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소리길(홍류동계곡)트레킹
○ 트레킹 일자 : 2014년 7월 12일(토)
○ 참여인원 : ○○아파트산악회 회원45명
○ 트레킹 코스 : 대장경축전 주차장→ 탐방지원센터→ 칠성대→ 홍류동계곡→ 매표소
농산정→ 가야산 휴게실→ 해인사→ 치인 주차장 (8.3km / 4시간 소요)
△ 김영환장군 팔만대장경수호 공적비
고려 대장경은 1011년(현종 2)의 초판 고본(初版古本)과 1091년(선종 8) 이후
간행된 속대장경(續大藏經)이 있었는데, 이들 제1차 간행 대장경은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고, 1236년(고종 23)에 시작하여 1251년(고종 38)에 완성한 대장경이
지금의 합천(陜川) 해인사(海印寺)에 소장되어 있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국보 제32호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인 것이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지금도 우리가 유지할 수 있는 것은 6.25동란 때 목숨을 걸고 수호한 한 공군(空軍) 장군(將軍)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며 그 미담을 아래에 소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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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17일 오후 2시 해인사 경내, 고요한 산사에 공군군악대가 연주하는
삼귀의(三歸依) 소리와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한국 전쟁 때 인민군이 은신하고 있는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미군의 명령을 거부하고
팔만대장경과 해인사를 구해낸 고 김영환 장군(1921~1954)을 기리는 “팔만대장경 수호공적비” 제막식에서다.
김영환 장군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18일 공중임무수행 중, 작전 지휘권을 갖고 있던 미 공군으로부터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왔던 인민군이 한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으로 퇴각하던 중 인민군낙오병 9백여 명이 가야산 일대와 해인사에 숨어 저항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편대장이던 김영환 장군(당시 대령)은 명령이행을 거부한 채 미 군사고문단을 설득했다. 유동적인 공비 수백 명을 소탕하기 위해 세계적인 보물인 팔만대장경을 잿더미로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5백파운드짜리 폭탄과 로켓트탄,네이팜탄을 실은 전폭기로 폭격할 경우 해인사 전체가 불바다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김 장군의 편대는 해인사 대신 해인사 남쪽 1km 지점의 인민군 집결지를 폭격한 뒤 귀환했다. 이 때문에 김영환 장군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친형이며 공군참모총장이던 김정열 장군이 미군을 설득하여 화를 면했다.
이 때 김 장군은 세계 2차대전에서 미군이 바티칸이나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일본문화의총본산인 교토 등을 폭격하지 않은 전례를 들며 “세계적인 보물인 팔만대장경을 파괴할 수는 없다”며 항변했다고 한다.
공군창설의 주역이었으며 공군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처음 착용한 것으로도
유명한 김영환 장군은 장성으로 진급한 1954년 3월 임무수행 중 강릉상공에서
순직했다.
이날 공적비 제막식에는 김 장군의 편대원으로 함께 출격했던 옥만호 전 공군참모
총장 등 7명의 전직 공군참모총장을 비롯해 예비역 공군모임인 보라매회원 60여명과 공군의장대, 군악대, 스님, 신도 등 5백여 명이 참석했다.
지관 스님(전 동국대 총장)은 공적비문에서 “참으로 목숨을 건 판단과 애국심으로 이룬 불멸의 위업이 아닐 수 없다”고 찬탄했다.
서화동 기자
첫댓글 대부대가 멀리 다녀왔군요...ㅎ
해인사 입구 오른 쪽에 위 사진과 같이 '김영환장군팔만대장경수호 공적비' 가 세워져
있어서 마음 뿌듯했습니다.6.25전란 때 해인사에 은둔하고 있던 공비를 소탕하기 위해 폭격을
감행했더라면 우리의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이 현존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멍먹합니다.
체력도 좋으십니다. 그려.
취미도 좋고.
잘 보았습니다.
울 아파트 산악회는 직장인들이 많아 주말에 가족단위로 산행하기에
힘든 산행은 가급적 피하고 소리길,마실길,올레길,옛길 등 트레킹 위주의
쉬운 코스로 하고 있습니다.산행이라기 보다 걷기운동이랄 수 있는
가벼운 산책정도라서 체력소모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ㅎ ㅎ..
아파트 분위기 좋겠습니다. 우리는 건너집에 누가슨지도 모르는데.
네- 시골이라 촌쓰럽게 지내고 있습니다.야산을 공동으로 개간(산주의 허락하에)해서
유기농 무공해 채소도 함께 가꿔서 뜯어 먹고요.ㅎ ㅎ..
몰론 1,000 여 세대가 다 서로 알고 지내는 건 아니구요.
암튼 대도시와 인심이 다른 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ㅎ ㅎ..
이젠
음악도 잘 나옵니다.
고맙습니다.
소리새 의 노래 '오월의 편지' ,, 시기가 좀 지났어도
분위기 괞잔은 노래지요?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