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가장 춥다는 날이었습니다. 이 추위에 과연 몇 명이나 나올까 걱정하였습니다만, 커먼즈 필드의 세미나실이 꽉 찰 정도의 출석률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오늘은 2023년 후반기 유정독서모임을 마무리하는 날이었습니다.
1차시에는 이어령교수의 12월의 인사로 < 그런 슬픔이 아니라는 것을>을 읽었습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평범한 우리들이 느끼는 다양한 슬픔들, 그것들을 떨쳐낼 수 있다면, 혹은 고전소설이나 옛이야기에서 나오는 인물들처럼 모든 것이 권선징악, 해피 엔딩으로 끝나고, 우리들이 신선이 되고 우리 앞에 무릉도원이 펼쳐질 수 있다면, 그렇다면 밤 새워 책을 읽거나 글을 쓸 필요 없이 따뜻한 이불 속에서 뒹굴고 ,하모니카를 불고 썰매를 타고 즐겨도 되겠지만 ......
그러나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내적 성숙과 미래를 향한 꿈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어떤 것이 있다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책을 읽게 하고 글을 쓰게 하고 끝없이 토론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어서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 장석 시인의 < 눈 내리는 저녁>을 낭독하면서 눈오는 겨울 밤의 고요와 고독과 따뜻한 사랑에 대해서, 문정희 시인의 <별 키우기>를 읽으면서 숨겨둔 나만의 '별'에 대한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민정 선생이 대추차를 끓여와서 나누어주었습니다. 따끈한 대추차를 마시며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안명선생은 동쑥떡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아, 우리 독서모임팀이 제게 한 상자의 동쑥떡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차시에는 김유정의 소설 <솥>을 돌아가며 읽었습니다. 김유정은 1934년 8월16일 <정분>이란 제목의 원고를 탈고, 후에 이 원고를 퇴고하고 <솥>으로 제목을 바꾸어서 1935 9월3일~9월 14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유정 사후, 그의 지인들이 유정의 원고들을 정리하던 중에 이 글의 초고본인 <정분>을 발견, 이것을 미발표 유작으로 오해하여 1937년 '조광'에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초고본<정분>과 퇴고본 <솥>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나 주인공의 이름이 은식->근식, 진흥회-> 농민회로 나오고, 초고본이 이야기 중심이라면 퇴고본에서는 주인공의 내면심리를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솥>의 근식은 나달전(4~5일 전) 마을로 들어온 들병이(이동식 작부) 계숙이와 눈이 맞아 술값대신 맷돌, 아내의 속곳, 함지박을 가져다 주며 정분을 쌓아갑니다. 어제는 계숙으로부터 사랑한다는 고백까지 들었지요, 그랬던 계숙이가 오늘 저녁, 동네 청년회장으로부터 마을에서 나가달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합니다. 이에 근식은 크게 낙담, 그러다가 계숙이와 함께 살기로 약조를 받고는 자기 집에 가서 아내 몰래 솥과 그릇들 숫가락까지 가져갑니다( 들병이 삶이 천하기는 하지만 일하지 않고 고깃국에 밥을 먹을 수 있어서).
그러나 다음 날 새벽, 계숙이와 동침 중이던 근식은 잠결에 굵은 사내 목소리를 듣게 되고, 그가 바로 들병이 계숙의 본남편이라는 사실 앞에 거의 혼절할 상태에 이릅니다. 마침내 날이 밝자 전날 미리 싸놓았던 짐을 계숙의 남편이 선두에, 다음에 계숙, 그 다음에 근식이 나서서 길 떠나게 됩니다. 이때 뒤에서 달려드는 근식의 아내, 근식의 아내가 계숙의 쪽머리를 낚아채며
" 왜 남의 솥을 빼가는 거야?"
두 여자가 엉켜붙자 근식은 아내를 뜯어말립니다. 동리 사람들이 싸움 구경을 나오고, 들병이 내외는 태연스레 마을을 떠나고, 분에 복받쳐 눈위에 주저앉아 몸부림 치는 아내를 보며 울상이 된 근식이가 말합니다.
"아니야 글쎄, 우리 솥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참 ─"
들병이와 눈이 맞고 배가 맞아서 아내 속곳은 물론 맷돌에 함지에 밥솥까지 바친 근식이, 철 좀 들어야 할, 참으로 기가 찬 남편입니다.
2023년 유정독서 모임, 전후반기로 나누어 8번씩 모두 16번의 모임을 가졌습니다. 한 달에 2번씩 만났지요. 한 번은 유정문학열차에서, 또 한 번은 커먼즈 필드 세미나실에서.
우리는 김유정의 소설, 수필, 번역작품, 김유정의 친구가 김유정을 주인공으로 쓴 소설까지 읽었습니다.
김유정 작품 소리내어 읽고 토론하기 모임은 내년에도 계속됩니다. 김유정 작품을 바탕으로 한국의 명작 소설작품, 명작 에쎄이, 명시 작품, 때로는 외국작품까지 장르 불문하고 함께 읽어갈 계획입니다. 가끔 문학이론도 소개하고요.
올 겨울 유난히 춥습니다. 1월과 2월은 모두 따뜻한 곳에서 몸과 마음에 대한 재충전을 하시기 바랍니다.
유정독서 모임은 2024년 3월부터 다시 진행됩니다.
그동안 유정독서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신 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유정독서모임을 지켜보아주시고 후원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신년 새해, 청룡의 해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2023. 12. 21 강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