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인적으로 여성부 족구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항상 남자 체전부에만 관심을 가져서 체전부 선수들을 소개하고 그곳에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전하는 것에 집중했다.
여성부 족구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유는 경기 자체가 재미없었기 때문이다. 남자 선수들과 같은 화려한 공격도 수비도 없었고, 긴 비거리와 같은 눈요기도 없었으며 내 마음 한구석에는 '나 정도 실력이면 나한테 이길만한 여자 선수는 없을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한몫했다.
그런데 금년에 벌어진 양구 여성 족구대회를 보고 나의 이 생각은 바뀌었다. 이날 나는 대회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하며 경기들을 보았는데 실제로 본 이들의 실력은 내가 생각했던 기준을 훨씬 넘어섰다. 평소에 족구를 하지 않는 남자들이 이길 수 없는 것은 당연했고, 족구 동호인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갖추지 못한 이, 정확하게는 내 실력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들의 기량도 기량이었지만 승리를 향한 열정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누군가는 기쁨의, 누군가는 아쉬움의 눈물들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혹자는 '눈물까지 흘릴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할지 모르나 이들의 경기를 직접 보고 이들의 눈물을 옆에서 지켜본 이들이라면 안다. 이들이 얼마나 족구에 진심이고 열정적이며 남들은 신경을 안 쓰는 이 대회가 이들에게는 월드컵만큼이나 소중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혈전을 펼쳤던 상대 선수들과 경기가 끝나면 웃고, 농담하며 대화하는 모습에 여자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멋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나를 여자 족구에 '입덕'하게 만들었다.
불과 그곳에서 1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세계 족구대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족구인으로서 기뻐할 일이고, 협회의 홍보위원으로서 대회를 홍보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했지만 여기에는 족구계에서 조금은 소외된 듯한 여성 족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앞으로 나의 별 볼 일 없는 글들이 여성 족구인들에게 큰 힘이 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여성부의 숨은 이야기들을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팀은 '조이킥스포츠'이다.
우리에게 족구 용품 업체로 잘 알려져 있는 조이킥스포츠는 남자 체전부와 40대부 두 팀을 운영하고 있다. 각 부서마다 수준급의 팀들을 창단, 후원하면서 짧게는 한 팀이라도 더 후원하려는 의도와 길게는 실업팀 창단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광재 대표의 청사진이다. 그리고 족구계에서는 소외받고 있는 여성부의 활성화와 여성부도 체전부와 같은 수준의 지원을 받으며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여성부 팀을 창단했다.
창단 그리고 현재
2022년 2월에 결성된 조이킥스포츠 여성부는 그해 3월부터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해 22년 대한체육회장배 3위, 옥천 대회 3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기 8강, 영월동강배 준우승, 전국체전 준우승, 23년 대한민국족구협회장기 준우승, 청원생명쌀배 우승, 양구여성족구대회 우승, 전국체전 8강 등 아주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선수들은 모두 각자 직업을 가지고 있고, 매주 2, 3회 정도 모여 기본기 및 팀 전술 훈련을 하고 있다. 특히 조이킥스포츠의 족구 용품 및 유니폼을 항상 후원받고 있어서 경비 걱정 없이 운동에 매진할 수 있고, 족구를 하다가 생기는 의문사항은 언제든지 한세족구아카데미를 통해 문의하고 강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선수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족구 여제를 꿈꾸다
여성부 역시 많은 강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명실상부한 최강 수성구체육회(대구 단디), 이도희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공격수 전혜진과 전천후 수비수 위성희를 앞세운 울산 위민, 이미 전설인 강미자와 안정된 수비를 항상 보여주고 있는 김란울이 버티고 있는 전주 하나 그리고 전통의 강호 남양주 비전과 한라이어도와 같은 무서운 신예들 그리고 언제 치고 올라올지 모르는 아직은 조금 덜 알려진 수많은 팀들이 경쟁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조이킥스포츠는 2022년, 다른 팀들 보다 조금은 늦게 창단했지만 어느덧 신흥 강호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졌고 서서히 정상의 자리를 넘보는 팀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수성구 체육회와의 징크스는 항상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이도희, 문현희를 영입하며 기존의 지영주, 한륜경과 함께 여성부 최강의 전위 라인을 구축했고, 여성부 최강의 수비라인 '쌍 혜(해)미 라인' 김혜미, 이해미에 신예 유보라까지 철벽 수비 라인을 구축한 그들은 22년부터 23시즌까지 대부분의 대회를 싹쓸이 한 여성부의 절대 강자로 올라섰다. 어쩌면 조이킥스포츠에게 이들은 징크스가 아닌 '넘을 수 없는 벽'과도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금년 벌어진 양구여성족구대회 결승전에 오른 조이킥스포츠의 상대는 이번에도 수성구 체육회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이도희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조이킥스포츠는 4:15로 1세트를 허무하게 내주었다. 그리고 맞이한 2세트, 한가해의 강공이 살아나면서 일진일퇴의 공방이 진행되었고 예상치 못한 저항에 오히려 수성구체육회 선수들이 조금 당황한 듯 보였으며 결국 2, 3세트를 모두 잡아내며 처음으로 수성구체육회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창단 첫 우승은 아니었지만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존재였던 수성구체육회를 넘어섰기에 상당히 의미 있는 우승이었다. 기뻐하고 조금은 상기될 수도 있었지만 경기가 끝나고 주장 신옥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승을 차지한 것은 기쁘지만 우리가 최강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도전자의 마음가짐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단 한 번 그들을 넘어섰다고 단번에 그들과 동급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본인들이 더욱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들과의 대결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은 앞으로 이들의 성장에 큰 촉매제가 될 것이다. 실제 이 대회가 끝나고 이어진 전국체전 8강에서 두 팀은 다시 한번 맞붙었고 수성구체육회가 2:0 완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조이킥스포츠도 예전에 그들을 두려워해 주눅이 들어 보였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당당히 그들과 맞섰다. 물론 수성구 체육회도 그날의 패배를 곱씹으며 왼발잡이 공격수 한가해의 패턴을 잘 분석해 연타, 페인트에 대한 좀 더 짜임새 있는 대처 능력을 보여주며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앞으로 조이킥스포츠와 겨룰 다른 팀들 역시 서로의 전력을 분석해 보완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기에 앞으로 정상으로 등극은 더욱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체전부 유일의 왼발잡이 공격수 한가해, 양구 대회에서 쇄골 골절의 부상을 당하고도 진통제를 먹어가며 우승을 이끈 투혼을 보여준 세터 신옥희,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고 있는 우수비 김보선 그리고 빠른 발로 좌측 라인을 굳건히 지키는 (본인피셜) 귀염둥이 막내 좌수비 심서희까지, 상대의 연타, 페인트 대처 능력이 조금은 미흡하다는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서서히 보완해가며 앞으로 더욱 발전된 기량으로 24시즌을 맞이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족구 여제를 꿈꾸는 이들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이들의 족구 여제를 향한 여정을 진심으로 응원해 본다.
조이킥스포츠에 대해 조사할 때 공격수 한가해가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아래는 한가해와 일문일답이다.
Q. 조이킥스포츠에 대한 소개?
A. 우리 조이킥스포츠단의 족구팀은 남녀 체전부, 40대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자부에서는 최초로 조이킥스포츠단으로 합류하게 되어 이점에 매우 자부심을 느낍니다. 족구 용품뿐만이 아니라 대회 출전 시 출전 경비 그리고 한세족구아카데미에서의 훈련까지 많은 부분에 대해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광재 대표님께서는 처음 사업을 시작하실 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여성부를 창단하실 때도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으셨음에도 여성 족구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큰 결심을 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지금도 작은 것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만날 때마다 필요한 것 있는지 항상 물어봐 주시고 적극적으로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고 계십니다.
Q. 팀 분위기는?
A. 서로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나서 불편할 법도 한데 언니들이 워낙에 잘 이끌어 주셔서 서로서로 의지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Q. 팀의 자랑거리가 있다면?
A. 일단 조이킥스포츠에서 출시되는 신상 족구 용품은 무조건 1순위로 받을 수 있고 경비 걱정 없이 운동만 할 수 있고요, 족구를 배우고 싶으면 언제든지 한세족구아카데미에서 무료로 강습을 받을 수 있어서 기량 향상에 상당히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회에 출전하면 이광재 대표님 같은 유명 선수들이 응원해 준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Q. 함께 운동을 하면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A. 저랑 (심) 서희가 양구 대회에서 우승하고 기쁜 마음에 뒤풀이에서 과음을 하고 다음 날 있었던 2인제 대회에 출전을 했는데 전날 과음 때문이었는지 리시브가 전혀 안돼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경기가 끝났습니다. (웃음) 사실 남자팀과의 대결이었기 때문에 참가에 의의를 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게 공만 쫓아다니다가 끝나버려서 서로 웃느라 바빴습니다. 다행히 우리 경기가 초반이어서 하이트맨이 오시기 전에 끝났습니다. 아마 경기 시작 전에 오셨으면 사진과 영상이 가득 남은 흑역사로 세세히 기록될 뻔했습니다. (웃음)
Q. 팀 내 불화가 있었다면?
A.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흘러 믿음이 쌓이면서 잘 극복했고 지금은 서로의 가정사까지 훤히 잘 알고 있을 만큼 돈독해졌기 때문에 동료를 넘어 가족과도 같은 사이입니다.
Q. 이승호 감독님, 감독님으로서 어떤지?
A. 여성부를 처음 맡으셔서 처음에는 족구보다는 선수들을 케어하는데 더 많이 신경을 쓰셨을 겁니다. 아무래도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다르게 족구 이외에 세세하게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하셨지만 이제는 2년 차가 되셔서 노하우가 많이 쌓이셨는지 선수들과 소통도 잘하시고 감독으로서 팀을 잘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Q. 여성 족구인으로서 느낀 설움(?) 같은 것들이 있었다면?
A. 여성부에는 항상 관심이 적어서 그런지 항상 결승전만 영상 촬영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늘 나오는 팀들만 영상에 나오네요. 실제로는 더 많은 팀들이 대회에 참가하는데 말이죠. 그런 부분이 안타까워서 전체적으로 여성부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체적으로 유튜브를 통해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부평 진'에서 운동할 때 만들었기 때문에 채널명이 '찐족구이야기'입니다. 박유경 선배님이 운영하고 계시는데 구독과 좋아요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웃음)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A. 23시즌을 마지막 대회인 전주한옥마을배 우승으로 화려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제가 부상을 입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 못했네요. 아쉽지만 남은 족구 인생이 더 많을 테니 동계훈련 열심히 해서 매년 발전된 팀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물론 건강하게 오랫동안 유지되는 팀이 되는 것이 우선이겠죠.
조이킥스포츠 여성부 선수 소개
감 독: 이승호 (한세대학교 1기 졸업생)
공격수: 한가해 (1990년생, 직장인, 인천 마린 족구단 출신)
세 터: 신옥희(1974년생, 주부 및 족구 코치, 안양 스마트 족구단 출신)
우수비: 김보선(1972년생, 직장인, 대구 오봉 족구단 출신)
좌수비: 심서희(1998년생, 자영업(카페), 위아원 족구단 출신)
취재에 응해 주시고 칼럼 쓰는 것을 허락해 주신 조이킥스포츠 여성부 선수단에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ps.) 좌수비 심서희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는 군포역 2번 출구에 있는 '딩동당동' 이다.
근처 지날 일 있으면 커피 한 잔에 디저트 먹으러 들르면 좋을 것 같다.
주소: 경기도 군포시 공단로 97, 106호
▼인스타그램은 아래 주소 클릭
https://www.instagram.com/cafe_dd_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