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미어와 함께 국내시장에 상륙한 BMW의 신형 5시리즈는 E60처럼 파격적이지도, 단테 시절의 단아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스타일에서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7시리즈에 육박하는 크기와 고급스러움, 달리기 질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535i는 강력하며 528i는 밸런스와 운전재미가 남다르다. 엔트리 모델인 523i마저도 기대 이상의 성능을 보여주었다.
BMW의 신형 5시리즈가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맹렬한 디자인 논쟁을 비웃듯이 5시리즈 38년 역사상 최고의 판매량으로 회답했던 전작 ‘E60’을 잇는 신모델이다. 코드네임은 ‘F10’. E로 시작하여 열자리 숫자로 마무리짓던 전통 대신 F를 쓰는 두번째 BMW다. 자동주차시스템 + α를 더하고도 가격은 다운
신형 5시리즈는 BMW의 남다른 투지가 엿보이는 차다. 어느덧 중형 세단의 이정표가 되어버린 5시리즈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천만에. 전작의 대성공으로 말미암아 BMW의 매출이 5시리즈를 중심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BMW의 전체 판매숫자에서 5시리즈가 차지하는 부분은 25%지만 전체 순익에서의 비율은 무려 50%나 된다. BMW 이익의 절반은 5시리즈가 창출했다는 말이다. CUV다, 소형차다 하며 전에 없이 수익구조 다변화에 여념이 없는 BMW이지만 진짜 정성을 쏟은 차는 사실 5시리즈다. 이 차야말로 BMW의 향후 7년의 성패를 좌우할 만한 존재인 것이다.
국내 발매에 앞서 지난달 포르투갈에서 성대한 시승회를 열었지만 당시 시승차는 톱 모델인 535i와 530d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정작 궁금한 국내 주력모델(특히 528i)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가던 참이었다. 본격적인 일반도로 시승에 앞서 신형 5시리즈의 성능을 맛볼 수 있는 행사가 교통안전공단 자동차 성능시험연구소에서 있었다. 주력모델인 523i과 528i 그리고 550i의 국내 발매가 미지수인 상황에서 당분간 가장 강력한 5시리즈가 될 535i까지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
실제로 마주한 차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7시리즈와 아키텍처를 공유하는 차이니만큼 어느 정도의 볼륨 증가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 나타난 차는 7시리즈라고 해도 별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의 덩치다. 길이 4.9m, 폭 1.86m에 휠베이스는 무려 2.97m! 대형차로 분류하기에 모자람 없는 사이즈다. 94년 단종된 7시리즈인 E32도 이 정도였다.
더욱이 그 모습이 7시리즈로 착각하기에 딱 적당하다. 후이동크판 BMW의 첫 작품이었던 최신 7시리즈의 특징이 안팎으로 고스란히 묻어난다. BMW의 엄격한 디자인 언어는 여전하지만 은퇴한 크리스 뱅글의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단정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여기 저기 기교를 잔뜩 부린 수트를 보는 느낌이다. E60에 익숙해진 탓일까, 전처럼 호불호가 격렬하게 갈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뱅글의 은퇴와 함께 클라우스 루테 시절의 단아한 BMW의 부활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쩌겠는가, 수트의 유행만큼이나 차도 변하는 것을.
BMW를 대표할 수 있는 주행 질감
코스는 크게 세 가지, 고속 크루징과 슬라럼 그리고 자동 주차 모드인 파킹 어시스턴트의 체험으로 구성되었다. 시작은 고속 주행부터다. 160km 안팎의 속도로 순항하면서 차의 움직임과 정숙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맨 처음으로 탄 차는 라인업의 정점 535i다. 요즘은 직분사와 터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배기량과 모델명이 일치하지 않는다. 535i의 경우 3.5L가 아니라 트윈스크롤 터보와 직분사 시스템을 쓴 3리터 엔진이다. 306마력의 출력에 1,200rpm의 저회전부터 나오는 40.8kg·m의 토크는 3.5리터급에서도 꽤 상급의 스펙. 528i와 523i는 반대의 경우로 각각 3리터와 2.5리터의 자연흡기 구성이다. 직분사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구형의 인젝션 타입을 쓰는 엔진은 일부러 0.2리터씩 배기량을 빼는 다분히 마케팅적인 작명법이다. 전모델 공통으로 변속기는 8단 자동. 760i에 먼저 얹은 ZF의 최신 AT다.
디자인도 품질감도 7시리즈와 다를 것 없는 실내다. 엔진 소리는 간간히 속도를 올릴 때 이외에는 별로 들려오지 않는다. 톱 기어의 기어비가 0.67:1이라는, 8단의 특성을 살린 넓은 기어비 설정 탓에 시속 100km 부근에서는 2,000rpm을 넘기지 않는다. 단수의 범위가 워낙에 넓다보니 D 모드에서는 종종 기어가 1~2단 정도 높이 걸려 있다는 느낌도 있지만, 민첩한 킥다운 속도 덕분에 특별히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다단화의 성과인 엄청난 연비가 돋보인다. 535i의 표준연비는10.8km/L. 300마력이 넘는 차로는 상당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성능이 뒤떨어지지도 않는다. 535i의 0→시속 100km 도달시간은 이전 세대의 540i(V8 4.4L)와 같은 6.1초. 250km로 제한되는 최고속은 이미 6단에서 나온다. 속도제한을 해제했을 때 이 차의 최고속이 얼마나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뒤이어 달린 528i 또한 나무랄 데 없는 주행질감을 보여주었다. E60 시절에는 530i로 불렸던 엔진이다. 245마력에 32kg·m의 토크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최고속은 535i와 같고 제로백 가속은 0.6초 느리다. 그런데 고속 크루징에서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게 된 차는 523i. 2.5리터 엔진과 8단 변속기 덕분에 더 이상 심장이 부실한 5시리즈 취급을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안팎의 품질감은 상위모델과도 완전히 같은 데다 535i를 경험하고 난 뒤인데도 특별히 힘이 모자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0→시속 100km 가속에 8.5초의 성능이면 다른 브랜드에서는 이미 스포츠 세단이다.
그러나 전모델을 통틀어 가장 큰 변화를 느낀 것은 ‘편안해진 승차감’이다. 시리즈의 막내 523i조차 얼마 전 시승한 BMW의 정점 760i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승차감을 자랑한다. 최상의 조종안정성을 위해서 어느 정도는 승차감 희생을 받아들이라고 종용하던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달라붙는 듯한 고속의 안정감은 여전하지만 단단한 하체가 약점을 드러내는 거친 노면에도 전에 없이 부드럽게 타넘는다. 7시리즈에 먼저 선보인 다이내믹 드라이빙 컨트롤 덕분이다. 변속시점은 물론이고 엔진 리스폰스와 감쇄력, 스티어링 감도, 스태빌라이저의 강도까지 변화시키므로 운전 특성이 크게 바뀐다. 댐퍼의 감쇠력이나 변속시점을 바꾸는 정도인 타사의 스포츠 모드와는 비교불가다. 컴포트에서 스포츠 플러스까지 4단계의 설정변화는 변속 시프트 옆의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간단하게 처리된다. 안락한 패밀리 세단에서 코너링 머신까지 버튼 하나로 일어나는 변신은 이름만큼이나 다이내믹하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설정한 523i로 파일런 코스에 뛰어들었다. 슬라럼 뒤 연속 헤어핀과 긴 중속 코너를 통과한 뒤 직선로를 가속, 하드 브레이킹으로 마무리하는 제법 본격적인 코스다. 엔트리 모델이라 하지만 BMW의 날카로운 회두성은 여전하다. 파일런 사이를 빠져 나가는 몸짓에서 5m에 가까운 덩치는 느껴지지 않고, 두려움 없이 가속 페달을 끝까지 쓰면서 달릴 수 있었다. 물론 본격적으로 달리는 데에는 아무래도 파워를 더 꺼내 쓸 수 있는 528i 쪽이 훨씬 즐겁다. 528i는 파워와 밸런스 그리고 스티어링을 통해 자동차와 교감하는 능력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가장 기대했던 535i는 523i나 528i와 약간 다른 운전방식을 요구한다. 국내에서는 535i만 신형 인테그럴 액티브 스티어링 시스템이 달리는데, 기존의 가변 조향각 기능에 뒷바퀴까지 조향기능을 넣은 장비다. 시속 60km 미만에서는 앞바퀴의 방향과 반대로, 그 이상의 속도에서는 같은 방향으로 뒷바퀴를 꺾어 차의 운동성을 끌어올린다. 그만큼 스티어링을 덜 꺾어도 되지만, 528i를 몰던 감각으로 스티어링을 감았다가는 코너의 진입각이 예상보다 커져 버린다. 뿜어져 나오는 저회전 토크를 추스리려면 브레이킹 시점에 꽤 신경을 써야 한다.
익숙해지면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차라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즐거움의 상당부분은 차에 맡겨둬야 한다. 액티브 스티어링이 없는 차에 비해 스티어링 피드백이 현저히 줄어들어 그만큼 차와 소통하는 즐거움이 줄어든 것도 아쉽다. 전작에 비해 크게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스포츠주행 중에 느끼는 이질감 또한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적어도 스포츠주행만큼은 528i 쪽이 훨씬 즐거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스의 마지막은 파킹 어시스턴트 시스템의 체험이다. 국내에서는 폭스바겐 티구안을 통해 먼저 소개된 자동 일렬주차 시스템이다. 주차거리 컨트롤 및 리어뷰 카메라 이미지와 함께 설명이 컨트롤 디스플레이상에 표시되므로 운전자는 화면의 지시대로 따라 하면 된다. 앞 뒤 빈 공간이 1.3m는 있어야 하는 폭스바겐의 시스템에 비해 1.2m만 있으면 된다.
높아진 성능과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최신 기능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오히려 낮아졌다. 엔트리 5가 될 523i는 6,380만원, 주력모델이 될 528i는 6,790만원으로 오히려 100만원 싸졌다. 535i의 경우 크게 높아진 성능과 가격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구형 530d 정도로 포진시켜 놓았다. 역대 최저 수준의 가격과 최고의 기술력이 이 차의 성공을 짐작하게 한다. 발매 시점에서 사전 주문만 이미 3,000대를 넘어섰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시장은 이미 중형 프리미엄시장의 패자로 신형 5시리즈를 점찍어 놓은 상태다.
이 차의 프로젝트 리더인 요세프 뷔스트는 담대하게도 이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아우디 A6, 재규어 XF,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는 좋은 차라고 모두가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그래서 모두 가져다가 꼼꼼하게 테스트하고 벤치마크도 해봤지만 결론은 우리가 만든 차가 훨씬 좋았다는 것이었다.”
개발자의 허세인가, 근거 있는 자신감인가. 언급된 모든 차를 다 타 보았고 그 중 한 대는 매일 타고 있는 입장에서 말할 수 있다.
저거, 허세 아니다.
첫댓글 해외엔 335d에 이어 535d도 있던데요...
재규어 XFR3.0D만큼은 아니지만 정말 멋진 535D...유유 오늘 넘멋진거만 보고가요ㅠ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