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4월 19일 ‘수사반장 1958’을 시작하면서 지상파 3사 드라마를 모두 보는 나날을 보냈다. 내가 봤거나 보고 있는 지상파 3사 드라마는 ‘수사반장 1958’외에도 3월 18일과 3월 29일 각각 시작한 KBS 2TV 월화드라마 ‘멱살 한번 잡힙시다’, SBS 금토드라마 ‘7인의 부활’이다. 3월 23일 시작한 KBS 주말극 ‘미녀와 순정남’도 있다.
금토드라마는 시간대가 겹쳐 본방 사수와 재방을 오가며 봐야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하는데, 월화드라마는 그렇지 않다. KBS도 한동안 그랬지만, MBCㆍSBS 같은 다른 지상파 방송은 월화드라마를 폐지한 지 꽤 되었다. 예능프로를 하다가 한참 있다 다시 돌아오곤 했지만, 그마저 옛일이 되어버린 모양새다.
아무튼 위에서 말한 3편중 가장 먼저 만나볼 드라마는 16부작으로 5월 7일 밤 종영한 ‘멱살 한번 잡힙시다’이다. 2026북중미월드컵 아시아2차예선 중계로 3월 26일(4회) 결방했지만, 전날 3~4회 연속 방송해 KBS로선 나름 공 들인 모습을 보여준 ‘멱살 한번 잡힙시다’라 할 수 있다. 시청률이 저조한 드라마치곤 꽤 각별한 편성이라 할만해서다.
한동안 ‘커튼콜’ㆍ‘두뇌공조’ㆍ‘오아시스’ㆍ‘어쩌다 마주친 그대’ 등 연달아 본방 사수도 했지만, 사실 KBS 2TV 월화드라마 보기는 오랜만이다. 2023년 5~6월 방송된 ‘어쩌다 마주친 그대’ 이후 10개월 만에 KBS 2TV 월화드라마 ‘멱살 한번 잡힙시다’를 본 것은 ‘본격 멜로 추적 스릴러’라는 선전 때문이다.
나름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멱살 한번 잡힙시다’ 1회 시청률은 2.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에 그쳤다. 최종회에서 찍은 3.8%가 최고 시청률로 나타났다. 8ㆍ12회에서 3.8%로 오른 적도 있으나 거기까지였다. 최저 시청률은 2.3%로 두 번이나 된다. 수도권의 경우 4.1%를 찍은 적도 있으나 전국적으론 4%를 넘어서지 못했다.
제작발표회에서 ‘공항 가는 길’(2016) 이후 8년 만에 KBS 드라마에 출연한 김하늘이 두 자릿 수 시청률을 말했는데, ‘택도 없는 소리’가 되고 만 셈이다. 16부작중 시청률 2%대가 10번, 3%대가 6번일 정도로 부진했다. 평일드라마 시청률이 금토드라마나 주말극에 비해 저조한 게 현실이긴 하지만, 좀 심한 경우라 해도 할 말 없게된 ‘멱살 한번 잡힙시다’라 할까.
‘멱살 한번 잡힙시다’는 방송국(KBM) 기자 서정원(김하늘), 전 남친이자 강하경찰서 강력1팀장 김태헌(연우진), 남편이면서 재벌 2세 소설가 설우재(장승조)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다. 그런데 강하경찰서는 얼마 전 끝난 SBS 금토드라마 ‘재벌X형사’에도 나온다. 극본을 쓴 작가가 김바다ㆍ배수영으로 각각 다른데, 두 드라마의 경찰서 이름이 어떻게 똑같은지 되게 신기하다.
네이버에서 연재된 웹소설 ‘오아뉴-멱살 한번 잡힙시다’가 원작으로 알려졌는데, 강하경찰서 강력1팀도 같다. 팀장만 각각 여형사인 박지현과 연우진이 연기한 게 다를 뿐이다. 아무튼 정원ㆍ태헌ㆍ우재의 서로 얽히고 설킨 이야기는 사랑 혹은 불륜을 한 축으로 한다. 다른 한 축은 우재의 뺑소니 사망사고를 아버지 설판호(정웅인)가 은폐해서 생긴 온갖 범죄 이야기다.
먼저 자꾸 궁금증을 갖게해 다음 회를 기다리게 하는 관심 끌기가 ‘멱살 한번 잡힙시다’의 강점이다. 특히 신경정신과 의사인 유윤영(한채아)의 사이코패스 같은 우재 사랑하기가 바짝 긴장감과 함께 서늘한 공포감을 불어넣는다. 따라서 윤영의 죽음(11회)은 서늘한 공포감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대신 종영까지 무슨 내용이 이어질지 또 다른 궁금증을 자아내는 윤영의 죽음이다.
아니나다를까 윤영 설정은 곁가지일 뿐으로 드러난다. 우재가 고교시절 첫사랑 이나리(이다연)를 차로 친 후 판호에게 전화해 모든 게 뒤바뀐 불행의 씨앗으로 드러나서다. 가령 우재가 바람을 핀 배우 차은새(한지은)가 그의 뺑소니 범행 사실을 알게되자 판호가 비서 공준호(정호빈)를 시켜 죽여버린 것으로 나타나는 식이다.
‘멱살 한번 잡힙시다’는, 어느 매체 지적대로 “빈틈없는 촘촘한 전개와 치밀한 복선으로 시청자들의 심장을 쥐락펴락하게 만들며 멜로 추적 스릴러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전자신문인터넷, 2024.4.24.)는 재미진 드라마다. 나로선 이런 드라마가 왜 방송 내내 저조한 시청률을 보이다가 막을 내렸는지 의아스럽다.
이 매체는 “엔딩 소름 돋아 다음주까지 어떻게 기다려”, “사건 나올 때마다 긴장 돼서 심장 터질 거 같아” 등 시청자 반응을 전하기도 했는데, 그게 믿기지 않을 만큼이다. 그러고 보면 높은 시청률과 괜찮은 드라마가 꼭 정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해도 될 듯하다.
‘멱살 한번 잡힙시다’의 또 하나 강점은 불륜이되 불륜같지 않게 그려낸 심리적 디테일 묘사다. 현실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을까 싶은 장면도 있지만, 방송 전부터 내세운 ‘본격 멜로 추적 스릴러’다운 전개가 그렇다. 유부녀의 불륜을 ‘저 나쁜 년’하지 않게 만드는 건 사실 보통 재주가 아니다. 또다시 저조한 시청률이 의아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가령 “나 어떻게 해”를 반복하며 흐느낀 데 이어 기다려 달라고 한 정원의 고백을 예로 들 수 있다. 정원은 임신 사실을 알고선 “잊어달라며 당분간 연락하지 말자”고 태헌에게 말한다. 미치고 팔짝 뛸 일이 벌어졌는데도 태헌의 정원에 대한 사랑은 요지부동이다. 태헌은 “집착이 아니라 사랑임을 깨달았다”며 우재를 인정하기도 한다.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집착하는 윤영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우재의 정원에 대한 사랑 역시 만만치 않다. 태헌에게 직접 임신 사실을 알려주며 정원을 편하게 해주라고 하는가 하면 일견 닭살 돋는 멘트도 날린다. “내 인생의 유일한 진짜는 너였어”라든가 “집에 온통 니 흔적뿐이라 니가 더 미치게 보고 싶어서”라며 애끓는 마음을 전하는 식이다.
또 하나 미덕은 제법 통쾌한 결말로 드라마를 끝낸 점이다. 도지사 모형택(윤제문)에 대한 단죄가 유야무야해 아쉽지만, 대죄를 지은 범죄자들의 자살 따위의 안이한 처리가 아니라서다. 물론 3년 후 판호의 무죄 선고나 검거된 공비서에 대한 형량이 그려지지 않은 단죄가 다소 맥빠지게 하긴 하지만, 법의 심판을 받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허술한 구석이 있어 아쉬움을 준다. 가령 10회에서의 유골함 열기가 그렇다. 내가 직접 겪어 봤는데, 유골함이 그렇게 누구나 열 수 있는 게 아니다. 태헌이 사진을 찍는 등 증거확보 차원의 설정으로 보이지만, 그렇게 열려면 그럴만한 사전 접촉 장면이 나와야 했다. 입원중인 태헌이 공비서 검거 소식과 함께 멀쩡한 모습으로 직방 경찰서에 나타나 취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딱 한번뿐이지만, “혹시 입더슨(입덫은→입더츤) 해”(12회)에서 보듯 발음상 오류도 좀 아쉽다. 저조한 시청률을 보이는데도 다른 지상파처럼 없애지 않고 이어나가는 KBS 2TV 월화드라마가 가상할 정도지만, 그런 오류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