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

[Hantikim(김진태)]

몇년 전에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 모임이 창립되었다. 유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어 도움보다는 문제를 일어키기 쉽다. 그래서 사회에 되돌려 주어, 뜻있고 보람있게 쓰자는 취지인 것 같다. 나도 이 모임의 발기 이념에 충분히 공감하며 언제가는 같이 행동할 작정이다.

요즈음 신문에 심심치 않게 유산에 관한 기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유산을 가지고서도 형제간에 또는 모자지간에 법적 투쟁을 불사하는 추악한 모습은 우리들을 실망케 한다.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면서 집안이 콩가루가 되어 망신을 당해 가면서도 자기 지분을 찾으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허망한 짓인가.

몇년 전 경기도에서 부모님을 위해 집도 지어드리고, 땅도 사드렸는데 고향을 지켰는 막내가 재산을 다 차지하여, 이에 격분한 형이 동생을 살해했는 기사가 있었다. 근래엔 자기들에게 불리하게 유언을 증언하고, 혼자서 유산을 독차지 했다고, 삼형제들이 공모하여 누나를 정신병자로 만들어 감금했는데, 겨우 탈출하여 삼형제를 도로 감옥에 넣은 씁씁한 이야기도 있었다.

이때껏 이러한 유산 싸움은 욕망의 극치를 달리는 인간 이하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유산 싸움을 남의 집 불구경 하듯 멀리서 물끄러미 구경하였는데, 창피스럽게도 어느 날 나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슬하에 2남5녀를 두었다. 이 중 장남인 나는 많은 기대와 사랑속에서 서울까지 유학하게 되었는데, 부모님의 벅찬 뒷바라지에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공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식들 공부시키면서 빚진 부채를 가장 먼저 해결 해드렸다. 그래서 종갓집도 건재할 수 있었고, 형제들의 추억을 계속 더듬어 갈 수가 있었다. 그 후 25년이 흘렀다. IMF체제하에 형제 모두가 힘들었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 가셨다. 장남에게 종갓집을 상속한다는 공정서 한 장 남기시고. 그런데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종갓집을 지키려 했고, 여형제들은 하나가 되어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겠다고 했다. 유류분을 달라는 것이다. 유류분이란 한 사람에게 모든 재산을 상속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법적 상속분의 2분의1인데, 상속인 중 누구라도 법에 호소하면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뒤에 법적인 수속과 판결날 때까지의 두서너 달의 그 시간은 내가 살아온 50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가끔 도착하는 법원 봉투의 구석에 붉게 사선으로 그어진 행정서류가 도착할 때는 저승사자가 오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 때의 그 심정은, 형제의 우애와 의리, 가문의 전통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잘라버리는 것 같았다. 주위엔 인간은 보이지 않고 불신과 배반, 이기심과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집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이 사라진 시점에서 유산분배란 너무나 허무한 것 이었다. 여형제들이 요구하는 대로 언젠가는 유류분 이상을 준다고 약속했다.

그 유산 문제가 있은 뒤로, 나는 그렇게도 지키려는 고향이 사라져버렸다. 나들이 할 때도 고향의 반대 방향으로 갔으며, 사업장을 이전하면서도 고향의 반대방향으로 이전 하였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나의 심경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동안 사업을 너무 방만하게 운영 하다보니, 형제들을 다독그리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나보다도 더 힘들게 살아가는 형제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무 현실에 집착하여 아웅다웅했는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생각되었다. 그 뒤로는 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나의 의무를 먼저 하는 각오로 무척이나 노력했다. 가기 싫어도 억지로 가려고 했고, 명절이나 굿은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앞에 서려고 했다. 종갓집에서 나오는 집세는 우애기금으로 만들어 형제간에 도울 일이나 축하해 줄 일이 있으면 예전의 몇배 이상으로 하려고 했다. 그러나 엎지른 물을 담을 수가 없듯이, 옛날의 그 훈훈하고, 든든한 유대감은 아직까지 느낄수 없는 걸 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야 될 것 같다.

불교철학에서 물질적으로 남을 돕는 재물 보시보다, 정신적으로 남의 성장을 돕는 법의 보시, 즉 법시를 더 높은 수준으로 보고 있다. 집 한 채를 물려주려 하다가 난리와 불화를 초래하기 보다는 차라리 삶의 지혜나 훌륭한 가치관, 인품, 베푸는 좋은 습관과 같은 정신적인 유산이 자손들에게 더 큰 교훈과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강철왕 카네기는 ‘상속은 자식들의 재능과 에너지를 망치게 하는 것이다’ 고 말했듯이 나도 앞에서 말한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 의 취지처럼 유산은 사회에 되돌려 주어, 더 살기 좋은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동조하고 싶다.

[백암 김진복]

유산은 남은자들에게 선을 주는 것보다 악을 주는 경우가 많음을 주위에서 많이 보아왔습니다. 유산이 없으면 좀 서운하겠지만
없는 편이 속 편하다는 생각을 가끔 해 봅니다. 우리 사회에 언젠가는 donation이 일반화되는 날이 오겠지요.

[방거사(방종현)]

재산은 많을수록 좋지요 분배가 참 어려운일 입니다 김진태님의 고뇌에찬 결정을 지지합니다.

[눈꽃그림자(김황태)]

참! 돈 그것이 무엇인지?

[초록아해(김 지숙)]

허물어진 유대감을 차곡차곡 튼실하게 잘 복원되기를 바랍니다.
저에게도 당면한 문제이기에 김 진태 선생님의 사연이 더욱 공감이 간답니다..

[호수(조경희)]

내 것으로 쌓지 않고 내어 놓는 일.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지요,
내어 놓은 일에 더 많이 노력하면 살아보겠습니다. 글 잘 읽었나이다.

[안미화]

비슷한 경험이 있어 공감이 많이 갑니다. 돈이란, 많아도 걱정, 없어도 걱정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대복]

유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아름다운 운동에 동참합니다. 김진태님의 좋은 글, 좋은 생각에 박수를 보냅니다. 마태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