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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족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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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스크랩 봉화,춘양일대의정자,서실..소천리,옥천터의옥천서당..
홍왕식 추천 0 조회 39 13.02.03 23:5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원경

왼쪽 측면 전경

전경

옥천서당의 건물구성.

옥천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건물은 산기슭의 사면을 문지르고 들어가서 자연석을 섞어쌓기 하여 터를 닦고 그 위에 건립되었다.

앞 선의 각재기둥 앞으로 폭 좁은 쪽마루를 두었다.

쪽마루는 좌·우 측면의 아래쪽 1칸 부분에까지 돌아간다.

쪽마루의 끝은 턱이 5cm 정도 높게 되어 있다.
이 각재 횡목에는 여기 저기 쪽마루의 판재를 걸치기 위해서 중간 중간 가느다란 각재를 끼워 넣은 사각형 홈이 보인다.

이 각재 횡목의 선은 직선의 강건한 모습을 잃고 어느 정도 무너져 있고, 부분적으로는 쳐져 있다.

그것은 위쪽 하늘을 구성하는 추녀의 곡선과 잘 어울린다.

추녀의 양 끝 부분 들림 현상은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추녀의 끝 부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추녀 전 영역에서 살펴진다.

3칸에 지나지 않는 짧은 추녀인데 들림 현상이 강하므로, 그것은 느슨하게 묶어 늘어진 빨랫줄의 곡선과도 흡사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추녀 선의 곡선이 늘어진 호선이므로, 그 아래쪽의 마루 끝 선이 직선의 강건함을 자랑하는 것이었다면 그 둘 사이에서 우리의 시선은 일정한 긴장상태를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루의 직선은 세월이 무너뜨려서 느슨하고 뭉툭하여졌다. 그것은 여전히 직선이기는 하지만 직선의 날선 모서리를 잃고 있다. 그렇게 세월에 의하여 조금 무너진 모습을 갖추었으므로 위 아래 이 두 횡선은 서로 잘 어울리는 짝이 되었다.
건물의 오른쪽 부분에는 정면 1칸, 측면 2칸의 통방이 있다.

이 칸의 앞쪽 벽면은 위 1, 아래 4 정도 비례로 횡분된다.

위쪽은 벽인데, 가운데 2개의 각재를 종으로 박아 넣어 3분하였다.

아래쪽은 가운데 2쪽의 방문을 달고 나머지는 백회칠을 하였다.

이 건물의 중안에는 역시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마루방이 있다.

마루방의 앞면은 벽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 부분에는 아래 문틀을 이루고 있는 횡목과 위 문틀을 이루고 있는 횡목 사이에 꽉 차는 긴 2쪽 방문을 중간에 달고 양쪽 측면은 역시 백회를 칠한 벽면으로 처리하였다.

자연히 오른쪽 끝 칸 벽의 공간 분할 양상과 중간 벽의 공간 분할 양상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방과 마루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일 따름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곳의 벽면들은 차이보다는 조화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왼쪽 끝 1칸은 앞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마루를 두고 뒤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방을 두었다.

그리하여 이 서당은 큰방 하나, 작은 방 하나, 큰 마루 하나, 작은 마루 하나의 균형을 갖추었다.

통방의 뒷벽과 큰 마루의 뒷벽에는 감실이 마련되어 있다.

작은 여닫이문을 4개 달고 있는 감실이다.

서당의 뒷벽에서 보면 이 2개의 감실은 옆 옆으로, 그러나 조금 높이가 달리 뒤쪽으로 매달리듯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당의 시선 방향은 남서향이다.
골짜기는 옆으로 펼쳐지고 시야는 도로, 시내를 횡단하여 건너 산기슭을 기어오른다.

건너편에서 산은 좌·우에서 다가드는 두 덩어리의 형체를 드러내고 있다.

오른편의 법전 쪽에서 다가온 산줄기가 뭉툭하게 맺히며 산기슭을 펼쳐내고, 그 자락에는 논 밭이 자리를 잡았다.

왼쪽의 임기 쪽에서 기어든 산줄기는 멈칫거리면서 다가와 법전 쪽 산줄기의 뒤 쪽으로 슬며시 잦아든다.

그 두 산줄기가 만나는 지점은 접힌 책처럼 주름져 있다.

그 주름 속에서 기어 나온 듯, 실지렁이 같은 농로 하나가 기어 나와 산기슭의 밭 사이를 헤집으며 내려와서 시냇가 제방길에 이르고 예각을 그리며 시내에 걸쳐져 있는 다리를 건넌다.

서당은 그 농로를 바라보고 있고, 그 위쪽의 산주름을 바라보고 있다.

길을 마련하는 것이 배움터임을 상징하는 것일까?

배출 인물

김진후(金鎭厚),김종락(金宗洛),김태식(金台植)
- 김시응 계열의 사람들


김시응(金時應, 1835~1905)의 자는 희연(希淵)이고, 통정대부이다.

묘는 이호에 있으며, 배위는 숙부인 진산강씨이고,

부친은 김진렬(金振烈), 모친은 전주이씨이다.
김시응의 장자는 김진후(金鎭厚, 1859~1899)이다.

자는 성도(聖道), 묘는 재산의 화산, 배위는 진성이씨이다.
김진후의 장자는 김종락(金宗洛, 1878~1953)이다.

자는 국양(國揚), 호가 영초(嶺樵)이다.

묘는 옥천 뒷산에 있다.

배위는 전주유씨이다.
김종락의 아들은 김태식(金台植, 1895~1949)이다.

자는 여삼(汝三)이며, 묘는 청산 미곡에 있고,

배위는 영양남씨이며, 후배위는 경주정씨이다.

아들은 김흥섭(金興燮)이다.

김흥섭의 아들은 현 종손인 김성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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