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 장군은 만노군 태수(萬弩郡 太守, 만노 : 진천의 옛이름) 김서현(金舒玄)장군의 아들로 진평왕 17년(595년)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나이 15세 되던 609년(진평왕 31년)에 화랑이 되고 낭비성 싸움에 공을 세워 압량주 군주가 되었다. 선덕여왕 때 상장군(上將軍), 무열왕 7년(660년) 상대등(上大等)이 되어 당군(唐軍)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후 나당연합군의 대총관(大摠管)이 되어 고구려를 정벌(668년)하고 태대각간(太大角干)이 되었으며 한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다시 찾아 삼국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여 흥무대왕 으로 추봉되었다.
지금의 계양(桂陽) 마을 입구에 장군터(태수 관저가 있던 곳)라 불리워지는 곳에 1983년에 유허비(遺墟碑)를 건립하였으며, 이 곳에서 북동방향 500m 지점에는 태수 관저에서 사용했다는 우물터 연보정(蓮寶井)이 현존하고 있으며 무술 연습과 말달리기를 했다고 전해오는 치마대와 태실은 해발 461.8m의 산정상에 원형으로 석축이 있고 그 주위에 경사면을 에워싼 길이 216m, 높이 1-1.3m규모의 석축이 산성처럼 드리워져 있으며, 우리 나라 태실의 최고형식에 속하는 중요 유적이다.
사력 암질의 붉은 돌을 쌓아서 만든 다리로써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긴 옛 다리이다. 사력암질의 붉은색 돌을 쌓아 축조한 다리로서 당초 28수를 응용하여 28간의 교각을 만들고 그위에 길이 170cm 내외 넓이 80 cm, 두께 20 cm 내외의 장대석1 개를 얹어 만들었다. 총장 93.6m, 폭 3.6m, 교각 1.2m 이며 교각사이의 폭은 80 cm 내외이다. 석회등을 바르지 않고 그대로 쌓았는데도 견고하며 장마가 져도 유실됨이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배티성지]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노고산 아래 위치한 배티성지는 많은 순교자의 종교정신을 기리고 기도하는 장소와 피정의 집으로 활용되었으나 십자가와 묵주만이 남아 천주교 박해의 정도를 가늠케한다. 배티성지는 많은 순교자의 순교정신을 기리고 기도하는 장소나 피정의 집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십자가와 묵주만이 남아있다.
조선 영조때에 각 파의 당파 싸움에서 소론이 실각되자 이인좌는 불평불만 세력을 끌어 모았다. 이렇게 모인 반란군을 이끌고 28년 3월 청주에 잠입하여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살해하고 진천 백곡을 지날 때 이 마을의 팔십 노인 이순곤이 마을사람들을 모아 대항하니 반란군들은 패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에 패한 이들은 다시 안성을 향하여 북쪽으로 올라가던 중 결국은 오명황이 이끄는 관군에게 진압되고 말았다. 후 이곳을 반란군이 패하였다 하여 패티라 불리우다가 지금은 이티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청주에서 진천을 거쳐 백곡 저수지를 지나 8km정도가면 양백리가 나타나는데 배티마을을 지나쳐 고개를 오르다가 (무명의 숨은 꽃)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이름없는 순교자9인의 묘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 묘지는 배티지역에서 생활하던 신자들이 포졸들에게 잡혀 고개를 넘어가던 중 집단 순교해 묻혀 있는 곳으로 현재는 십자가와 묵주만이 걸려 있을 뿐이다. 원래 이 지역의 행정명칭은 양백리 이티였지만 지금은 배티마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배티라는 지명은 동네 어귀에 돌배나무가 많은 배나무고개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병인박해(1866년) 이후 배티와 소학동 일대의 신자촌은 많은 순교자를 내고 일시적으로 와해됐고 신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은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여러 골짜기의 신촌은 없어지고 백곡공소와 함께 배티성지 너머 잿님골에서 순교한 밀양 박씨 발라바와 시누이 남원 윤씨의 묘가 안장돼 있다. 동네어귀에 배나무가 많은 배나무 고개라서 이치란 말이 생겨났고 이것이 순수한 우리말로 배티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과 조선 영조때 이인좌가 난을 일으켰을 때 백곡을 지나다 이 마을 노인 이순곤이 이끄는 주민에게 패한 뒤 다시 안성쪽으로 향하다 오명황이 이끄는 관군에게 진압 패전하였다는데서 패치라 불리우다 바뀌었다는 설이다. 1870년부터 다시 신앙이 싹터 1884년에는 선교사들이 진천에 배티, 삼박골, 용진골, 새울, 굴티등 5곳에 공소를 설정하게 되었으며 1890년에는 배티공소에 "교리학교"가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신자들이 하나, 둘 떠나 현재 이곳 배티에는 신자들이 생업을 영위하던 옹기점과 무명순교자의 묘 만이 남아있다. 한편, 배티성지에서는 배티성지개발 후원회를 조직 교회사연구소와 피정의 집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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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계 1구간 답사를 하고
차량을 회수하여 진천군에서 1박을 한다.
진천군은 고속도로를 지나가기만 하였지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차량을 이동하며 둘러본 진천군은
많은 골프장과 숯을 굽는 참숯 가마가 자주 보인다.
진천읍은 지방 소도시의 모습으로
다소 활기는 없어 보이지만 작은 읍에 이상하리만치 일방통행 도로가 많다.
1박을 할 모텔 일억장에 짐을 풀고
돼지고기와 두부, 감자 등으로 맛을낸 '짜글이'찌게로
맛있게 저녁을 먹고나서 내일 아침식사와 점심에 먹을 김밥 등을 파는
24시 김밥집 위치를 확인하고 과일과 빵등 내일 식량을
확보하고 곱창과 소주로 자축을 한다.
저녁식사를 하며 먹은 막걸리, 2차로 마신 소주
그리고 숙소에서 마신 맥주가 배속에서 불협화음을 이루고 연주를 하지만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든다.
새벽 5시가 되기전에 잠에서 깨어 어제 확인해둔
김밥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애마로 이동하여 7시경 엽돈재에 도착,
충청도계 2구간 산행을 시작한다.
엽돈재는 금북정맥 상의
천안시 입장면과 진천군 백곡면이
만나는 곳으로 만뢰지맥이 이곳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충청도계 2구간 지도>
<충청도계 2구간 들머리, 엽돈재>
<진천군 백곡면 방면 조망>
<멀리 남서 방향의 만뢰지맥 산줄기>
<바람은 다소 차갑지만 등로는 편안하다~>
<어느새 해가 떠올랐다~>
<나무 사이로 어제 지나온 청룡저수지가 보인다~ >
<1,800km 종주를 한 사이클로 단련되어서인지 대포님과 산에님 발걸음이 가볍다~>
<금붓꽃(붓꽃과)>
<서운산 아래 헬기장!>
<헬기장에서 조망한 청룡저수지와 천안 입장면과 안성 서운면 방면 조망>
<지나온 등로, 멀리 좌측으로 만뢰지맥, 우측으로 금북정맥 산줄기가 이어진다~>
<진천군 백곡면 방면 조망>
<서운산 아래에서 비박하신 안성에서 오신 '안성팔광'님과 함께...>
<해발 547m의 서운산 정상>
<서운산 정상에서 천안시 입장면 방면 조망>
<멀리 어제 걸었던 미양산이 보인다~>
<서운산에서 배티고개 방면 가야할 산줄기>
서운산 정상 아래 쉼터에서
준비한 과일과 빵으로 에너지 보충을 하는데
산새들이 날아와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
<지나온 등로, 멀리 좌측으로 만뢰지맥, 우측으로 금북정맥 산줄기가 이어진다~>
<오늘 가는 길에도 사방에서 진달래가 반겨준다~>
<무명 순교자 6인 묘>
<S라인을 그리는 배티고개>
<배티재에서는 산을 깍아낸 만큼의 고도를 급경사 밧줄을 잡고 오른다~>
<안성 방면 조망>
<족두리풀(쥐방울덩굴과)>
<장고개>
<서울제비꽃(제비꽃과)>
<화엄제비꽃?(제비꽃과)>
<금붓꽃(붓꽃과)>
<족두리풀(쥐방울덩굴과)>
<족두리풀(쥐방울덩굴과)과 꼭두서니(꼭두서니과)>
대충산사 최고의 약초전문가이신 산꾼고문님이 알려주신 애기나리!!
고문님, 감사드립니다~ ^^*
<진천군 백곡면 성대저수지 방면 조망>
<헬기장에 금속판으로 덮어 놓았다~>
<지나온 등로>
전신주 너머 동쪽방향의 가야할 등로!
동북쪽 멀리는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등의
3정맥이 갈라지는 칠장산 방면이다.
<미역취?(국화과)>
<?>
<등로 주변에 많은 이녀석은 누구인지 모르겠다~ ^^>
<남산제비꽃(제비꽃과)>
<노랑제비꽃(제비꽃과)>
<410봉>
<산행중 만난 반가운 표지기들~>
471봉을 지나 입장택시에 전화를 하여
옥정현에서 약속시간에 맞추어서 도착을 한다.
진천군 이월면과 안성시 금광면이 만나는
날머리 옥정현에 도착하니 개나리(물푸레나무과)와
고드미, 바르미가 반긴다~ ^^*
옥정현에 도착하여
꽃길속을 거닐었던 충청도계 2구간
발걸음을 마친다.
대포님, 산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
2013. 4. 28.
거기 산이 있으매
첫댓글 역시
교수님다운 글솜씨...^^*
엽돈재~옥정현은 금북정맥 구간인디...
그곳에 친구 표지기가 보이지 않아서 약간은 섭한 마음이... ^^*
그때의 표지기는 천으로 맹근거라
다
헤지고 없을거네...
신경 써주니 고맙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