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간 여자(별 걸 다해야 하는 시골살이) 64p
추석 이벤트로 준비했던 송편 만들기,
반죽에서 쪄내기까지 전과정을 처음 해 보았기에
드디어 프로주부 대열에 입성한 듯 또는 통과의례를 무사히 마친 듯 뿌듯했었다.
이번엔 가래떡 뽑기에 도전.
전화 한 통이면 ‘상황끝’일텐데 무슨 도전이냐고?
그랬으면 오죽 좋으련만.. 돌발상황도 있는 법..
어렸을 적, 엄마는,
한 말이나 되는 쌀을 씻고 불리고 일일이 일어서 물을 뺀 뒤
다라이에 담아 머리에 이고 방앗간에 가서 뽑아 오셨다.
그러나 광속으로 변해가는 시대처럼 떡도 편리함의 끝판이니
도시라면 당근 이렇게 할 일은 없을거다.
하지만 산골에선 마치 타임머신을 탄 기분, 다라이 이고 가야 할 판..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바로 ‘현미’ 때문에..
한 번 빼는 최소량(혼자 먹을 양이니)과 언제든 해주는지, 그리고 현미로도 해주는지?
일단 몇 가지 확인할 겸 떡집에 전화를 때렸다.
답: 뽑는 최소량은 단독이냐 아님 다른 손님도 있느냐에 달렸다고,
따라서 분명 손님이 있는 장날은 한 되도 가능, 손님이 잘 없는 평일은 두 되 이상,
현미는 미구비, 직접 가져와야 함. 완전히 다 맡기는 과정은 하루 전 날 주문해야 함.
후~~엄지,검지,혀만으로 초간단 해결할 줄 알았는데,
백미가 아닌 현미로 뽑으려니,떡집에 ‘현미없음’의 다소 황당 사연으로
현미를 미리 갖다 주던가 아님 집에서 씻고 불리고 물뺀 후 소금 쳐서 담아 날라야 하는..
현미 공급은 두 번 왕복함을 의미, 그건 번거롭고
할 수 없이 바로 뽑아 올 수 있도록 ‘준비완료 상태’로 가져가기로 하니,
어렸을 적, 아버지가 내 몸통만한 주전자 하나 팔꿈치에 걸어주며
행길가 주점에 가서 막걸리 받아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을 때와 같은
긴장감과 두려움이 갑자기 엄습..
미지의 세계에 대한, 해보지 않은 일과 방앗간 이용경험 없음으로 해서..
모든 사건/사물은 밖에서 보는 것과 실제 부딪치는 것과는
상당 괴리가 있다는 사실은 만고의 진리..
얼만큼을 해야 하나부터 고민 시작..
쌀 한 되로 몇 개의 갈래가 생기는지 짐작 불가,
맛과 질감 등 현미 가래떡에의 추억이 없으니 약간 엉거주춤..
우선 실험용으로 한 공기만 희생시켜보려해도,
집에서 찌어서 할 수 있는 시루떡이나 백설기와는 달리
떡기계없이는 그 모양과 찰기를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 가래떡의 특성.
뭐 아예 감이 없는 것은 아니나, 꼼꼼히 준비해야 한 방에 완료할 터..
요 단순할 것만 같은 과정도 막상 하려니 기술적 정보가 필요..
돌다리도 두두려 보고 건너랬다고, 자체 판단보다는 검색 착수..
백프로 현미가 가래떡 모양을 유지할 힘을 갖고 있을까?
백미와 섞는다면, 가래떡 특유의 찰진 쫄깃함을 잃지 않으면서
맛과 건강을 담보할 가장 환상적 비율은?
불리는 시간과 물빼는 시간?
(물론 주구장창 검색해보진 않았지만) 정보 빈약, 상세 상황별 진술 누락..
결국 엄마표 다라이 가래떡의 기억과 상식적 판단으로 하기로..
D-day는, 장날 가야 한 되도 해준다고 했지만,
장날은 분명 고추방아 떡방아 등 붐빌거라 예상되고
혹여 마을 분 만나는 상황도 없으란 법 없으니 곤란하고,
막 추수한 시점이라 햅쌀 떡 수요가 평일에도 있을 것으로 나름 확신,
평일로 결정하고 드디어 착수.
백프로 현미는 구멍을 나오다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판단하에
백미와 현미를 각 1kg씩 50:50의 비율로 합쳐 한 되 조금 넘는 양으로 씻고
백미는 적당히 6시간 쯤 현미는 12시간 이상 불리기로..
다음 날 2시간 물빼서 가져갈 시간을 11시로 잡고
저녁 9시에 씻어 불려 놓았는데 자꾸만 ‘평일엔 두 되 이상’이 목구멍 가시마냥 걸린다.
다른 손님이 있을거라는 건 내 자의적 판단일 뿐 안심이 안되,
부랴부랴 자정에 각각 500g씩 추가해 총 3키로,
두 되가 안되지만 두 되 가격을 내기로 하고~~..
(이게 input에 따른 output의 양 측정이 안되서 생긴 번거로움..
나중에 나온 결과물을 보니 씻었던 쌀양과 거의 동일..)
정확하게 11시 30분에 방앗간에 들어섰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
호오~~떡판에 무슨 떡이 될지 모를 쪄진 가루가 담겨 있고
이미 아주머니는 땀범벅이 될 정도로 인절미 만드느라 공사다망..
그리고 작업 대 맞은 편에 아저씨 한 분이 서 계신다.
작업 보조자인지 아님 손님인지 애매한 분위기.
떡 기계 돌아가는 소음에 소통하기도 힘든 상황이지만
틈을 보아 아주머니한테 쌀 불린 시간이 적당했는지 물어봐야 했다.
아님 다시 더 물에 담가야 하니깐..
불린 시간은 오우케이 사인..이어서,
아주머니는 나를 향해 턱으로 무슨 신호를 하신다.
기계와 그 아래 다라이와 관련 있는 신호는 분명한데..
분명 거기에 쌀을 부으라는 것 같은데
다라이가 시커매서 과연 그럴까~의구심이 들면서
도저히 흰 쌀을 붓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으니
옆에 아저씨가 그 쪽으로가 다라이를 드는가 싶더니 살짝 다시 놓는다.
다라이 상태를 보니 남자가 보기에도 이상했을 터..
아주머니에게 저기다 부으라는 거냐,고 내대신 물어봐 준다.
아주머니는 손사레를 치며 아저씨 뒤를 가리킨다.
흰쌀가루가 붙어 있는 다라이들이 겹쳐있다.
내가 어리버리해 보이는지, 아저씨가 먼저 움직여 다라이를 집어다 놓고
내가 가져온 쌀을 묻지도 않고 알아서 가져다 쏟는다.
아주머니가 뭐라고 또 손짓하며 두 번 째 기계를 가리킨다.
아저씨는 다른 다라이를 두 번째 기계 출구에 놓고
쌀이 담긴 다라이를 들어 입구에 들이 붓고는
잘 들고 나도록 막대기로 젓거나 때려준다.
그 사이 기 대기 중이었던 떡판에 찐가루가 가래떡이 되어 나왔고
아저씨는 그 곳으로 이동한다.
그러고보니 아저씨도 가래떡을 하러 오신 것..
포장하니 한 상자 가득 한 게 제법 많아 보인다.
내 쌀가루가 두 번 갈리니 아주머니가 뭐라 소리친다.
도대체 아주머니 말씀을 못 알아듣는 나..
단순 기계 소음 때문만은 아니리라..
포장하던 아저씨가 달려와서는 기계 스위치를 끈다.
그리고 옆 기계로 옮겨 다시 부어 주신다.
처음에 내가 그랬듯이 잠시 엉거주춤하셨던 걸로 보아,
아저씨도 떡 기계 작동은 오늘이 처음 같은데 ‘척하면 삼천리’라고
아주머니의 신호에 따라 똘똘하게 잘 따라 하신다.
다시 기계에 쌀가루가 미세하게 갈리는 사이
또 한 분의 손님이 들어와 아주머니한테 인사를 건네고 고추기계로 가더니
능숙하게 작동하여 건고추를 갈기 시작한다.
오호라...여긴 보조 손이 없으니 오는 손님이 알아서 해가는 시스템인가보다.
그래서 그렇게 내가 왔을 때도 이 것 저 것 지시를 했나보다.
아주머닌 내가 이런 데 생판 처음 왔는지는 모르셨을테니 오죽 답답했을까..ㅎ.
좀 얼떨떨하긴 했지만 다음 번엔 나도 척척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침 가래떡이 떨어져 담긴 채반을 물 속에서 꺼내 내 앞에 놓고
비닐을 던져 주더니 의자에 털썩 주저 앉으신다.
연세도 있어 보이고 몸매도 육중하시니 퍽이나 힘드신가보다.
아마 담으라는 의미..
채반에 담긴 떡을 한 손으로 잡아 떼어 상자에 넣으려니 자꾸 꼬부라진다.
반듯하게 펴느라 손놀림이 더뎌지니 뒤에서 뭐라고 소리친다.
돌아보니 손가락 두 개를 펴신다.
예? 하고 반문하니 답답하신지 와서 직접 하신다.
아~~한 손이 아니고 두 손으로 해야 꼬부라지지 않는다는 말이었구나~~ㅋ~
상자에 다 담고 차에 싣고 집에 돌아오는 길,
이렇게 마음이 가볍고 즐거울 수가..
고구마, 곶감, 감자, 호두, 사과, 그리고 오늘 떡..
겨울 용 주전부리 꺼리들이 차례로 비치되어가는 기쁨.
그리고 며칠의 긴장감 끝에 얻게된 떡방앗간 시스템 체험.
이제 가래떡 쯤이야 아주머니 지시 없이도 네 번의 가루 단계와 포장만큼은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있을 것 같다.
산골 살려니 별 걸 다 할 줄 알아야 한다.
글쓴이 .정언
옮겨온이 .소나무
첫댓글 옛날 엄니께서 가래떡 뽑아오시면 김나는 떡한줄기 들고 조청이나 설탕 찍어먹던 생각이 나네요
앉은자리에서 3/1은 먹은것 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