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돌님!~ 스탠드업 코미디언처럼 읽어주세요. 대환장파티 느낌으로요.)
안녕하세요 저는 전남 무안에 사는 방구석여포입니다.
1.닉네임 - 방구석여포 / 성별 - 남 / 양력 1992. 06. 27. 22시 30분 / 직업 -무직
2.성향 (취향, 가치관, 성격 등) : 1,500자 내외(1,553자)
저는 노 잼에, 매력 없는 범생이었습니다. 출첵 할 때 만 말했어요. 자는 시간 빼고는 책을 폈지만 공부는 안 했습니다. 주로 sky가서 예쁜 여친 사귀고 나 괴롭히던 녀석들 때리는 허상에 빠졌습니다.
강 헌 쌤은 친구랑 네트워크랑 다르다고 하셨는데요. 전 둘 다 없습니다. 잡담을 모르고 대화를 못 이어요. 왜냐하면 저는 갑분싸거든요. 고3 때 친하지 않은 애가 자기 무리한테 “여름에 제주도 갈까?” 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한테 이야기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와~우리 제주도 가?”라고 했고 갑분싸. 추가, 조원들끼리 서로 첫 인상을 말 했습니다. 저는 같은 조 여자에게 “맷집좋게 생겼다.”,“싸움 잘 할 듯”이라고 했습니다. 웃으라고 한 말인데 갑분싸. 며칠 뒤 이 친구가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시계 어디 거에요?”, “카시오건데, 전범기업이래.” 갑분싸.
공부욕심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생긴 것 같아요. 아버지가 어머니께 화내는 모습을 봤어요. 비 내리는 수학시험지를 보고 아버진 어머니께 화내셨어요. 너 때문이라고. 본인은 ‘목포상업고등학교’를, 엄마는 일반고를 나오셨거든요. 어머닌 아버지 앞에서 꿈쩍도 못 했습니다. 하지만 자식들 앞에선 다르셨어요. 삼 남매가 공부를 못 하는 이유는 느그아빠 집안 탓이었어요. “느그 할아버지가 글도 모르는 무식한 농사꾼이었다. 반면 외할아버지는 선생님이셨다.” 공통적으로는 자식 탓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과외를 붙여줬는데도 결과가 개 똥 인건 니들 탓이다. 그렇다고 항상 분위기가 이 모냥 이 꼴은 아니었어요. 평소엔 엄마 형 누나랑 티비 보면서 깔깔댔습니다. 단. 아버지 오시기 전 까지만요. 차가 마당에 들어오는 소릴 들은 제가(아빠 차 들어오는 소리는 기가 막히게 들었습니다.) 적군의 도착을 알립니다. 그럼 누군가 아버지가 나갈 때 본 마지막 채널(골프? 야구? 뉴스?)로 돌리고 티비를 끕니다. 그리고 군인보다 빠르게 현관에 1열 횡대로 서요.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아버지께 ‘다녀오셨어요’ 합니다. 그리고 각자 방에서 공부하는 척했습니다.
팔랑 귀에 욕심도 많아요. 세 시간 수면법이란 책에서 누가 낮에는 학원 선생, 밤에는 편의점 일을 하면서 잠 안자고 빚을 다 갚았데요. 편의점에서 외눈안대로 한 쪽 눈을 가리고 한 눈만 뜨고 일하고, 한 시간 반이 지나면 반대 쪽 눈을 한 시간 반 가리고 방금 가렸던 눈만 뜨고 일했데요. 이걸 반복하면 안자고 버텨진데요. 그게 멋있어서 ‘저도 '낮에는 학업을, 밤에는 편의점 일을 할거야’ +받고 밤에 책도 읽을거야. 실패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공부하는 척할 때, 엄마는 제가 착한 척 집안 일 도와줄 때, 공통적으로는 많이 먹을 때 가장 좋아하셨어요. 대인관계의 고립, 몸과 마음의 괴리감을 폭식으로 풀었습니다. 제가 짜장면 탕수육을 먹고 밥까지 비벼먹으면 부모님은 뿌듯해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과하게 먹어서 제 몸은 팔 다리 얇고 배만 나온 까만 거미입니다.
고등학교 때 최악의 생각(강약약강)을 합니다. ‘내가 이렇게 찌질한 건 모두 엄마 때문이야’, 쪽팔리네요. 어머닌 약했고 아버진 강했거든요. 어머니 말엔 악 질렀고 아버지 말엔 ‘네’했습니다.
3.과거 이력 (인생의 굵직한 사건, 사고 등 / 해당 대운, 세운 명시) : 1,500자 내외(1,579자)
저는 누구에게나 상냥하게 대했지만 ‘우정’이라는 것을 한 번도 실감해 본 적이 없었고 모든 교제는 그저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어서 그 고통을 누그러뜨리려고 열심히 익살을 연기하느라 오히려 기진맥진해지곤 했습니다. 조금 아는 사람의 얼굴이나 그 비슷한 얼굴이라도 길거리에서 보게 되면 움찔하면서 일순 현기증이 날 정도로 불쾌한 전율이 엄습할 지경이어서, 남들한테 호감을 살줄은 알았지만 남을 사랑하는 능력에는 결함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제 얘기네요. 아는 사람을 길에서 보는게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호감을 사고파 안달복달했습니다. 착한 척 했어요. 아니, 비굴하게 굴었어요. 잘 안 됐고 집 안에선 180도 변했습니다. 방구석 여포로요. 2009년, 대인관계로 가장 힘들었습니다.
2010년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한다고 혼 내셨습니다. 등을 치며 우셨어요. 그리고 저는 엄마를 밀치고 독서실에 갔습니다. 집에 오니 분위기가 쌔해요. 엄마는 제가 눈에 안보이 듯 굴었습니다. 왜?
제가 엄마 목을 졸랐데요. 서로 기억이 달랐습니다. 억울했지만 사과하는 척했습니다. 안 받으셨죠. 여전히 못 풀었어요. 그리고 2018년 초 신과 함께1을 봤어요. 지옥엔 가기 싫었던 저는 어머니께 사과드렸습니다. 저는 정말 찌질이 개 초 븅신이네요. 물론 무시하셨습니다.
12.01-13.10 군대(철원). 부모님은 싫었지만 선임들은 지옥이었습니다. 저는 선임들의 먹잇감이었어요. 모두 제 잘못인 것만 같았던 그 때 부모님 원망을 많이 놨어요. 그리고 난생 처음 무리에 섞였습니다. 동기들이랑요. 처음 친한 사람한테 욕도 하고 친해져봤습니다. 물론 전역하고 아싸로 돌아갔습니다.
13년 말. 태어나 처음으로 가출했습니다. 전역하고 집에다는 전국일주 한다고 뻥치고 거제 대우조선소로 갔습니다. 아버진 분노하셨어요. 그런데 일을 못 해서 3개월만 하고 서울로 갔습니다. 근데 서울에서도 일 못 한다고 욕을 먹어서 2014년 5월 도망치듯 집으로 왔습니다. 항상 피하고 도망치기만 했습니다.
지금껏 사랑은 못 해봤는데 여자친구는 딱 한 번 사귀었습니다. 15년 5월 즈음에 여자애가 콩깍지가 씌었나? 제가 좋데요. 그저 몸을 섞고 싶어서 제 스타일이 아닌데도 사귀었어요. 사랑하지 않아서 연락을 잘 안 했습니다. 난리났죠. 자기가 먼저 자존심 굽혀서 사귀자하고 몸도 주고 마음도 줬는데. 그리고 15년 7월에 제가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정말 쓰레기네요.
16년 대학을 자퇴하겠다는 저에게 사촌누나가 휴학하고 유럽여행을 가라했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외국인들과 어울리지 못 하는 저를 많이 비하했습니다.
17년 국문학과로 전과했습니다. 도피성 전과(그 전 과에서는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18년 말에 시작해서 2019년 5월까지 일한 가스충전소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 잘한단 소리를 들었습니다.(물론 일이 쉬웠습니다.) 군대에서도 일 못 한다고 병장때까지 욕 먹던 제가 처음 일 돌아가는게 눈에 보이고 그 덕에 군대에서도 말년까지 긴장을 했는데 여기서 태어나 처음으로 긴장이 풀리고 빠져봤습니다.
19년 8월. 2011년에 입학한 목포대학교를 졸업합니다.
4.간단 명료한 질문 3가지
⓵ 어릴 땐 먹으면 토했습니다. 항상 바늘로 손을 따거나 입에 손을 넣어 토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좀 나아진 것 같아요. 하나 더, 자다 일어나서 엄마 품에서 엉엉울었습니다. 콧물이랑 핏물이랑 섞여 거의 딱지가 돼서 콧구멍을 덮었습니다. 숨을 못 쉬었어요. 축농증? 비염?이었는데 애기 때부터 이비인후과 약을 먹고 살았어요. 그걸 먹어도 낫질 않아서 의사들을 싫어해요. 고등학교 때 별명이 킁킁이였습니다. 군대가서 좀 나아진 것 같은데 냄새는 잘 못 맡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말썽인 곳은. 소변입니다. 잔뇨감? 이라고 하나요? 항상 찝찝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제 몸과 마음에 가장 큰 문제는... 혼밥입니다. 다른사람이랑 밥 먹으면 할 이야기도 없고 제 주위로 벽이 있는 느낌이에요. 그렇다고 혼자 먹으면 자기 비하를 하면서 무너지네요. 아... 가족이랑 먹을 땐... 귀를 닫고 먹어요. 폭식하면 살찐다는데 소화를 못 해 그런가 제 몸은 깡깡 마른 얼굴 까만 거미형입니다. 총체적 난국이네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까요??
⓶ 갑목일간이 을목을 끼고 있으면 답이 없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제 인생이 이런가 싶기도 하고. 또 다르게 보면 가족 중에 3명이 경금이라 엄마가 점심 때부터 참아서 해시에 낳아주셨나 싶기도 합니다. 게다가 식상혼잡이라 그런지 배우도 되고 싶고, 활인업에 종사하고 싶기도 하고, 상담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춤을 추고 싶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기도 하고 작가도 되보고 싶고 다 해보고 싶습니다. 근데 그걸 하기 전에 일단 사람이랑 대화가 안 돼요. 명분이 있어야만 말을 한다해야하나? 어떡해야 사람이랑 소통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죽돌님처럼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엄청 웃기는 개그맨도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랑 말 잘 통하고 사람들 사이 어색한 걸 유머로 깨는 사람이요. 제 머리엔 유머 알고리즘 자체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 말을 들으면 정답, 팩트, 거짓만 찾습니다. 어떡하면 죽돌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⓷ 신약이 식상과다면 행운용신이 인성이라고 하는데 제 용신은 그럼 수인가요. 어머니? 아버지? 누구한테 잘 해야할까요? 말 잘 듣는 효자 코스프레 중이지만, 속마음은 복잡합니다. ‘그래도 너 낳아준 사람들이잖아, 솔직히 니가 그 환경(나름대로 사정을 알고 좀 이해하고 있습니다.)이었으면 니는 잘 했을 것 같냐? 당신들도 최선을 다 했어.’ / 또 한쪽에선 ‘씨바 솔직히 착한 척 좀 하지마 새꺄. 둘 다 잘해주기 싫어.’ 막 이러고 있습니다. 육친관계만 제대로 정리해도 좋다는데 어떡해야할까요?
추신. 90년대 초반 출생의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께...
그래도 우리 애가 무안산다는 이 놈보다는 낫구나. 라는 안도감이 들면 좋겠습니다. ㅋㅋ
‘그래도 내 새끼는 친구는 있어.’
‘그래도 내 새끼는 하는 일은 있어.’
‘그래도 내 새끼는 우울증은 아니야.’
‘그래도 내 새끼는 밝아.’
‘그래도 내 새끼는 건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