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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1장, 2장
개관,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 영적인 능력, 만물의 주님, 거짓 선생과 혼합주의적 가르침 경고
저자와 제목, 연대
바울과 디모데는 골로새서 저자로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다(1:1). 편지 전체에 걸쳐 1인칭 단수형 ("나")이 사용되고 있으므로 예컨대(1:24)
디모데는 아마도 바울의 비서('아마누엔시스') 역할을 했을 것이다. 편지 제목은 바울이 골로새라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편지를 썼음을 알려준다.
어떤 학자들은 (1)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논란이 없는 바울의 편지들과 일치하지 않는 문체와 (2) 자신들이 바울이 이전 편지들에서 쓴 내용보다 더 발전된 것으로 간주하는 일련의 신학적 진술들을 근거로 바울의 저작 사실을 의심해 왔다. 후자의 반론은 바울로 하여금 이런 특정한 관심사들을 가장 타당한 신학적 강조점을 가지고 다루게 한, 편지 안에 반영된 독특한 상황을 통해 쉽게 답변할 수 있다.
이 신학에는 바울이 다른 데서 썼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바울의 많은 진술들은 단지 이전의 생각들이 논리적으로 발전된 것일 뿐이다. 문체와 관련된 주장은 훨씬 더 취약하다. 이 편지와 바울의 다른 편지들 사이에는 사실 강력한 문체의 연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작은 표본 추출을 근거로 저자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 또한 매우 위험하다. 어떤 저자가 그의 모든 저작에 걸쳐 문체의 일관성을 보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 편지는 아마도 주후 62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빌레몬서와 에베소서를 쓴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이 편지를 썼다. 이 세 편지는 모두 두기고(엡 6:21)와 오네시모와 함께 보내졌다. 이러한 추정 연대는 바울이 말하는 투옥이 로마로 가는 끔찍한 항해에 뒤이은 로마에서의 투옥(행 27~28장)임을 전제로 한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포함한 피조물 전체를 다스리시는 주님이시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위해 구속을 성취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죽음과 부활과 충만함에 자신과 함께 참여할 수 있게 하셨다.
목적, 계기, 배경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간 사용하는 동안(주후 52~55년)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동안 에바브라라고 불리는 한 골로새 사람이 아마도 에베소에서 여행했다가 바울의 복음 선포에 반응했을 것이다(행 19:10). 이 새 신자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이는 골로새 교회의 탄생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골 1:7).
이 편지가 기록될 당시에 에바브라는 바울과 함께 로마에 있었고 아마도 골로새 교회를 위협하는 위험한 가르침이 있다는 안 좋은 소식을 전했을 것이다(4:12). 바울은 이런 상황에 대처하고 이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성숙을 향한 성장을 장려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썼다.
학자들은 골로새 교인들이 직면한 파괴적인 가르침의 정확한 성격에 대해 오랫동안 이리저리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불확실성이 이 편지의 풍부한 신학적 가르침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 이전 어느 세대의 학자들은 골로새 교회의 문제는 세상은 한 열등한 신이 창조했고 물질세계는 악하며 (어떤 경우에는) 금욕을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친 초기 이단인 영지주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이집트에서 발견된 영지주의 문헌의 도움을 받은 영지주의에 대한 발전된 이해로 인해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런 해석을 평가절하하게 되었다. 골로새서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별되는 미지의 신이 있다는 영지주의적 관심에 대한 어떤 비판도 빠져 있다. 물질과 물질적 존재는 본래적으로 악하다는 영지주의의 확산에 대한 논의도 전혀 없다.
(안식일 준수, 유대인의 명절, 천사들에 대한 관심 같은) 거짓된 가르침(2:16~18)에 유대교 특유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로 인해 많은 학자들은 이 대립되는 가르침이 유대교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일종의 유대교 신비주의가 교회에 영향을 끼쳐 골로새 교회의 그리시도인들이 천사들과 함께 하늘 보좌에 좌정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상상 속의 승천을 준비하며 (금식 같은) 금욕적 관행에 참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해왔다(2:18).
이는 가능한 주장이기는 하지만 '천사 승배'와 이 거짓된 가르침의 다른 몇 가지 요소들(2:18)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어떤 이들은 그와 비슷한 견해를 옹호하면서 골로새 교회의 주된 문제점은 교회 안에서 비롯된 위험한 가르침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들어온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 지역의 유대인 회당이 그리스도인의 모임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맹렬히 비난하기 위한 조직적 활동을 벌이고 있었으며 이는 특별히 주로 이방인 신자들로 이루어진 이 집단이 이제 구약의 유대교적 유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견해와 한 가지 문제점은 유대 율법의 역할이 골로새서에서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견해는 또한 다른 지역 종교들이 지닌 다른 혼합 주의적인 요소들의 역할을 적절히 고려하지 않는다. 이 위험한 가르침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은 이 가르침이 그 지역의 유대인과 이교도의 민간 신앙이라는 배경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 지역의 민간 신앙의 한 가지 핵심적인 특징은 천사들에게 악한 영들로부터 도움과 보호를 요청하는 경향이었다. 이런 특징은 많은 비문과 고대 문헌들 속에서 충분히 입증된다.
예컨대 악한 영들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목에 두르도록 되어 있는 한 마술적인 돌 부적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미가엘, 가브리엘, 우리엘, 라파엘이여, 이것을 착용한 사람을 보호하소서.... 달아나라, 오, 미움 받는 자여, 솔로몬이 너를 뒤쫓는다." 골로새에서 벌어진 일은 아마도 교회 안에 있는 한 무당 같은 인물이 추종 세력을 끌어 모은 뒤 자신을 기독교적인 영적 안내자 비슷한 존재로 묘사한 일이었을 것이다(참조, "그 육신의 생각"[2:18]).
이 사람은 아마도 자신에게는 영적인 세계에 대한 우월한 통찰력이 있다고 주장하며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악한 영들에게서 보호받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특정한 의식, 금기, 의례를 행할 것을 조언하고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평가 절하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의 새로운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런 가르침의 영향력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이 경고와 권면의 편지를 썼다.
바울은 귀신의 세력이 제기하는 위협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권세를 능가하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바울은 높아지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과의 연합을 역설하며 이 연합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권능과 권위에 참여하는 것을 수반한다. 바울은 또한 이 신자들에게 죄악의 싸움을 지속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며, 그리스도인의 특징을 나타내는 가정생활을 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해 전력할 것을 권면할 기회를 잡는다.
핵심 주제
1.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보다 탁월하시며 모든 인간 통치자와 우주적 세력을 다스리는 주님이시다(1:15~20, 2:9~10, 3:1).
2.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을 위해 구속과 화해를 성취하도록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하셨다(1:13~14, 20~22).
3.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 결과 그리스도와 연합된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 새 생명과 충만함에 동참한다(2:9~14, 3:1~4).
4.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셨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영역에 대한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세에 동참한다(2:10, 15, 참조, 2:8, 20).
5. 예수님은 유대인의 기대의 성취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예수님과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의 옛 언약 백성이 남긴 유산을 공유한다(1:12, 21~22, 27).
6. 신자들은 악한 습관을 제거하고 그리스도인의 미덕을 함양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점점 성숙하도록 부르심받았다(1:10~12, 28, 3:1~4:6).
그리스도인들은 거짓된 가르침과 대비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한 길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골로새서 1장, 2장
그리스도는 만물의 주님
1~14절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사도된 바울', 바울은 아마도 골로새에 방문한 적이 없었겠지만 이 교회에 대해 목자로서의 책임을 느낍니다. 바울은 이 교회가 건강을 위협하는 위험한 가르침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기 위해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편지를 씁니다. '골로새', 로마의 아시아 속주에 속한 브루기아의 한 도시인 골로새는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약 161킬로미터 떨어진 리쿠스 강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1~2절).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바울은 이 편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상당히 강조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이 어떤 별개의 하나님이 아니라 성부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계시다고 신중하게 단언합니다(3절).
'믿음....사랑.....소망', 바울은 이 세 가지 기독교적 미덕의 중요성을 자주 언급했고 이 세 미덕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 본문에서 믿음과 사랑은 소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소망은 소망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확신을 가지고 기대할 수 있는 객관적인 어떤 것을 또 소망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제시됩니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것이므로' 어떤 지상의 통치자나 귀신의 권세도 신자들에게서 이 소망의 실제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4~5절).
'진리의 말씀', 이는 바울이 나중에 헛된 속임수로 묘사는 거짓된 가르침과 대비됩니다. '온 천하에서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오순절 이후 이제 대략 30년이 흘렀습니다. 복음은 실제로 예루살렘에서부터 수리아, 소아시아, 그리고 이탈리아로 그리고 아마도 이집트, 북아프리카, 페르시아로도 확산되었습니다(5~6절).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이 말은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개척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줍니다. 이 사람들은 같은 골로새 사람인 에바브라에게서 복음을 들었습니다. "배웠나니"에 해당하는 단어(헬, '만티노')는 '제자'라는 단어(헬, '마테네스')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단지 간단한 복음을 제시하는 귀 기울이는 일만이 아니라 믿음과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체계적인 가르침을 수반한다는 점을 바울은 분명히 밝힙니다(7절).
"지혜와 총명"은 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주께 합당하게 행할 것이므로 변화된 삶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행한다'는 말은 처신 내지 행동에 해당하는 유대인적인 은유로 히브리어 단어 '할라크'에 상응합니다. 랍비들에게는 훗날 특히(미쉬나와 탈무드에) 기록된 자신들의 행동에 지침이 된 할라크라고 불리는 구전전승이 있었습니다(10절).
<영적인 능력>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영적인 능력은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핵심적인 문제였습니다. 사람들은 악한 영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고 부나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해 다양한 신들과 이교적 의식들과 관계함으로써 능력을 추구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이기적인 목적으로 위해서가 아니라 합당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능력을 주시기를 규칙적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기를 원합니다.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이 하나님이 주신 능력의 목적은 신자들이 기독교적 미덕에 이르고 믿음 안에서 인내하며 유혹과 기만적인 교사들에 저항하고 그래서 주님의 기쁨을 아는 데 필요한 신적인 능력을 공급하는 것입니다(11절).
'그가 우리를....건져내사', 하나님은 옛 언약 아래서 자기 백성을 이집트에서의 종살이에서 구하셨듯이 이제 그들을 '흑암의 권세에서', 즉 사탄과 악의 세력의 영역에서 건지셨습니다.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 이 나라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 또는 천국과 같은 나라이며 사복음서 전체에 걸쳐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자신의 나라를 아버지께 넘겨주실 때까지 다스리실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며 하나님 나라는 현 시대의 끝에 완전히 나타나게 됩니다(13절).
'속량'이란 구출 내지 해방을 뜻하며 여기서는 신자들이 구원받고 죄사함을 얻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14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
15~20절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을 때 존재하게 된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천지를 만드신 창조의 동인이었습니다(요 1:3). 만물이 예외없이 그를 통해 창조됐으므로 예수님은 최초로 창조된 존재일 수가 없습니다.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바울은 천사들의 다양한 위계를 뜻하는 당시 통용되던 유대인의 용어들을 (비록 천사들의 상대적 계급은 설명하지 않지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의 강조점은 악한 천사들에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편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이 악한 천사들을 창조하셨단 뜻은 아닙니다. 모든 영적인 세력들은 예수님을 통해 창조되었지만 어떤 것들은 후에 하나님께 반역하여 악하게 변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의 동일 인뿐만 아니라 창조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그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를 위하여, 즉 그에게 영광과 찬양을 돌리기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의미에서 창조의 목적이므로 온전히 하나님이신 것입니다(16절)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리스도는 지속적으로 천지 만물을 지탱하시며 천지 만물을 혼돈에 떨어지거나 붕괴되는 것을 막으십니다(17절).
그리스도는 구속의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십자가에서 화해를 성취하셨습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바울은 다른 곳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렀지만 여기서는 그 이미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그 몸의 머리로 묘사합니다(18절).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여기서의 이 편지 전체에서 충만이라는 표현은 이 단어의 구약에서의 용례를 떠올리게 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임재로 성전에 가득 채우셨다고 말합니다. 예컨대 선지자 에스겔은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한지라"(겔 44:4).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지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것 또한 예수님 안에 거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 능력, 성령, 영광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이 모든 선택인 충만히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말은 곧 예수님은 온전히 하나님이라는 말과 같습니다(19절).
'만물(이)....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평강의 왕"(사 9:6)이신 예수님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모든 반역을 진압하실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있어 이는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친구로서 하나님과 화해함을 의미합니다. 불신자들과 귀신의 세력에 대해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평화의 통치가 그들에게 시행될 것입니다. 그들이 더 이상 우주 안에서 어떤 해도 끼치지 못하도록 정복하시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반역을 결정적으로 물리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화평의 통치'를 위한 기초는 '그의 십자가 피'입니다. 십자가는 진실로 인간 및 우주의 역사의 중추적인 지침입니다(20절).
<직분과 소명의 중요성>
21~29절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전에....이제는',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의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상태와 현재 그리스도에 있는 그들의 양호한 상황을 극명하게 대조합니다. '멀리 떠나',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 결과 화해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는 부분적으로 불신자들이 하나님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합니다. 화해의 결과는 그리스도가 이제 너희를 거룩하고 흠없이 하나님 앞에 세우고자 모든 모든 신자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21~22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이 문구의 형태는 골로새 교회 신자들이 믿음에 거하기를 바울이 전적으로 기대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끝까지 신실한 태도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필수적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흔들리지 아니하면' 여기에 담긴 개념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을 대조하는 예수님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합니다(마 7:24~27).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거짓된 가르침이라는 흔들리는 모래위가 아니라 진리에 단단한 기초 위에 집을 짓기를 원합니다. '천하 만민에게', 이는 복음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그리스- 로마 세계 전역에 널리 전파되었으면 뜻합니다(23절).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헬, '휘스테레마') ....내 육체에 채우노라'(헬 '안티나플레르오') 이는 그리스도의 속죄 죽음과 십자가에서 고난에 부족한 것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이 편지와 성경의 나머지 모든 내용의 핵심 메시지와 모순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사실 충분하여 우리 자신의 그 어떤 것도 구원을 확보하기 위해 덧붙여 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서 예컨대 고후 1:8~10에서 묘사했듯이 바울처럼 복음을 위해 큰 고난을 경험할 모든 이들의 미래의 고난이었습니다(24절).
'하나님이....주신 직분을 따라',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께 사명을 맡은 청지기 내지 일꾼으로 간주합니다. 일꾼은 로마 세계에서 큰 집안이나 사유지의 관리자를 뜻하는 로마 세계에서 널리 사용된 단어였습니다. 바울의 책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채우는 일은 말씀 선포가 이루어질 때 발생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고난을 받으며 죄사함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단회적인 고난과 회생이라고 선포합니다(25절).
'비밀'은 어떤 신비로운 것이나 은밀한 의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울은 세상에 대해 펼쳐지는 하나님의 계획과 무엇보다도 메시아를 통한 구속의 계획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계획에 여러 요소들은 이미 선지자들을 통해 알려졌지만 그 계획의 핵심적 측면들은 만세로부터 감춰줬던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에 의해 나타났을 때 비로소 알려지고 이해될 수 있는 비밀이었습니다.
이 표현은 다니엘서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느부갓네살의 꿈이 하나님 나라에서 절정에 이르는 연속되는 네 나라를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을 계시하셨을 때 다니엘은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의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단 2:28).
하나님이 지금 바울을 통해 제시하고 계신 비밀의 핵심에는 새 언약의 놀라운 특징인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 있다.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의 인격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삶 속에 직접적이고 개인적으로 임재하실 것이며 그리스도 임재는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와 함께 미래의 삶에 대해 확실하게 합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믿는 이방인 안에도 거하시며 따라서 통일된 하나님의 한 백성이 존재합니다(26~27절).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헬, '헬레이오스') 자로 세우려 함이니', 비록 신앙 고백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바울로서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헬레이오스는 완벽한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지만 완전한 완벽한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고 신자들이 완전히 변화돼 있어야만 비로소 이뤄질 것입니다. 그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성숙은 유아기의 미성숙과 대비됩니다(28절).
<거짓 가름침에 대한 경고>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위협하고 있는 가르침에 대해 일련의 경고를 보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거짓 교사들의 논증에 대항하고 주님께 합당하게 살도록 도움을 줄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들의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제시합니다.
1~8절
2: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거짓 교사들은 아마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있다고 주장했겠지만 바울은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의 비밀이며 모든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춰져 있느니라', 바울은 거짓된 진리의 원천에 대해 곧 말하게 될 것을 예상하며 그리스도가 신적인 지혜와 영적인 지식의 궁극적인 보고라는 점을 강조합니다(2~3절).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들 가운데 있는 직접적이고 위험한 위협에 대해 경고합니다. 그 위협은 교회 안에서 모여 그 교사들이 하는 말은 합리적이고 심지어 설득력 있게 들린다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골로새 교인들과 바울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살며 하나님의 영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 바울은 사실 그들과 함께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서 안정성이 지속되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기에 질서와 굳건한 것이라는 두 가지의 군사적인 비유를 사용합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전투 대형으로 집합한 군대처럼 맞서 싸우는 병사들과 같이 굳건히 서야 합니다(4~5절).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들이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에바브라가 그들에게 전해준 기본적인 가르침으로 되돌아갈 것을 말합니다. 이 가르침의 핵심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그들이 이미 배운 것 안에 담긴 확고한 기초를 상기시키기 위해 나무('뿌리를 박으며')와 건물('세움을 받아')의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그 속에 담긴 뜻은 왜 그들이 이제 와서 그와 경쟁하는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하느냐는 것입니다(6~7절).
'너희를 사로잡을까',(헬, '쉴라고개오', 배에서 뱃짐을 약탈하는 행위에 대해 흔히 사용되는 단어) '주의하라', 골로새의 거짓 교사들은 교회에 매우 실제적인 위협을 제기합니다. '철학', 이 단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관사를 포함하며 이 문파의 우두머리가 자신들의 가르침을 철학이라고 불렀음을 암시합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채움'과 '충만'에 대해 말할 때 분명히 오류에 빠진 교사들의 전문 용어를 흉내 내고 있으며 여기서도 그렇게 하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철학이라는 용어는 고대 세계에서 오늘날 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컨대 요세푸스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가르침을 철학이라고 불렀습니다. 심지어 마술사도 철학자라고 불릴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전통적인 그리스 철학의 학파들 예컨대 플라톤주의, 스토아주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의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말은 특정한 분파적 가르침이 골로새에 퍼지고 있는 현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바울은 이 가르침이 헛된 속임수 뿐만 아니라 세상의 초등 학문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예리한 주장을 풉니다(8절).
9~15절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가시적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성육신 속에서 그리고 이제는 영화속에서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이 놀라운 진실에서 바울은 신자들과 그리스도와의 연합 덕분에 신자들이 모든 통치자와 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의 권능과 권위에 동참한다고 단언합니다. 여기에 골로새의 주요 주제가 있습니다. 신적인 충만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신자들은 그 안에서 충만해집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처럼 되라는 다른 어떤 가르침도 필요 없습니다(10절).
'그 안에서 너희가....할례를 받았으니', 바울은 여기서 할례를 영적인(손으로 하지 아니한) 행위를 나타내기 위해 비유적으로 사용하며 이를 '육의 몸을 벗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신자들은 더 이상 육신과 육신의 영향력의 범위 안에서 살지 않고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겨졌으며 그로 말미암아, 그의 안에서, 그의 주 되심 아래 살아갑니다. 그리스도가 행하시는 이 할레로 그리스도인들은 아담과 아담의 죄와 결합된 데서 벗어났고 이제 그리스도와 그에 의해 결합되어 이전과는 달리 그리스도를 위해 살 수 있습니다(11절).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되고 또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그와 함께 살리시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에서 끌어온 두 번째 비유에서 바울은 기독교의 세례 의식이 죽으신 그리스도와의 일체화를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것은 죄와 사탄의 세력에 대한 죽음과 더불어 예수님이 신자들에게 자신을 본받아 살도록 명하시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능력 부여를 의미합니다(12~13절).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귀신의 세력에 대한 결정적 승리를 표시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귀신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고발할 수 있는 권세를 박탈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귀신들은 계속해서 존재하며 악을 조장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계속 귀신들과 싸워야 합니다.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이는 마 1:19에서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폭로하여 공개적으로 그녀에게 수치를 주는 것을 원치 않는 일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표현과 같은 표현입니다.
십자가는 귀신의 세력이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전복시키는 데 실패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이 의미는 로마 군대의 개선 행렬과 관련된 것입니다. 패배한 왕을 살아남은 그의 모든 용사들과 전리품과 함께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공개적인 구경거리로 로마의 거리 곳곳에 끌려 다녔습니다(15절).
<혼합주의 가르침에 대한 경고>
16~23절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거짓 가르침에 대한 추가적 경고, 거짓 선생들은 영적 성장을 위해 금욕 주의를 옹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영적 성숙에 이르는 참된 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굳게 붙드는 것이지 이런 잘못된 인간적인 원칙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 거짓 선생들은 여러 유대교적 의식들을 옹호하며 그것들을 영적 발전의 필수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16절).
'장래 일의 그림자', 옛 언약의 의식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미래의 실재를 암시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모세 언약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구약의 음식법("먹고 마시는 것")이나 절기, 명절, 특별한 날("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준수할 의무가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예표한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안식일이 4계명의 정기적인 일곱째 날의 안식을 포함한 것인지 아니면 유대 절기력의 특별한 안식일일 뿐인지는 논란거립니다(17절).
바울은 거짓 선생들이 골로새에 참된 신자들을 정죄하려한 다양한 방법들을 열거합니다. '꾸며낸 겸손'이란 말은 겸손을 뜻하는 헬라어 ('티페이네프로쉬네')를 번역한 말입니다. 바울은 아마도 금식과 22절에 언급된 금기들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천사 숭배'는 악한 영들에게서 도움과 보호를 받기위해 천사들을 불러내는 행위와 관련있습니다. '의지하여'라고 번역된 동사 (헬, '엠비튜오')는 헬라어 문헌에서 보기 드물고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근처에서 발견된 일련의 비문들에서 사용된 이 단어의 용례는 여기서 이 단어의 의미를 밝혀주었습니다. 그것은 이방 신전에 가장 안쪽 성소에 '들어가는' 일을 포함한 신비 종교 입회식의 더 높은 단계를 가리켰습니다. 이 단어는 골로새 교회에 있는 이 파벌의 지도자가 자신의 가르침의 일부의 근거를 이교적인 입회식에서 얻은 영적 경험에 두고 그 결과 거짓된 가르침의 혼합주의적 성격을 드러냈을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 본 것에', 일종의 환상적 체험과 그 결과인 신비적 직관이 이 거짓된 가르침의 일부로 제시되었습니다(18절).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골로새에 있는 이 경쟁하는 거짓 선생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점은 그가 그리스도와의 접촉을 유지하지 않고 그 결과 악한 영들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는 몸의 머리로서 통솔력을 발휘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 몸의 모든 지체('마디와 힘줄')가 성장하고 성숙해지게 하는 공급원이기도 합니다(19절).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여기서 사용된 이 말들이 거짓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특정한 금기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규칙들은 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입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은 그의 영적인 생활이 있어서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21절).
'지혜 있는 모양', 골로새에 있는 이 분파의 우두머리는 골로새 교인들이 이른바 악한 영들을 상대하고 인생의 여러 상황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는 일상생활을 위한 비밀한 지혜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자의적 숭배', 이 헬라어 단어('에텔로트레스키아')는 '자발적 예배'라고 번역할 수도 있으며 이는 이 거짓 교사가 골로새 교인들에게 사도적 전승과 반대되는 이런 혼합주의적인 길을 택할 자유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할 수도 있습니다.
'몸을 괴롭게 하는 데', 이는 이 '철학'이 옹호한 금욕적 행동의 일부인 금식과 금기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지역의 일부 종교에서 시행된 것과 비슷한 일종의 지혜까지 포함시키면 그것은 이 철학의 범위를 넘어서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금욕 주의는 영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촉진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가 아닌 자신에 대한 신뢰에 불과한 것입니다(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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