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1:17]
화랑세기를 공부하면서 ...
신라 왕족의 혈통을 삼국유사에서는 ‘찰리종’, ‘찰제리’라고 했습니다. 찰리종은 샤카족이며 샤카무니족인데 석가족이라는 말입니다. 거기서 끝내면 재미 없지요.
단군 색부루는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는데 흉노의 근원지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럼 흉노가 뭔지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흉노가 황인종 인줄 알고 있어요. 흉노의 발원지는 초원의 유목족이고 그야말로 칼 한 자루만 믿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긴박한 하루를 살아가는 경쟁이 치열한 집단이었습니다.
그런 흉노는 유라시아 동쪽 끝에서 유럽 끝까지 말을 타고 달리며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우리 역사에 색부루 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막연히 그들은 황인종이고 우리 북방민족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유교식 문화를 존중하는 그런 민족성(부족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석가족이니까 음!
매우 심성이 부드럽고 예의가 바르고 영성이 뛰어난 집단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나라때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하나라가 우왕의 나라라고 해서 동이족을 깔보았을까요
흉노는 북방족이니 동이가 아니고 융족으로 보았습니다.
아주 돌대가리이고 개차반 이라고 해서 匈흉이러 불렀습니다.
하나라 때는 고대 단국시대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면 단국의 일부였거나 어떤 때는 그 절대 권력자가 흉노 출신이었을 때도 하나라는 그렇게 깔보고 낮추어서 불렀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조상인 금인은 흉노에서 섬긴 것이고 흉노는 금인의 나라 였습니다. 그래서 샤카족이고 샤카족이 찰제리종이며 삼국유사에서는 신라 왕족이 찰제리종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찰제리 샤카족이 화랑에 속할 때가 있었고 물론 사키야 출신도 화랑 . 풍월주가 됩니다.
풍월주의 풍속이 완전히 씨를 내려주는 씨 종자 역할을 한 바가 있는데 이는 흉노의 풍습과 매우 유사합니다.
특히 몽골의 칭기즈칸도 자기와 약혼한 아내를 빼앗기고 나중에 다시 되찾았는데 그때 적 자무카의 아내가 되어 있었던 고로 임신한 채로 돌아왔습니다.
거기서 태어난 장남이 주치입니다. 칭기즈칸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 자식이라고만 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몽골의 대 통일을 위해 고민하던 칭기즈칸은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이방인에게 아내를 빌려주는 제도를 만듭니다. 그것은 당시에 인구가 너무 적어서 그런 풍습을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흉노의 핏줄은 유교적 관습과는 매우 다른 생존 본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 황인종이 아니고 아리안으로 불려 지며 백인이 있었고 황인이 있었으며 혼혈종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라에 음서(여자가 씨를 외부에서 받음)가 흉노의 생존 본능과 연결되어 있었던 유교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인간적인 본성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즉 살기 위해서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부일처가 아닌 여자가 신랑을 여럿 거느리게 되는 그런 일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반 백성도 임신하면 풍월주에게 아내를 보내 아이를 낳을 때까지 풍월주가 안 받아 주면 퇴짜, 같이 동침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게 뭐 유교식으로 생각하면 완전히 맛이 간 것인데 나름대로 좋은 기운을 받아서 태어나라고 유명 인사에게 기대는 그런 풍습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마복자’라 합니다.
음서제는 여왕이 씨를 받을 수가 없어 신하가 풍월주 중에서 골라 추천해주는 기막힌 제도가 급조되어 실행되었습니다. 이런 제도가 있을 수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
흉노가 샤카족이고 신라의 뿌리가 백인 황인 혼혈에다가 아리안 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본론이 아니고 추정이니 참고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1:24] 화랑세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고대 단국 됴헌의 강역과 왕족의 규범 같은 것을 추정해보면 단국의 강역이 중원에서 밀려났어도 해마루는 그대로 고대 단국의 강역이었으니 해마루만 놓고 보면 서쪽은 그러니까 충청 경기 황해도 전라도 등등은 가야 카라 가라 출신들이 먼저 장악해서 중원에 하나라 은나라 동이 출신이 많고 동쪽은 북방 유목족 부여족 흉노 출신 아리안 등등이 동해에서 배 타고 말을 싣고 온 부족 집단이 이룩한 것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1:26] 결국 신라가 주축 세력이 되니 가야는 신라에 흡수
이런 과정에서 성골(왕족) 품계가 얼굴색이 너무 하얗다 보니 그런 고급 골품제가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1:27] 골품제가 점점 근친 끼리 교배하는 고로 결국은 선덕여왕 때 씨가 말라 내리막길을 가게 됩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1:28] 인종은 처음부터 막 섞여야 제대로 된 품종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브리드가 좋은 것인데, 실제로 미국이 그런 사회로서 큰 효과가 확인 되었습니다.
(하이브리드 사회의 특징이 썩 유교적이지는 않지만 나름 그들도 의리와 규범 예의는 있습니다. 최소한 나라를 통째로 팔아 먹는 놈은 없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1:44]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 동안에 인류의 씨가 몽땅 해마루 포대 자루에 모두 모여들었습니다,
아메리카로 일본으로 가기도 했지만 지구는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씨가 퍼져 나갈 곳이 없습니다.
이것을 핵이라고 합니다. 용접봉에 끝에서 불꽃이 튀어나오듯 이제 이들의 유전자가 섞여 이룩한 신 인류의 에너지가 폭발할 그날이 왔습니다.
신라에 성골이 망한 것은 그들끼리 결혼하고 혼혈은 진골로 낮추면서 성골 골품을 지키려 했기 때문에 결국 씨가 말라버렸습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1:54] 삼국유사에는 신라왕족이 천축의 찰리종(刹利種)이기 때문에 이미 불기(佛記)를 받아서 동이(東夷)족, 공공(共工)족과는 별다르다고 기록하였다.
부도지 끝에는 신라족이 단국을 계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과연 삼국유사에도 그런 기록이 있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왕족이 천축의 찰리종(刹利種)이기 때문에
이미 불기(佛記)를 받아서 동이(東夷)족, 공공(共工)족과는 별다르다고 기록하였다.
찰리종(刹利種)이란 범어로 크샤트리아(Ksatriya)이다.
앞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사투리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먼 옛날 서역으로부터 왕족 귀족들이 대거 이주해온 때문이다.
특히 인구밀도가 적은 만주 몽골보다 한반도와 제주도에서 더 많은 음운이 일치하는 사례를 보면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종족이 이동하여서 생긴 것이 아닌 어떤 시기에 갑자기 종족이 대거 이주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1:55] " 삼국유사(三國遺事) 황룡사구층탑(皇龍寺九層塔), 신라 제27대 선덕왕 즉위 5년, 정관(貞觀) 10년 병신에 자장법사가 당나라에 들어가 불법을 구할 때 오대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감응을 받았다. (자세한 것은 본전에 보인다.)
문수가 또 말하기를 “너희 국왕은 천축의 찰리종(刹利種) 왕으로 미리불기(佛記)를 받았기 때문에 특별히 인연이 있어 동이(東夷) 공공(共工)의 종족과는 같지 않다. 그러나 산천이 험하기 때문에 사람의 성질이 거칠고 사나워 사견(邪見)을 많이 믿어 때때로 천신이 재앙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다문비구(多聞比丘)가 나라 안에 있어서 군신이 평안하고 백성이 화평하다”라고 하였다. 말이 끝나자 사라졌다. 자장은 이것이 대성이 변화한 것을 알고 슬피 울면서 물러났다. "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1:56] 즉 공공족과 찰리종이 둘이 해마리에 주축 세력이었다는 것이고 공공족은 가야계이고 찰리족은 북방 유목민 색부루 선우 좌현왕 우현왕 흉노 고구려 부여계입니다.
[bc8937 환단원류사 박민우] [오전 11:57] 굉장히 넓은 땅에 초기 신라는 약한 힘으로 이렇게 넓은 땅을 다 제압하고 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우리가 보는 것은 왕족이 살았던 곳의 역사를 보는 것이고 왕족이 이사 간 곳의 역사를 보는 것입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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