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보자
손원평. (2017). 『 아몬드 』창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수영장에서 귀에 물이 차 먹먹하게 들리는 답답함일까? 상대방의 마음을 조금도 읽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와도 제대로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이며, 심지어 자신의 마음 조차도 알 수 없다는 뜻은 아닐까? 그것이 불편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끼지도 못하는 상태, 그래서 철저히 고립된 상태….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낯선 병명을 가진 주인공은 뇌 속 편도체 크기 이상으로 감정에 대해 잘 느끼지 못한다. 고립된 상태로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는 동안, 그는 자신의 약점으로 인해 그토록 원했던 평범한 삶을 힘겹게 좇아가야 했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그의 약점을 안타까워하며 그의 일상을 지지하는 어른이 그의 주변에 항상 존재했다는 점이다. 그의 엄마와 할머니는 ‘가족은 언제나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양 옆에서 그의 손을 굳게 붙잡아주었다. 불의의 사고로 고아 신세가 되었을 때, 집 주인 심 박사는 집 주인 그 이상의 역할을 해 주었다. 거친 환경에서 성장하여 자신의 여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는 친구 곤이와 주인공의 다름을 특별함으로 인정해주고 관심을 기울이는 도라가 있었다. 충분히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주인공이 낙오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지지하고 붙들어주는 어른들과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선천성을 넘어 연결될 수 있었다.
감정을 읽지 못하는 주인공을 보며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우리 사회로 생각이 이어졌다. 세월호 사건이나 10.29 참사를 겪으며 재난을 만난 이웃들을 향해 2차 가해를 서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의 결함을 만회하고자 연습에 연습을 더하지만,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어떤 부류는 오히려 자신의 공감 부재를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있으니 어떻게 된 것일까? 정치적인 이유로, 혹은 금전적인 목적으로 공감하기를 거부하는 우리 사회는 그래서 얼마나 불행한가?
수전 손택은 그의 책 <타인의 고통>에서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참혹한 전쟁 이미지와 폭력에 대해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동정과 연민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하는 시청자의 태도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손택은 연민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무력함과 무고함(“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까지 증명하는 알리바이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되다고 말한다. 감정을 읽지 못하는 주인공은 가출을 한 친구 곤이를 구하기 위해 두려움을 넘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수렁에 빠지려는 친구를 손 때 하나 묻히지 않고 구할 수 있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주인공은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그는 친구 곤이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었다.
그가 친구 곤이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와 할머니를 잃던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자기 반성에서 나온 행동이 아닐까? 그는 불행의 순간에 감정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결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학습했던 것 같다. 그래서 친구 곤이를 위해서는 연민과 동정을 넘어 한 걸음 더 나아가 손을 내밀었던 것 같다. 좋은 친구가 된다는 것, 좋은 이웃이 된다는 것, 공감이 동정과 연민으로 소모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 한 걸음 속에서 공감은 제 가치를 드러내고 생각지 못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니 한 걸음만 더 나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