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부 어둠의 산하
18쪽 :
의열단원들은 입단과 동시에 죽기를 맹세한 사람들이었다.
그 맹세에 따라 죽어간 사람이 벌써 300명이었다.그들은 하나같이 젊은 나이에 조선에서 일본에서 만주에서 시베리아에서 왜적을 향해 폭탄을 던지고 총을 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잡혀서 총살을 당한 것이었다.목숨을 내 놓은 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들에게 짧은 삶을 여한 없이 살라는듯 조직에서는 비싼 양복이며 구두 같은 것을 아낌없이 해입히고 사신겼다.
의열단의 경륜과 강령을 체계화한 것은 신채호 선생이다.
1923년 1월 발표. 신채호선생은 일체의 타협주의를 배격하고 오직 폭력적 민중혁명에 의한 일제의 타도라는 전술을 내걸었던 것이다.
젊은 피들이 죽을것을 각오하고 군사훈련, 교육, 문화교양까지 쌓은 뒤 밀정들을 제거하고 일본에 폭탄을 던지고, 그러다가 짧은 인생을 마치고.....
예나 현재나 젊은이들의 한 걸음이 무척 중요하다.
75쪽 :
"그 사람들 참 한심스럽기 짝이 없소. 이광수는 상해임정의 독립신문 주필까지 하고는 민족개조론을 써 자치운동의 씨를 뿌리더니만, 최남선은 독립선언문을 작성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또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써 자치운동에 불을 붙이고 있소. 의열단 조선혁명선언서를 통해서 자치주의자나 내정독립운동자나 참정권자나 문화운동자나 모두 일본놈들과 똑같은 우리의 적임을 선언한 신채호 선생의 결연한 태도와는 너무나 좋은 대조가 되는 것 아니오."
한쪽에서는 목숨을 걸고 나라를 찾으려 노력하고, 한쪽에서는 목숨이 아까워 일제의 앞잡이가 되었다. 이광수, 최남선 같은 지식인이......
내가 그 어려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어떤 길을 걷게 되었을까? 자신할 수가 없다. 그 시대에 태어나 목숨걸고 나라를 찾으려 노력한 선조들께 감사할 다름이다.
163쪽~164쪽
동경에서 제일 먼저 탄생된 유학생들의 사회주의 조직은 노동동지회였다.그 결성이 1917년 1월 이었다.그것이 3년 후에 조선고학생동우회로 바뀌었고, 그 단체는 1922년 2월에 본국으로 진출해 <조선일보>에 그 유명한 동우회 선언을 광고로 발표했다.그건 조선땅에서 일어난 최초의 계급투쟁 선언이었다.
그리고 고학생동우회의 일부가 1921년11월에 따로 결성한 것이 흑도회였다. 그건 다시 1922년에 풍뢰회와 1923년에 북성회로 갈라졌다.
북성회는 건설사를 조직해 한성의 거점을 마련했고, 그것을 강화해 1924년 11월에 북풍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동경의 북성회의 명칭을 금년 1월에 일월회로 바꾸었다. 한성에서 북풍회와 같은 시기에 결성되어 세력균형을 이루고 있는 화요회는 1923년 7월에 조직되었던 신사상연구회가 탈바꿈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두 단체의 공통점과 특징은 핵심간부들이 모두 일본유학생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이 마침내 하나로 뭉치기로 합동결의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북성회가 본토에 확고한 뿌리를 내린 것에 비해 풍뢰회는 1923년 1월에 흑우회로 이름을 바꾸고 8월에 해체되고 말았다.
송중원은 그 합동이 잘 이루어져 무언가 큰 힘을 발휘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독립운동을 위해 몸담을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은 그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순되게도 동경유학을 갈 수 있는 지주의 자식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고, 그들을 통해 공산주의는 확장되어갔다. 아직 정확하게 몰라도 공산주의를 통해 독립운동을 하려는 젊은이들이 늘었다. 대부분 부모의 돈으로 유학온 부유층 자식들이었다.
177쪽 :
"보래, 내가 머시라카드나. 글자만 소리내 읽는다꼬 되나 어데. 속 뜻얼 알아야제. 어이 영근이, 그 대목 새로 읽어 보능 기 어떻겄노."
구상배가 일렀다.
방영근은 네 번째 조항을 천천히 다시 읽어 내려갔다.
"보래, 보래, 딴말이사 앞뒤 짚어 감서 얼추 알겄다마는도 거 범포라카는 말언 머꼬, 범포."
"범포라...... 그렁게 고것이 말이시 잉..... 나라 살림에 바쳐야 헐 돈이고 곡식얼 써 없애부린다 허는 말이로구마."
이승만 탄핵안을 읽으며 하와이의 조선인들은 희망을 잃었다. 나라 찾는데 보탬되기 위해 사람 취급 못 받으며 번 돈을 쪼개어 낸 돈이 개인의 사리사욕 채우는데 쓰였다는 사실에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
사탕수수농장에서, 파인애플 농장에서 허리띠 동여매고 번돈.
조국으로 돌아갈 날 바라며 낸 혈세.
그 돈이 새고 있었던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는 동포신문 <신한민보>에 <임시 대통령 '리승만' 탁핵안>이 보도 되었다.
범포(犯逋)란 다름 아닌 '공금 횡령'의 또 다른 말이었다. 혈세를 횡령한 이승만 그는 해방후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생각만해도 기가 막힌다.
이 사건으로 하와이의 조선인들의 자포자기 심정은 이루 말할수 없이 커졌다.
303~304쪽
"이상화 시인이 지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지. 자아 들어보게.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리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랴 답답해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뷔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나리던 곱은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가비야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들 마을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신령이 접혔나 보다
그러나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봄조차 빼앗기겠네
봄조차 빼앗기겠네.......
학창시절 외웠을 법한 이시가 이렇게 길었든가?
제목은 익숙한데 내용은 기억에 없다.
아마도 국어 시험에 나왔으니 제목은 외웠지 싶은.....
봄조차 빼앗기겠네.....
가슴속에 물기가 흘러 절절해지는 기분이 든다.
역사를 다룬 대하소설을 읽으며
역사적인 사건을 알아나가는 즐거움이 있다.
8권에서는 중국 땅에서 더 핍박받는 조선 백성과 독립운동가, 조국으로 돌아갈 길이 막막해져 희망을 잃어가는 조선 백성들의 설움이 사무친다.
첫댓글 눈솔방장님 ~
아리랑 진도 잘 나가고있네요..
역사 알아가는 기쁨 좋아요 ^^
아직 여행 중 인가요?
스베따운영자님
글이 안올라와 궁금해요~~
멋진 사진 자랑해 주세요~~♡♡♡
@눈솔 잘 댕겨왔어요 ^^
일본의 입장에서는 의열단이 폭력적이겠지만...ㅛ
남의 나라를 제국주의 식민지로 만들고 무단통치를
통하여 모든 자원과 인력을 수탈, 강탈해 가니...
우리 입장에서는 미약하나마 무장 독립투쟁이겠지요...
이승만은 탄핵을 두 번 당하지요...
한 번은 임시정부에서 대통령으로서...
두 번째는 대한미국 정부에서 국민들에게...
대한미국 헌법전문에 이렇게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그러니 이승만은 확실하게 두 번씩이나
탄핵을 당한 치욕스런 대통령이라고 역사에
기록된 사람이 분명함에도... 그런 사람을
위하여 기념관을 짓겠다니...얼이 빠져도...
한참이나 얼이 빠진 인간들이라니...
이상화 선생은 형제분들이 다 독립운동가들이셨고...
동생 되시는 이상백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교수로
역사학자로, 대한농구협회장도... IOC 한국 대표도
지내시기도 하셨고, 형님인 이상정 장군은 광복군을
거쳐 중화민국 3성장군까지 지내시고...
시조시인으로 손가락에 꼽히는 분이시기도 하고...
부인은 조선 최초의 여자 전투비행사 출신 권기옥선생이시기도...
이승만이 임정에서도 탄핵된적 있다는걸 이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대통령이 된건 미국을 등에 업어서 인가요? 인재가 없어서 인가요?
그부분을 끌끌 혀를 차며 읽었답니다.
권기옥 선생이 이상화 시인의 가족이 되는군요.
그건 모르고 최초 여자 비행사라는 것만...
댓글 감사드리며, 오늘도 복된 하루되세요.
점심도 맛나게 드세요~~
@눈솔 선생님
폭력적 혁명이라는 부분은 일본의 입징에서
표현하는 말이기 때문에 정밀 쓰면 아니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항일 무장독립
투쟁이라는 표현을 써야 합니다.
예를 들면 수나라, 당나라가 고구려 정발에
니섰다는 표현에서 정벌은 잘못했기 때문에
벌주러 나섰다는 표현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고구려 정벌이라는 표현을 쓰면 아니되는
것처럼 너무나 쉽게 쓰기도 합니다.
오지랖이 좀......^^!
오늘도 날씨가 좋습니다.
전 한강변에 나가서 맛난 커피나
한 잔 해야겠습니다...
@안암골 다시 읽어보고 뭐가 문제인지 확인했어요.
폭력적 혁명은 제 표현이 아니고 책속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서 그리되었네요.
부연 설명을 해주시니 정확한 표현을 해야하는 이유를 더 쉽게 이해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한강변 ☕️
분위기 좋은 까페.
부러워요 ^^
@눈솔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승만이 대통령이 된다는
시나리오는 애초에 없었습니다만 해방공간에서
지도자들이 의문의 암살들이 계속 이루어지며
이승만 하니민 남이 결국은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는 결과가 되었지요..
제가 초딩6학년?, 중1?... 아마 그 언저리 쯤에
김두한씨 자서전을 우연찮게 읽게 되어서 부모님
에게 물어가며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이승만씨가
김두한을 불러 이승만의 만자기 써있는 백지 싸인을
주는게 나오는데 그걸 받은 김두한씨가 엄청난 테러를
일으키는 것이 찬 많이 나와요. 그러다기 미군정에
의해 오끼나와 형뭇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어느 날 뜬금
없이 풀려나지요. 알고 봤더니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미군정 범죄자도 한국정부에 이관되며 풀려 나는데
이승만에게 불려간 김두한이 이승만으로부터 '사람 그만 죽이게!'
라는 말을 듣고 나와서는 엄청난 분노를 쏟아내는 표현이 나오지요.
누구를 위해 그런 짓을 했는데... 라는...
영화 '장군의 아들'을 보며 참 황당하고 씁쓸했던 기억이 납니다...
@안암골 선배님 ~~
댓글에 설명이 상황이해를 할 수 있게 도움이 되네요.
저는 임정에 탄핵받은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김두한과 이승만의 이야기도 처음알게 되었네요.
늘 관심, 격려 힘이 된답니다.
@눈솔 선샌심...
해방공간에서의 이승만과 정치 테러범 김두한!
김두한이 없는 사이를 비집고 등장한 광장시장의
동대문 깡패 이정재!
대통령이 되고나서의 이승만과 정치깡패 이정재!
불교계의 큰스님 청담스님과 손잡은 대통령 이승만!
선불교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깡패들을 머리깍여
승복을 입히고 선불교의 재산을 강탈한 청담스님..
우리나라 불교계의 깡패들이 등장한 시초, 원죄자!
그리고 그렇게 강패들의 주먹 맛을 알아버린 불교계!
사찰의 주지가 바뀔 때마다 머리깍인 깡패들이 동원되어
난투극을 벌이던 것이 티브이에 중계되던 시절들...
그 등장들이 싹 다 이유가 있었답니다.