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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로 시작이 되는 1절은 재학생이 불렀고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로 시작되는 2절은 졸업생이 불렀다. 그리고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의 3절은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 불렀다.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3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예제서 폭죽처럼 터져나는 울음소리. 실로 눈물의 가람이었다. 백 명 남짓 졸업생이 울고 재학생이 울고 어우러져 선생님이 울었다. 출렁출렁 설움의 조각배에 실려 교실이 떠가는 듯 했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은 유세진 고요만이 보초를 서고 창밖을 스쳐 불던 때 이른 봄바람도 잠시 발길을 멎었던가. 교실에서 새어나는 영문 모를 울음소리에 쫑긋쫑긋 귀 세운, 뒤꼍 내내 서걱대던 조릿대도 숨을 죽였다. 오래 엎디어 울었음이 졸업하는 여학생들의, 얼굴과 책상은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되었고 흠치르르 깐동한 소녀 단발머리는 눈물로 더께가 졌다. 울어 오만상 된 얼굴, 흐트러진 머리채. 정성으로 매만져주며 억지로 일으켜 세워 곁부축으로 정든 교실로 향하던 - 연실 손수건으로 눈물 훔치던 - 선생님의 모습이 더욱 우리들을 눈물나게 하였나니..., 그 현재진행형 눈물의 이동 대열 속에는 내 초등학생시절 첫사랑 ‘석자’의 모습도 끼어있었단다. 물론 관심을 끌기 위한 치기어린 행동이었겠지. 한참 전의 일이었겠다. 쉬고 있는 ‘석자’의 뽀얀 목덜미를 향해 빵빵 쏘아대던 볼펜 공기 딱총의 추억이 내가 좋아하는 ‘석자’를 향해 베푼 유일한 무언의 고백이었다고...,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다. 그때 ‘석자’가 아파 흘긴 눈으로 뒤돌아 볼 적에 그런 너를 측은 해 하기 보다가는 니가 나라는 존재를 알아주었다는 데 대해 더 흐뭇해하곤 했었지. 여태껏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곱기만 하던 ‘석자’가 그때 내 눈 앞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짓고 있었음이. 어린 마음에도 어깨를 토닥여주고픈 생각이 간절했었단다. 우리들이 공부하던 교실로 돌아와서도 좀처럼 그칠 줄을 몰랐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 그날의 풍경. 동창회에 나가서 그들을 만난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힘 실어 얘기는 하지만 다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로만 기억할 뿐. 그날의 맛이 없음이. 이게 졸업이란 것인가 보다. 지나고 나면, 가고 나면 다 그만인 거. 이게 졸업이란 것인가 보다. 나의 초등학교 졸업일은 1968년 2월 11일 바로 오늘이다. 꼭 사십년 전의 일이다. 졸업 시즌에 맞닥뜨리자 미닫이문을 뜯어내고 교실 두 개를 터서 만든 마룻바닥 졸업식장에서의 그날의 졸업식 풍경이 새삼 내 예민한 감수성을 꼬드겼다. 희희덕대며 한 바탕 희한한 퍼포먼스로 끝을 맺고 마는 요즘 졸업식을 보노라면 가히 금석지감이 아닐 수가 없다. 그날의 그 졸업식은 대체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끝까지 남아서 그 추억 얘기 들려줄 은사님들은 얼마나 살아계시는 것이며
살아 계시다면 또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 풍경화로 박제된 그날 그 추억의 졸업식은 아마도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강물에 두둥실 흘러가버리고 말았겠지. 교실 가득 출렁출렁 과하게 넘쳐나던 눈물에 실려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내려 가버리고 말았겠지. 아! 그립고 그리운 그날의 졸업식이여... * 볼펜 공기 딱총 : 신문지를 물에 불려 동글게 뭉친 딱 총알을 텅 빈 볼펜 대롱 양쪽에 빡빡하게 채워 넣고 동근 막대기를 강하게 밀어 넣음으로써 대롱 내 압력으로 딱 총알이 날아가게 만든 총. (당시 이 딱총에 많은 여학생들이 괴롭힘을 당했다.) 글 / 육천키로/옮김 |
첫댓글 멋진 글이네여 ...옛날생각이 대롱대롱 매달리넹 졸업식
요즘은 교실에서 스피커를 통해 치뤄지는 추세...아! 격세지감이여! 그리고 삭막함이여......도타운 정보다는 빨리 끝내고 짱께집 ^^ 갈 생각이 앞선다는.... 잠시나마 옛 생각에 젖어 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