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아발다라보경
(楞伽阿跋多羅寶經)
능가아발다라보경 제1권
1. 모든 부처님께서 마음에 대해 말씀하신 품[一切佛語心品]
2. 장식경계(藏識境界)
[0484a05] 爾時大慧菩薩復白佛言:
「世尊所說心意意識、五法、自性相,一切諸佛菩薩所行,自心見等,所緣境界不和合顯示,一切說成眞實相,
이때 대혜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심(心)ㆍ의(意)ㆍ의식(意識)과 다섯 가지 법의 자성의 모습은, 일체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행하신 것입니다.‘자기 마음과 자기의 견(見) 등으로 반연하는 경계와는 화합하지 않는다’하신 것은, 모든 말씀이 진실한 모습을 이룬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一切佛語心,爲楞伽國摩羅耶山海中住處諸大菩薩,說如來所歎海浪藏識境界法身。」
모든 부처님께서는 능가국(楞伽國) 마라야산(摩羅耶山) 바다 속 주처(住處)의 대보살들에게 마음[心]을 말씀하셨습니다.‘여래가 찬탄한, 바다의 파도 같은 장식(藏識)의 경계가 법신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0484a10] 爾時,世尊告大慧菩薩言:
「四因緣故,眼識轉。何等爲四?謂:
自心現攝受不覺,
無始虛僞過色習氣,
計著識性自性,
欲見種種色相。
大慧!是名四種因緣水流處,藏識轉識浪生。
이때 세존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인연 때문에 안식(眼識)이 움직인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자기 마음이 나타내는 것을 받아들이는 줄 깨닫지 못하는 것,
끝없는 옛날부터 거짓이고 허물인 물질에 습기로 계착하는 것,
식(識)의 성품이 원래 그러한 것,
갖가지 색상(色相)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대혜야, 이를 네 가지 인연이라고 하니, 물이 흐르는 곳처럼 장식이 움직여 식의 물결이 일어난다.
大慧!如眼識,一切諸根微塵毛孔俱生,隨次境界生,亦復如是。譬如明鏡,現衆色像。
대혜야, 안식이 그렇듯이 모든 감관[根]들도 미진수 같은 모공(毛孔)에 이르기까지 동시에 생기니, 차례대로 경계가 생기는 것도 이와 같다. 마치 맑은 거울에 여러 색상(色像)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大慧!猶如猛風,吹大海水。外境界風,飄蕩心海,識浪不斷。因所作相異不異,合業生相,深入計著,不能了知色等自性,故五識身轉。
대혜야, 마치 큰 바다에 맹렬한 바람이 부는 것과 같으니, 바깥 경계의 바람이 마음 바다에 불어 식의 파도가 끊이지 않는다. 인(因)과 만들어진 모습[所作相]이 다르다 다르지 않다 하며, 업의 생상(生相)에 밀착하고 깊이 들어가 계착하며 물질 등의 자성을 명료하게 알지 못하므로 다섯 가지 식신(識身)이 구른다.
大慧!卽彼五識身,俱因差別分段相知,當知是意識因彼身轉。彼不作是念:『我展轉相因,自心現,妄想計著轉。』
대혜야, 저 다섯 가지 식신은 모두 차별된 분단상(分段相)으로 인하여 알 수 있다. 명심하라, 이 의식(意識)이 인(因)이 되어 저 5식신이 구르는 것이니, 저 5식신은‘내가 서로서로 인이 되어 주어 자기 마음에 현재의 망상계착이 구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而彼各各壞相俱轉,分別境界,分段差別,謂彼轉。如修行者入禪三昧,微細習氣轉而不覺知,而作是念:『識滅然後入禪正受。』
저들이 각각 무너지는 모습과 함께 움직인다고 경계를 분별하고 차별을 나누는 것이다. 저들의 움직임은 수행자가 선삼매(禪三昧)에 들어갔을 때, 미세한 습기가 움직임을 깨달아 알지 못하고서‘식이 없어진 후에 삼매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實不識滅而入正受,以習氣種子不滅,故不滅;以境界轉攝受不具,故滅。
그러나 실은 식이 없어져 삼매에 들어간 것이 아니니, 습기의 종자가 없어지지 않은 까닭에 없어진 것이 아니다. 경계의 움직임과 받아들임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없어졌다고 한 것이다.
大慧!如是微細藏識究竟邊際,除諸如來及住地菩薩;諸聲聞、緣覺、外道修行所得三昧智慧之力,一切不能測量決了
대혜야, 이와 같이 미세한 장식의 구경(究竟)의 변제(邊際)는 모든 여래와 주지보살(住地菩薩)이 아닌, 모든 성문이나 연각이나 외도가 수행하여 얻는 삼매나 지혜의 힘으로는 어떤 것으로 측량하여 결단할 수 없다.
餘地相智慧、巧便分別、決斷句義。最勝無邊善根成熟,離自心現妄想虛僞,宴坐山林,下中上修,能見自心妄想流注,
그러나 여러 지위에서 지혜와 선교방편(善巧方便)으로 확고한 말씀의 뜻을 분별하고, 가장 훌륭하고 끝없는 선근을 성숙시키며, 자기 마음에 나타난 망상의 허위를 벗어나 숲에 조용히 앉아서 하[하사도:천인승]ㆍ중[중사도:성문, 연각승]ㆍ상[상사도:보살대승]의 수행을 닦으면, 자기 마음의 망상이 상속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無量刹土諸佛灌頂,得自在力神通三昧。諸善知識佛子眷屬,彼心意意識,自心所現自性境界虛妄之想,生死有海,業愛無知,如是等因,悉以超度。
한량없는 국토에서 모든 부처님이 관정(灌頂)하고, 자재력과 신통과 삼매를 얻으며, 모든 선지식과 불자가 권속이 되리니, 그런 심(心)ㆍ의(意)ㆍ의식(意識)은 자기 마음에 나타난 자성의 경계이다. 그는 허망한 생각과 생사라는 유위(有爲)의 바다, 업애(業愛)와 무지(無知) 등 이와 같은 인(因)을 모두 초월하고 건넌다.
是故,大慧!諸修行者,應當親近最勝知識。」
그러므로 대혜야, 모든 수행자는 가장 훌륭한 선지식을 가까이해야 한다.”
[0484b07] 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譬如巨海浪, 斯由猛風起,
洪波鼓冥壑, 無有斷絶時。
藏識海常住, 境界風所動,
種種諸識浪, 騰躍而轉生。
靑赤種種色, 珂乳及石蜜,
淡味衆華果, 日月與光明,
非異非不異。 海水起波浪,
七識亦如是, 心俱和合生。
譬如海水變, 種種波浪轉;
七識亦如是, 心俱和合生,
이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치 큰 바다의 파도가
맹렬한 바람으로 일어나
거대한 파도가 바다를 두드려
끊어질 때가 없는 것처럼
장식(藏識)의 바다는 항상 머물러 있으나
경계(境界)의 바람에 흔들려
갖가지 모든 식(識)의 파도가
용솟음쳐 구르며 생긴다.
푸르고 붉은 온갖 색깔
하얀 마노와 우유 및 석밀(石蜜)
담백한 맛의 온갖 꽃과 과일
해와 달과 광명(光明)이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으니
바닷물이 일어나 파도가 되는 것처럼
7식(識)도 이와 같아
마음과 함께 화합하여 생긴다.
마치 바닷물이 변하여
온갖 파도가 되어 구르듯
7식도 이와 같아
마음과 함께 화합하여 생기니
謂彼藏識處, 種種諸識轉。
謂以彼意識, 思惟諸相義,
不壞相有八, 無相亦無相。
譬如海波浪, 是則無差別;
諸識心如是, 異亦不可得。
心名採集業, 意名廣採集,
諸識識所識, 現等境說五。」
저 장식에서
갖가지 모든 식이 구르는 것이고
저 의식(意識)으로
모든 상(相)의 뜻을 생각하는 것이다.
무너지지 않는 모습에는 여덟 가지가 있으나
모습이 없다는 것 또한 모습이 없으니
마치 바다와 파도가
차별이 없는 것처럼
모든 식과 마음도 이와 같아서
다르다 함도 얻을 수 없다.
마음이란 업을 채집한다고 이름하고
의(意)는 널리 채집한다고 이름하며
모든 식이 알아야 할 대상을 알아
나타내는 등의 경계를 다섯 가지로 말한다.
[0484b26] 爾時,大慧菩薩以偈問曰:
「靑赤諸色像, 衆生發諸識,
如浪種種法, 云何唯願說。」
이때 대혜보살이 게송으로 여쭈었다.
푸르고 붉은 모든 색상(色像)은
중생이 모든 식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파도 같은 온갖 법이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0484b29] 爾時,世尊以偈答曰:
「靑赤諸雜色, 波浪悉無有,
採集業說心, 開悟諸凡夫。
彼業悉無有, 自心所攝離,
所攝無所攝, 與彼波浪同。
受用建立身, 是衆生現識,
於彼現諸業, 譬如水波浪。」
이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푸르고 붉은 모든 여러 가지 색은
파도와 같아 모두 없는 것
업을 채집하는 것을 마음이라 하여
모든 범부를 깨우쳐 준 것이다.
저 업이란 모두 없는 것이니
자기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을 벗어나면
받아들인 것에 받아들여진 것이 없으니
저 파도와 같다.
수용하여 건립한 몸
이것이 중생의 현식(現識)이니
그곳에 모든 업이 나타나
마치 물과 파도 같다.
[0484c07] 爾時,大慧菩薩復說偈言:
「大海波浪性, 鼓躍可分別;
藏與業如是, 何故不覺知?」
이때 대혜보살이 다시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큰 바다와 파도의 성품은
치고 솟구치는 것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장식과 업도 이와 같다면
어찌하여 알 수 없습니까?
[0484c10] 爾時,世尊以偈答曰:
「凡夫無智慧, 藏識如巨海,
業相猶波浪, 依彼譬類通。」
이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범부는 지혜가 없기에
장식을 큰 바다와 같다 하고
업상(業相)을 파도와 같다 한 것이니
이 비유에 의지해 유추해서 알라.
[0484c13] 爾時,大慧菩薩復說偈言:
「日出光等照, 下中上衆生。
如來照世間, 爲愚說眞實,
已分部諸法, 何故不說實?」
이때 대혜보살이 다시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해가 뜨면 광명이
낮고 높은 중생을 평등하게 비추듯
여래께서 세간을 비추시는 것도
어리석은 사람에게 진실을 말씀하기 위함입니다.
이미 모든 법을 나누셨건만
어찌 진실을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0484c17] 爾時世尊以偈答曰:
「若說眞實者, 彼心無眞實。
譬如海波浪, 鏡中像及夢,
一切俱時現, 心境界亦然。
境界不具故, 次第業轉生,
識者識所識, 意者意謂然,
五則以顯現, 無有定次第。
譬如工畫師, 及與畫弟子,
布彩圖衆形, 我說亦如是。
彩色本無文, 非筆亦非素,
爲悅衆生故, 綺錯繢衆像。
이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만약 진실을 말한다면
그 마음에는 진실이 없으니
마치 바다의 파도나
거울에 비친 모습이나 꿈과 같다.
모두가 일시에 나타나니
마음의 경계도 그러하지만,
경계가 갖추어지지 않으므로
차례로 업이 전전해서 생긴다.
식이란 식으로 알 바요
의(意)란 그러리라 여기는 것이며
다섯 가지는 명확하게 나타나는 것이나
정해진 차례가 없다.
마치 화가와
그의 제자가
헝겊에 여러 형상을 그리듯
내가 말하는 것 역시 그와 같다.
고운 빛깔은 본래 무늬가 없으며
붓도 아니고 또한 흰 천도 아니지만
중생을 기쁘게 하기 위해
비단에 수를 놓아 여러 형상을 만든다.
言說別施行, 眞實離名字,
分別應初業, 修行示眞實。
眞實自悟處, 覺想所覺離,
此爲佛子說, 愚者廣分別。
種種皆如幻, 雖現無眞實,
如是種種說, 隨事別施設,
所說非所應, 於彼爲非說。
彼彼諸病人, 良醫隨處方,
如來爲衆生, 隨心應量說。
妄想非境界, 聲聞亦非分,
哀愍者所說, 自覺之境界。
말이란 따로 시행하는 것이어서
진실은 그 글자[名字]를 떠났지만
분별하는 것이 당연히 최초의 업이므로
수행하는 이를 위해 진실을 보여 준다.
진실이란 스스로 깨닫는 것이며
깨달았다는 생각도 깨달아야 할 대상도 벗어난다.
이것은 불자(佛子)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자세히 분별해 주리라.
온갖 것은 모두 환(幻)과 같아
비록 나타나나 진실이 없으니
이와 같이 갖가지 말을
경우에 따라 다르게 시설한다.
말한 바에 감응(感應)이 없으면
그에게는 말하지 않은 것이 되니
저 모든 병자들을
훌륭한 의사가 병에 따라 처방하듯
여래도 중생을 위해
그 마음을 헤아려 말씀하신다.
망상으로 알 경계가 아니며
성문(聲聞) 역시 해당되지 않는다.
불쌍히 여기는 이[哀愍者]가 말하는 것은
스스로 깨달은 자가 알 경계이니라.
[0485a10] 「復次,大慧!若菩薩摩訶薩欲知自心現量、攝受及攝受者妄想境界,當離群聚習俗睡眠,初中後夜常自覺悟修行方便;當離惡見經論言說,及諸聲聞緣覺乘相;當通達自心現妄想之相。
“또 대혜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자심(自心)의 현량(現量)과 받아들이는 자와 받아들이는 대상과 망상의 경계를 알고자 하면, 모여 쌓인 세속의 습관과 잠[睡眠]을 없애야 하며, 초저녁부터 한밤중을 지나 새벽에 이르기까지 항상 스스로 각오(覺悟)하고 방편을 써서 수행하여야 하며, 악견(惡見)의 경론(經論)과 모든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의 모습을 벗어나야 하며, 자기 마음에 나타난 망상의 모습을 막힘없이 환히 알아야 한다.
[0485a14] 「復次,大慧!菩薩摩訶薩建立智慧相住已,於上聖智三相,當勤修學。
또 대혜야, 보살마하살이 지혜상(智慧相)을 건립하여 머물고 나면, 높은 성지(聖智)의 세 가지 모습을 열심히 배우고 닦아야 한다.
何等爲聖智三相當勤修學?所謂:
無所有相、
一切諸佛自願處相、
自覺聖智究竟之相。
성지의 세 가지 모습을 열심히 배우고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소유(無所有)의 모습과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스스로 원을 세우던 시절의 모습[自願處相]과
자각성지(自覺聖智)의 구경의 모습을 말한다.
修行得此已,能捨跛驢心慧智相,得最勝子第八之地,則於彼上三相修生。
수행하여 이것들을 얻고 나면, 능히 어리석은 마음과 지혜의 모습을 버리고 보살의 제8지(地)를 얻게 되니, 위에서 말한 세 가지 모습을 닦음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大慧!無所有相者,謂聲聞、緣覺及外道相,彼修習生。
대혜야, 무소유의 모습이란 성문과 연각과 외도의 모습을 말하니, 저들이 닦고 익혀 생기는 것이다.
大慧!自願處相者,謂諸先佛自願處修生。
대혜야, 스스로 원을 세우던 시절의 모습[自願處相]이란, 모든 과거의 부처님께서 스스로 원한 곳에서 수행하여 생기는 것이다.
大慧!自覺聖智究竟相者,一切法相無所計著,得如幻三昧身,諸佛地處進趣行生。
대혜야, 자각성지의 구경의 모습이란, 모든 법의 모습에 계교하여 집착하는 것이 없이 여환삼매(如幻三昧)를 얻는 것을 말하니, 모든 불지(佛地)에 나아가는 행으로 생긴다.
大慧!是名聖智三相。若成就此聖智三相者,能到自覺聖智境界。
대혜야, 이를 성지(聖智)의 세 가지 모습이라고 한다. 만약 이 성지의 세 가지 모습을 성취한다면, 자각성지의 경계에 도달할 수 있다.
是故,大慧!聖智三相,當勤修學。」
그러므로 대혜야, 성지의 세 가지 모습을 열심히 닦고 배워야 한다.”
[출처] 능가경-대승성종돈교 41법문-2. 장식경계(藏識境界) |작성자 byuns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