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만나는 인문학 공간 : 문탁네트워크
20101213 이희경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장면1 - 김장 (3주 전)
타이밍을 놓쳐 2주쯤 늦게 심은 텃밭의 배추가 늘 마음에 걸려 있었다. 빨리 뽑아 김장을 해야 하는데 문탁 식구 대부분이 강좌, 세미나, 밥 당번 등 스케줄의 여유가 없는지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러다가 텃밭의 배추가 다 얼어죽겠다, 싶어질 즈음 김장 날짜를 확 박아버렸다. ‘뭐 어떻게 되겠지’ 라는 심정으로. 김장 첫날. <앎과 삶>이라는 세미나팀이 세미나를 하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은 텃밭에 가서 배추를 뽑아 왔다. 점심을 먹고 세미나 회원과 문탁 식구들이 뒤 섞여서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다듬었다. 세미나 회원 중 한명이 ‘간잽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월차를 내고 온 ‘아저씨’도 합류했다. 첫날 치 일거리를 얼추 마무리하고 보쌈과 막걸리로 입가심을 하던 중, 즉석에서 노래 공연이 열렸다. 며칠 뒤 <시 강좌>에서 다룰 ‘3김’(김수영, 김지하, 김남주)의 노래 시들을 누군가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일상이 있고 공부가 있고 관계가 살아있는 순간! 문탁에서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장면2 - 축제 (6주 전)
인문학축제가 열렸다. 많은 강좌와 세미나가 있었지만 그걸 가로질러 다 함께 하나의 주제로 함께 공부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보여주기 위한 축제,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우리가 배우는 축제, 더 많은 친구를 사귀는 축제를 하자는 원칙만 공유한 채 또 다시 덜컥 일을 저질렀다. 주제는 가족! 공동체를 꾸려나가면서 ‘가족’ 문제를 한번 짚어야 한다는 공감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세미나회원을 망라하여 기획팀이 꾸려지고, <가족을 넘어 마을로!>라는 주제 하에 다 함께 읽을 한권의 책이 선정되었다. 강연과 영화주간, 특별세미나, 퀴즈, 도서아나바다, 공연 등의 프로그램도 확정되었다. 그리고 열흘 동안 축제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열흘 동안 문탁 식구들은 말 그대로 정말 많이 “배웠다.”
인문학 축제가 계속 된 지난 열흘은 즐거움보다 고민이 더 깊어가는 과정이었다. 삶의 내밀한 속살이 공론장에서 끄집어 내지고 말이 부딪히자 신체가 먼저 반응했던 이 라이브 현장은 말 그대로 지금 우리 가족, 우리 삶, 우리 관계를 표현하고 관찰할 수 있었던 생생한 인류학적 탐색의 현장이 되었다. 그 현장에서 우리는 정말 많이 배웠다.
불화란 “계쟁(係爭)적인 공통의 대상들을 그것들을 ‘보이지 않는’ 자들에게 부과하는 논쟁적인 공통 공간을 구성하는 것”(랑시에르)이라고 했나? 우리는 가족이슈를 둘러싼 우리 내부의 불편함과 불화들을 평등을 구축해가는 논쟁적 과정으로 이해한다. 우리에게 던져진 수많은 질문들을 우리 내부에 그어져 있는 감성의 분할선들을 넘어가는 힘겹지만 즐거운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 질문을 끌어안고 가야 한다. 다시 출발! 자, 공부하자. ( “가족을 넘어 마을로”, 『2010 문탁인문학 축제 자료집』)
마을에서 만나는 인문학 공간, <문탁네트워크>가 경기도 수지구 동천동에 50평짜리 터전을 꾸린 건 올해 1월이다. 공개적인 첫 프로그램으로 <논어>강좌를 기획했는데 열흘이 못가서 정원이 마감되었다. 말 그대로 대박! 그건 어떤 징조였고, 어떤 정세의 반영이었다. <논어>이후 대부분의 강좌와 세미나, 그 밖의 프로그램들은 ‘과연 사람들이 올까?’라는 걱정을 결과적으로 기우로 만들만큼 안정적으로 운영되었고, 몇몇 세미나의 회원들은 문탁회원과 거의 ‘식별불가능’할 정도로 문탁의 주요 활동력이 되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문탁 주방에서 밥을 먹은 사람들은 약 3,000명. 하지만 한 달에 300명이 밥을 먹는 동안 단 한 번도 쌀을 사지 않았다. 문탁 주방에는 쌀을 비롯해 친구들이 가져다 준 ‘선물’이 늘 넘쳐난다.
1년 전 시작할 때,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고 아무도 기획하지 않았던 어떤 곳에 이미-도달해버린 상황! 우리의 색깔이 무엇인지 우리조차 언표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이미-가져버린 우리의 색깔! 지금 문탁의 현실은 바로 그러한 현실이다. 최근에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마을 인문학’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그게 맞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우리도 우리가 누군지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여기 문탁의 현실이 처음 시작한 문탁 회원 몇몇의 의지나 의도 때문이 아니라 우리만큼이나 ‘목마르게’ 어떤 새로운 공간-삶을 갈구하는 우리 주변의 친구들과 함께 만든 역동의 결과라는 점이다. 지금도 우리는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매일 매일 변하고 있다.
모든 시작은 우연이었다.
시작은 우연이었고 소박했다.
대안학교 학부모로 만나 느슨한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 7,8명이 어느 날 의기투합했다. 당시 난 10여년이 넘는 <연구공간 수유너머> 활동을 막 접고 집에서 칩거 중이었다. 인생의 후반기를 맞아 앞으로 뭘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고민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주변에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많았다. 직장에 다니지만 끊임없이 직장을 때려 칠 궁리만 하는 사람, 직장을 정리하고 보다 신나는 삶을 궁리하는 사람, 아이 문제로 심란한 사람... 공부를 함께 하기로 했다. 삶의 비전을 같이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 집 거실을 세미나실로 개방하고 <일리히>를 읽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나부터 바꿔 보자. 세상을 구원하기 전에 내 자신부터 구원해보자! “친구와 함께 삶의 비전을 찾아가는 작고 단단한 네트워크” 라는 최초의 자기-정의가 <문탁네트워크>라는 이름에 새겨졌다.
공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공간을 얻으려는 계획이 없었다. 우연히 한 친구가 동네 부동산아저씨를 만난 게 계기가 되어 이야기가 급진전 되면서 공간을 얻자는 결의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집에서 하는 세미나는 ‘외부성’이 약하기 때문에 집 밖에 ‘아지트’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모두에게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에 9평짜리를 알아보다가, 다음에 30평, 그 다음에 50평... 일단 일을 저질렀다. 그 다음부터는 거의 빛의 속도로 일이 진행되었다. 그 춥던 지난 겨울 온 동네에서 버려진 물건을 주워 왔다. 친구들에게 선물도 많이 받았다. 지금 문탁 공간의 90%가 친구들의 선물과 버려진 물건의 재활용을 통해 꾸려졌다. 그리고 우리는 <마을에서 만나는 인문학 공간 - 문탁네트워크>로 다시 한 번 변신했다.
공부는 나의 운명!
공부하는 곳 - 문탁네트워크!
우리는 왜 공부하고, 무엇을 공부하고,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까?
처음부터 우리는 공부와 관련하여 세 가지 원칙을 가졌다. 용맹정진! 사상마련! 지행합일! 그리고 아직도 이 세 가지 원칙은 유효하다. 1년 전 공간을 마련한 직후에 네이버 까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용맹정진(勇猛精進)!!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활동 중에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세미나>가 될 겁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삶에 대한 통찰을 얻고, 더 즐거운 삶을 창안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생기기 위해서는 친구와 함께 치열하게 공부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우리를 '쎄게' 공부시킬 수 있는 방법을 더 찾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각자가 '자기세미나'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좌는 무엇보다 우리가 배우고 싶은 것을 중심으로 기획하고 운영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데 선생을 모셔다 강의를 들으면 더 좋겠다. 그리고 이 공부를 더 많은 지역의 친구들과 나누면 좋겠다...는 차원에서 강좌가 기획되기를 바랍니다. (공간의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강좌를 만들기 시작하면, 우리는 금방 '실무자'가 되어 버릴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간을 얻을 때 강좌에 의존하지 않고 월세를 마련할 수 있는가..를 따졌던 것입니다)
사상마련(事上磨鍊)!!
공간을 마련한 이상, 우리는 사상마련 - 일 속에서 공부하기, 시끄러운 곳에서 공부하기를 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조건에 처하게 되었습니다...ㅋㅋㅋㅋ
(제가 해봐서 아는데) 공간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공간을 청소해야 하고, 전화를 받아야 하고, 밥을 해야 하고, 비품을 구입하거나 관리해야 하고, 오는 손님을 접대해야 하고, 강좌를 하게 되면 온갖 매니저 일을 해야 하고, 적자라도 나면 내 주머니에서 메꿔야 하고.....- 이거 장난 아닙니다^^
그래서 이거 하려면 우리 아주 유능해져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개별적, 집합적 신체의 강도를 높이지 않고서는 공간을 활력있게 운영하는 것 (conviviality)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거 못하면, 그러니까 집합적 신체를 만들기 위한 '공통성'을 끊임없이 생산해내지 못하면 금방 '개인'들의 의무와 권리의 배치로 공간의 성격이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상상만 해도.. 싫은데요..ㅋㅋㅋㅋ...)
지행합일(知行合一)!!
너무나 부족한 저는 '지행합일'의 경지를 상상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제가 꾸는 꿈은 있습니다.
그곳, 문탁네트워크에 가면 '눈빛은 깊고, 마음은 넉넉하고, 가진 것은 적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더라.
그곳, 문탁네트워크에 가면 '청정한 도량 같은 곳에서 정갈하게 공부하는 범부들이 끊임없이 웃으면서 유쾌한 삶을 살고 있다'더라.
그래서 '나도 그곳에 가서 공부하고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곳!
내가,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공간이 되는 꿈!!
지금 우리가 용맹정진하고 사상마련하며 지행합일하는 공부를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말할 수는 감히, 없다. 다만 비슷하게 해보려고 노력하긴 했다.
먼저 세미나. 세미나는 ‘자기-교육’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 공부법이다. 각자 하고 싶은 공부와 나누고 싶은 공부로 세미나를 기획한다. 현재 세미나는 ‘비전세미나’ ‘기획세미나’ ‘일반세미나’의 3가지 종류가 있다.
‘비전세미나’는 문탁 식구들의 공통개념을 생산하기 위한 내부 세미나이다. 한 개의 주제로 3~4개월 진행되는데 <일리히>, <선물>, <마음>, <에티카>를 거쳐 지금은 ‘차이’, ‘타자’에 대해 고민하는 <환대> 세미나를 하고 있다.
다음은 ‘기획세미나’. 튜터와 커리큘럼, 기한이 정해져있는 세미나이다. 강좌와 세미나의 중간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현재 앎과 삶의 일치를 꿈꾸는 <앎과 삶>, 청년들의 비전찾기와 관련된 <청태학>, 마을에서 국경넘기를 시도하는 <일본어를 배운다>가 기획세미나로 꾸려지고 있다.
‘일반 세미나’는 넘나듬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세미나이다. 1년째 계속 되고 있는 <논어강독>을 비롯해 <불교세미나>, <가족세미나>, <종교인류학세미나> 등이 있다. 인문학축제를 거치면서 새롭게 두 명이 발심^^하여 <여성세미나>와 <건축세미나>가 떴다.
공부를 통해 친구를 만나고 삶의 비전을 찾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세미나는, 그러나 일정한 ‘강도’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독서모임과는 구별된다. 어려운 책도 읽어야 하고, 글쓰기도 해야 한다. 그 점에서 지난 1년간 문탁네트워크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어렵다”는 것이다.
너무 어려운 책을 읽는다, 너무 빡세게 한다, 동네에서 하는 데 수준이 너무 높은 게 아니냐 등의 말들이 떠돌았다. 어찌 보면 지난 1년은 이런 ‘소란’을 뚫고 일정한 강도와 밀도의 세미나를 생산해 낸 과정이기도 했다.
내가 튜터로 참여했던 <앎과 삶> 기획세미나 시즌1 “근대학교/교육을 성찰하다” 동안 “어려운 책과 씨름”하느라 “머리털을 쥐어뜯었던” 세미나 회원들이 제출한 마지막 에세이를 보자
에세이에 따르면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각각이다. 누군가는 “소박하게” 시작했고, 누군가는 친구가 꼬드겼고, 누군가는 동네에 생긴 <문탁>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고, 누군가는 아이와의 관계를 잘 풀겠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혹은 “공부를 하고 싶었던 건, 순전히 자유롭고자 시작되었다. 모르는 게 많고, 그래서 두려운 게 많은 내 삶이 부자유스러우리란 건 너무 뻔하지 않은가”였다.
하지만 공부는 결코 녹록치 않았다. “주어진 모든 휴식 시간을 다 써도 모자랄 뿐 아니라 뭔 말인지 잘 이해 안 된다는 갑갑함” 정도는 기본이고, 주눅, 찜찜함, 자괴감, 후회, 번민... 등 여러 가지 ‘고통’^^이 동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길을 함께 뚫고 걸어가면서 세미나회원들은 어떤 문턱을 넘고 있었다.
앎과 삶 시즌1이 끝나가고 있는 즈음 드는 생각은 그동안 내가 꿈꾸고 있는 세상을 보는 안경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너무 오래전에 전에 맞춘 안경은 이미 효용가치가 떨어졌는데도 안경을 고쳐 쓰기에 급급했지 그 안경을 벗어 버리려는 생각에는 못 미쳤다. 그러므로 나의 시각교정에 필요한 실패가 많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제 그 안경을 벗어 보자. 그리고 내가 다시 만나기 위해 나아가는 세상은 ‘바보’ ‘우둔’ ‘나중에 가서 생각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에피메테우스적 인간의 재탄생을 바랐던 이반 일리히와 랑시에르의 세상이다. 그 가는 길에 ‘나는 신이 혼자서 스승 없이 스스로를 지도할 수 있는 인간의 영혼을 창조했다고 믿으면’(위의 책 260쪽) ‘앎의 나라로 가는 모든 여행길에 모험을 강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더 잘 배우거나, 못 배우거나, 더 빨리 배우거나, 더 늦게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위의 책61쪽)라는 랑시에르의 충고를 새기면 힘이 더 생길지도 모르겠다.....이제 내가 할 일은 내장되어 있는 게 아니라 써지므로 작동한다는 현동적 이성을 작동시키는 일이다. 그것도 지금 당장!!
불성실한 학생이었음을 인정하고 보아도 문탁세미나 전와 후의 내 생각은 분명히 많이 변했다. 자기 성찰적 삶이란, 그저 바꿀 수 없는 과거만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쳇바퀴와 같은 생각의 고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행동하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고 실천하기, 내 욕망의 배치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고민하기, 나만의 서사를 완성해 나가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화두와 함께 스스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알아가야 한다는 것임을..
나는 늘 나 말고 다른 뭔가가 달라지길 희망해왔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다른 아줌마들이 아니라 나에게 있었다. 내가 그들과 나 사이에 없는 벽을 만들고 지금 여기에 없는 어떤 것-가능한 사회를 희망했다. 어디에도 없고 불가능한 가능한 사회를..
지금 여기에서 바로 지금 내가 해방되면 되는 것을..
내가 다시 세미나를 신청한 목적이 분명해진다. 독학이 자유롭긴 하지만 그래서 어쩔 건데? 부분을 풀기 어렵다. 처음 세미나를 할 땐 나-지금-여기뿐이었지만 세미나를 하면서 스승도 동료도 느꼈던 거다. 이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살아있다’고 느낄 때의 특징이었다...
처음에는 빨간펜을 들고 에세이를 읽어 나가던 나는, 어느 순간 빨간 펜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 에세이들을 읽게 되었다. 나는 이 글들을 통해, “삶에서 소외되지 않는 앎”의 가능성을, 나아가 삶만큼이나 앎도 집합적이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다시 확인하였다. 감동이었다.
강좌 역시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그들을 가르치거나 깨우치기 위해 기획되지 않는다.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수익사업도 아니다. 강좌를 기획하는 가장 큰 원칙은 문탁 회원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강좌로 조직하는 것이다. 배우고 싶은 게 있지만 내부의 교사가 없을 때, 외부에서 교사를 초청하는 자기-교육. 그것이 강좌다. 1,2월에는 <논어>를, 3,4월에는 <의역학 강좌>를 진행했고, 5,6월에는 스피노자의 <에티카>와 기초한의학을 배우는 <삶과 몸>이 진행되었다. 7,8월에는 <시경>과 <과학과 근대성>의 두 강좌가 열리고, 현재 <시 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강좌는 세미나로 이어졌다.
마을을 꿈꾼다!
문탁네트워크 홈페이지를 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문탁네트워크는 친구와 함께 삶의 비전을 찾아가는 작고 단단한 네트워크입니다. 우리의 공부가 우리의 삶이 되고,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공부가 되기를 꿈꾸는 곳! 수천 개의 공부가 수천 개의 삶으로 창안되는 곳! 수천 개의 삶이 마주치면서 엮어가는 유쾌한 마을!! 문탁네트워크는 그런 공부를 꿈꿉니다. 문탁네트워크는 그런 마을로 가는 작은 길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런 마을을 구체적으로 꿈꾸기 시작했다. 그럴 수 있는 세 번의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 청년예술프로젝트
지난여름 <청년예술프로젝트>가 만들어졌다. 우리가 하는 많은 일이 그렇듯이 이 일의 시작도 우연이었다. 더운 여름날 어느 오후, 공부하는 것도 지칠 즈음 문탁 회원 몇몇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고, 그 수다는 '요즘 아이들' 에 대한 뒷담화로 발전했다. 그러다가 이야기는 돌연, 아이들, 특히 음악하고 춤추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지금 당장 그걸 하면서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로 튀어버렸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든, 다니지 않든 문탁과 같은 공간을 스스로 꾸려, 하고 싶은 기타를 실컷 치고 함께 밥을 짓고 청소를 하면서 철학책을 읽고 공연을 기획할 수만 있다면...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그걸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기획된 <청년예술프로젝트>!
세 명의 강사가 섭외되었고, 마을에서 음악께나 한다는 아이들이 모였다. 첫날은 서울 수유리의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의 10대 청년 세 명이, 두 번째는 <하자>에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대안학교 출신의 활동가, 세 번째는 홍대 앞의 유명한 인디가수가 아이들을 만나러 왔다. 특히 마지막 강의 때는 즉석에서 밴드공연이 이루어져 모두를 환희에 빠뜨렸다. 그 이후 아이들이 문탁 공간을 들락날락하면서 어찌어찌 만들어낸 게 <쪼끄만 공연>이다.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나 대학을 못가서 동네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스무 살 백수청년이 팀의 리더였다. 이 친구가 스스로 정리한 <쪼끄만 공연>의 모토를 보자
1. 우리는 '동네'에서 공연을 만드는 '공연단'이다.
2. 우리는 전문적인 공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공연을 만든다.
3. 우리는 동네에서 예술을 하고 싶은 누구나와 함께 한다.
4. 우리는 누군가의 것이 아닌, 우리 자신들만의 것을 만들어서 공연한다.
5. 우리는 보여주기 위한 공연이 아닌, 즐기기 위한 공연을 한다.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는가? 이 <쪼끄만 공연>팀은 문탁 인문학 축제 때 아주 성공적인 공연을 했다.
둘- 악어떼 서당
악어떼 서당은 지역 시설에 거주하는 열세명의 청소년들이 문탁에서 인문학 공부를 하는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우리의 공부가 어떻게 자족적인 교양의 수준을 넘을 것인가? 우리의 공부가 어떻게 책상 밖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 질문을 밀고 나가면서 우리는 마을의 시설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논어를 암송하는 서당과 책 읽기/책 읽어주기로 시작해서 지금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연극과 랩으로 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실 악어떼 서당은 무척 품이 많이 드는 활동이다. 아이들을 ‘꼬시기’ 위해 매번 정성껏 간식을 마련하느라 두 명이 꼬박 간식 만들기에 매달리고, 열세명의 아이들을 위해 다섯 명 정도가 수업에 투입된다. 아이들이 돌아가면 우리 모두는 기진맥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좌충우돌하며 걸어왔던 이 과정은 매번 우리가 낯선 타자를 새롭게 만나는 과정이기도 하고, 그들을 사유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그들을 내 삶에 품어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 이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시설을 나가더라도 마을에서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조심스럽게 꿈꾸기 시작했다.
셋- 문탁인문학 축제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가족을 넘어 마을로”라는 주제로 열린 문탁인문학 축제를 통해 우리는 또 돌이킬 수 없는 어떤 ‘문턱’을 넘어버렸다. 이제 우리는 인문학축제 과정에서 내뱉은 말들, 새롭게 생겨난 인연들과 남겨진 과제들을 갈무리해야 한다. 이 과제는 한편으로 힘겨운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나는 것이기도 하다.
얼마 전 내부 워크숍이 열렸다.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10여개월을 정리하고 내년 활동을 가늠하기 위해 각자의 꿈 보따리를 풀어보는 자리였다. 한 친구는 내년에 이사를 하면 집 한 켠을 내서 ‘마을명상쎈터’를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또 중, 장기적으로 <채식학교>를 열고 싶다고도 했다. 그 이야기가 소문이 나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또 한 친구는 내년에 본격적인 과학세미나를 만들고 강좌로 꾸려보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우리가 공부해서 우리가 꾸리는 강좌가 구체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육아휴직 중인 젊은 남성 회원은 축제를 통해 ‘필’ 받은 ‘마을영화제’를 꾸리고 싶어 한다. 아마 ‘다큐멘터리’를 찍고 트는 데 관심이 있다는 다른 세미나 회원과 ‘부킹’이 이루어지리라...
뿐만 아니다. 주로 마을의 다양한 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는 <마을과 경제 세미나> 팀은 요즘 부쩍 ‘선물’ 을 만들거나 돌리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앎과 삶> 세미나 회원들 중 일부는 자발적으로 ‘마을청소년인문학’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겠다고 나섰다.
축제 이후 내 머리 속에선 중년남성세미나, 마을교사 양성과정, 청소년인문학 프로젝트, 20대 길찾기 워크숍, 마을 칼리지, 회원들의 공부 코스웍, 새로운 주거실험 같은 단어들이 마구 떠돈다.
물론 이 많은 꿈 들 중에 어떤 것은 실현되고, 어떤 것은 실현되지 못하리라. 또 실현되는 것 중에서도 어떤 활동은 탄력을 받으며 나아갈 것이고, 어떤 활동은 점점 미미해지다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 또 어떠랴? 뭐가 대수이랴? 우리는 여전히 꿈꿀 수 있는데...
“누구나 시인이 되고 농부가 되는 곳, 자본과 권력에서 자유로운 곳, 민주주의와 삶이 있는 곳, 우리가 만들고 싶은 마을입니다” 라는 꿈을 꾸고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친구와 함께 삶의 비전을 찾아가는 작고 단단한 네트워크”이고 마을에서 (친구를) 만나는 인문학 공간 아닐까? 우리의 힘은 우리의 꿈에서, 꿈꾸는 우리의 능력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