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도마가 십자성을 가로막았다. 천하에는 이미 죽었다고 소문이 난 그였다. 그런데 그가 낭혈문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낭혈문을 감시하던 간자들은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정말 도마인가? 그가 정말 도마라면 왜 낭혈문의 앞을 막아선 것 인가? 십자성과 생사대적이라면 천왕성과 싸우다 지쳐 양패구상한 후를 노리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은가?' 천하의 그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 은 천왕성과 십자성의 싸움뿐, 그 사이에서 무의미하게 희생된 태곡 의 주민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이제까지 그렇게 죽어 간 사람들은 염두에 들어 있지도 않았다. 그것이 그들의 사고가 갖는 한 계였다. '내가 천왕성의 남하를 막으면 그녀가 십자성을 막을 것이다.' 서문아를 생각하지 적무강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한 줄기 미소 가 떠올랐다. 사방에는 흉험한 눈빛을 빛내는 남자들뿐이었으나 그 들의 얼굴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런 씨발놈이 웃네!" "개새끼가 지랄을!" 적무강의 웃음을 본 몇몇 남자들이 분통을 터트렸다. 쐐애액! 더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이 그들이 적무강을 공격해 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천 대 일의 혈투가, 아니 천왕성이라는 거대한 단체와 적무강 일 인의 전쟁이...... 촤아악! 적무강의 생사도가 횡으로 그어졌다. 처음에는 저놈이 무슨 짓을 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가 장난처럼 그은 일도에 수십 명의 남자가 가슴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크윽!" "헉!" 소리도 없고, 기세도 없다. 그러나 그의 도가 휘둘러지면 반드시 누군가 피를 뿌리며 죽었다. 적무강은 걷고 또 걸었다. 그가 향하는 곳에는 좌천기가 존재했다. 그의 손은 생사도를 휘두르고 있었으나 그의 눈만큼은 좌천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눈은 좌천기에게 말하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잠시 후에 그리로 가겠다고. "저 녀석!" 좌천기의 눈가가 미미하게 떨렸다. 적무강의 손에서 생사도가 휘둘러질 때마다 수십 명의 낭인이 마 치 가을바람에 낙엽 떨어지듯 그렇게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누구도 적무강의 일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백오십 명에 가까운 낭 인이 그의 손에 고혼이 되고 말았다. "으아악! 내 다리." "크아악!" 자신의 눈앞에 쓰러지는 적들을 보며 적무강은 입술에 피가 나도 록 깨물었다. '모두 죽여야 물러선다면 그리 하리라. 내가 아니면 누가 지옥에 갈까......' 몸안의 진기가 끊이지 않고 돈다. 화륜심결은 단전에 불꽃의 고 리를 만들며 그에게 거력을 건네주고 있었고, 생사구류도의 초식은 마치 둑 터진 제방처럼 그렇게 거침없이 펼쳐져 나왔다. 미완성의 생사구류도와 완성된 생사구류도의 위력은 그야말로 천 양지차였다. 치열함이 극에 이르면 오히려 고요해진다. 그와 같은 이 치였다. 지금의 생사구류도는. 너무나 강렬해서 오히려 고요해 보이고, 지독할 만큼 동적이어서 오히려 정적으로 보인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적무강이 허공에 헛 손질을 한다고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손에서는 단천혈을 시작으 로 혈수련과 지옥혈이 연달아 펼쳐지고 있었다. 때문에 그의 손에 죽은 낭혈문의 무인들의 상처도 가지각색일 수밖에 없었다. 상처가 횡으로 그어진 사람, 미간에 꽃이 피듯 그렇게 혈흔이 나 타난 사람, 그리고 마치 수백 마리의 늑대에게 물어뜯긴 듯 처참한 모습의 사람까지. 도저히 한 사람에게 당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상흔이 나타났다. "아름답군! 정말 아름다워." 좌천기가 적무강이 도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만약 그가 적이 아니라면 박수를 쳐 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감스럽 게도 그는 적이었다.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은 장애물이었다. 파죽지세(破竹之勢)였다. 그 누구도 적무강의 걸음을 막지 못했다. 그가 도를 휘두르면서 자신에게 오는 동안 그는 단 한 걸음도 멈추 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천 대 일이라는 수적 열세는 전혀 상관없는 듯 보였다. 이대로는 오히려 낭혈문의 무인들이 몰살을 당할 판이었 다. 그 누구도 적무강의 방원 삼 장 안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방원 삼 장은 완벽한 적무강의 영역, 그 안에서의 생사는 오직 적무강만이 결정할 수 있었다. 좌천기는 그런 적무강의 영역을 꿰뚫어 보았다. 저렇게 자신만의 영역을 가진 절대고수에게는 일반 무인들은 의미가 없었다. 좌천기가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저자에게 일반 수하들은 의미가 없군. 수하들은 물리고 삼십삼천 강(參十三千强), 너희들이 나서라." "명만 기다렸습니다." 순간 좌천기의 등 뒤에서 서른세 명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도, 창, 검, 추 등 다양한 무기를 들고 있는 남자들. 마치 굶주린 늑대들이 이빨을 드러내듯 그들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살기를 피워 올리고 있 었다. 삼십삼천강은 특별한 편제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낭혈문에서도 최 고의 위치에 오른 자들만의 특별한 조직이었다. 이천 명 낭혈문의 무 인들의 정점에 선 자, 그들이 바로 삼십삼천강이었다. 혈연이나 사문 의 힘이 아닌 순수한 자신의 무력으로 이천의 늑대 위에 군림하는 자 들, 이제까지 그 어떤 전투에서도 그들이 한꺼번에 나섰던 적은 없 었다. 그런 삼십삼천강을 내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좌천기가 적무강을 인정했다는 반증이었다. 이미 삼백 명 이상의 낭혈문 무인들이 적무강에 의해 죽음을 맞이 한 이후였다. 적무강의 고요한 기세에 질린 일반 무인들은 더 이상 공격하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침묵의 도살자. 그들이 보는 적무강의 모습이었다. 이제까지 기질에서 누군가에게 밀려 본 적이 없는 그들이 이렇게 기세 면에서 한 사람에게 밀려 본 역사는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 다. 자신들은 삼분지 일이나 수가 줄어들었는데, 아직 상대의 몸에 는 그 어떠한 상처도 만들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옷자락은 처 음 모습 그대로였고, 땀방울 하나 흐르지 않았다. 더구나 삼백 명을 죽일 때까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이 괴물을 어떻게 해야 한 단 말인가? 그들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떠올랐다. 그들의 눈에는 적무강이 마치 거대한 벽처럼 보이고 있었다. 자신 들이 어떠한 수를 써도 결코 넘을 수 없는. 십자성의 무인들을 상대 할 때도 받지 못했던 압박감을 단지 한 명의 남자에게서 받고 있는 것이다. '으으~! 이미 저자는 절대자의 반열에 든 자이다. 어떻게 저런 괴 물이......' '도마라고? 틀렸다. 이미 저자는 도신의 반열에 든 자이다.' 주춤주춤! 낭혈문의 무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적무강이 걸음 을 옮기면 그만큼 낭혈문의 무인들이 뒤로 물러섰다. 그것은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납기로 치면 천하에서 으뜸이고, 기질로 그 누구에게도 밀린 적이 없다는 낭혈문의 칠백 무인이 오직 단 한 명의 남자를 막지 못해 물러선다는 것은. 그때 삼십삼천강이 낭혈문의 무인들 사이를 헤치며 나왔다. "에잇! 비켜라, 쓸모없는 것들!" "겨우 한 놈에게 졸은 꼴이라니. 그러니까 너희들이 평생 그 모양 인 것이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났군." 삼십삼천강의 살기에 같은 낭혈문도조차 견디지 못하고 꼬리를 말 았다. 그만큼 삼십삼천강의 살기는 가공했다. 이젠 전장은 낭혈문과 적무강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삼십삼천강과 적무강의 대결 구도로 변하고 있었다. 적무강은 눈앞에 나타난 삼십삼천강을 잠시 바라보다 좌천기에게 다시 시선을 던졌다. "곧 너에게 가지." 혼자서 중얼거린 소리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 듯 좌천기의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오냐! 삼십삼천강을 통과한다면 이 내가 친히 맞아 주리라. 그러 니까 어서 네 본 실력을 보여 봐라." 좌천기의 눈이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적무강의 시선이 자신을 둘러싼 서른세 명에게 향했다. 도, 검, 창, 편 등 무기도 가지각색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지독한 살기 를 내뿜고 있었다. 기혈이 끓어오를 정도로 가공할 살기였다. "육시를 내 주마." "흐흐흐! 그 도가 멋있구나. 오늘 나의 낡은 도를 버리고 너의 도 를 갖겠다." 탐욕가 살기가 버무려진 시선, 그들의 눈은 적무강의 허점을 찾고 있었다. 끼릭! 적무강이 생사도를 잡은 손목을 비틀었다. 그러자 혈조를 타고 흐 르던 핏물이 밖으로 튕겨 나갔다. 그러자 은색으로 빛나는 생사도의 도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생사도를 들어 전면을 가리켰다. 도첨이 자신 쪽을 향하자 삼십삼천강 중 몇 명이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들은 오히려 분통을 터트렸다. "개새끼!" "어디서 헛수작을......" 쉬익! 그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마치 겨울 철새처럼 일제히 몸을 날려 적무강을 공격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츠츠츠! 그들의 무기에 은은한 빛이 어렸다. 검에서는 도기가, 도에서는 도 기가 어려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서로의 허점을 보완하면서 유기적 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쉬아악! 그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파상적인 공세를 펼쳤다. 그들의 가공할 공세에 대기가 찢겨 나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공세의 중심에 적무강이 서 있었다. 적무강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라지게 파랗군.' 피가 강을 이루어 흐르고 시체가 산이 되어 쌓여 있는데 하늘은 너무나 말고 파랬다. 살인을 하기에는 너무 청명한 날씨였다. 그러나 적무강은 망설이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가야 할 길이다. 츠츠츠! 처음으로 적무강의 도에서 붉은 기운이 치솟아 올랐다. 붉은 기운 은 기류를 타고 휘돌면서 얽히고설키기 시작했다. 삼십삼천강의 눈동자에 거대한 피의 폭풍이 맺혔다. 그들의 눈동 자가 자신도 모르게 흔들렸다. 콰콰콰콰! 순간 거대한 피의 폭풍우가 삼십삼천강을 강타했다. "크으으!" "뭐야?" 삼십삼천가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앓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 다. 그들은 공력을 더욱 끌어올리며 붉은 폭풍의 기운에 대항했다. 그들의 무기에 어린 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 순간 적무강은 좌천기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직 삼 십삼천강이 살아서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지만 적무강의 마음속에서 이미 그들은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로 나타났다. "끄으으!" "으아아악!" 결국 거세지는 압력을 견디다 못한 몇몇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 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서른세 명에 이르는 남자들의 비명 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그러나 붉은 폭풍은 그들의 비명마저 집어삼 켰다. 콰우ㅡ우! "으으!" "말도 안 돼. 어떻게 저게 인간의 힘이란 말이야?" 삼십삼천강을 집어삼킨 거대한 붉은 폭풍이 소멸되는 모습을 보며 낭혈문의 무인들이 이를 덜덜 떨었다. 그토록 엄청난 공세를 퍼붓던 서른세 명의 절정고수가 적무강이 휘두른 일도에 모조리 어육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적 무강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제까지 무서울 것 없이 설쳐 왔던 그들에게 적무강은 처음으로 공포란 감정을 안겨 주고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알까! 방금 전에 적무강이 펼친 초식이 생사구류도 의 육초식인 혈폭풍(血暴風)이라는 사실을. 이미 완성된 생사구류도 의 혈폭풍은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적무강의 무심한 눈이 그들을 훑었다. 적무강의 시선이 닿은 자들 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의지는 절대로 물러서서는 안 된 다고 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몸은 그들의 의지를 배반하고 있었다. 인 간의 원초적인 공포가 그들의 신경을 지배하고 있었다. 도저히 자신 들의 능력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자, 만약 이대로 한 발짝이라도 움 직인다면 그의 도가 자신들의 목젖으로 향할 것 같았다. 뱀 앞에 선 쥐가 미리 자신의 생을 포기하듯 그들은 그렇게 적무강에게 자신의 목숨을 심판받고 있었다. 저벅저벅! 고요 속에서 그의 발소리만이 크게 울려 퍼졌다. 심령을 제압하는 그의 발자국 소리. 좌천기의 눈섭이 꿈틀거린다 싶은 순간 그의 입에서 갑자기 앙천 대소가 터져 나왔다. "크하하핫! 정말 대단하구나. 혼자서 저 많은 녀석들의 입을 막아 버리다니. 도마라...... 소문이 오히려 모자라. 이 정도의 경지라니. 넌 정말 나를 막아설 자격이 있다. 이것은 정말 진심이야. 크하하 핫!" 좌천기는 눈가에 눈물이 맺히도록 웃었다. 그는 정말 속이 시원한 것 같았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적무강을 향해 걸어갔다. 낭혈문의 문주라는 자리는 매우 고독한 자리다. 태어나면서부터 낭혈문에 던져지고 수많은 사투를 통해 전대 문주의 눈에 들고, 또다 시 수많은 후계자 무리들과 사투를 거친 후 최후의 승자만이 오르는 자리가 바로 문주의 자리였다. 문주가 된 후계자는 이제까지 자신과 사투를 벌이던 다른 후계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혼자만 살아남아 낭 혈문의 최정점에 서게 된다. 문주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만 하더라도 수많은 사투와 암투를 거치게 되지만 일단 문주의 자리에 오르면 그 런 치열했던 일상과는 멀어지게 된다. 낭혈문도들이 문주에게 바치 는 충성은 그야말로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낭혈문주의 위에 존재하는 자리는 오직 단 하나, 천왕성주의 자리. 그러나 그는 천왕성주의 자리를 노리는 것을 포기했다. 수준이 어느 정도 차이만 나도 한번 도전해 보련만, 현재의 천왕성주는 강해도 너 무 강했다.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그에겐 감히 도전할 생각도 생기지 않았다. 그나마 비슷한 수준이 마도육문의 문주들인데 너무 나 강력한 존재로 군림하는 천왕성주 덕분에 그들끼리의 내분은 용 납치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서 이제까지 제대로 몸을 풀어 보지 못한 좌천기였다. 좌천기의 눈에 붉은 기운이 어렸다. 흥분과 광기가 동시에 동한 것이다. 첫 출전, 첫 격돌에서 의외의 타격을 입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 다. 어차피 강자존의 세계, 약하면 죽고 강하면 살아남는다. 죽은 놈 들은 모두 약한 놈들이다. 그러니 죽어도 당연하다. 그것이 그의 생 각이었다. "넌 결코 날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군." 좌천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먹이를 노리는 늑대의 으르렁거림과 똑같았다. 처절한 살기가 그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그의 살기에 수많은 낭혈문의 무인들이 뒤로 물러섰다. 적무강의 눈동자에 어린 홍선이 더욱 짙어졌다. "결코 실망하지 않을 거야. 약속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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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갑니다.
즐감 하고 갑니다
고향설 시인님의 좋은글 "천인혈(天刃血) 제 5권 13"과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6월의 마지막 날 오늘은 고운미소 가득지을수 있는 즐겁고 행복한 주일 되세요....
감사합니다.
다녀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