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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마산교구 성지순례(2024.06.08) |
청소년 미사 시작 10분전 중 • 고등학교 청소년 4명이 제대에 촛불을 밝힌 뒤 무릎을 꿇으며 파란색 기도문을 양손에 들고 “나는 주님을 믿고 따르려 가까이에서 복사를 서겠습니다”기도한다. 제의실에서 성체분배 봉사자 들과 함께 기도손으로 주례 사제를 기다리는 청소년 들에게 몇학년이야 ? 그 기도문 누가 만들었어 ? “저는 중학교 3학년인데요 기도문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았다고 하던데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차마 “그 기도문 내가 만들어 코팅 해 놓은거야”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 생색 내시네요....할까 봐...ㅋㅋ 저 학생이 나중에 사제가 되면 이런 모습일 꺼야, 또 이쪽 여학생이 수녀님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흰색 가운위에 긴줄의 큰 나무 십자가를 목에 건 귀엽고 예쁜 어린 학생들의 먼날 사목적 봉사자로서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데 “준비되었습니다. 나가시지요” 주례 사제는 미사 시작 성가에 맞추어 입장을 재촉하신다..... 분명 이 귀여운 어린학생들은 멀지않아 그리고 또 우리 순례단원들의 맑은 영혼들 처럼 전국 각지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의 성지를 찾아 나설 것이다....그때는 양손에 복사할때 들었던 기도문 대신 순교자와 함께하는 기도문 과 묵주를 양손에 들고....고개숙인채, "이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아멘. |
◇ 부산교구 |
〈김범우 묘(성모동굴성당)〉
김범우는 1751년 서울 남부의 명례방(현 명동 주교좌성당)에서 중인(中人) 역관의 8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784년 평소 친분이 있던 이벽의 권면으로 입교하여, 이승훈 베드로에게서 토마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그의 집에서 정기적인 신앙 집회를 가졌으나, 곧 ‘을사 추조 적발 사건’(1785년)이 발생하면서 지방으로 유배되었다. 유배된 후에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다 유배된 지 2년 만인 1787년 9월 14일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최근까지 김범우의 유배지는 달레가 쓴 『한국 천주교회사』에 근거하여 충청도 단양(丹陽)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80년 초 김범우의 후손이 나타나면서, 충청도 단양이 아니라 밀양 단장(丹場)임이 새롭게 밝혀졌다.
이후 몇 년에 걸쳐 밀양과 삼랑진 지역을 답사하면서 김범우가 묻힌 곳을 수소문하다가 마침내 1989년 김범우 외손의 도움으로 묘를 찾았다. 출토된 유물들과 후손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곳을 김범우 묘소로 단정하였다.
2011년 9월 부산교구 레지아의 협조로 성모 동굴 성당을 봉헌하였고, 최근 교육관과 피정의 집, 성령의 길이 완공되어 순교자들의 교육과 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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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교구 |
〈명례성지〉
1896년 설립된 명례 성당은 경남 지역의 첫 번째 성당이다.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로 서품된 강성삼 라우렌시오 신부가 1903년 선종 때까지 초대 주임으로 사목한 곳이다.
지금의 성전은 1936년 태풍 때 파괴된 성당(1928년 봉헌)의 잔해를 사용하여 1938년 축소 복원한 것이다. 남녀의 좌석이 구분되어 있는 성전 내부의 목조 구조는 초기 천주교회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 준다. 2011년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526호로 등록되었다.
명례 출신 복자 신석복 마르코(1828-1866년)는 누룩과 소금 장수였는데 1866년 병인박해 때 김해에서 붙잡혀 대구 감영에서 순교하였다. 체포되어 끌려갈 때 “나를 위해 한 푼도 포졸들에게 주지 마라.”라는 말을 형제들에게 남겼다.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23인의 동료와 함께 그를 시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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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복자의 생가 터가 발견되면서 복음화 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녹는 소금 운동’을 펼치고 있다. 2018년 5월 전국의 후원자와 순례자들의 희생을 모아 ‘신석복 마르코 성당’을 봉헌하고, 순교자 탑에 순교자를 모셨다.
명례 성지 인사: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녹는 소금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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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식 빅토리노 묘〉
박대식 빅토리노 복자는 1811년 김해시 진례면 시예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부유했으며, 언제부터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부친 박민혁과 형제들은(대붕, 대홍, 대식)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 병인박해를 겪게 된다.
병인박해 때는 가족 모두가 피신하여 잡히지 않았으나, 1868년 무진박해 때 박대식은 조카인 박수연과 함께 붙잡혔다. 박대식은 경상 감영에서 연일 배교를 강요당하며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1868년 8월 27일(음) 조카 박수연과 함께 참수 치명하였다. 당시 박수연은 예비 신자다.
박대식의 가족들은 순교자의 시신을 선산에 모시려 하였으나 마을 사람들과 집안의 외교인들이 반대하자 하는 수 없이 그의 세 아들(종립, 종반, 종철)과 형제들이 마을 뒷산인 챗골[茶谷] 유씨 문중 산에 평장(平葬)하였다.
그 후 120년이 지난 1956년 봄에 후손들이 무덤의 봉분을 크게 하고 순교자 부인의 묘(墓)도 이장하여 완전한 묘역으로 가꾸었다.
이때 순교자의 세례명이 명확하지 않아 세례명을 임시로 ‘노렌죠’(라우렌시오)라고 명명했으나 2001년에 순교자의 세례명이 ‘빅토리노’임을 밝혀내었다.
〈대산성지〉
『치명일기』에 따르면 구한선 타대오(1844-1866년)는 함안 미나리골(현재 함안군 대산면 평기 마을) 출신이다. 신심이 돈독하고 믿음에 충실해 병인박해(1866년) 직전 리델 신부의 복사로 거제도까지 가서 전교 활동을 하였다.
박해가 일어나자 리델 신부는 충청도로 떠나고 구한선은 진주 인근에서 지내다 붙잡혔다. 그는 감옥에 갇혀 며칠 동안 혹독한 문초를 받았다. 심한 매질과 고문으로 성한 곳이 별로 없었다.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게 되자 관에서는 집으로 돌려보냈다. 본가로 돌아온 뒤 칠 일 만에 장독(杖毒)으로 죽었다. 나이 스물셋이었다.
구한선의 묘는 1959년에야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이후 교우들은 대산면 하기리 신대 마을 신(愼)씨 묘역 안에 있던 묘소를 참배하기 시작하였다. 순교자의 묘소가 외교인 묘역 안에 있음을 안타깝게 여긴 교우들은 1976년 9월 묘소를 평림리 가등산(佳嶝山)으로 이장하였다.
2014년 8월 구한선이 시복된 뒤, 성지 주변의 환경 변화와 순례자들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2016년 10월 복자의 유해를 대산 성당에 모시고 새롭게 성지를 조성하였다. 새 성지에서는 1) 무덤 경당(순교자 묘소)과 야외 기념 제단(유해 일부 안치)에서 기도하고 2) 안내 쉼터에서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순례 후기 |
◇ 오늘 순례도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로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형제 자매님들 이른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 까지 긴 순례 하시느라 고생들 많으셨습니다.봉사자님 모두 순례 마침까지 헌신과 사랑으로 애써주신 많은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늦은 귀가까지 안전하게 잘 도착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무더위 건강 유의하시며 7월 순례때 기쁘게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재연 라파엘 순례단장)
◇ 111순례단의 6월 순례는 부산, 마산교구다. 이번 순례는 순교자 김범우 토마스, 복자 신석복 마르코, 박대식 빅토리노, 구한선 타대오 신앙선조를 만나는 순례여정이다. 새벽 5시 화정출발. 백석동, 의정부에서 반가운 얼굴들과 만난다.차 안에서 루치아 해설사가 오늘 은총의 순례를 위해 준비해온 성수를 뿌려주었고 하루 종일, 순례 내내 하늘에서도 성수가 풍성히 내렸다.
우리나라 첫 순교자라 할 수 있는 김범우 토마스. 그의 묘소는 앞산의 운무와 어우러져 순교자들이 머물고 계실 천상의 정원처럼 느껴졌다. 티 없으신 성모성심 기념일에 드린 미사에서 성지신부님은 우리의 신앙이 티 없으신성모님처럼 말과 행동에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증거하고 드러내는 신앙인이 되고 성지를 순례하면서 순교자들의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살아야한다고 하셨다.
비오는 날 먹고 싶은 음식은 부침개~ㅎㅎ. 점심에 먹은 김치전은 참 맛났다.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지대에 자리한 명례성지. 경남지역 첫 성당인 명례성당과 신석복 마르코 복자의 생가터인 명례성지의 정경은 참 아름다웠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제대와 남녀의 자리가 분리된 성당내부에 앉아있으니 무명치마저고리에 흰 수건을 쓰고 정결한 마음으로 미사 드리는 선조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명례출신 신석복 마르코 복자는 낙동강을 넘나들며 누룩과 소금을 팔던 분이라고 하니 그분의 짐지게와 소금 나르는 모습이 상상되어졌다. 갇힌 그를 구하려는 형제들에게 “나를 위해 한 푼도 포졸들에게 주지 마라”고 하면서 기꺼이 순교를 받아들였다는 얘기를 들으며 최양업 신부님의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의 순교이야기가 떠올랐다.
엄마가 처형당하기 전날 밤 어린 자녀들은 구걸하며 모은 곡식을 들고 망나니에게 주며 “칼을 잘 갈아 우리 엄마 아프지 않게 단칼에 천국 가게 해 주세요”라고 했다던 말. 나는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나에게 주신 재물을 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쓰겠다는 작은 다짐도 해본다.
신석복 마르코 복자님의 ‘녹는 소금의 영성’을 묵상하며 나의 신앙과 삶을 반성, 묵상해본다.개망초와 금계국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낙동강변의 비 내리는 정경 속에 마냥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이곳에 꼭 다시 초대해주세요...’ 혼잣말을 하며 다음 순례지로 향했다.
무진박해(1868) 때 참수 치명하여 하늘의 영원한 시민이 된 박대식 빅토리노 묘소는 가파르고 위험한 산길에 모셔졌다. 집안 외교인들의 반대로 선산에 모셔지지 못하고 120년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 된 무덤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우중에 이곳까지 찾아 기도하는 우리를 바라보고 고마워하시는 듯했다.
복자 구한선 타대오의 묘소가 있는 대산성당 제대 앞에서 머무른다. 23살의 피 끓는 나이에 죽기까지 수없는 매를 받아들인 그 신념은 어떤 것일지 시시각각 변하고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내 신앙으로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유해 일부가 모셔진 야외 제대 앞 여린 바늘꽃들도 하늘의 성수를 맞으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듯했다. 나의 몸짓과 마음짓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복자 구한선 타대오의 만남으로 오늘의 순례가 마무리 되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바친 힘찬 묵주기도 소리에서 오늘의 순례가 모두에게 은총으로 채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다음 순례를 기다리며 테클라는 녹는 소금이 되기로 약속한다.
(심숙희 테클라)
◇ 호국보훈의 달 6월 어느날. 호국영령의 영혼을 달래주듯... 이땅의 신앙선조께서 피눈물로 지켜낸 영혼을 애통하듯... 쉼없이 내리는 빗속의 순례길을 우리는 함께 했었지요~^ 순례의 마지막 구간이였던 대산성지의 옛 성당에서 받쳐드린 성인기도와 합송한 성가(주여 당신 종이 여기: 제가 참 좋아하며 애환이 담긴 성가)를 부르는 동안 멈추지 않았던 눈물은 제생에 잊혀지질 않을 아름다운 추억이 되였습니다.
- 성당 입장하는 남녀 출입구가 별도인것이 이때부터 남녀칠세 부동석의 시작이였다 는 학계의 고증. ㅋㅋ 굿 은 날씨임에도 우리의 염원을 담은 기도가~~ 먼훗날 성인품에 오를거라는 루치아 해설사님의 말씀을 다시금 새기는 찐^ 순례였기에 모든 봉사 자님들과 단장님께 감사드리면서 다음 순례를 기다려봅니다.
- 가슴이 뛸때 떠나라는 어느 신부님 말씀이 생각 납니다. 다음 순례 때까지 주님 은총 가득하시길 기도 드리겠습니다 +
(이수진 요셉)
◇ 오늘 하루가 마음이 찐한 감동으로 남아있는것은 순례길의 은총이 컷던 탓인거 같습니다~~티없으신 성모님의 신심을^^ 우리도 티없는 말과 행동으로 살아가면서 믿음의 증명으로 신앙인의 삶으로 보여주라는 신부님의 말씀에 다시한번 신앙인다운 사람이어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순교자들의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은 나의 신앙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곤합니다. 비오는 중에 감동이 있었고. 비와 함께 추억도 한소큼 담아오는 정겨운 순례길이었습니다, 단장님,해설사님.총무팀,간식을 건네준 모든분 감사 한 날이었습니다.
(이민자 율리아나)
◇ 비오는 순례길 더욱 은총의 순례길이였습니다. 단장님 해설사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총무팀 모든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베네딕도 형제님 비맞으시면서 사진 찍으시느라구 고생하셨어요. 도미니코형제님 🔊 스피커 들고 다니시느라 고 고생하셨어요. 함께해서 더욱 은총이 가득했습니다.. 모든 회원님. 만나서 행복하였습니다.. (김용옥 미카엘라)
◇ #단장님♡#봉사자님들 덕분에 행복한 장거리 순례여정 였네요. 감사드립니다.비오는 순례길였기에 더 의미가 있었나 봅니다.함께여서 더욱 행복한 우리 111순례단 감사합니다.💞 다음달에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다.
(김양주 베네딕타)
◇ 저에게는 해빛 쨍한 날보다 좋은 날 이었습니다. 단장님 총무님 준비팀 덕분에 편안하게 순교자들의 영성을 조금이나마 생각해 보는 또 지금의 나의 신앙은 어디쯤에 있을까?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분순 바울라)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 시성을 위한 전구 기도의 날’(6월15일) |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1821-1861년)의 선종 163주년 기념일입니다. 이 기념일에 다시 한번 최양업 신부님의 감동적인 생애를 떠올려 봅니다.
최양업 신부님께서는 우리나라의 두 번째 사제이시지만 한국인으로서 본격적으로 사목 활동을 펼치신 첫 번째 사목자라 할 수 있습니다.첫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귀국하신 지 1년 만에 순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후 최 신부님께서는 박해를 피하여 심심산골에 흩어진 교우들을 찾아 해마다 7천 리(2,800km)가 넘는 험한 산길을 다니시며, 선종하시기까지 12년 동안 전국 120여 곳의 교우촌을 순방하셨습니다.
이동이 어려운 여름 장마철에도 쉬지 않고 한문 교리서와 기도서를 한글로 옮기시고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을 수집하는 등 교회 재건을 위하여 헌신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계속된 과로에 장티푸스까지 겹쳐 안타깝게도 1861년 6월 15일 40세의 나이로 선종 하셨습니다.
여름인데 아직도 '콜록'…유독 내 감기만 오래 가는 이유 6 |
〈 휴식, 영양, 스트레스 등 감기 낫기위해 숙지해야 할 것들 〉 감기는 보통 3~7일 동안 지속되지만, 때로는 2주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속담은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다. 더운 여름에는 감기에 잘 안 걸리기 때문에, 이 시기 감기가 걸렸을 때 놀리는 말로 자주 사용된다. 더위가 시작되는 5~6월엔 의사들도 체감할 정도로 호흡기 질환자가 감소한다. 감기는 보통 3~7일 동안 지속되지만, 때로는 2주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만약 그 이상 감기가 지속된다면 아래 이유를 의심해 봐야 한다. 미국 건강·의료 매체 '웹엠디(WebMD)' 자료를 토대로 감기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알아본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음 감기가 낫지 않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몸이 필요로 하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잠을 충분히 자지 않았을 때 감기가 지속될 확률이 높아진다. 적절한 휴식은 면역 체계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데 필수적이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밤에 7시간 이하로 자는 사람들은 8시간 이상 자는 사람들보다 감기에 걸릴 확률이 거의 세 배 높다. 수분 섭취 부족 열이 나면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가고, 몸이 점액을 만들고 배출하면서 수분을 더 잃게 된다. 감기를 낫게 하려고 먹는 감기약도 몸을 더 건조하게 만들 수 있다. 감기에 걸렸을 대는 수분 보충이 중요하기에 물, 주스, 등을 충분히 마셔야 한다. 적절한 수분 섭취는 콧물과 가래 등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수분 보충으로 술, 커피, 카페인은 절대 삼가자. 과도한 스트레스 높은 스트레스 수준은 면역 체계를 약화시켜 감기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스트레스가 강할수록 바이러스와 싸우는 신체 능력이 떨어진다. 이 때 감기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고, 증상이 더 심해진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우리 몸이 위협에 대응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에 반응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코르티솔은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 같은 위협에 대한 몸의 반응을 조절한다. 다른 질병과 착각한 약물 오용 감기로 착각해서 다른 약물을 먹는 경우에도 치료가 어려울 수 있다. 감기는 종종 다른 질환과 혼동하기 쉽다. 몇 주 동안 감기라고 생각하고 치료했지만, 사실은 알레르기 같은 다른 이유 때문에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감기 증상은 보통 며칠에 걸쳐 나타난다. 알레르기는 빠르게 나타나며, 알레르기 원인에 접촉하는 동안 지속된다. 둘 다 기침, 콧물, 재채기를 유발하지만, 감기는 몸살이나 열이 더 자주 동반된다. 부비동염 일 수도 있다. 부비동염과 감기는 눈과 코 주변에 통증을 유발하며 끈적이고 누르스름한 점액을 동반한다. 다만 이런 증상은 감기 초기에 나타나는 반면, 부비동염은 보통 감기 증상이 사라진 후에 나타난다. 감기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사용한 약물이 회복을 늦출 수 있다. 예를 들어, 항생제는 바이러스성 감기에 효과가 없다. 잘못된 치료법 사용 민간 요법으로 감기를 치료하려고 해도 문제다. '이것을 마시면 낫는다' '뭘 하면 감기가 떨어진다' 등 이런 민간 요법들은 감기 치료에 도움이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비타민 C를 사탕처럼 먹으면 감기 회복을 빠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비타민 C가 감기 기간을 단축한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끊임없이 지속하는 운동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감기에 걸렸을 때는 좀 쉬는 것도 좋다. 만약 감기 증상이 콧물, 코막힘, 재채기, 인후통처럼 목과 관련해서만 있다면 운동을 좀 해도 괜찮다. 그러나 가슴 답답함, 심한 기침, 속이 불편함, 열, 근육통, 피로 같은 목 아래 증상이 있다면 쉬는 것이 급선무다. 휴식은 면역 체계가 재충전할 시간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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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베드로 형제님! 감사합니다
주님향기 가득한 순례여정의 후기 잘 보았습니다.
+ 평화
기획팀장님~♡
와우! 바쁘신중에 이렇게나 꼼꼼히요..
단원님들의 소감문을 새기며 순례 여정들이 다시 감동으로 밀려옵니다.. 역쉬 자랑스런 우리 선조님들의 후손답습니다~^^
감사히 잘 새겼습니다.
죽기까지 하느님을 첫자리에 모신 순교자들이시여!!
저희 111순례단 가정을 위하여 빌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