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일기’에 따르면 복자 구한선 타대오(1844~1866)는 함안 미나리골 출신입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복자 구한선은 어느날 우연히 천주교 신자를 만나 교리를 듣고는 즉시 이를 받아들여 성 다블뤼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른이 된 후 소촌 교우촌에서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다가 병인박해 직전 리델 신부(1869년 조선교구 6대 교구장이 되심)의 복사로 선택되어 고성 통영 교우촌을 지나 거제도까지 전교 활동에 동행했습니다. 박해가 일어나자 리델 신부는 충청도로 떠나고 복자 구한선은 진주 인근에서 지내다 붙잡혔 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며칠 동안 혹독한 문초를 받았습니다. 선교사의 거처와 교우촌에 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심한 매질과 고문으로 성한 곳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복자 구한선은 흔들림 없는 신앙으로 배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옥에서 주요교리를 설명한 글을 적어 관장 부인에게 전하기도 했습니다. 부인은 관장에서 복자 구한선을 석방해 주도록 요청했고, 이로 인해 더 혹독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게 되자 관에서는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결국 본가로 돌아온 뒤 칠 일 만에 장독으로 죽었습니다(그래서 순교자들이 고문 후유증으로 죽었을 때 쓰는 말인, ‘장하치명’으로 순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의 나이가 스물 셋이었습니다. 순교자 묘는 1959년에야 처음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교우들은 대산면 하기리 신대마을 신씨 묘역 안에 있던 순교자 묘소를 참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외교인 묘역 안에 있음을 안타깝게 여긴 교우들은 1976년 9월 묘소를 평림리 가등산으로 이장하였습니다. 순교자가 시복된 뒤, 순례자들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2016년 10월 복자의 유해를 대산 성당에 모시고 새롭게 성지를 조성하였습니다. 미사는 일반 본당이기 때문에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소는 경남 함안군 대산면 대산중앙로 183이고, 전화는 055-582-8041입니다. 마산교구 대산성당 구한선 타대오 성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