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제 16회 양주 김삿갓 전국 문학대회 공연 시극입니다
김삿갓과 공허스님
아름다운 금강산을 영상으로 감상
김삿갓이 멀리 바라보며 등장, 무대를 천천히 배회한다
<해설> 과거에 급제하였지만 하늘을 볼 면목이 없어, 죽장에 삿갓쓰고
전국 방방곡곡 떠돌아다니며 수 많은 시를 남겨주었던 김삿갓
금강산에 들어서며 만폭동에서 20리길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사흘만에 장안사를 거쳐 공허스님이 계신 불영암까지 올라갔다.
이곳은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는지 길도 희미했다
<김삿갓> 청산은 무한하여 가도 가도 끝이 없고
흰 구름 깊은 곳엔 공허스님이 계시다는데 계실까 모르겠네 (혼자말)
불영암 앞 / 출입문이 닫혀있었다
<김삿갓 > 스님 계십니까 ..........(조용) 스님 계십니까 ............
<목소리> 누구십니까
<김삿갓> 네 공허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계십니까
<목소리> 잠깐만요 스님 밖에 누가 오셨나봅니다. 스님을 찾으십니다
공허스님이 나온다
<공허스님> 누구십니까......아! 그 유명하신 김삿갓 아니십니까
<김삿갓> 네 김병연이라고 합니다
<공허스님> 내 오실 줄 알고 있었소, 말휘령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시를 잘 지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하하 나하고 시짓기 내기 한 번 해보실까요?
<김삿갓> 만나 뵙자마자 시짓기 내기를 하자시는 것이옵니까?
<공허스님> 어때서요..나는 시에는 자신이 있는데 선생이 시선이라시니
우리 두사람 자웅을 겨루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삿갓> 당치 않으십니다 저보고 시선이라니요..
<공허스님> 아무튼 제가 먼저 시 한 수 하겟습니다
<높고도 붉은 바위 계수나무 그늘에서
사립문 굳게 닫고 열어 본 지 오래건만
오늘은 지나가는 시선을 만났으니
학을 타고 돌아 본 뒤 시 한 수 읊어 주소.>
<김삿갓> 그럼..
<우뚝우뚝 뽀족뾰족 괴상하고 기이하니
사람인가 신선인가 귀신인가 부처인가
내 평생 금강산을 위해 시 짓기를 아꼈건만
정작 금강산을 보고 나니 감히 붓을 못 들겠소.>
<공허스님> 과연 삿갓 선생은 시선이 분명합니다
예전에 함께 계시던 진묵대사님의 시 하나 들어보시겠습니까
< 하늘은 이불 땅은 깔개 산은 베개요
달은 촛불 구름은 병풍 바다는 술통이라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긴 소매에 곤룬산이 걸릴까 걱정이네.>
<김삿갓> 대사님의 시가 웅장합니다. 서산대사의 계송에는 이런 시가 있지요
< 만국의 도성은 개미집 같고 / 천가의 호걸들은 초파리라
달 밝은 창가에 허심히 누웠으니 / 무한한 솔바람이 멈출 줄 모르네>
<공허스님> 서산대사는 세수 팔십오세에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하셨지요
입적하실 때 읊으신 시입니다. 선생께서도 알고 계시는군요
<김삿갓> 스님, 시 짓기가 즐거우십니까
<공허스님> 시는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지요
그러나 시를 아무리 짓고 싶어도
상대할 시인이 없으면 재미가 없어요
오늘 천만다행으로 임자를 만났으니 내기 한번 합시다
<김삿갓> 내기요..무슨 내기를...
<공허스님> 이빨 뽑기요.. 지는 사람이 이빨을 뽑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김삿갓> 아니 아니
<공허스님> 아침에 입석봉에 올라오니 구름이 발 밑에서 생겨나네.
<김삿갓> 저녁에 맑은 샘물을 마시니 달이 입술에 걸리는구나
<공허스님> 좋습니다,물가의 소나무 남으로 누웠으니 북풍 부는 것을 알겠네
<김삿갓> 집앞에 대그림자 동쪽으로 기우니 날 저무는 것을 알겠네
<공허스님> 깎아지른 절벽에도 꽃은 웃으며 피어나고.
<김삿갓> 봄볕이 아무리 좋아도 새는 울며 날아가네
<공허스님> 저 하늘의 흰구름 내일이면 비가 될 것이고
<김삿갓> 바위틈새 낙엽은 지난 가을 떨어진 것이네
<공허스님> 그림자에 빠진 푸른 물에는 옷이 젖지 않고
<김삿갓> 꿈속에 청산 올라가도 다리는 아프지 않네
<공허스님> 산위의 돌은 천년을 굴러야 땅에 이르고
<김삿갓> 높은 봉우리 한자만 더가면 하늘에 닿겠네
<공허스님>> 청산을 사오면 구름은 공짜요
<김삿갓> 흰 물이 밀려오면 고기들은 스스로 따라오네
<공허스님> 가을구름 만리에 뻗치니 고기비늘이 희게 비치고
<김삿갓> 고목은 천년동안 사슴뿔인양 높아 보이네
<공허스님> 구름은 나무하는 아이의 머리꼭데기에서 일어나고
<김삿갓> 산에서 빨래하는 소리는 아가씨 손에서 울리네
<공허스님> 산에 오르니 새들이 쑥덕쑥덕 노래하고
<김삿갓> 바다에 들어서니 고기들이 폴딱폴딱 뛰더라
<공허스님> 달도 희고 구름도 희고 천지가 온통 흰데
<김삿갓> 산도 깊고 물도 깊고 나그네 수심도 깊어가네
<공허스님> 등잔 앞과 뒤는 밤과 낮으로 구분되고
<김삿갓> 산의 남과 북은 음과 양으로 갈라져있구나
<공허스님> 허허허... 됐습니다, 날이 밝아 옵니다
이제 그만 그만 내가 졋습니다
<김삿갓> 스님 대단하십니다
<공허스님> 멋지십니다.내가 졌으니 이빨을 뽑아야겠는데
나는 이미 이빨이 다 빠져서 틀니를 끼고 있습니다. 하하하하....
<김삿갓>> 하하하.... 그러시군요
<목소리> 스님 공양하세요
<공허스님> 그래 알았다. 그럼 같이 공양하러 가시지요
<김삿갓> 네.. 그러시지요
공허스님과 김삿갓 웃으며 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