져 있다. 지방에서 올라온 다양한 사람들은 조캉사 주변 바코르를 마니차를 돌리거나 염주를 돌리면서 바코를 돈다. 많이 복잡한데 그 복잡한 중에 부처님을 향해서 한 자죽 띠고 삼배를하거나 칠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가족들 단위나 동네에서 함께 온 듯한 무리들도 많다. 그중에는 스님들이 한 두명이 있고, 어린 아이들을 업은 부인들도 함께 있다. 동 티벳 지역의 캄바스 같은 변방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머리를 빨간 줄로 땋고서 장식된 칼과 단검을 찬체 거리를 활보한다. 북동 지방의 골록인(유목민)들은 누덕누덕한 양가죽 옷을 입고서 여성들은 놀랍도록 정교하게 머리를 땋고 산호 장신구를 착용한다.
문명과는 거리가 멀것 같은 이곳에서도 DVD가 인기가 있는것 같다. 기계 주변에서 몇명의 사람들이 열심히 구경하고 있다. 불교적인것과 티벳 전통적인것 트로트 등과 같은 영상음악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여들게 만든다. 시장 한 곳에서는 야크를 도살하는 영상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게 다 티벳인들을 욕 먹이기 위한 중국인들의 장난일 것이다.
조캉사원의 바코르를 도는 순례객들
조캉사(따자오쓰)원을 참배하다
조캉사원의 옥상 회랑(본전을 중심으로 회랑이 있으며, 이곳에서 광장을 볼 수 있다)
조캉 사원은 낮에는 조용했는데 지방에서 몰려든 참배객으로 오후에는 아주 복잡했다. 바코르도 복잡했고, 정문에서 절하는 사람도 매우 많다. 절에 들어가기 위해서 상당한 길이의 줄을 서야 한다. 라싸로 오는 내내 길옆에서 무리를 지어서 불을 피우거나 둘러 앉았는것이 라싸 순례에 나선 사람들이란것을 한 참 뒤에 알게 되었다. 길가로 삼보일배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더러더러 보였다. 길이 한국하고는 달라서 험하다. 자갈도 있고 파저서 고르지 않다. 그리고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지 않아 위험하기도 하다. 끝이 없는 길을 수레나 차에 짐 가지를 싫고 쉼없이 몇 개월을 가야지 목적지에 도착한다. 입장료 70원을 내다. 점심시간 전이라 그런지 한가하다. 1층 홀에서 사진을 찍고 통로를 따라서 들어가니 역대 라마들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조금 들어 가자니 기둥이 있었고 구멍난 기둥에 반질반질한 까만 돌이 있는데 손을 넣어 만지는 것이 신기하여 만져보았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딿은 돌이 바닥에 박혀 있는데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절을해서 생긴것 같았다. 거기서 꼬마가 팔방을 돌면서 절을 하고 있었다. 중요한 곳은 쇠 그물을 처서 보호하였다. 1층을 둘러보고 원각사 신도님들 축원을하였다. 2층에 올라 가야 하는데 길이 없어서 한 참을 헤메다가 입구에 물어 보기위해서 나가 보니까 정문 옆으로 올라 가는 계단이 있었다. 2층에는 집무실과 방사가 있었다.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고 화장실에 가니 베컴 사진과 프랑스 축구선수 지단이 경기를 하는 대형 사진이 걸려 있어서 신기했다,
지단이 축구 시합을 하는 사진이다. 화장실에 걸려있다.
3층을 올라 갔는데 포탈라 궁이 빤하게 보이고 참배객들의 절하는 광경과 바코르 광장을 서성이는 사람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산속에 갖혀 평화로운 라싸의 모습이 신기하다. 더 머물고 싶은데 배가 고팟다.
조캉사원 정문 앞의 광장
고완성을 가다
고완성은 조캉사원의 바코르 옆에 있는 기념품점과 식당 용도로 쓰이는 건물이다.
바코르는 티벳 최고의 사찰 주변임을 실감 할 수 있다. 주변은 기도깃발, 카다(흰 명주 천), 불경을 인쇄한 목판, 부츠, 야크 버터와 향, 염주, 짠빠 그릇, 등 많은 물건들을 판다. 조캉사 3층에서 반대편을 보니까 식당인듯한게 보여서 갔다. 그곳을 나오기 싫었지만 배가 고팟기 때문에 식당을 찾아서 갔는데, 고완성(古玩城)이라는 3층 건물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근사한 호텔을 겸한 값 싼 식당도 그 주위에 많았다. 바코르를 돌면서 그렇게 찿아도 없었는데 지척에 있어서 매우 고마웠다. 1, 2층은 기념품 가게이고 3층은 식당이다. 실내도 있고, 실외도 있었는데 이태껏 본 것 중에 가장 멋진 식당이다. 바깓 베란다에서는 포탈라궁과 주변이 잘 보였다. 참으로 멋진 곳이다. 국수가 6원이고, 야크 차가 2원이다. 야크차는 양 냄새는 조금 났지만 뜨거운게 맛있었어서 2잔을 마셨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기운이 생겼다.
2층에서 귀중한 기념품을 샀다. 동으로 된 연꽃 모양의 잔 받침과 나무로 된 받침, 동과 백동으로 만들어진 3개의 잔이 셋트였다. 거기에다가 짠빠(보리가루) 담아 만드는 그릇(다완 같이 생김) 1개를 구했다. 사고나서 이러저리 돌아 봤지만 같이 생긴것은 없었다. 가격은 싸지만 오래되서 진짜같다. 기념품을 위한 기념품이 아니었다. 좋은 구경과 좋은 물건을 구할수 있어서 기분이 정말로 좋았다. 숙소로 들어 가기가 이른 시간이라 한국인들도 모이고 외국인 여행객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야크호텔을 호기심이 생겨 물어물어 찾아 갔다.
다행히도 현관에서 한국 여행객을 만났다. 나이드신 3분을 만나고 젊은이 2명을 만났다. 마침 한국인 여행객들과 저녁을 같이 하기로 했다길래 동참하였다. 바코르 광장옆의 기레이(kirey) 호텔의 레스토랑인데 음식이 좋다. 약 15명 정도가 모였다. 음식을 시켜서 서로 나눠먹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을하고 그들은 다른 곳으로 가고 택시타고 숙소로 왔다.
세라사를 가다
피곤해서 일찍 잔다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을 자지 못했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이 되니 머리가 반 정도로 쪼개질 듯이 아팟다. 아침을 먹고 못잔 잠을 자기위해서 누워 있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점심을 먹고 후배와 함께 티벳의 "세 기둥(드레풍, 세라, 간덴) " 역할을 하는 사찰중의 하나인 드레풍사에 택시를 타고 갔다. 근데 정문에도 가기전 입구에서 공안인지 뭔지가 차량 통제하는 원뿔 통을 세우면서 못 들어간다고 하였다. 좀 성질이 나서 왜 그러냐고 하였더니 약 3개월간 공사하기 때문에 출입 못한다고 하였다. 더 이상 우길수도 없고하여서 되돌아 나왔다. 오면서 곰곰이 생각하니 공사보다는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일용직 노무자가 입구 통제를 하면서 영어를 잘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드레풍사는 3~5대 달라이 라마가 주석하였던 곳이라 한다. 저녁에 들으니 달라이 라마가 미국 국회에서 훈장을 받기 때문에 축하하는 현수막을 걸려고 하다가 공안과 충돌이 있었다고 홍콩발 기사가 있었다고 한다. 차를 돌려서 세라사로 향하였다. 택시기사가 너무 난폭 운전하여서 잠시 세라사에 도착하였다.
큰 법당
삼십원을 주고 입구에서 내렸다. 입구에는 과일 파는 리어카와 염주 , 향, 마니차 등을 파는 리어카들이 즐비하였다. 기념 사진을 찍고 절에 들어오니 일주문과 천왕문 같은 것은 없고 좌우로 스님들의 방으로 짐작되는 퇴락한 건물들이 즐비하였다. 절에 불전 수입은 있는데 중국 정부에서 다 가져간다고 한다. 그래서 건물이 허물어져도 보스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세라사는 라싸에서 북으로 5km 정도 떨어져 있고, 쫑카파의 제자가 1419년에 세웠다고 한다. 원래는 5000명 정도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600명 정도 산다고 한다. 정문에 들어서니 엄숙한 맛은 없고 그냥 마을같은 분위기가 났다. 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방사와 법당이 계속 이어졌다. 조금가니 오른쪽에 큰 법당이 있어서 기념 촬영을하고 참배를 하였다. 이 나라 법당의 특징은 역대 조사스님들의 영단을 법당에 모시는것이다. 탑모양으로 만들고 보석을 박고 기단은 동으로 만들어서 헐지 못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큰 것은 집체만 하기도 하다. 입구에는 신장이나 역사상을 모시기도하고 안쪽에 보살상이나 부처님 상을 모시기도 한다. 벽이나 기둥에는 탕카를 걸어 두었다. 보통 본전 건물은 삼층 높이로 지어졌다. 이층과 삼층에는 누각을 두어서 올라 가도록하고 또한 이층에는 스님들 방을 만들어 두기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세라사의 본전 건물
방들이 있는 건물들은 거의 비슷하다. 돌로 벽을 쌓고 흰색 메지를 넣었고, 전체 건물을 흰색이 나도록 정기적으로 천연 색칠을 하는것 같았다. 낡고 훼손 되기도하여 관리가 잘 되지 않는것 같았다. 법당에는 스님 한명과 일반인 한 명이 같이 있기도 한데 일반인은 공안 같아 보였다. 스님들만 지키는 법당도 많다. 경문을 외우거나 북을 두드리며 독경을 하기도 하였다. 신도들은 마니차를 돌리거나 염주를 돌리면서 법당내의 모든 존상을 일일이 친견하고 불전을 놓는다. 작은 돈이라도 놓는다. 아니면 야크 기름을 등불에 부어 놓기도 한다. 그들은 대충하는것이 아니고 하나도 빠짐없이 친견을 한다. 그 거리가 얼마나 되었던 어디에 있던 불전에 모셔져 있으면 친견한다.
외국인들은 티벳의 각 지역 사람들이 머리 모양이나 옷 모양, 구성원들의 모습들이 신기한지 사진만 찍어된다. 그들은 절 할줄도 모르고 시주 할 줄도 모른다. 단지 사진만 찍는다. 그래서 하루는 간덴사에서 그들이 사진 찍는 가운데서 기념 사진을 하나 찍었다. 아쉽게도 역광이라 잘 나오지 않았다. 대충 이리저리 둘러 참배하고 파봉카사를 가기로 마음 먹었다.
파봉카사를 가다
파봉카사는 라싸에서 가장 오래 되었으며 송첸캄포왕이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니까 각 각 다르게 얘기해줘서 한참을 헤메었다. 결론은 절 뒤쪽으로 빠져 나가면 되는데 사람들이 정문으로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야 된다고 했다. 정문에 나오니 식당이 있어서 쉴겸 수유차를 시켜서 두 잔 마셨다. 조금 쉬다가 암자로 오르노라니 날씨가 흐리고 눈이 내렸다. 암자까지는 한 시간 거리이니 눈이 축복하는구나 생각하고 올라갔다. 눈은 이네 거치고 절 뒤쪽으로 올라가는데 돌무더기가 있고 야크뿔과 경구를 적은 석판이 놓여져있는 돌 무더기를 만나서사진을 찍고 올라갔다.
돌 무더기와 야크 뿔(야크들의 극락왕생을 기원 하는 듯)
조금 올라가니 아이들 셋이서 물병을 들고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신기한 듯 나를 처다보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라가니 샘이 나타났다. 약수를 떠러 온 아이들이었다. 그 옆에는 철분의 물이 흘르내리고 있었다. 약수는 약수였다. 다른 물 하고는 틀렸다. 조금 더 올라가니 큰 바위가 있고 밑에 굴이 있는데 창문과 출입문이 있어서 들어가 보니 스님 한 분이 경전을 읽고 있었다. 마침 청년이 합장한체 무릎 꿇고 있길래 사진을 얼런 한장 찍었다. 티벳이나 인도의 다람살라 같은 곳에서는 산속에서 혼자 수도하는 스님들이 많다. 몇년이던 최소한의 식량을 준비하고 목숨을 내 놓고 산다.
동굴에서 수행중인 스님(세라사 뒷산)
카메라를 보고 찍지 못하게 하였다. 목적을 달성하였으므로 말도 통하지 않으므로 나왔다.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능선을 따라서 올라갔는데 굉장히 힘들다. 가다가 쉬고를 반복하였다. 산 능선에는 야크들이 풀을 먹고 있었다. 풀의 꽃대는 가시처럼 생겨서 등산화 속에 들어가면 찔리기도 한다. 야크들이 먹는 부분은 땅에 붙은 그나마 연한 부분을 먹는다. 그런데 그 양이 아주 작다. 배를 체울려면 열심히 먹어야 체울 정도이다. 그런 중에도 꽃이 핀 나무가 있다. 그 나무는 신기하게도 바위 앞에만 있는데 빨갛고 조그만 꽃을 가지마다 피워서 보기가 좋다.
- 1- 끝
첫댓글 좋은곳에 가셨네요 .문성공주에 관한것을 많은공부 하셨겠습니다.스님 책을 내셔도 되겠습니다.황금 지붕은 99%입니까?오실때까지 건강 잘 챙기시면서 다니세요 .오늘 화상 스님오셨습니다.이제 걱정안하셔도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