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한국시리즈 결산(3) 10월 25일 서울
잠실=최민규 기자 / 2007-11-13
Game3│10월 25일 서울 잠실구장
와일드, W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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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정근우가 3차전 6회초 두산 이혜천의 공에 맞았다. SK의 한국시리즈 1호 몸에 맞는 공에 주심은 투수에게 경고를 줬다.
사진 이휘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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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다. 두 팀 더그아웃은 한 차례 비었다. 거친 경기였다. 1, 2차전에서 두산 타자들은 모두 여섯 차례 몸에 맞는 공을 맞았다. 네 번째 몸에 맞는 공의 희생자인 안경현은 오른손 엄지가 부러졌다.
동료 장원진은 “나나 (안)경현이는 ‘이번 시리즈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심정으로 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 선수들은 1차전 5회 정근우의 수비 방해를 고의로 생각했다.
시비는 예정돼 있었다. 한국시리즈에서 두 팀 타자들은 모두 홈플레이트 쪽으로 바짝 붙어 섰다. 두산에서는 이종욱과 민병헌의 타석 위치가 정규시즌보다 눈에 띄게 홈플레이트에 가까웠다. SK는 아예 몸에 맞는 공 훈련까지 했다.
스트라이크존에 가로 두 줄, 세로 두 줄을 그으면 아홉 개의 사각형이 생긴다. 오른손타자 기준으로 바깥쪽 낮은 쪽의 사각형은 타율이 가장 낮은 코스다. 포스트시즌에서 이 코스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홈런이나 장타 한 방이 승부를 가를 수 있다. 바깥쪽 낮은 공은 장타가 가장 나오기 어려운 코스다.
투수가 바깥쪽을 승부 코스로 하기 위해서는 몸쪽 공을 던져야 한다. 시리즈 전 훈련에서 SK 투수들이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인 하이(In High), 아웃 로(Out Low)’였다. 몸쪽 높은 공과 바깥쪽 낮은 공을 던지라는 말이다.
SK 김정준 전력분석팀 과장은 “일본의 노무라 가쓰야 감독(라쿠텐 골든이글스)의 분류법대로라면 두산은 A형과 D형이 많다”고 분석했다. A형은 타격 타이밍을 직구와 변화구 중간쯤에 둔다. 구종 변화에 대처하기 쉽지만 강력한 직구가 들어오면 타이밍이 다소 밀릴 수 있다. D형은 몸쪽이면 몸쪽, 바깥쪽이면 바깥쪽을 노려치는 스타일이다. SK의 분석에 따르면 두산 타자들의 노려치기는 8개 구단 가운데 최고다. 결론은 스트라이크존을 비켜가는 몸쪽 직구의 활용이 이기는 법이라는 것이다.
원래 SK 투수들은 몸쪽 공을 잘 활용하지 않는다. 포수 박경완도 때에 따라 다르지만 투수들에게 바깥쪽 유인구를 자주 주문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서 SK 투수들은 오른손타자 몸쪽으로 들어오는 일명 ‘백도어 슬라이더’도 자주 던졌다. 반면 두산 투수들은 시리즈 동안 리오스를 제외하고는 몸쪽 승부를 자주 하지 않았다.
리오스는 “맞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던졌다”고 했지만 낮은 쪽 제구가 워낙 좋았다. 또 컨트롤이 어려운 싱커보다는 포심패스트볼을 주로 던졌다. 1, 2차전까지 ‘SK 6, 두산 0’의 몸에 맞는 공 계산서는 그래서 나왔다.
1, 2차전에서 8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던 정근우는 3차전 1회초 두산 선발 김명제에게서 빗맞은 중전안타를 뽑아내며 출루했다. 이어 2번 조동화의 3루수 앞 땅볼 때 3루까지 뛰는 기민한 주루플레이를 한 뒤 3번 김재현의 우익수 쪽 2루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김재현은 다음 타자 이호준의 중견수 플라이 때 3루로 갔고 박재홍의 유격수 내야안타로 홈을 밟았다. SK로서는 좋은 출발이었다. 5회말까지 나머지 아홉 번의 공격기회에서 어느 쪽도 점수를 내지 못했다.
2, 3, 5회를 삼자범퇴로 막은 김명제는 6회초 이호준과 박재홍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무사 1, 3루 위기에 몰렸다. 왼손타자 박재상 타석에서 윤석환 코치가 마운드에 오르더니 불펜 쪽으로 손짓을 했다. 왼손투수 이혜천이 마운드에 올랐다.
이혜천은 두산의 비밀병기였다. 지난 5월 병역 면제 판정을 받은 뒤 정규시즌에는 한 경기도 출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10월 8일부터 일본 미야자키의 교육리그에서 구위를 가다듬고 있었다. SK의 한국시리즈 출전자 명단에서 특이한 점이 있었다. 정규시즌 타율 3할3푼3리의 오른손 대타 요원인 이재원이 빠진 것이다.
반면 두산은 왼손 불펜 요원으로 금민철과 이혜천을 집어넣었다. 이유는 엉뚱했다. SK 코치들은 이혜천의 합류 가능성을 높게 봤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김성근 감독에게 보고가 되지 않은 것이다. 허를 찔린 셈이다.
한 시즌을 쉰 이혜천이 대타 김강민에게 던진 3구는 시속 145km였다. 4구 볼에 3루 주자 이호준은 홈으로 뛰어들려다 포수 채상병의 송구에 걸려 아웃됐다. 김강민이 번트 사인을 놓쳤기 때문이다. 1사 2루. 그러나 여기서부터 두산의 비극이 시작됐다.
2차전의 영웅인 유격수 이대수가 김강민의 땅볼 때 실책을 했고, 7번 정경배의 3루 앞 땅볼도 김동주가 포구 타이밍을 잘못 잡아 내야 안타를 만들어 줬다. 1사 만루에서 이대수는 8번 최정의 타구를 다시 더듬어 3점째를 내줬다. 9번 박경완의 2타점 우중간 2루타로 승부는 끝났다.
승부는 끝났지만 싸움은 시작이었다. 난투극 일보 직전까지 갔던 6회초 상황은 이혜천이 3번 김재현에게 위협구를 던지며 시작됐다. 그 전 1번 정근우 타석 때 이혜천은 정근우의 엉덩이를 맞혔다. 정근우는 이대수가 조동화가 친 평범한 플라이를 놓친 뒤 다시 3루로 악송구할 때 3루로 간 뒤 홈 스틸을 시도해 8점째를 올렸다. 기록은 패스트볼이었지만 홈 스틸과 다름없었다.
두산 선수들은 격앙됐다. 이혜천은 타석에 선 김재현에게 2구째에 오른쪽 다리로 향하는 공을 던졌다. 김재현이 마운드 쪽으로 걸어나가려 한 것을 시작으로 6분 동안 두 팀 선수들은 패싸움 직전까지 갔다.
경기 뒤 승리투수 마이크 로마노는 “야구는 1회 첫 공부터 9회 마지막 공까지 전쟁”이라며 “큰 경기에선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은 싸움도 없고 다친 사람도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로마노는 베네수엘라 윈터리그 포스트시즌에서 팀을 네 차례 정상에 올린 적이 있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공식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더그아웃에서 “이런 식이라면 야구를 하기 싫다”며 SK 벤치에게 쌓인 감정을 내비쳤다. 김감독은 그전까지 “몸에 맞는 공은 많았지만 고의성은 없다”고 말해왔다. 이때는 기싸움에서 밀려선 안 될 순간이었다.
1950년대 뉴욕 자이언츠 투수 샐 매글리는 “친할머니에게도 몸쪽 공을 던지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몸쪽 공은 야구의 한 부분이다. 물론 상대 투수가 동료 타자를 맞혔을 때 보복하는 것도 야구의 한 부분이다. 6회 상황에서 두산에서 가장 흥분한 선수가 투타의 중심인 다니엘 리오스와 김동주였다. ‘비밀 병기’ 이혜천은 김재현에게 던진 빈볼로 퇴장 당한 뒤 글러브를 집어던졌다.
SK 관계자 가운데 일부는 ‘이 일로 두산의 젊은 선수들의 기세가 꺾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두산은 선참들이 중심을 잡는 가운데 젊은 선수들이 신나게 야구를 하는 팀이다. 선배들이 흥분하면 후배들은 몸을 사린다. 이날 경기 뒤부터 두산 선수들의 플레이에서 실수가 잦았던 건 우연이었을까.
승리투수│마이크 로마노
패전투수│김명제
승부처│6회초. 7-0으로 앞서 있을 때 SK 정근우는 홈 스틸을 시도했다. 3차전 승부는 이미 판가름 나 있었지만 어쩌면 이 플레이 하나가 두산의 팀 분위기를 바꿔버렸는지도 모른다. 두산 선수들은 정근우의 플레이를 신사답지 않다고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분란을 불렀다. 그런데 TV 화면상으로는 정근우의 홈 스틸 시도 때 나온 패스트볼은 김재현의 배트 끝에 맞은 파울이었다. 주심이 파울 판정을 내렸다면 난투극 한 발 앞까지 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시리즈의 남자들③
두산 유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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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유재웅에게 올시즌은 끝만 좋았다.
사진 제공=두산 베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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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전이 끝난 뒤 두산 유니폼을 입은 한 선수가 조명이 꺼진 그라운드에 남아 스윙 연습을 하고 있었다. 두산 선수들이 숙소로 떠난 뒤에도 연습은 계속됐다.
유재웅(28)이었다.
4차전이 끝난 뒤에도 연습은 계속됐다.
다음 날 경기가 낮경기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오늘 대타로 한국시리즈 무대를 처음 밟았지만 2루수 땅볼로 물러났다. 연습이 더 필요하다”며 배트를 힘껏 휘둘렀다. 연습은 호텔에서도 이어졌다.
유재웅은 “한국시리즈 기간 거의 잠을 못 잤다. 호텔 뒤 공원에서 스윙 연습을 하고 나면 새벽 3시가 넘었다”고 털어놨다.
많은 훈련을 했지만 유재웅은 5차전까지 딱 한 번 타석에 들어섰다.
유재웅은 두산 김경문 감독이 내건 ‘믿음의 야구’에 따른 최대 피해자일 수도 있다.
3,4,5차전에서 두산이 뽑은 점수는 겨우 한 점이었지만 김감독은 “쳐야 할 선수들이 치지 못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유재웅으로서는 시즌 시작 전에 당한 부상이 내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상무에서 2군리그 홈런 2위, 타점 3위를 기록하며 올해 활약이 기대됐지만 시즌을 코앞에 둔 3월 22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시범경기에서 6회말 한상훈의 타구를 잡으러 달려가다 넘어지면서 왼쪽 발목을 접질렸다.
부상 후유증으로 4월 14일 1군에 올라갔지만 5월 18일 말소된 뒤 한 번도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다.
유재웅은 6차전을 앞두고 “오늘은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라며 웃었다. 그의 소망은 이뤄졌다. 채상병의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 그런데 1-5로 뒤진 9회 2사 주자 1루 상황이었다. SK선수들은 이미 더그아웃 밖에서 그라운드로 뛰쳐나갈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SK 투수는 마무리 정대현. 2구째에 1루 주자 정원석은 SK 배터리의 무관심 속에 도루했다.
유재웅은 다음 공을 잡아당겨 2루수 오른쪽으로 빠지는 우전안타를 터뜨렸다. “한국시리즈 역대 장면이 나올 때마다 꼭 마지막 타자가 등장하잖아요. 그 주인공이 되기 싫어서 이를 꽉 깨물고 쳤습니다.”
SPORTS2.0 제 76호(발행일 11월 05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