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 스토리 - 알렉산더 워커 지음

[삼족오]

오드리 헵번 스토리

알렉산더 워커 지음

북북서 / 2008년 9월 / 550쪽 / 19,800원

▣ 저자 알렉산더 워커

아일랜드 태생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1960년부터 런던의 「이브닝 스탠더드」지에서 영화평론가로 활동한 그는 브리티시 프레스 어워드에서 올해의 비평가상을 세 번이나 수상했으며, 예술문학훈장을 받은 훈작사(Companion of the Order)이기도 하다. 영화와 영화배우에 관한 책을 스무 권 이상 썼으며 오드리 헵번 스토리를 비롯하여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그레타 가르보, 비비안 리, 존 크로포드, 그리고 베티 데이비스 등의 전기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런던에 살고 있으며 원고 집필과 독서, 영화와 비디오 감상 등에 몰입하고 있다.

▣ 역자 김봉준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KBS문화사업단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출판물을 만들었다. 오랜 취재 활동과 편집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번역과 출판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 Short Summary

이 책은 마치 비밀리에 고용된 사립 탐정처럼 오드리 헵번의 일생을 연대기처럼 쫓고 있다. 격동과 변화의 역사 속에서 그녀가 마주해야 했던 다양한 사건을 마치 영화처럼 보여주며, 이를 통해 영화배우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녀가 느낀 삶의 고뇌는 어떤 것이었는지 밝혀낸다. 그렇게 밝혀낸 많은 진실들 속에는, 오드리 헵번의 이름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비화, 그녀가 출연한 수많은 고전 명작의 촬영 뒷이야기, 결혼과 이혼 그리고 마지막 사랑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가 평생을 감추고 싶어 했던 가족사에 얽힌 비화까지 들어 있다. 또한 그녀가 『로마의 휴일』에서 보여주었던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사람들은 오드리 헵번을 그저 영화배우로만 쉽게 떠올린다. 그녀의 사랑과 로맨스와 화려함을 연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좌절과 외로움과 철저한 자기 훈련이 있었다. 성공한 뒤에도 오만하지 않았고 불행 속에서도 행복을 꿈꾸고 자기관리에 철저했던 강철 같은 여성의 모습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특히 마지막으로 행하고 갔던 유니세프에서의 활동은 울음을 삼키게 하는 감동과 더불어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숭고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돈과 명성과 성공을 목적으로 삼는 우리의 부끄러운 인생관을 성찰하게 한다. 입 주변과 눈가에 생겨난 주름들을 ‘내 웃음선’이라고 표현했던 오드리 헵번의 내면세계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담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정체를 깨닫게 될 것이다.

▣ 차례

그녀를 떠올리는 프롤로그_ 어린 시절로 가는 길

첫 번째 이야기 - 가족사에 얽힌 비밀

두 번째 이야기 - 언제 죽을지 모르는 소녀

세 번째 이야기 - 춤추는 작은 아가씨

네 번째 이야기 -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충고

다섯 번째 이야기 - “저길 봐, 나의 지지야!”

여섯 번째 이야기 - 전하!

일곱 번째 이야기 - 그녀 인생의 남자들

여덟 번째 이야기 - 사랑과 증오

아홉 번째 이야기 - 남편과 아내

열 번째 이야기 - 정상회담

열한 번째 이야기 - 예쁜 얼굴

열두 번째 이야기 - 퍼니 페이스

열세 번째 이야기 - 과로와 스트레스

열네 번째 이야기 - 골든 베일

열다섯 번째 이야기 - 뜻밖의 실패를 만나다

열여섯 번째 이야기 - 아침을 먹으러 온 여자

열일곱 번째 이야기 - 백만 달러의 여인

열여덟 번째 이야기 - 패션 그리고 사랑에 관하여

열아홉 번째 이야기 - 길 끝에서

스무 번째 이야기 - 의사의 아내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위안을 주는 것들

스물두 번째 이야기 - 인생의 좋은 반려

스물세 번째 이야기 - 친선대사 이야기

스물네 번째 이야기 - “내 인생 최고의 크리스마스”

에필로그_ 페어 레이디, 하늘로 초대되다

옮기고 나서

오드리 헵번 스토리

알렉산더 워커 지음

북북서 / 2008년 9월 / 550쪽 / 19,800원

가족사에 얽힌 비밀

오드리 헵번은 평생 자신의 유년시절을 숨기려고 애썼다. 아버지의 배경과 그로 인해 겪은 비극 때문이었다. 사실 오드리는 자기 아버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아버지 조셉 빅터 안톤 헵번 러스턴은 진실을 숨기는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의 할아버지 존 조셉 러스턴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벨기에의 선박회사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였다. 그런데 회사 사장이 죽자 그 미망인 이사벨라와 결혼했다. 이사벨라는 자신이 메리 스튜어트의 두 번째 남편 존 헵번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다시 돈 많은 오스트리아 여성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둘 사이에는 네 아이가 있었는데 이들은 속물적인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들은 생모 대신 이사벨라 헵번을 자신들의 친어머니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멀게나마 왕가와의 인맥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셉 러스턴은 헵번 러스턴이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헵번 러스턴이 사용할 자격이 없는 이름 ‘헵번’은 딸 오드리가 사용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름이 되었다.

조셉 러스턴은 여러 면에서 불투명했다. 그는 매력적인 용모와 화려한 말재간으로 사교클럽에서 인기를 얻었으며, 또한 숫자에 강한 재능을 이용하여 국제투자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남태평양과 동인도 제도에서 벌인 사업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이 무렵 그는 1년 동안 자바의 명예 영사로 재직하다 해직되었는데, 이때 오드리의 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오드리의 엄마 엘라 반 힘스트라는 남작의 직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네덜란드의 귀족 태생이었다. 1920년대 초 러스턴을 만났을 때 그녀는 신혼여행 중이었다. 엘라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젊은 귀족과 결혼했고 수리남에 총독으로 파견되어 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러스턴을 알게 되었다. 이때 러스턴은 부인과의 이혼을 고려 중인 상태였다. 엘라는 네덜란드로 돌아왔으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남편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낳았지만 이혼을 선택하고 러스턴이 있는 자카르타로 갔다. 그리고 1926년 9월 7일 결혼식을 올렸다.

엘라와 러스턴은 벨기에의 브뤼셀에 정착했다. 그리고 1929년 5월 4일 오드리가 태어났다. 조셉 러스턴은 브뤼셀에서 영국은행의 지점장 역할을 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당시 영국은행의 지점은 없었다. 이에 대한 의문은 그의 의심스런 활동과 결부된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그는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당을 지원하는 정보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모르나 분명한 점은 그가 점점 파시즘과 결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러스턴 부부는 점점 우익 성향의 정치 철학에 빠져들었다. 엘라에게는 먼 유대인 친척도 있었으나 초기 히틀러의 사상은 자신의 가족이 속했던 지주와 귀족 계급에게 먹혀들고 있었다. 엘라와 러스턴은 둘 다 강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에 자주 다퉜다. 오드리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커지면 식탁 밑으로 숨은 적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런 경험은 오드리가 결코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소리를 지르지 않는 절제력이 강한 사람이 되게 했다.

오드리에게 부모의 다툼보다 더 큰 두려움은 이혼이었다. 1935년쯤 엘라가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돌아온 날,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과 오드리의 유모 그리고 남편이 함께 침대 위에 있었다. 이 남자를 선택하기 위해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고 첫 번째 남편과 이혼했던 엘라의 낭만적인 기질은 환멸감으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부부간에 격렬한 고성과 몸싸움이 지나간 후에 헵번 러스턴은 집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때 오드리의 나이 여섯 살이었다. 이후 조셉 러스턴은 나치당과 관련된 일에 본격적으로 임하다가 1940년 7월 체포되어 5년 동안 수감생활에 처하게 되었다.

춤추는 작은 아가씨

엘라는 아이들을 데리고 네덜란드의 아름헴에 있는 가족의 영지로 갔다. 오드리는 이때부터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1939년 오드리의 열 번째 생일 바로 전에 전쟁이 발발했다. 반 힘스트라 집안은 독일군에게 재산을 몰수당했고 엄마는 지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드리의 이복 오빠 중 한 명이 독일의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 하지만 오드리의 발레 수업을 계속되었다. 엘라는 카드브리지를 가르쳐 번 돈으로 오드리의 수업료를 지불했다. 그러나 집회금지와 등화관제 등의 규제로 오드리의 발레 수업도 중단되었다. 오드리는 밤이면 등화관제 커튼 뒤에서 다 떨어진 발레 슈즈 대신 슬리퍼를 신고 공연을 했다. 공연이 끝난 후 모자를 벗어 거둔 돈의 일부는 생활비에 보태졌고 나머지는 레지스탕스의 자금으로 지원되었다. “나는 거의 진정한 어린이가 아니었어요.” 그 시절에 대한 그녀의 결론이다. 오드리는 친구도 거의 없었고 십대에서 흔히 일어나는 즐거운 일도 없었고 안전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기차역에서 화물 기차에 실려가는 유대인들을 보았다. 그중에는 오드리 또래의 아이들도 있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전쟁은 점점 더 고통으로 다가왔다. 할머니, 삼촌, 숙모까지 한집에서 살게 되면서 하루를 한 끼 식사로 연명해야 했다. 게다가 판사였던 삼촌이 게슈타포에 연행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연합군의 공격이 있고 난 후 보복의 표시로 처형되었다. 1944년 9월, 연합군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독일군의 가혹한 보복이 시작되었다. 오드리 가족은 폭격을 피해 떠나는 10만 명의 피난 행렬에 합류했다. 그중 3천 명이 탈수와 질병으로 사망했다. 오드리 가족은 할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던, 아른헴에서 멀지 않은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러나 곧 온갖 종류의 비참한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몰려와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오드리는 먹을 것을 찾아 아른헴으로 갔다가 폭격이 심해져 몇 주 동안이나 지하실에 숨어 지냈다. 그러다가 거의 기다시피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빈혈과 부종에 황달까지 앓고 있었다. 이때부터 오드리는 길고도 지독한 병마에 시달려야 했는데 그녀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기묘하고도 감동적인 인과응보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전쟁 전에 엘라에게는 마이클 번이라는 영국군 장교 친구가 있었다. 전쟁이 터지자 연락이 끊겼고 마이클은 해군특공작전 중에 포로가 되어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런데 엘라는 영화 속에서 그를 만나게 되었다. 독일이 만든 선전 뉴스 속에서 독일군에 붙잡혀 가는 마이클을 보게 된 것이다. 엘라는 너무 흥분해서 옆에 앉은 독일군 장교에게 “저 사람은 마이클이에요!”라고 영어로 말했다. 그날 밤 엘라는 영화관으로 몰래 들어가서 번이 등장하는 장면을 잘라내 적십자사에 보냈다. 이렇게 해서 마이클은 음식물이 담긴 소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본국으로 돌아온 마이클에게 엘라는 중병에 걸린 오드리를 위해 페니실린이 필요하다는 편지를 보냈다. 당시 페니실린은 고가의 신약이었다. 마이클은 생각 끝에 몇 천 개비나 되는 담배를 보내주었고 엘라는 그것을 암시장에서 팔아 페니실린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오드리는 훗날 기자회견 중에 ‘전쟁 기간이 어떠했냐’는 질문을 받으면 “해방은 영국 담배 냄새가 난다”고 말하곤 했다. 마이클 번이 보내준 영국담배 덕분에 얻은 그녀의 소중한 해방을 의미했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충고

오드리는 엄마로부터 엄격한 칼뱅주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것이 의무라는 생각이 각인되어 있었다. 또한 크리스천 사이언스 훈련은 불가능은 없다는 의식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의지력으로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녀의 키였다. 열여섯 살이 되자 그녀의 키는 5피트 7인치(거의 170센티미터)나 자라서 발레를 하기에는 너무 컸다. 당시 오드리는 지도 선생님의 추천으로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발레 학교인 램버트 학교의 장학생으로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재능이 있다는 것과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는 차이는 달랐다. 오드리는 최고의 발레리나와 자신의 실력을 비교했고 프리마돈나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오드리는 다른 길을 모색했다. 그녀는 모자 판매 회사의 모델 일을 하거나 여행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이트클럽 시로스에서 댄서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재즈 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곳이었는데, 그녀는 점점 쇼 비즈니스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순회공연을 떠나는 것과, 뮤지컬 코미디에 응모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왔다. 그녀는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히트작 『하이 버튼 슈즈』(1948)의 오디션을 선택했다. 그리고 3천 명의 응모자 가운데 최종 선발된 열 명에 포함되었다.

오드리는 『소스 타타르』(1949)라는 뮤지컬 코미디에서도 배역을 맡았다. 오드리는 이 역할을 맡으면서 자신이 여자 배우에게 필요한 곡선미와 풍만한 가슴이 없는 것을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걱정했다. 양말을 돌돌 말아서 가슴속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소스 타타르』를 제작한 세실 란도는 양말을 옷 속에 넣었든 안 넣었든 오드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사교계 전문 사진작가에게 오드리를 보내 잡지에 실릴 사진을 찍도록 했다. 이로 인해 오드리는 화장품 광고 사진도 찍었으며 반나절 일한 대가로 4파운드를 받았다. 그리고 란도는 25파운드를 챙겼다. 란도는 『소스 타타르』가 공연 중일 때도 오드리에게 일을 시켰다. 그로 인해 오드리는 공연이 끝난 후에도 시로스 카바레에 가서 쇼를 두 개나 더 해야 했다. 크리스마스 때는 어린이를 위한 쇼를 하느라 일주일에 여덟 번씩 낮 공연도 해야 했다.

1950년 새해가 되자 『소스 타타르』의 속편 『소스 피칸테』가 막을 올렸다. 이 연극은 실패했지만 그녀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세실 란도는 『소스 피칸테』로 손해 본 것을 만회하기 위해 순회공연을 준비했다. 하지만 순회공연 역시 망했고 오드리는 비로소 란도를 떠나 영화에서 단역을 맡게 되었다. 담배 파는 소녀 역할이었는데 출연 시간은 20초였으나 영화주간지 《시네마》에 ‘곧 대단한 스타가 될 것’이라는 기사와 함께 실렸다. 하지만 얼마 후 오드리 헵번은 가장 값비싼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영국의 메이저 스튜디오 중 하나인 어소시에이티브 브리티시사와 장기계약을 맺게 된 것이다. 이제까지 단역에만 출연해오던 오드리는 일주일에 12파운드와 1년에 한 작품을 보장하는 조건이 감사했다. 하지만 그들은 스타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신중한 경리들이었다. 그들에게 오드리는 자신들의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회사를 흑자로 만들어주는 돈벼락이 되었다.

1951년 5월, 오드리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연극 『지지』(1951)의 주인공 역을 제의받은 것이다. 그와 동시에 파라마운트에서 『로마의 휴일』의 공주역도 제안받았다. 파라마운트는 브리티시와 달리 스타를 키우는 회사였다. 그들은 오드리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브리티시 측에 7편의 영화에 출연시키는 대가로 거액을 지불했다. 그들의 추측은 맞아 떨어졌다. 1953년 8월 말, 『로마의 휴일』이 뉴욕과 런던에서 동시 개봉되자 세계가 오드리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로마의 휴일』에 앞서 무대에 올랐던 『지지』또한 성공적이었다. 연극이 개봉되자 각 잡지는 그녀에게 호평을 쏟아냈다. 그중 한 기사의 예를 들면 “그녀는 우유와 채소만 먹고 자란 소녀 같다”고 표현했다.

그녀 인생의 남자들

영화를 찍는 동안 오드리는 한 남자를 사귀었다. 제임스 한손은 삼십대를 목전에 둔 세련된 남자로서 영국 북부 명문가의 상속자였다. 만약 오드리가 브리티시와 영화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그를 만났더라면 그녀는 남자의 재산과 신분을 보고 결혼한 여배우 중 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오드리의 운명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결혼날짜까지 잡았으나 『로마의 휴일』과 『지지』의 일정으로 인해 자주 만날 수 없었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 『로마의 휴일』의 일정 초과로 오드리는 영국에 도착하지 못했다. 사실 오드리는 결혼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녀는 결혼을 하면 아내의 역할에 충실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브리티시사와의 계약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몸이었다. 더욱이 그녀는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스타였다. 그녀는 한 남자를 위해 자기 일을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1954년 오드리는 영화 『사브리나』에 출연하게 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 오드리는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친밀한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의 디자이너 유베르 드 지방시였다. 지방시는 오드리보다 두 살 정도 많은 스물여섯의 나이에 키가 6피트 6인치나 되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긍심이 강해서 누구도 자기 체형의 결점을 숨기기 위해 디자인을 바꿔달라고 요구할 수 없었다. 파리의 살롱에서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지방시는 체크 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은 그녀를 보고 자신의 스케치북에서나 볼 수 있는 깔끔한 선을 가지고 있는 것에 놀랐다. 또한 그녀의 우아한 자태는 순식간에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평생 친구로 지냈으며, 지방시는 감독들만큼이나 오드리 헵번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1953년 여름, 오드리는 파리에서 『릴리』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녀는 그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세 번이나 파리로 돌아갔을 정도였는데 자신과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여주인공 레슬리 캐론의 연기와 용모에 감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드리가 그 영화에 집착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남자 주인공 멜 퍼러 때문이었다. 이 마르고 잘생긴 배우는 오드리에게 그녀가 어린 시절 탐독했던 동화 속의 왕자를 떠올리게 했다. 그를 실제로 만나게 된 건 그로부터 오래되지 않아서였다. 1953년 여름 로마의 휴일에서 상대역을 맡았던 그레고리 펙이 그를 소개했다. 멜은 서른다섯 살로 오드리보다 열두 살 연상이었다. 그는 동화 작가이며 연극, 영화, 라디오 프로그램의 감독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두 번 결혼했다가 이혼했는데 최근 첫 번째 부인과 다시 결혼했다. 오드리를 만났을 때는 세 번째 결혼에서 빠져나오려던 참이었다. 더욱이 연극 『온디네』에 함께 출연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남편과 아내

1954년 3월 25일, 오드리는 온디네 요정 의상을 그대로 입고 화장도 지우지 못한 채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로마의 휴일』로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이후 오드리는 토니상도 수상하게 되면서 미국에서 주는 주요한 상을 모두 다 받았다(영국에서도 몇 개 받았다). 그리고 1954년 6월 멜 퍼러와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몇몇 지인들만을 초대하여 비밀 결혼식을 올렸는데 손님 중에는 오드리의 새 매니저 커트 프링스도 참석했다. 멜이 소개한 그는 독일 권투선수 출신으로 링 위에서 보여준 호전적인 기질을 발휘하여 출연료 협상에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다. 커트 프링스의 능력으로 오드리는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는 배우 대열에 끼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멜이 오드리를 이용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멜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함께 주연을 맡은 『전쟁과 평화』의 촬영 도중 멜은 오드리에게 간혹 소리를 질렀고 오드리는 대항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감독을 맡았던 킹 비도는 멜이 그녀의 월급을 개인적으로 수금했다고 고백했다. 멜은 오드리와 결혼한 후 6개월 만에 그녀의 출연료를 스물네 배나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 돈은 그가 사용함으로써 오드리에 대한 ‘보호비’가 되었다.

1957년 오드리는 영화 『파계』(1958)에 출연했다. 『파계』는 2차 대전 초기에 벨기에의 작은 구호기관에서 봉사한 실제 수녀의 경험을 영화화한 것이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오드리에게는 과거 유엔구호봉사로 인해 자신의 생명을 구한 데 대한 보은의 의미가 있었다. 오드리는 최고의 의사와 약품을 동반시켜줄 것을 영화사에 요구했고 나환자촌에서 촬영하면서도 보호 장갑을 착용하지 않았다. 가끔 오드리가 탄 길고 가는 보트 옆으로 하마가 불쑥 튀어 오르기도 했는데 오드리는 양쪽 난간을 꽉 움켜쥐고 어린아이처럼 킥킥 웃었다. 그녀는 줄곧 자신이 좋아하는 골드 프레이크 담배를 피웠는데, 때로 원주민 짐꾼들이 담뱃대를 입에 문 수녀를 보고 놀라곤 했다. 많은 어려움 끝에 제작한 『파계』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으며 오드리에게 가장 돈을 가장 많이 벌게 해준 작품이 되었다.

『그린 맨션즈』(1959)는 오드리가 멜이 재기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쓴 영화였다. 자신의 출연 조건으로 멜 퍼러를 감독으로 기용해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멜은 어떻게 해서든 『그린 맨션즈』를 통해 재기해야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오드리와 남자주인공의 러브신이 촬영되었다. 하지만 오드리는 불쌍한 지경에 빠져버렸다. 작품에 대한 악평이 쏟아지고 흥행에 참패한 것이다. 오드리가 남편에게 갖는 신뢰의 손상이 더 컸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영화에 출연했고 자신의 본성이 원하지 않았지만 최대한 섹시하게 보이려고 애쓴 것을 후회했다. 신문은 오드리의 연기보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슴의 연기에 찬사를 보냈다. 또한 이 사슴이 선글라스를 끼고 새로운 계약을 맺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는 기사도 실었다.

1959년 오드리는 『더 언포기븐』이라는 서부 영화에 출현했다. 하지만 대역을 거부하고 직접 말을 탔다가 낙마하여 유산을 했다. 스위스로 돌아온 오드리는 차츰 기력을 회복했고 다시 임신하여 1960년 1월 17일 아들을 출산했다. 아기의 이름은 숀으로 정했다. ‘신의 선물’이라는 뜻이었다. 오드리는 엄마가 된 기쁨에 푹 빠져 지내느라 여러 편의 영화를 거절했다. 점점 초조해진 파라마운트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인공 역을 제시했다. 주인공의 직업은 정부(情婦)였다. 따라서 그녀가 이제까지 지켜온 이미지를 깨뜨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 특유의 개성이 이 영화를 순화시켰다. 지방시가 디자인한 심플한 의상과 블랙 파인애플 같은 헤어스타일은 그녀의 우아함을 그대로 표현해 주었다. 특히 오드리가 비상계단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면서 「문 리버」를 감상적으로 낮게 흥얼거리는 모습은 정부의 역할을 순정을 지닌 여인으로 변화시켰다. 「문 리버(Moon River)」의 헨리 맨시니는 자신의 곡이 이렇게 서정적인 노래로 들릴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오드리의 덕분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사랑에 관하여

오드리는 두 번째 아기를 갖고 싶었지만 임신과 유산이 반복되었다. 멜과의 관계는 부부라기보다는 더 업무적인 관계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상황과 비슷한 영화 출연이 제의되었다. 『언제나 둘이서』(1967)는 한 부부의 신랄한 감정적 충돌을 바탕에 깔고 있는 코미디였다. 오드리가 이 영화에 출연하는 동안 멜은 연극 『어두워질 때까지』(1967)를 구상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 영화는 마약 거래를 하는 갱 때문에 위험에 처한 맹인 여인을 주인공으로 한 멜로드라마였다. 멜이 제작을 맡고 오드리가 여주인공역을 맡게 되었다. 오드리는 리얼한 맹인 연기를 위해 개인 교습을 받았다. 하지만 자신이 그럴 듯하게 맹인 연기를 잘한다고 느꼈던 자신감은 테스트용 필름을 보고 난 후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오드리의 트레이드마크인 맑은 눈동자가 여전히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것은 오늘날처럼 신축성 있는 부드러운 원형 렌즈가 아니라 단단한 유리로 된 것이었다. 그녀는 눈에 모래가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유난히 매서운 겨울바람 때문에 눈꺼풀에 붉은 테두리가 생겼다.

영화를 찍으면서 멜과 오드리 사이의 긴장감이 세트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감지되기에 이르렀다. 세트장에는 가십난을 채우는 수많은 정보 제공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오드리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코 소리를 지른 적이 없는 그녀가 “절대 안돼!”라고 외쳤던 것이다. 하지만 『어두워질 때까지』는 판에 박힌 듯한 상투적인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크게 성공했고, 이 영화로 오드리는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하지만 그 무렵 두 번째 가진 아기를 유산했다. 그때 멜은 곁에 없었다. 이러한 사건들이 그녀의 심경에 변화를 일으켰고, 결국 그녀는 멜에게 결별을 요구했다. 결별 과정에서 오드리와 멜 사이에는 거의 의견 교환이 없었다. 각자의 개인 변호사들이 거의 모든 대화를 대신했다. 피할 수 없는 재산 분할 절차와 양육 합의가 고통스럽게 진행되었다.

멜과의 15년 결혼 생활이 끝난 지 1년 후 오드리는 이탈리아의 젊은 의사 안드레와 도티와 결혼했다. 서른 살의 그는 오드리보다 9살 연하였으며 로마 대학의 정신과 클리닉에서 부원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열네 살 때 『로마의 휴일』을 본 이후 오드리가 출연하는 영화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보았다. 도티가 오드리를 만났을 때 그녀의 감정 상태는 그가 정신과 수련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익숙한 종류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드리는 그에게 조언을 구하고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냥 평범하게 의사의 삶을 살아왔던 도티에게 이것은 영화 같은 경험이었다. 그러나 오드리가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았다면 알았을 위험한 징후들이 결혼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안드레아 도티는 영화스타와 결혼한 것이지 일반 여성과 결혼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 있어서 오드리가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어가는 것은, 자신이 집으로 가져온 보물의 광택이 서서히 옅어져가는 것을 의미했다. 도티는 천성적으로 따뜻하고 자상한 성격이었지만 유흥을 즐기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그가 영화배우나 패션모델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파파라치에 의해 자주 기사화되었다. 오드리는 침묵했고 1970년 2월 8일, 제왕절개 수술을 받고 두 번째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도티는 점점 더 황당한 지경까지 파파라치의 촬영 대상이 되어 있었다.

위안을 주는 것들

1978년 오드리는 『블러드라인』(1979)이라는 멜로 영화 제의를 수락했다. 그녀는 자식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백만 달러의 출연료는 숀과 루카를 위한 신탁 재산으로 입금되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79년, 오드리는 도티와 이혼했다. 숀은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영화 편집 일을 하고 있었다. 오드리는 기분 전환을 위해 『뉴욕의 연인들』(1981)에 출연했고 또 다른 사랑을 만나게 되었다. 오드리의 마지막 연인 로버트 월더스는 오드리처럼 네덜란드 태생이었다. 그는 스물다섯 살이나 더 나이가 많은 여배우 메르 오베른과 결혼했다. 그리고 1979년 오베른이 죽을 때까지 행복한 7년의 세월을 함께 보냈다. 장례식에 참석한 오드리는 로버트를 위로하고 네덜란드어로 어린 시절 추억에 관한 얘기도 나누었다. 이렇듯 두 사람은 서로 걱정하는 차원으로 가까워졌으나 서로에게 마지막 반려자가 되었다.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오드리의 엄마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스위스에 와서 오드리와 함께 지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오드리는 엄마의 주검을 네덜란드로 모시고 갔고 비로소 아버지와 만날 수 있게 해드렸다. 오드리는 이미 아버지와 교류하고 있었다. 1959년 중반 『파계』의 프리미어를 위해 브뤼셀에 갔을 때 그녀는 친척으로부터 더블린에 살고 있는 아버지의 주소를 알아냈다. 그동안 아버지는 딸의 성공을 알고 있었지만 오드리의 엄마가 두 사람의 만남을 막았기 때문에 나서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주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었고 재혼한 상태였다. 그의 아내는 남편보다 서른 살이나 어린 여자로 거의 오드리 또래였다. 그 만남 이후 오드리는 20년 동안 아버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다.

아름답던 오드리의 얼굴에도 주름이 생겼다. 오드리는 유니세프의 기금마련을 위한 홍보 행사에 참석해오고 있었다. 1987년 10월에도 오드리와 월더스는 그러한 임무를 띠고 극동 아시아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카오에서 열린 국제적인 음악 페스티벌의 초청인사로 참석했다. 페스티벌은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생중계될 예정이었고 모든 출연자들의 출연료와 수익금이 유니세프로 보내질 계획이었다. 콘서트가 끝난 후 오드리는 자신이 유니세프를 위해 할 수 있는 더 중요한 일은 없을까 생각했다. 행사에 참석하여 유니세프를 홍보하는 것은 너무 힘이 들지 않는 일이었다. 이러한 오드리의 생각이 유니세프 본부에 전해지면서 오드리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이 빠르게 잡혔다.

친선대사 이야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유니세프의 기금은 유엔에서 지원되지 않았다. 따라서 유니세프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기금을 모아야 했는데, 당시 5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지원활동을 하려면 2천만 달러 이상의 자금이 필요했다. 그중 절반은 에티오피아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아이들에게 들어갔다. 1988년 3월 8일 오드리가 친선대사에 임명됐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1년에 1달러 이외에 어떤 보수도 받지 못하는 직위였다. 게다가 공식적인 출장과 숙박비 이외의 모든 비용은 오드리 자신이 부담해야 했다. 제3세계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현지를 오고 갈 때의 고행 또한 필수적이었다. 현지의 풍토병에 걸릴 위험은 말할 것도 없고, 내전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가 말라빠진 옥수수 가지 사이로 걸을 때면 아주 가까운 곳에서 기관총 소리들이 들렸고 유니세프 동료 중 한 사람은 총에 맞아 죽기도 했다.

오드리는 유니세프가 어디로 파견하든지 로버트 월더스와 동행했다. 그녀는 트럭 뒤의 쌀자루 위에 앉아서 덜컹거려야 했고 낡아빠진 헬리콥터 안에서 월더스의 팔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이렇게 오드리는 전기도 물도 위생시설도 없는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에티오피아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죽은 사람을 묻기 위한 무덤이 아니라 우물을 파기 위한 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오드리는 수용소 앞에 혼자 서 있는 한 소녀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소녀는 대답했다. “살아있는 거요.” 유니세프의 카메라는 이러한 오드리의 활동을 모두 담았다. 오드리는 6개 국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유니세프를 위한 언론 활동에도 에너지를 투여할 수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TV를 본 사람들이 그녀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내왔고 어떤 편지들에는 국적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지폐가 들어있었다.

오드리의 활동으로 인한 유명세는 그녀를 화나게 하는 일도 일어나게 했다. 한 여성지가 충실하게도 유니세프 기금을 걷기 위해 활동하는 오드리의 스토리를 다루면서 지방시 패션을 입고 헵번 룩을 연출하고 있는 오드리의 사진과 연결지었다. 또한 유명상표 화장품 리스트에 오드리의 화장품을 집어넣었다. 오드리가 거의 사용하지 않는 화장품이었다. 이에 대해 오드리는 말했다. “명성은 내가 영화에 출연하던 시절 이후 나에게 남겨진 물건, 예를 들면 이런 가방 같은 겁니다.” 오드리는 자신의 활동을 희생으로 표현한 기자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희생은 자신이 원치 않는 것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걸 의미합니다. 이 일은 내게 희생이 아니라 내가 받은 선물입니다.”

영화제작자들은 여전히 그녀에게 영화 출연을 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영화 출연은 예전만큼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영화 대본 하나가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혼은 그대 곁에』(1989)라는 영화였다. 산불을 끄기 위해 출동했다가 추락사한 항공 소방대원이 천사가 되어 자신의 연인을 돌보고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러브 스토리였다. 이 영화에서 오드리는 단지 카메오로 출연했다. 천상에서 죽은 소방대원의 영혼을 맞는 천사 역이었다. 역할의 비중은 작았지만 오드리는 상당한 출연료를 받았고 그중 상당 부분을 유니세프에 전달했다. 소문으로는 백만 달러 이상이었다고 한다.

오드리는 유니세프가 그녀에게 할당한 50여 차례의 여행을 수행했다. 엘살바도르, 방글라데시, 베트남, 과테말라, 타이, 케냐, 그리고 소말리아 등. 그녀는 이미 육십을 넘겼지만 쉬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1992년 9월 19일, 예순셋의 나이에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러 떠났다. 오드리는 닷새간의 일정으로 소말리아와 케냐를 방문하기 위해 붉은 사막을 횡단하는 동안 파도처럼 출렁이는 모래 언덕을 보았다. 그런데 그 파도처럼 생긴 것은 수천 개의 무덤이었다. 오드리가 발견한 또 하나의 소름끼치는 일은, 그녀가 방문한 어린이 보호 캠프에서 어린아이들을 거의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드리가 모가디슈를 방문했을 때 그녀는 또 다시 자루에 넣어져 트럭에 실리는 어린 시신들을 보았다. 이 여행을 하는 동안 오드리를 찍은 사진들을 보면 그녀가 너무 충격적으로 늙어있는 모습에 놀라고야 만다. 그녀는 언제나 10년 이상 어려 보였으나 이제는 10년 이상 늙어보였다.

여행 이틀째부터 몸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랫배 쪽에서 경련성 고통을 느꼈다. 그녀는 진통제로 통증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유니세프 본부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외신기자협회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런던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24시간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오드리는 결장에 종양이 있었다. 그녀의 가녀린 뼈대가 이제는 얼굴 피부를 통해 현저히 드러났다. 12월 중순경, 그녀는 기껏해야 석 달 정도를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최종 진단을 받았다. 로버트 월더스가 그녀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 무렵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12월 둘째 주에 유엔에 파견된 미군이 소말리아에 식량배급을 시작한 것이다. 오드리는 최소한 한 가지 면에서 자신의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을 받았다. 그녀의 호소가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드리는 스위스의 하얀 눈을 다시 보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쇠약해져서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제네바로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친구 한 명이 그녀를 구원하러 나섰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명이었다. 지방시의 연락을 받은 버니 멜론이 자신의 전용 비행기를 제공했다. 1992년 12월 21일 그녀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들 숀은 이미 그곳에 와 있었다. 오드리는 그곳에서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리고 1993년 1월 20일 저녁, 가족과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다음날 전 세계의 사람들이 라디오와 TV를 통해서 오드리의 죽음을 접했다. 유니세프 본부에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보낸 위로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곧 TV제작진들도 대거 몰려들어 오드리의 사무실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오드리의 사무실은 없었다. 그녀는 유니세프 직원과 직접 만나서 업무를 처리했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곧장 달려갔던 것이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보라빛해국]

저도 오드리헵번처럼 아름다운 말년을 보내고 싶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