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최훈의 심리만화경]이라는 코너에
가수 싸이가 공연 중 관객들에게 말했다는
‘기록하지 말고 기억하세요!’ 라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쓴 글을 읽어봤습니다.
가수 싸이가 한 대학 축제에 참석해서 보니
예전에는 학생들이 같이 호응하며 신나게 공연을
즐겼는데, 요즘에는 다들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며
공연을 보길래 그 자리에서 이렇게 외쳤다고
하더군요. “기록하지 말고, 기억하세요!”
핸드폰으로 기록하는데 집중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오롯이 공연 자체를 즐기길 원했던
공연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을 겁니다.
그 기사 내용을 소개한 분이 말하길
"이는 인지 심리학적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된다.
인간의 주의 용량은 한계가 있어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핸드폰 촬영에 주의를 할당하면, 공연에
집중할 주의력이 작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그 얘길 들으니 예전 강릉 법회의 어느 날이
떠오릅니다
늘 그러듯이 부처님 말씀이 시작되면 많은 법우님
들은 가져온 작은 노트나 메모장에다 말씀 하시는
내용을 옮겨적느라 정작 부처님에겐 눈길도 주지
못합니다. 제가 요 근래 선사님 강의 내용을
옮기는 작업을 하다 보니, 아무리 정신 차려
부리나케 따라 적는다 해도 핸드폰 자판 치는 게
느리다 보니 천천히 얘기해도 직접 기록한 건
전체의 채 20%도 안 되는 데다 그마저도
오기도 많고 순서도 뒤죽박죽인데다 기억에
남는 단어들로만 채워진 경우도 많아서
끝나고 읽어보면 문장이 뚝뚝 끊어지고 앞뒤가
연결이 안 돼 당최 뭔 내용인지 해석이 안 되는
게 태반입니다.
그 당시 법우님들이 수첩에다 열심히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의도야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서
마음에 가르침을 새겨두려 함이었겠지만 제가
경험했듯 적어둔 그 글만 가지곤 말씀의 진의를
파악하기란 불가능 한 것이고 그저 스냅사진처럼
한 구절, 한 장면을 남겨놓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때문에 싸이가 기록보단 기억하라고 한 이유도
그걸 제대로 근사하게 잘 찍으려는데 정신이 팔려
진짜 느껴야 하는 그 순간의 순수한 열정이나
뜨거운 감동을 놓치기 때문인 것처럼, 부처님
하시는 말씀을 적기 바빠 그때가 아니면 사라지고
마는 부처님 말씀 파장의 기운, 부처님과의 진심
어린 소통의 시간들을 그냥 다 놓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그런 저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적지 마세요. 그건 나중에 우리 카페에 다
올려둘 테니 지금은 그냥 내가 하는 말에만
귀 기울이면 된다"고 말입니다
요즘 세대들 사이에선 안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 있는 인스타그램을 보면 자신의
일상의 모든 순간들을 다 사진으로 찍어서
올려놓곤 합니다.
단순히 그저 기록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맛집을 찾고,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여행지를 소개하고, 눈길을 끌
만한 특이한 장면, 특색있는 컨셉을 연출하는
등 내 것을 자랑하고 남의 것을 들여다보며
즐기는 그들만의 정보 소식통이자 소통의 장이
된 것 같습니다
그들 만큼은 아니더라도 흔히들 여행을 가면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하면서 모든 장면,
경험을 사진으로 담아 남기기 위해 지극정성인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사진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시간이 지나면 이 장면이나 경험을
그대로 생생히 떠올리기 힘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위에 컬럼을 쓴 그분은
'우리의 기억력은 형편없다. 우리의 경험 중
매우 일부분만이 저장되고, 그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망각되거나 왜곡되기 마련이다.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힌트를 주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 속 정보들은
연관 있는 것들끼리 연결되어 있어서,
어떤 힌트를 보면 관련된 정보들이 함께 떠오른다.
이런 힌트를 심리학에서는 인출단서라고 한다.
두말할 것 없이 사진이나 동영상은 너무나도
훌륭한 인출단서이다.'라며 공감을 하기도 했지만
그도 나중에 잠시 언급했듯이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나의 감정도
얼마든지 훌륭한 인출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힘든 일이 있어서 술 한잔할 때,
예전 연인과 헤어졌을 때 들었던 노래가
생각나는 것도 슬픈 감정이 인출단서로 작동한
결과라고 했는데, 저도 아주 오래전 멀리 떠난
고생스런 여행길 중, 남의 나라 휴게실에서 잠시
맡아본 향긋한 새벽의 커피 향, 가는 내내 차에서
들었던 음악을 떠올리면 지금도 여전히 그때의
그 아련한 기분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단순히 생각이나 기억이 아니라 그 기분이나
감정까지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며 그때로
시간여행을 시켜주곤 합니다.
‘기록은 기억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지금 경험이 잊힐까 두려워 핸드폰에 그 경험을
담아 두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단순한 기록을 위해 내 경험을 희생하는
것보다는 내 즐거움의 감정을 온전히 마음속에
기록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는 그 이의
맺음말에 백번 공감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