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킬로, 나를 찾아 나선 여행
황규환
2004.10.31. 새벽 2시
얕은 잠에서 깨어나 서둘러 밤참을 먹고 자동차를 몰아 경기도 분당으로 향했다. 새벽길은 걸거침이 적은 터라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분당의 성남 제2종합경기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그 동안 별러왔던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는 날이다. 이른 새벽, 여기저기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눈빛을 곧추세우고 옷차림을 갖추랴 준비 운동을 하랴 분주하게 움직인다. 달리기가 일상화·신념화된 사람들, 이 새벽에 응원하는 가족도 거의 보이지 않는 가운데 외로이 낯선 곳에서 서로 만났다. 동병상련이랄까 왠지 쓸쓸한 연민의 정과 함께 동지애가 솟는다.
새벽 5시, 분당 탄천의 밤공기를 가르는 총성과 함께 120여 명의 달림이들은 출발선을 넘어 물결처럼 앞으로 쏟아져 나아간다. 머나먼 길을 달려야 하기에 선두 외에는 서두르는 이가 없다. 희미한 가로등 빛을 어깨에 둘러맨 채 나도 그들과 함께 기나긴 여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달리기와의 인연으론 운동 삼아 인근 학교 운동장이나 동네 공원에서 가끔씩 달리곤 하다가 지인의 권유로 10킬로 대회에 참가하여 완주하면서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1년 춘풍이 지나고 녹음이 우거진 6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신발 가게의 마라톤화와 선을 보게 되면서 달리기를 벗 삼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9월, 문산-파주 지역에서 열리는 통일마라톤 하프 코스에 참가하게 되었고, 이듬해 SAKA에서 주관하는 3.1절 마라톤에서 하프 경력을 추가한 뒤, 2002년 4월 28일 인천일보에서 주최하는 영종도 마라톤 대회에 풀코스 초보 명함을 내밀게 되었던 것이다.
그 해 4월 하순의 날씨는 매우 더웠다. 낮 11시에 벌써 20℃를 오르내리고 낮 최고 기온이 26℃에 이른다는 예보가 있었다. 첫 대회출전의 설렘과 걱정스러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출발의 총성이 울렸고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반환점까지 잘 돌았는데 25킬로 지점에 이르자 ‘아차차!’그 놈의 下門 콤플렉스가 도지는 것이 아닌가! 풀코스를 달리다보면 배고픔의 고통이 있다는 말을 귀동냥하곤 꾸려간 간식을 달리기 전에 이것저것 먹어치운 것이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페이스메이커를 떠나보내는 안타까움도 잠깐, 서둘러 자원봉사 학생으로부터의 휴지 동냥으로 야외 벌판에서 많은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다. 얼굴을 두 무릎 속에 파묻은 5분여의 시간이 그렇게도 긴 줄은 미처 몰랐다.
다시 힘내어 달리면서 다가오는 고통,, 풀코스 첫 경험이기에 언제 끝날 줄 모를 고행길이 이어졌다.
‘내가 지금 왜 이걸 하고 있지?’ 하며 고통을 벗어나고픈 혼란스런 느낌이 순간순간 다가왔다.
‘이번만 하고 다시는 하지 않을거야.’ 하는 다짐과 함께...
그러면서도 흐느적거리며 달리다보니 어느새 결승점, 피니쉬라인을 통과한 기록이 4시간 15분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위권 이상의 꽤 괜찮은 기록이었다.
이때의 경험이 이후의 마라톤 대회 운영에 큰 도움을 주었다. 모든 일은 첫 출산의 산고처럼 첫 경험이 가장 힘들다는데 공감한다. 지금은 달리고 난 뒤 음식을 잘 먹을 수 있지만 첫 대회에서는 그저 물만 먹히고 만사가 귀찮은 채 몸이 파김치가 되는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다시는 달리지 않겠다는 다짐도 건망증 환자처럼 모두 잊고 어느새 또 주로 위를 달리고 또 달렸다. 첫 도전 이후 일 년에 두서너 번 춘천, 여주 등의 풀코스 대회를 오가며 참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100킬로를 달린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했다. 그러던 것이 5킬로, 10킬로, 하프, 풀코스 참가로 발전하였고, 드디어 100킬로 울트라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이 모두 좋은 친구와의 인연이고 달리기 모임인 ‘건백추’와의 만남 덕분이었다. 달리기를 즐기는 모임의 일원이 되지 않았다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란 속담이 있는데 나는 이렇게 고쳐 말하고 싶다.
'건백추 그늘에 울트라 삼백리.'라고...
'역사는 우연을 매개로 필연을 관철한다'는 말이 있는데 오늘에 이르러 그 말이 실감이 난다.
바람결에 차가운 새벽 공기가 반팔 셔츠와 팬티아래 드러난 살갗을 파고든다. 물결처럼 이어져 나아가던 행렬이 차츰 늘어지더니 띄엄띄엄 끊어지기 시작한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여 달리는 여성은 예닐곱 명 정도, 그들을 지나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와!” 하는 감탄사를 내지 않을 수 없다. 달리는 모습이 남자들 못지않게 당당하다.
10킬로를 지날 즈음 부옇게 먼동이 터 오기 시작한다. 번호표를 달고 이른 새벽부터 달리는 풍경이 낯선 듯 일찍 운동을 나온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든다. 사실 본 대회에 참가하게 된 가장 큰 까닭은 참가비가 착한 맛에 끌렸기 때문이다. 서울마라톤은 참가비가 15만원인데 내가 참가한 동아시아마라톤은 접수순에 따라 최저 8만원이었다. 단순한 경제논리에 따라 신청을 하였는데 신청 마감이 다가와도 참가자의 수가 별반 늘어나지 않았다. 서울마라톤은 참가자가 600여 명에 이르는데 반해 이쪽은 130여 명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제한 시간이 서울마라톤은 15시간인데 이쪽은 12시간이어서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여러 道伴들과 함께 달리는 인생이 힘이 적게 드는 법인데 어찌 외로이 100킬로를 달릴 것인가.'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잠시 혼란스러움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15킬로를 지나면서 몸이 풀리기 시작하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져 온다. 어느새 아침 햇살이 늘어선 아파트 사이를 비집고 나와 길바닥에서 마중한다. 차갑던 공기도 솜털처럼 부드러워졌다. 20킬로를 지나고 어느새 30킬로 지점이 다가온다. 30킬로 지점에는 김밥이 준비되어 있었다. 12시간을 달리는데 배를 채우지 않으면 허기가 져서 달릴 수 없기에 김에 둘둘 말아놓은 속이 없는 김밥을 우물우물 어설프게 씹은 다음, 된장국과 함께 열심히 밀어 넣었다.
30킬로를 지나면서 아파트 숲이 멀어지더니 시야가 탁 트이고 가슴이 시원해진다. 냇가 모래톱 위의 갈대들이 가는 허리를 흔들어대고, 달리기 도로 옆의 둔덕에선 초목들이 갈색 화장을 하고 제멋에 겨워 흐느적거린다. 늦가을의 풍경이 너무나도 평화롭다.
동아시아 코스는 분당의 자전거 도로를 고샅고샅 훑은 다음, 탄천을 거쳐 양재천으로 한참동안 거슬러 오르다가 다시 돌아오는 왕복 코스이다. 코스는 하천을 끼고 있기에 평탄하였다. 코스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20킬로에서 25킬로 지점에 위치한 분당 동편의 율동공원 호수 주변이었다. 가며오며 이 지점에서 피로감이 확 줄어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는데 숲이 우거지고 풍광이 좋아서인 것 같다. 그런데, 반환점인 50킬로 지점이 다가오니 그 동안 잠잠하던 종아리와 허벅지의 근육들이 조금은 피곤하다는 듯이 파르르 신호를 보내온다. 하지만 나름대로 연습을 했기에 아직은 충분히 견딜 만하다. 이번 대회에 대비하여 중랑천, 미사리, 춘천 등지의 여러 대회를 오가며 30~47km 거리를 10회 이상 연습했기 때문이다. 삶에는 때로 보약이지만 마라톤에는 쥐약인 알코올도 10월 3일로 마감하곤 4주 동안 접근 금지령을 내리고 얼씬도 하지 않았다.
양재천 반환점의 건너편을 보니 다른 울트라 마라톤 대회의 터닝 지점이 보인다. 멀리서 보니 무엇인지 모르지만 음식물이 풍성하게 쌓여 있다. 거기에 비해 이쪽은 참으로 알량하다. 낸 돈도 적은데다 참가자도 적은 터이다. 그런데 나중에 건너편 대회의 참가자에게 들으니 음식물을 짧은 거리마다 너무 많이 쌓아 놓아 오히려 달리는 데 지장을 받았다는 게 아닌가. 풍요로움 속의 아이러니랄까.
60킬로를 지나면서 전라도 광주에서 왔다는 달림이가 앞서 가다가 내 옆에 따라붙는다. 30대 후반 쯤 되어 보이는데 이미 자세가 많이 흐트러져 있다.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잘도 참아낸다. 냉정하게 혼자 나아가지 못하고 속력을 맞춘다. 장거리 연습을 얼마나 했느냐는 내 물음에 30킬로와 풀코스를 한 번씩 했단다. ‘아하, 동반주는 얼마 못 가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이내 머리를 스친다. 동반주자가 65킬로 지점에 급수대에 이르러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인삼 뿌리를 내민다.
물을 마시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그 사람은 인삼의 효과를 보지 못하였는지 출발하려는 기색이 없다. 다시 혼자가 되어 달린다. 65킬로를 지나면서 피로감이 종아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하더니 무릎 관절도 작은 소리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드디어 걱정했던 일이 엄습함을 느끼며 온전하게 완주할 수 있을까 점점 불안해진다. 출발지에서 30킬로 지점이었던 70킬로 지점에 이르러 다시 속없는 김밥을 열심히 구겨 넣는다. 끼니를 때우는 것이라곤 속없는 김밥과 된장국뿐인데 불평하는 이는 없다. 아마도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고마운 감정 때문이리라. 울트라 마라톤을 달리며 크게 느낀 감동이라면 바로 자원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봉사였다. 파이팅을 외치며 함께 달려주는 봉사자, 파스를 뿌려주면 마사지까지 해 주는 봉사자의 헌신은 이제까지 경험했던 것을 뛰어넘는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70㎞지점 너머부터는 발뒤꿈치와 종아리에 무거운 납덩이를 하나 매단 채 달린다. 모든 일은 7부 능선이 가장 힘들다더니 이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출발할 때는 찬바람도 어둠도 싱그럽고 시간의 흐름도 가벼웠는데 햇살 고운 이 시간엔 모든 즐거움이 사라지고 그저 모든 것이 힘들고 무겁기만 하다. 왜 이리 시간과 공간은 변화가 없는지... ‘아! 고통스럽다.’ 내 육신의 고통이 시공을 멈추게 한 것인지 아닌가 싶다. ‘힘들면 잠시 걷는 게 어때?’ 몸의 내부에서 유혹을 한다. 그 유혹이 아주 달콤하게 들린다. 한편에선 ‘안돼, 한 번 걸으면 계속 걷게 돼. 그럼 끝장이야.’하며 채찍질하는 소리도 들린다.
유혹을 뿌리치는 대신 아주 천천히 나아간다. 5킬로 지점마다 멈춘 다음 다시 달릴 때마다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서 힘이 든다. 관성의 법칙은 모든 현상과 사물에 작용하는 것이 틀림없다. 75킬로 지점에서 평소에 안 해보던 에어파스를 뿌린다. 근육과 관절의 달궈진 체온을 내리기에 좋다는 말에 마구 뿌려댄다. 그래서일까 75㎞ 지점을 지나면서 차츰 종아리에서 납덩이가 떨어져 나가며 발걸음이 다시 가벼워져 온다.
오! 참으로 신비한 인체여... 그제서야 다시 주위의 사물들이 제 모습대로 보이기 시작하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도 들려온다. 육체가 영혼에게 큰 소리로 외치는 듯하다.
'네 이놈, 내가 너를 이렇게 온전히 지배할 수도 있음을 알겠느냐?’
85㎞를 넘어서면서 다시 힘이 부치기 시작한다. 발바닥이 화끈거리고 발꿈치도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앞선 주자들의 어깨를 계속 지나쳐 나아가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드디어 90㎞지점에 다다르자, 많은 주자들이 파김치가 된 채 깔아놓은 돗자리 위에 이리저리 나뒹굴어 있다. 나도 뒤질세라 파김치가 된 몸을 그 무리 안으로 내던졌다. 잠시 후 몸을 가누고 바나나와 물을 섭취하곤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였다. 풀코스에서는 기록에 신경이 쓰여 스트레칭을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었으나 이번 대회는 5분, 10분이 문제가 아니므로 20킬로가 지나면서 5킬로마다 스트레칭을 1~2분 정도씩 꼭 실시하였다. 그런데 나처럼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냥 앉아서 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시계를 보니 시침도 반 바퀴 가까이를 돌아 3시를 지나고 있었다. 마음을 굳게 가다듬고 마지막 10킬로 너머 피니쉬 지점을 향해 출발했다. 이 지점에서 만나는 주자들은 대부분 허리가 꼬이고 다리가 뒤틀려 있다. 나는 스트레칭의 효과를 보아서인지 무릎과 종아리가 고통을 잘도 견뎌낸다. 지금까지 두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새로운 기운이 솟아나니 참 신통도 하다. 힘을 내다보니 대여섯 명의 주자들을 앞서나간다. 어느새 저 멀리 대회장에 높이 띄운 애드벌룬이 눈에 들어온다.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면서 애드벌룬이 점점 다가오며 결승선에 가까이 이르니 낯익은 반가운 님이 손을 흔들며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결승선 너머에선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102번을 연호하며 내 이름을 열심히 불러댄다. 결승선 테이프를 끊으며 대형 디지털시계를 보니 11:15:10이란 숫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지인들이 나에게 묻는 공통적으로 묻는 말이 있다. 왜 그리도 먼 길을 달리느라 고생을 하느냐고...
그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여 얻은 답은 의외로 간명하다.
달리기를 하면서 마음이 평온해지고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나에게 달리기는 시공을 넘나드는 여행이다. 달리면서 온갖 상상을 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든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존재를 되돌아보기에 좋은 기회이다. 달리기를 하면서 고독을 향유하며 자유로움을 한껏 느낄 수 있음은 내가 신으로부터 받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보름이 지난 아직까지도 발꿈치에 통증이 남아 있지만 영광은 땀 배인 상처 뒤에나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오히려 훈장처럼 느껴진다.
마라톤...
그건 내 삶에서 만난 가장 멋진 일이고, 삶의 행복한 동반 여행자이다.
“님아! 그날 너무 고마웠어요.”
#위는 대회가 끝난 며칠 후 소감을 적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