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9
너 하나님의 사람아! / 김성렬 목사
딤전 6:11-12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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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웨슬리 목사님의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또한 누가 무어라 해도 이사야 43장 1절의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는 말씀을 확신하면서 다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리고 나는 저 브엘세바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에게 현몽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리라"(창 28:15)는 말씀과 "네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나의 신앙의 신조로 하여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믿으시는 줄 압니다. 모두 이렇게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옮겨 봅니다.
하나는 체내에 구리 성분이 쌓여 시력 장애와 사지 마비등을 일으키는 선천성 대사 장애 질환인 윌슨병이라는 희귀한 병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족 아버지(59) 딸(30) 아들(28)이 모두 이 병에 걸려 앓고 있는데 같은 병으로 거의 시력을 잃은 아버지가 더듬거리며 "아버지, 나 죽여주세요!" 라고 애원하는 아들을 살해하였다는 한 사회면 기사는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해 줍니다.
또 하나는 말기 암 환자를 수용하여 연중 300명 이상의 임종을 지켜보며 장례식을 치러야 하는 한 호스피스 병원의 원장 목사님은 "밤에 아파하는 환자를 잠들게 하는 것은 수면제나 진통제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없앨 수 있도록 따뜻하게 잡아 주는 손이지요" 라는 말을 했는데 아주 잔잔한 감동을 안겨 줍니다.
한 젊은이가 학술 환자로 입원을 했습니다. 그의 병은 말기에 이른 악성 임파종입니다.
서른이 갓 넘은 이 환자는 천애의 고아로 한 때 해병대에 입대하여 월남전에서 전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누구 하나 찾아오는 이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를 돌보아주는 이는 독실한 기독 신자인 여자 인턴이었습니다. 이 인턴은 그의 진료만이 아니라 부축하여 일으키고 눕히고 하였으며, 여러 밤을 산소 탱크 앞에서 기도하며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마치 생명과 죽음에 줄다리기라도 하는 듯 연명되던 환자의 상태는 악화되어 어느날 새벽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임종 때 옆에 지켜선 인턴에게 초점 없는 눈을 돌리며 몇 번이나 "어머니"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천애의 고아인 이 젊은이는 그 인턴에게서 아마 어머니의 사랑을 느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명기 기자는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네 손을 펼지니라"(신 15:8,11 참조) 하였는데 우리는 우리의 이웃인 아파하는 자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나는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제목을 제시하였는데 "하나님의 사람"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구약에서는 모세(신 33:1, 시 90:1)와 다윗(대하 8:14)을 하나님의 사람이라 하였고, 사무엘(삼상 9:6, 8) 스마야(왕상 2:22), 엘리아(왕상 17:18), 엘리사(왕하 4:7), 무명의 선지자(삼상 2:27, 왕상 13:1)등을 하나님의 사람이라 하였는데 신약에서는 바울이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하였습니다.(딤전 6:11, 딤후 3:17)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를 지칭한 것으로 이렇게 존엄한 명칭으로 부르는데는 자각심을 일깨워 주고 그 본분을 잘 지키도록 하게 함이라 하겠습니다.
신약에서의 하나님의 사람의 넓은 의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의 은총을 입은 모든 신자를 일컫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소명을 받은 성직자인 목사나 신부만이 아니라 모든 크리스챤이 하나님의 사람됨을 자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구약본문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450명이나 되는 바알 선지자들과의 기도의 대결에서 이방의 선지자들을 물리치고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불과 비를 내리게 한 이 불의 사자요, 기적의 사자인 엘리아가 이세벨의 박해에 겁을 먹고 쫓겨 브엘세바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만 실의에 빠진 엘리야는 한 로뎀나무 아래 주저앉아 차라리 죽는 것이 낳겠다고 푸념을 털어놓았습니다.
이렇게 실신하여 누워있는데 저에게 천사가 나타나 어루만지며 떡과 물을 주어 먹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식물로 힘을 얻은 엘리야는 더 멀리 호렙산으로 들어가 깊은 굴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저는 그 처한 환경을 탓하며 그만 그 본분을 이탈하고 만 것입니다.
이 때에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 반복하여 들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야할 길과 하여야 할 일을 지시하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는 말씀은 새번역 성경에서는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엘리야, 너 하나님의 사람아, 네 꼴이 이게 무엇이냐?"는 책망의 음성이면서 또한 사랑과 격려로 깨우치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삶의 의욕을 잃고 실의에 빠져있는 이가 있습니까?
상수리 나무 아래 아브라함을 찾으신 하나님(창 18:1), 로뎀 나무 아래 엘리아를 찾아가신 하나님(왕상 19:4), 무화과나무 아래 나다나엘을 알고 계신 하나님(요 1:48)은 실의와 고난 속에 빠져있는 자들을 이미 알고 계시며 또 찾아주실 것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는 하늘의 세미한 음성을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그 어루만져 주시는 축복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오늘의 설교를 준비하던 중 어떤 일로 민망한 심정에 젖어 있을 때 미국에서 걸려온 한 의사 부부와의 성령체험에 관한 통화를 나누다가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말씀으로 다가온 세미한 음성을 듣고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목사, 너 하나님의 사람아" "장로 너 하나님의 사람아" "권사, 집사, 너 하나님의 사람아" "크리스챤, 너 하나님의 사람아" 라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멘으로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신약 본문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디모데는 어떠한 인물인가? 그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여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의 기도와 신앙 지도로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알았으며 성장하면서 신실하고 경건하여 주변의 칭찬을 받았다고 합니다.(행 16:2)
제 1차 전도 여행시에 바울이 핍박으로 돌에 맞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고 (행 14:20 참조) 복음의 길로 돌아섰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서 우리는 그의 의로운 기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마침내 제 2차 여행 당시 루스드라에서 바울의 선택을 받고 유대인의 전도를 위하여 할례와 안수를 받았으며 바울의 조교로 전도 일선에 서게 된 것입니다.(행 16:1∼참조)
바울은 디모데를 칭하여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고전 4:17, 딤후 1:2) "마음을 같이한 자"(빌 2:20) "동역자(롬 10:21)", "하나님의 일꾼"(살전 3:2) "그리스도의 종"(빌 1:1) 이라 불렀고, 또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 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다"(빌 2:22) 하였고, 바울과 옥고를 같이 했으며(히 13:23참조), 교회에 보낸 9통의 편지 중 6통이나 디모데가 공동 발신인이 된 것으로 미루어(고후 1:1, 빌 1:1, 골 1:1, 살전 1:1, 살후 1:1, 몬 1:1 참조) 디모데는 바울의 분신처럼 동조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디모데에게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경각성 표현을 했을까? 혹 디모데가 무슨 일론가 깊은 시름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피해야 할 것이 있고 취해야만 할 것이 있습니다.
디모데 에게도 부족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 강인하지 못했고(고전 16:10 참조) 위장병으로 자주 앓았으며(딤전 5:23 참조) 또한 누구나 그런 것처럼 경제적 관심과 젊음에서 오는 격정도 있었습니다.(딤전 4:12, 딤후 2:22 참조) 그래서 바울은 "그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 "돈을 사랑함이 일 만악의 뿌리가 된다" (딤전 6:7,10)고 경고하였으며, 또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최근 정계에서는 지도자의 자질 문제가 크게 잇슈화 되고 있는데 목회 서신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의 자질에 대하여 여러 모양으로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절제와 단정함을 강조하였고 본문에서는 의와 경건을, 믿음과 사랑을, 인내와 온유를 쫓으라 하였으며 이로써 선한 싸움을 싸워 영생을 취하라며 힘주어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된, 예수의 사람된 크리스챤 여러분의 자질은 과연 어떠한 것입니까? 지금 당신이 가는 길은 하나님의 사람이 가야할 길입니까? 혹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지금 당신이 있는 자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앉아야 할 자리입니까? 혹 잘못 앉아 있지나 않습니까?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은 하나님의 사람이 하여야 할 말입니까?
혹 잘못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바울은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딤후 2:16) 고 말하였습니다. 잘못 가고 있으면, 잘못 앉아 있으면, 잘못 말하였으면 고쳐야 합니다. 바로 잡아야 합니다.
당신의 심령은 혹 그 버려야 할 것, 그 끊어야 할 것에 붙들리고 있지나 않습니까? 어서 속히 버리세요. 그리고 끊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치 않으면 당신은 죽습니다.
붙들려면 예수를 꼭 붙드시고, 메일려면 사랑의 사슬, 성령의 사슬에 메어지기 바랍니다.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고 말했는데, 주변의 어둔 사건들은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눅 13:3,5)는 경고의 나팔소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하였고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 라고 말하였는데 우리에게는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기도의 응답, 신앙의 승리가 있습니다. 믿음이 느슨하면 사탄이 틈탑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어진 오늘은 은혜의 날이요, 축복의 날이요, 용서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감사의 날이요, 결단의 날이요, 회개의 날이어야 합니다.
나는 끝으로 전덕기 시인의 "허락 받은 이 한 날을"이란 시를 읽어 드리고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당신이 허락하신
이 한 날의 삶을
원형이정(元亨利貞) 으로 아침 창을 열고
진선미로 방을 장식하여
순백(純白)의 하늘 뜻 향내 피우게 하소서.
지정(至情)의 열정(熱情)으로 가슴을 열고
악수(握手)와 박수(拍手)의 만남이 되어
현재의 의미를 만끽하는
만물의 영장다운 삶이 되게 하소서.
주어진 바탕이 감격스러워
의식하는 삶이 감격스러워
소중한 생명이 감격스러워
다시 오지 않는 이 한 날이
감격스러워
가고 오는 것들의 영원성을
영원한 씨앗으로 계승되는 보람을
이 한 날에 새겨
감사 찬미하게 하소서.
기도 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는 가진 자, 힘있고 이긴 자의 처세에 떠밀려 힘없고 약하여 넘어진 자를 외면하여 왔습니다. 마음을 열어 돕고 기도하지 못한 그 오만과 무지를 용서하시옵소서. 주여, 우리를 도우사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섬기고, 돌보며, 나누고, 베풀며, 감사하고 찬미하면서 하나님의 사람됨을 지켜가게 하옵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