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림역10:31 구리역1번11:30 마을버스2번11:38 하차11:48 동구릉(12매표소-13역사문화관-홍살문,-10재실-9수릉-8현릉-6건원릉-7목릉-5휘릉-4원릉-3경릉-2혜릉-1숭릉-숭릉연지-홍살문-12매표소) 점심14:30 6번마을버스14:58 구리역15:22 신도림역16:25
구리역1번출구22211버스정류장: 마을버스 6-1, 2, 2-2, 6
오늘 날씨가 따뜻한 가운데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에 가기 위해 신도림역에서 김밥을 사고 지하철로 구리역에 하차해 마을버스로 동구릉에 도착하니 12시가 다 되었다.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제법 있었고 매표소를 거쳐 역사문화관을 둘러보고 시계반대방향으로 왕릉을 관람하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능안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고 밖에서만 관람을 했다.
곳곳에 관람객이 쉴 수 있는 의자는 있었으나 음식물 섭취를 금한다는 안내판이 있어서 배가 고팠으나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관람을 마치고 동구릉을 빠져나와 2시30분이 넘은 뒤에야 동구릉 입구 앞에서 김밥과 커피로 늦은 식사를 마쳤다.
동구릉은 약450년에 걸쳐 조성된 9기의 능이 모여있는 조선최대의 왕릉군으로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이곳에 잠들어 있다.
1408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건원릉을 시작으로 문종의 현릉, 선조의 목릉, 현종의 숭릉, 장렬왕후의 휘릉, 단의왕후의 혜릉, 영조의 원릉, 헌종의 경릉이 차례로 조성되었다.
당시의 능의 개수에 따라 동오릉, 동칠릉 등으로 불리다가 1855년 문조의 수릉이 이곳에 옮겨오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사적 제193호 1,915,891제곱미터에 달하는 구역에 9개 능에 17위의 유택이 있으며 2009년6월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됨.
건원릉(조선1대 태조의 능)
태조는 고려말 뛰어난 장군으로서 공민왕대부터 여러 차례 공을 세웠고 1392년 개경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동안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나라의 이름을 조선으로 정하는 등 조선왕조의 기틀을 마련함.
건원릉의 봉분은 다른 왕릉과 달리 잔디가 아닌 억새로 덮여있는데 태조의 유언에 따라
고향인 함흥의 억새를 덮은 것이라한다.
현릉(조선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
문종은 세종의 아들로 8세에 왕세자로 책봉된 후 아버지 세종을 도와 정치실무를 익혔다.
재위기간 동안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의 역사서를 편찬하였고 군사제도를 정비하였다.
현덕왕후는 1431년 왕세자 문종의 후궁이 되었고 1437년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나 단종을 낳고 곧바로 세상을 떠났다.
문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후로 추존됨.
목릉(조선14대 선조와 첫번째 왕비 의인왕후, 두번째 왕비 인목왕후의 능)
선조는 중종의 손자이자 덕흥 대원군의 아들이다.
재위기간 동안 일본으로부터 두 차례의 침략(임진왜란, 정유재란)을 당해 큰 혼란을 겪음.
의인왕후는 1569년 왕비로 책봉된 후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인목왕후는 1602년 왕비로 책봉되었고 광해군과 대립하여 1623년 인조반정을 대왕대비의 자격으로 허락하였다.
휘릉(조선16대 인조의 두번째 왕비 장렬왕후의 능)
장렬왕후는 1638년 왕비로 책봉되었고 예송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숭릉(조선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
현종은 역대 조선 국왕 중 유일하게 청나라 심양에서 태어났다.
재위기간 군사력강화에 힘쓰고 호남지역에 대동법을 실시하여 농업을 발전시키는 등 두 차례의 청나라 침략의 피해로부터 국가체제를 회복하기 위해 힘썼다.
명성왕후는 1651년 왕세자빈이 된 후 현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됨.
혜릉(조선20대 경종의 첫번째 왕비 단의왕후의 능)
단의왕후는 1696년 왕세자빈이 되었으나 경종이 즉위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후로 추존됨.
원릉(조선 21대 영조와 두번째 왕비 정순왕후의 능)
영조는 1721년 왕세재로 책봉되고 경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법제도와 국가의례를 정비하고 탕평책을 실시하고 세금제도를 개편하여 조선역대 국왕 중 가장 오래 살았고 오래 재위하였다.
정순왕후는 1759년 영조의 두번째 왕비가 되었고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대왕대비의 자격으로 수렴청정을 함.
수릉(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능)
문조는 순조의 아들로 왕세자로 책봉된 후 순조를 대신해 정사를 돌보았으나 2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1899년 황제로 추존되어 묘호를 문조로 바꾸었다.
신정왕후는 1819년 왕세자빈이 되었고 아들 현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대비가 되었다.
경릉(조선 24대 헌종과 첫번째 왕비 효헌황후, 두번째 왕비 효정황후의 능)
헌종은 추존 문조의 아들로 1834년 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라 할머니 순원황후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재위기간 세도정치로 인해 사회가 혼란했다.
효헌황후는 1837년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1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효정황후는 1844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경릉은 헌종과 두 황후의 봉분 세개가 나란히 놓인 모습으로 이러한 모습으로 이런 형식의 능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다
홍살문
재실
수릉
수릉
현릉
현릉
현릉
건원릉
목릉(선조)
선릉(의인왕후)
목릉(의인왕후)
목릉(의인왕후)
목릉(인목왕후)
휘릉
휘릉
원릉
경릉
혜릉
숭릉
숭릉
숭릉
숭릉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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