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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후 1년 반 동안 번 돈 150만원.
백 만원은 전세 걸고
50만원을 가지고 중고물품 파는 곳에서 책상 3개, 의자 몇개, 석고상 약간, 작은 싱크대 하나, 이젤 몇개를 사고 진열장은 내가 사용하던 조립식 침대를 해체해서 만들고 창원에서 미술교습소 문을 열었다.
대학 4학년때 등록금을 대 주시던 큰 오빠께 의논도 안하고 대학원을 갈거라고 도서관에 다니면서 영어공부를 하고 있었다.
여름 방학 어느날 학교에 가겠다고 주머니를 뒤지니 토큰(예전에는 이 걸로 버스 탔음) 하나가 달랑 나왔다.
그때 당시 냄비 우동 한그릇이 500원이나 천원 정도 할 무렵이다.
갈 차비는 되는데 집으로 돌아올 차비가 없는거다.
그날 일요일 아침 나는 결심했다.
내가 지금 비록 대학원 진학은 포기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오면 뭔가를 멋지게 시작하리라...하고 .............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초등 2학년을 마치고 김해로 이사를 왔다.
창원에 출퇴근을 하면서 김해에 미술학원 자리를 보고 다니다 결국 25평 상가를 하나 사서 미술학원 인가를 받았다.
창원에서 미술 교습소를 인수해주고 한달도 쉬지 않은 상태에서 김해 내동에서 미술학원 문을 열고 인테리어를 하고 아이들을 받았고 지금에사 그 상가를 매매한 것이다.
늘 미술학원을 하면서 이건 아닌데... 하고 생각만했지 다른 것으로의 전업은 꿈도 못꿨다.
수입은 계속 있어야하니 다른 일로의 전환은 하지 못한채
내 맘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특별한 일을 찾아서 조금씩의 몸부림을 쳐봤다.
하나 있는 아들은 6세부터 영어 학원에를 쭉~ 보냈다.
아이가 김해로 와서도 영어 학원 만큼은 계속 보냈다.
남편과 내가 의견이 심하게 달라 싸우기를 밥 먹듯이 했지만
아이 영어 학원 보내는 것 만큼은 의견이 일치했다.
애가 영어를 잘하나 못하나 내가 확인해야겠다 싶어서 나도 아이 다니는 영어 학원 엄마반에 들어가서 영어를 접하는 기회가 다가왔다.
이일을 계기로 나는 영어권 외국인 친구들과 수많은 교류를 가지게 됐고,
일본, 러시아, 프랑스, 중국, 네덜란드, 미국, 캐나다, 아일랜드 등등의 여러각국 나라 사람들과 홈스테이, 문화 활동에 푸욱 빠지게 됐다.
김해로 이사온 후 김해 생활 10년 동안은 창원에서의 생활(15년)보다 획기적인 변화가 온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느날 문득 내가 해야할 일들을 놓치고 있다 싶어 자격증들을 따기 시작했다.
엘빈토플러가 '제 3의 물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당장은 돈 되는 일이 아니지만 언젠가는 경제적인 도움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남편과의 문제로 개인 상담, 집단 상담등을 하며 받았던 수료증들로 인해 경남 건강발달지원센터에서 일 할 수 있는 자격이 되어 돌아왔다.
외국인들과의 수많은 파티, 해외 여행(패키지 여행 아님), 홈스테이 문화 교류, 사람들 불러다가 오꼬노미야끼 파티
7개국 국제전 기획하면서 얻은 성과 등이 나의 스팩이 되어 쌓였다.
다음주 화요일 부터 인제대학교에서 어린이 영어 지도사 자격증을 따면 영어미술 프로젝트를 짜서 영어미술 자격 선생님을 배출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25년 동안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
"미술학원이 망했는데 왜이리 속이 후련하노?"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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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더 높이, 더 크게...물봉선님 홧팅~~~
편안한 안주보다 끝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는 그대! 존경합니다
자유영혼의 순수함으로 미소짓는 그대! 사랑합니다
늘 꿈꾸는 맑은 영혼의 그대! 부럽습니다
이런 그대를 아는 저도 행복합니다
청년정신!!팟팅!
그래요,미술학원에서 벗어나신 것은 일단 잘 하셨네요,,,,,
익숙한 것으로부터 결별을 해야,뭔가가 시작이 되는데,
모두가 겁이 나서 놓지를 못 한다지요.
결별의 타이밍이 절묘한것 같습니다. 물봉선님의 끝없는 도전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